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 버스’
세종시 대침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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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11일 오전 아홉시, 광화문 예술인 캠프촌에 다양한 분야의 문화예술인들이 세종 시로 향하는 버스에 오르기 위해 모여들었다. 취지인 즉 블랙 리스트 작성을 주도한 김기춘, 조윤선의 구속수사를 촉구하고 문화예술계의 분노를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광부)에 밤샘농성 등 다양한 형태로 전하기 위함이었다. 전날 조윤선 장관이 청문회에서 불성실한 답변과 상황을 모면하려는 발언으로 시간만 끌어 예술인들의 분노가 들끓었고 이는 곧 세종행 버스의 ‘연료’가 되었다.

9시 반, 송경동 시인의 1박 2일 일정에 대한 브리핑과 백기완 선생님의 응원사가 있었다. 그리고 광장에 임시 설치되어 있던 박근혜, 김기춘, 조윤선, 이재용의 조각상과 천막 등을 트럭에 실고 우리는 세종시로 출발했다, 두 시간 남짓 달린 버스는 한 시경 세종 시에 도착하였다. 처음으로 방문한 ‘행정중심복합도시’ 세종은 콘크리트로 뒤덮인 차가운 미래도시 그 자체였다. 제각각의 건물들은 그 화려한 디자인을 뽐내고 있었지만 건물들이 함께 모인 정경 속에 놓인 ‘나의 몸’은 자꾸만 한 구석으로 소외되어 버리는 것 같았다. 세종시를 방문한 목적 때문에서인지 이런 환경 속에서 행정업무를 수행해야 하는 공무원들의 정서도 점점 차가워지고 획일화 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광부 건물 앞에는 경찰 버스 네 대가 이미 도착해 있었고 경찰들은 정문에 두껍게 벽을 치고 우리일행을 맞이하였다. 우리는 개의치않고 ‘씸시티’의 그래픽같이 깔끔하게 떨어지는 보도블록 위에 짐을 풀기 시작했다. 한국영상대학교 학생들과 지역 민예총 회원 분들도 자리를 함께 지켜 주었다. 우리는 조각상들을 건물 옆에 배치한 후에 검은 쓰레기봉투를 뒤집어쓰고 바닥에 앉아 침묵시위를 하였다. 미술가들은 50m길이의 백지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중앙도로에서는 꾕과리 소리와 함께 조롱석인 풍물놀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취재열기도 상당히 뜨거웠는데 문광부 건물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시위/퍼포먼스들이 거의 실시간으로 인터넷 창에 뉴스로 올라왔다.

