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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문화재단 <청년, 문화 예술 포럼>

청년, 그리고 예술가 곁으로 다가서기, 시작

유혜영
107호 2017.01.05
‘청년, 문화 예술 포럼’은 ‘청년’이란 단어에서 숨을 들이쉰다. 서울문화재단은 ‘청년 예술가를 지원하는 제도’, ‘청년이 제안하는 지역문화’, ‘청년 문화기획자들의 전망’이라는 세 가지 토론 주제를 정하고 청년들을 불러 모았다. 포럼이 벌어지는 현장은 젊고, 힘이 있었으며, 이미 웅성거렸다. 참가자들은 사전 등록할 때 ...

‘청년, 문화 예술 포럼’은 ‘청년’이란 단어에서 숨을 들이쉰다. 서울문화재단은 ‘청년 예술가를 지원하는 제도’, ‘청년이 제안하는 지역문화’, ‘청년 문화기획자들의 전망’이라는 세 가지 토론 주제를 정하고 청년들을 불러 모았다. 포럼이 벌어지는 현장은 젊고, 힘이 있었으며, 이미 웅성거렸다. 참가자들은 사전 등록할 때 답변하게 되어 있었던 관심 분야에 따라 8개의 그룹으로 임의 배정되었다. 함께 온 사람들도 있었지만, 오늘 처음 만난 사람들도 있었다. 낯선 사람들 사이를 차지한 어색함과 호기심이 분위기를 들뜨게 하고 있었다.

필자는 ‘청년 예술가를 지원하는 제도’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룹으로 배정받았다. 각 그룹에는 ‘테이블 리더’가 두 명씩 함께 했는데, 토론의 주제와 관계된 분야에서 독립적으로 또는 조직적으로 일하고 있는 예술가나 기획자들이었다. 리더들은 사전에 모여서 토론의 주제와 어떤 방식으로 대화를 이끌어갈지, 어떤 화두들을 던질지에 대해 먼저 논의하고 준비했다고 했다. 1시간 반가량의 토론 시간은 이들이 질문하고 정리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청년 예술가는 누구인가?’

우리 그룹에 던져진 첫 질문이었다. 다름 아닌 ‘청년’들이 모여 문화예술에 대해 자유롭게 목소리를 내보자며 모인 자리에, 초대받은 우리는 과연 누구인가, 포럼 리플릿에 소개된 대로 나이가 20~30대라면 청년일까? 연령만으로 청년인지 아닌지를 구분해도 되나? 청년이 누구인지도 명확히 정의할 수 없는데, 청년 예술가는 또 누구일까? 해답 없이 맴도는 몇 마디 발언들을 거쳐 우리는 또 한 가지 심오한 질문에 부딪혔다.

‘청년 예술가는 지원받아야 하는가?’

청년 예술가를 지원하는 ‘제도’에 대해 토론하는 것이 주어진 시간의 과제이건만 우리 그룹은 아주 근본적인 부분부터 의견 차이를 드러내며 걸음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사실 무엇보다 중요한 질문이었다. 지원하고자 하는 주체는 누구를, 왜 지원해야 하는지 얼마나 알고 있을까? 그것을 명확히 안다면 어떤 형태의 제도가 필요한지도 분명해질 수 있는 것 아닐까?

최근 서울시는 35세 이하 청년 예술인에게 월 70만 원의 작품 활동비를 지원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한 포털 사이트에서 이 계획에 대한 찬반 투표를 진행했는데, 89%가 청년들의 자립 의지를 꺾는 예산 낭비라는 데 표를 던졌다. 제도의 실현 가능성 유무를 떠나서, 청년 예술가가 누구이며 왜 그들을 지원해야하는지 세금을 내는 국민 대다수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 예술활동을 하고 있거나 여러 방면에서 예술을 지원한다는 단 8명이 모여 앉아서도 쉽사리 합의되기 어려운 문제였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을까?

꼬리의 꼬리를 무는 의문의 꼬리를 잠시 끊어 두고, 우리 그룹은 원하는 지원제도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주로 예술가 간 네트워킹에 관한 것이었는데, 특히 연극처럼 여럿이 함께해야 가능한 장르의 경우, 마음 맞출 사람을 찾는 일은 더욱 간절한 것이었다. 가까운 지역 거점별로 때로는 이동하기도 하는 네트워킹 공간, 조건이나 장벽을 두지 않는 완전 오픈형 네트워킹 파티 등이 구체적인 아이디어로 제시되었다. 가시적 예술활동이 아닌, 그를 위한 사전 리서치 지원, 인터뷰 형식의 결과보고서, 언어부터 완전히 새롭게 포맷된 예술지원제도 등 이상적인 아이디어들도 쏟아져 나왔다.

토론을 마친 후, 키워드 형식으로 정리된 그룹별 토론의 내용을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다. 예술 지원 제도에 관해 토론한 다른 그룹에서도 행정 절차의 간소화나 지원제도 정보 제공에 관한 비슷한 의견을 제시했고, 지역으로 파고드는 네트워크, 모이는 것 자체에 대한 욕구 해소는 모든 그룹이 원하는 것이었다. 문화기획자 그룹이 예술가 그룹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들은 자신의 전문성에 대해 확신하고 있고, 정당한 대가로 인정받기를 주장한다는 점이었다. 예술가들도 그의 나이가 어떻든, 경험이 어떻든 고유한 예술세계를 가진 사람으로서 자신에 대해 더욱 확신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토론회 명칭 앞에는 ‘겉에서 곁으로 청년들에게 다가가는’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겉에서 곁으로 다가간다는 다짐. 그동안 겉에만 있었다는 것에 대한 자기반성을 드러내는 것일까. 정책을 결정하는 분들이 ‘청년’이라 부르는 우리 곁으로 정말 다가오기 원한다면, 이번과 같은 토론회가 좋은 채널이 될 것이다. 하지만 토론회 그 이후가 약속되지 않는다면, 청년들은 더 이상 그들의 보석 같은 시간을 내어주지 않을 것이다.
길지 않았지만 뜨거웠다. 명함을 주고받는 사람들, 저녁을 먹으며 계속 모임을 이어가기로 했다는 그룹도 있었다. 우리의 의견이 어떤 모양으로 정책에 반영되어 돌아올지 아직은 알 수 없지만, 서로의 얼굴을 확인하고 서로의 목소리를 듣는 자리로서 의미는 있었다. 서울문화재단도 우리도, 시작은 했다.

[사진: 서울문화재단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