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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연구소 탐구생활, 극단 창세 <카타리나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시대를 초월하는 언론의 어떤 속성

김나볏_공연칼럼니스트
109호 2017.02.09
언론의 속성에 대한 전 국민의 인식이 바야흐로 깊어만 가는 요즘이다. 방송이건 신문이건 간에 언론이란 이름을 앞세워 ‘국민의 알권리’를 부르짖으며 이른바 ‘제목 장사’를 하는 모습들을 매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다매체 시대에 접어들면서 미디어산업은 자체적으로 정화되고 성숙해지는 길을 걷기보다는 자극적인 표현, 교묘한 프레임의 수위를 높여가며...

언론의 속성에 대한 전 국민의 인식이 바야흐로 깊어만 가는 요즘이다. 방송이건 신문이건 간에 언론이란 이름을 앞세워 ‘국민의 알권리’를 부르짖으며 이른바 ‘제목 장사’를 하는 모습들을 매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다매체 시대에 접어들면서 미디어산업은 자체적으로 정화되고 성숙해지는 길을 걷기보다는 자극적인 표현, 교묘한 프레임의 수위를 높여가며 생존경쟁에 몰두한 끝에 자기 정체를 대중에 완전히 들켜버렸다. 매체마다 처한 상황은 다르지만 아마도 언론의 생리상 속보 경쟁과 이슈 선점으로부터 자유로운 곳은 그 어느 곳도 없을 것이다.

문제는 그 가운데 취재의 대상이 된 사람의 명예를 중시하는 마음이 종종 설 곳을 잃는다는 점이다. 보도가 진실을 담보하고 있으며 공익을 위해 널리 알려지는 게 바람직한 경우가 있긴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훨씬 많다. 언론은 사실을 바탕으로 보도하지만 편집이라는 가공할 만한 무기를 내세워 진실을 종종 왜곡한다. 하인리히 뵐의 소설 <카타리나블룸의 잃어버린 명예>가 던지는 화두, 즉 ‘언론의 보이지 않는 폭력’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이유다. 언론의 가능성과 한계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하는 요즘, 이 작품이 연극으로 국내 무대에 오른다. 올해는 하인리히 뵐의 탄생 100주년이기도 해 더욱 반갑고 뜻깊은 무대가 될 듯하다.

알 권리의 진짜 의미에 대해 생각하다

“현 시국을 보면 누가 이렇게 만들었나, 왜 우리는 몰랐어야만 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국민들이 무관심했던 것도 있지만 결국은 그동안 조중동을 중심으로 알 권리가 왜곡되고 감춰져있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나 싶습니다. 미디어의 순기능이 망가져버렸으니까요.” -신동일 연출가

댄스파티에서 만난 이상형을 집으로 데려와 하룻밤을 보낸 카타리나는 다음날 경찰에 체포된다. 그 이상형이 악명 높은 은행강도였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모르고 사랑에 빠진 카타리나는 자신의 무죄를 증명하고자 한다. 착실한 가정부 생활을 해오며 주변 사람들의 신뢰를 얻어왔던 덕분에 범죄자를 도왔다는 누명을 곧 벗을 수 있을 듯 보이지만 카타리나가 비오는 밤마다 차를 타고 어딘가에 다녀왔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궁지에 몰린다.

원작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에는 ‘혹은 폭력은 어떻게 발생하고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가’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약자에게 특히 강한, 작품 속 언론은 카타리나에 대한 검사의 조사 과정을 중간 중간 대중독자에게 흘리며 선정적인 보도로 일관한다. 카타리나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지만 사생활을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는 이유로 언론의 먹잇감이 되고 만다.

지난해 9월 산울림 소극장에서 초연을 거친 후 이번에 동숭아트센터 무대에서 다시 관객을 만나는 이번 공연에서 언론사 기자는 목소리로만 등장한다. 이 같은 설정은 전하는 말이나 글이 있지만 그 내용을 작성한 주체는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 언론의 속성 중 하나를 상기시킨다. 무대에서 관객이 계속 직접적으로 마주하게 되는 것은 카타리나의 증언이다. 관객은 카타리나의 진술이 어떤 식으로 교묘하게 왜곡되는지를 녹음된 기자의 목소리와 비교하며 극을 지켜보게 된다.

언론을 접하는 우리의 자세는

“제 경우 ‘세월호’ 이야기를 극장에서 했을 때 너무 직접적이면 ‘이건 극장에서 굳이 해야 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연극이라는 건 사실 예술이고 그렇다면 미학적 측면이라는 게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죠.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우리 시대의 속성을 담고 있지만 그걸 조금 더 객관적으로 보게 하기 위해 원작 속 1970년대를 그대로 살렸습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 관객이 다른 나라의 옛날 얘기를 보듯 했으면 좋겠어요. 그러던 중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도 우리 현실에 닿아 있을까’를 생각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신동일 연출가

연극 <카타리나블룸의 잃어버린 명예>에서는 비단 왜곡을 일삼는 언론만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공연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노라면 우리 일반 대중의 모습들도 무대 한 구석에 출몰한다. 바로 무비판적으로 언론 보도를 쉽게 수용하는 군상의 모습이다.

무대는 높낮이가 있는 원형 층계 모양으로 제작된다. 무대 중심부의 낮은 지대에서 카타리나에 대한 취조와 재판이 주로 이뤄진다면 인간 군상의 모습은 무대 뒤쪽, 계단 상부에서 주로 표현된다. 트렌치코트와 중절모를 착용한 익명의 무리들이 멀찌감치 떨어진 채 거리에서 신문을 보는 식이다. 이들은 자기들끼리 신문을 보며 수근 대다가도 카타리나 블룸이 가까이 가면 피하는 모습을 보인다. 푹 눌러쓴 모자에 눈동자를 감추고 가십거리를 즐기는 대중의 모습은 어쩐지 그리 낯설지만은 않게 다가온다.

신동일 연출가는 “관객들이 마치 명절 때 옛 명화를 보듯 편하게 봤으면 한다”면서 “무엇보다 카타리나 블룸의 생각과 정서의 변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옛 영화를 우연히 푹 빠져서 보다가 그 속의 세계가 내가 속한 세계와 상당히 유사하다는 것을 발견하고 ‘이래서 명작이구나’ 하며 감탄하게 되는 것처럼 이 작품도 그렇게 관람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다. 시대를 넘어 사람들의 삶을 관통하는 이야기들을 담은 이 연극이 지금, 여기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사유로까지 관객들을 이끌어내는 공연이 될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사진: 극단 창세 제공]

일정
2월 10~26일, 평일 8시, 토 3시, 일 4시, 월 쉼
장소
동숭아트센터 꼭두소극장
원작
하인리히 뵐
번역
이연수
각색·드라마트루기
홍진호
연출
신동일
출연
변민지, 한정현, 서병철, 정재은, 정해연, 황위재, 이진한, 홍유진, 유재훈, 이채영
문의
010-4950-6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