한바탕 놀이가 끝난 후에는 연대발언이 이어졌다. 한 명, 한 명의 발언들에서 지금의 상황에 대한 깊은 분노와 우려가 느껴졌다.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한 다큐멘터리 감독은‘ 지금 박근혜와 김기춘과 조윤선이 물러나면 우리 문화예술계가 변할 것 같습니까?’ ‘저마다 다시 자기작업에만 몰두하고 예술과 문화에 대한 정책과 행정에는 아무도 관심 갖지 않고 신경 쓰지 않으면 결국 이러한 사태는 다시 발생할 것이고 변화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가 변화해야 해야 합니다. 다시 예전처럼 돌아가서는 안 됩니다.’라는 취지의 발언이 나의 가슴에 특히 남았다. 그 말들은 나에게 오늘날의 예술가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라는 질문으로 돌아왔다. 삶과 작업 그리고 공공 영역에서의 실천, 시민으로서의 의무. 이 각각의 영역들은 완전히 분리될 수도, 분리되어서도 안 되지만 늘 그 사이에서 어떤 긴장감을 유지하기란 쉽지가 않다. 이런저런 복잡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치는 순간, 행진이 시작된다는 알림이 왔다. 조각상을 필두로 우리는 대열을 만들었고 그 깨끗한(?) 세종 시 거리를 빗자루로 청소를 하는 퍼포먼스를 벌이며 걸어 나갔다. 일명 ‘쓰레기 청소’. 행진 도중에 종종 건물 앞의 공무원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그들은 대열을 보자 머쓱해하며 자리를 피했다. 국민들의 세금으로 운용되는 행정건물이 그렇게 많은데 우리는 건물 내부의 화장실을 사용할 수가 없게 되어 있어서 특히 여성참가자들의 불편함이 컸다. 대열은 고용노동부, 기획재정부 건물 등을 돌아 다시 문화체육관광부 까지 약 6Km를 걸었고 이후 베이스캠프가 차려진 공터의 천막으로 이동하였다. 우리는 근처 도서관의 구내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해결한 후 심야 예술인 파티를 준비했다.
그 풍경을 간단히 묘사하자면 이렇다. 차디찬 행정도시의 건물을 뒤로 하고 추위를 녹이기 위한 천막과 그 앞에 목재를 넣고 불을 지핀 드럼통 두통이 자리 잡고 있었다. 누군가 지나가다 보면 거지패들이 임시거처를 튼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세종 시와 파열음을 내는 그 대조적인 풍경은 통쾌감을 주었다. 예술인들은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고 시를 읊으며 구호를 외쳤다. 때때로 몸이 얼어붙을 때는 ‘하야’춤을 추며 몸뚱어리를 달궜다. 하늘 위로는 보름달이 점점 차오르고 있었다. 그 속에 자리 잡고 있자니 알 수 없는 해방감이 드는 동시에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거지? 무엇을 하고 있는 거지? 같은 혼돈의 감정에 휩싸이기도 했다.
준비된 공연들이 끝나자 곳곳에서 찬조된 음식과 술들이 들어왔다. 뜨끈한 오뎅 탕과 제육볶음, 김치에 막걸리를 들이키며 ’캠프‘의 분위기는 더욱 무르익어 갔다. 저마다의 그룹에서 현 세태와 미래에 대한 걱정과 전망, 신세한탄(?)의 이야기들이 오고 갔다. 하지만 그렇게 암울하지는 않았다. 몸은 지친 밤이었지만 우리의 소리들은 새벽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얼마 전 송경동 시인의 인터뷰에서 읽은 글귀가 떠올랐다. “나는 누구를 이롭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한계와 모순과 무지와 딜레마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투쟁한다.”

다음날 아침 여덟 시, 우리는 문화체육관광부 공무원들의 출근길을 저지하기 위해 다시 정문에 모여들었다. 박근혜, 김기춘, 조윤선, 이재용의 조각상과 함께 참가자들은 침묵시위를 이어갔다. 공무원들은 우리를 피해 주로 뒷문을 이용해 출근하였는데 이를 발견한 몇몇 활동가들이 랩을 가지고와서 건물의 회전문들을 포장해버렸다. 출근하는 문광부의 직원들도 면목이 없었는지 랩을 뜯지 않고 그 밑으로 허리춤을 숙여 들어갔다. 정문에서는 송경동 시인과 노순택 작가가 의도적으로 경찰들을 헤집고 문 안쪽으로 접근했으나 큰 물리적 충돌은 없었다. 서울 종로에 배치된 경찰들 보다는 세종시의 경찰들이 상대적으로 온순하게 느껴졌다. 그들은 예술인들의 농성을 우두커니 서서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바야흐로 농성의 마지막으로 우리는 다시 한 번 빗자루를 들고 ‘쓰레기’를 치웠다. 도로 곳곳을 돌며 빗자루 질을 했다. 쓰윽쓰윽 쓱싹쓱싹 소리를 내며 빗질을 했다. ‘쓰레기’를 다 치우진 못했지만 쓰레기를 치우는 시늉은 했다. 그것은 일종의 경고이기도 했다. 광화문 광장에서 만들어진 모든 저항 도구들을 싸가지고 세종시를 침공한 문화예술인들의 경고. 그렇게 1박 2일간 우리는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고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다짐의 깃발을 세종 시에 꽂고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