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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예술센터 & 극단 신세계 <파란나라>

우리 안의 나, 내 안의 우리

김슬기_공연저술가
104호 2016.11.17
나는 어떤 세상에서 살고 싶은가. 이것은 하루하루 굴러가는 매일의 삶 속에는 없는 이야기다. 그러다보니 점차 그런 생각을 품는 일마저 줄어들어 버린다. 그저 주어진 당장의 순간을 무사히 넘기기 위해 애쓰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친다. 연극 <파란나라>는 바로 그 세상을 질문한다. 지금 우리는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지, 우리가 원하면 이 세...

나는 어떤 세상에서 살고 싶은가. 이것은 하루하루 굴러가는 매일의 삶 속에는 없는 이야기다. 그러다보니 점차 그런 생각을 품는 일마저 줄어들어 버린다. 그저 주어진 당장의 순간을 무사히 넘기기 위해 애쓰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친다. 연극 <파란나라>는 바로 그 세상을 질문한다. 지금 우리는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지, 우리가 원하면 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지, 그렇다면 바꾸고 싶은 세상은 어떤 곳인지, 그리고 결국은 왜 우리가 이런 세상에 던져질 수밖에 없었는지 이야기한다. 새로운 물음이 생겨나는 것은 바로 여기에서부터다. 나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고 싶은가. 연극은 내가 처해 있는 상황과 맥락, 이 사회, 혹은 그 어떤 세상과 같은 것들을 잠깐 내려놓고, 내가 원하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보라고 말한다. 내가 원하는 것이 있기는 한 건가?

그냥 게임일 뿐이었는데

이것은 1976년 미국의 어느 고등학교 수업시간에 벌어졌던 실험에 관한 이야기다. 역사 교사 론 존스는 “나치는 10%에 불과했는데 왜 90%의 독일인들이 홀로코스트를 막지 않았나요?”라는 한 학생의 질문에, 그것을 직접 체험해보기 위한 5일간의 게임을 제안한다. 개인성을 강조하는 대신 규율과 공동체를 우선시하는 이 게임은 ‘제3의 물결(The Third Wave)’이라는 이름으로 간단한 규칙들을 정해나갔다. 그는 첫째 날, 학생들 사이에 자리 배치를 다시 한 다음, 질문을 하거나 대답을 할 때 자리에서 일어서는 것을 약속으로 정했고, 이튿날에는 교실 밖에서 만났을 때 학생들 사이에 서로 경례를 하게 만들고 회원증을 발급해주었다. 그러자 불과 사흘 만에 이 게임에 자발적 참여의사를 밝힌 학생들이 30명에서 200명으로 불어났고, 존스는 자신이 더 이상 이 상황을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결국 그는 학생들에게 이것이 전 국가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운동이며, 다음 날 그 지도자의 공식발표가 있을 예정이니 모두 강당에 모이라는 공지를 전한다. 그리고 학생들은 그곳에서, 나치에 열렬한 지지를 보내는 2차 대전 당시 독일인들의 영상을 마주하게 된다.

어떻게 해야 다르게 살 수 있습니까?

바로 이 게임이 오늘날 한국의 교실에서 재연된다. 극단 신세계의 김수정 연출은 EBS <지식채널e>에서 ‘환상적인 실험’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된 이 이야기에, 그동안 자신이 경허해온 한국 사회의 단면이 겹쳐졌다고 말한다. 학창시절부터 내내 나는 이런 극단적인 집단성에 노출되어 있었던 것 같다. 그 집단의 폭력이 싫은데 한편으로는 다시 그 안에서 똑같은 폭력을 만들어내고 있고, 그걸 반복적으로 경험했다. 공동체에서 배제되는 게 두렵기 때문에 그 문화를 따라가게 되기도 하고, 순응해서 살다보면 눈에 띄지 않게 되니까 그게 편안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이 사회 어딜 가도 마찬가지라는 걸 알게 되니, 집단에 속해 있다는 게 결코 안전한 것만은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절망스러웠던 건, 배우고 경험해온 것이 이것밖에 없어서, 이렇게 하는 것 외에는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집단 안에서 개인이 느끼게 되는 공포, 그리고 그것을 벗어났을 때 맞닥뜨리는 불안, 결국 우리 모두는 그 사이 어딘가에서 자신만의 타협점을 찾아 살아가게 된다. 정말이지, 이렇게 사는 게 무척이나 만족스럽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거라 믿고 싶다. 그런데 어디서부터 뭘 어떻게 해야 다른 방식으로 살 수 있는 건지 모르겠다.

그래서, 우리 안의 파시즘

고등학교 교실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니만큼 물론 연극엔 이 시대 청소년들의 일상이 매우 적나라하게 들어온다. 대본은 공연에 참여하는 모든 배우들이 한 해 동안 수도권 인근 중고등학교에 예술강사 수업을 나가면서 학생들을 직접 만나고 대화하면서 현장에서 수집한 말들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정작 이 연극이 겨냥하고 있는 것은 그 표현의 노골성 뒤에 숨은, 비어있는 언어와 뒤틀린 관계다. 학생들하고 대화하면서 이들이 하는 말들이 대부분 다른 데서 들은 얘기를 반복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뉴스에서 나온 보도, 인터넷에 떠도는 소문, 어른들이 주고받는 얘기, 혹은 자신보다 힘 있는 아이들이 하는 말까지, 그걸 고스란히 내뱉는다는 인상이 강했다. 그리고 그건 비단 아이들뿐만 아니라 이 사회를 살아가는 어른들, 우리 모두가 마찬가지 아닌가 싶었다. 아이들의 세계는 어른들의 그것과 완전히 닮아있다. 그 안에서도 철저히 구조화된 계급에 따라 공동체가 작동하고, 이해관계가 성립하지 않으면 아예 관계 맺지 않는다. 그러니, 이 참담한 현실이 한편으로 섬뜩하면서도 내가 학교 다닐 땐 저렇게까진 하지 않았어, 라고 변명할 수가 없다. 어떻게 아이들을 탓할 수 있겠는가. 나는 어떤 어른인가.

연극은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 만들어낸 이 움직임을 ‘파란나라’, ‘파란혁명’으로 지칭하고 그로부터 변화해가는 집단과 그 안의 개인을 그려나간다. 허나 이 시대의 실상이 참으로 섬뜩하구나, 라는 자각도 잠시, 관객들은 이내 극장을 집어삼킨 말 그대로의 ‘파란’ 광기와 말로는 포착되지 않는 ‘파란’ 폭력에 그 어떤 방어막도 없이 노출되어 버린 스스로를 발견하게 된다. ‘꿈과 사랑이 가득한’ 나라 같은 건 이제 더 이상 없다는 게 분명해졌는데도, 그것에 함께 하겠다는 사람들이 무대를 가득 채우고 이토록 초현실 같은 현실이 내 안의 무언가를 압도해버리는 순간, 연극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작은 흐느낌, 내가 뭘 할 수 있었겠어요. <파란나라>는 이렇게 막을 내리지만, 우리가 살아가야 할 세상은 여전히 진행형이고, 나아가 우리가 살고 싶은 세상은 아직 시작도 되지 않았다. 그러니 우리 안의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내 안의 우리는 이대로 괜찮은가.

*** 이 연극은 극장을 찾게 될 관객들에게 다음과 같은 안내를 하고 있다.

“본 공연의 관객 분들은 흰색 상의를 입고 오셔야 합니다. 다른 색상의 옷을 착용하실 경우 느낄 불쾌감에 대해 남산예술센터와 극단 신세계는 어떠한 책임도 질 수 없음을 안내드립니다. 선택은 관객 분들의 몫입니다”

 

[사진: 남산예술센터 제공]

일시
11월 16~27일 평일 8시, 주말 3시, 월 공연 없음
장소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작·연출
김수정
출연
강지연, 권주영, 김두진, 김보경, 김선기, 김정화, 김진태, 김형준, 박경찬, 박미르, 박세인, 양정윤, 이은정, 이종민, 이태영, 이창현, 전수빈, 하재성, 홍승안
문의
02-758-21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