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구십구도 <신의 직장>
어떤 신은 직장에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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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이야기
‘신(神)의 OOO’로 시작하는 제목을 이곳저곳에서 본다. 경쟁이 너무도 치열해서 성취할 수 없어 보이는 무언가를 손에 넣었을 때, 농담처럼 ‘신의 자녀’, ‘신의 자식’이라 부르기도 하고. 솔직히 <신의 직장>이라는 제목이 대단한 호기심을 자극하지는 않았다는 얘기다. (미안해요, 돌려 말할 방법이 없었어요.) 제목과 더불어 작품 소개 역시 내 마음을 끌어당기진 않았는데,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이 작품은 지잡대 출신에 남들 다 있는 토익 점수도 별로, 취미도 특기도 없는 만년 취준생 구진남이 3대가 덕을 쌓아야 들어갈 수 있다는 좋은 회사에 합격하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스펙이 하찮은 청년이 소위 '신의 직장'에 '인턴'도 아닌 '정직원'으로 들어가서 동료들에게 존중받고 인간다운 대접을 받을 수 있을까.”
그리고 이렇게 덧붙인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이야기를 다루고자 했다.” 정확하다. 연극 <신의 직장>은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이야기’다. 그리고 ‘현실에서 불가능했으면 하는 이야기’이다. 왜 이 이야기가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지는 주인공 ‘구진남’에 대해 알아두는 것이 도움된다.
서른두 살의 구진남은 2년 동안의 취업 준비 끝에 한 회사의 입사 면접을 보게 된다. 서른에 대학을 졸업한 것도 꽤 늦은 일인데, 2년 동안 매번 서류 전형에서 탈락했던 것이다. 안타까운 사연이지만,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낯선 대학’을 10년 만에 졸업, 토익 점수는 안 적는 게 차라리 나을 650점, 특별한 과외 활동 전무’라는 구진남의 스펙을 보면, 그가 번번이 서류전형을 통과하지 못한 것은 ‘가능한’ 이야기다. 그런 그가 10시에 출근하여 5시에 퇴근하고, 수요일은 점심 후 재택근무, 금요일은 3시 퇴근하면서도 초봉이 5,000만 원인 직장에 덜컥 합격하다니! ‘불가능한’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잘 몰라야 산다
그는 왜 뽑힌 것일까? ‘신의 직장’에. 왜 자신을 뽑았냐고 묻는 구진남에게 사무실 사람들은 당신이 왜 뽑힌 것 같으냐고 되묻는다. 그의 대답은 “잘 모르겠습니다.”인데, 부서장은 “바로 그거!”라며, 진정성이 느껴져 뽑았다는 황당한 답변을 돌려준다. 이때부터 이 회사의 진정성을 의심해 보아야 한다. 아니 애초에 초봉이 5,000만 원이라고 할 때 다시 생각해봐야 맞지 않나. 그런데 구준남은 출근 첫날 지각하는 더 놀라운 비현실성으로 이 회사의 비현실성을 덮어 버린다.
“잘 모르겠습니다.”와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는 구진남이 회사에서 가장 많이 하게 되는 말이다. 그가 “잘 모르겠다” 그리고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할 때, 동료들은 안도한다. 그에게 직장이란 잘 알아서도, 잘 기억해서도 안 되는 아이러니한 곳이다.
그러던 어느 날, 구진남이 무언가를 ‘잘 알아버리는’ 사건이 발생한다. 동료들이 모르는 무언가를 알아버렸다. 그러나 그는 이것을 잘 기억해선 안 된다. 잘 기억하는 순간, 그래서 모든 것을 알아버리는 순간, 직장은 더는 ‘신의 직장’이 아니다. 그의 삶은 신에게 내쫓겨 천상에서 나락으로 떨어지게 될 테니.
호사(4)분면: 친절도와 업무능력을 기준으로 만든 사분면.
직장인, 상사를 평가하는 구분표.
이쯤에서 옆 그림, ‘호사분면’을 보자. 인터넷에 떠도는 직장인 분석표다. 호사분면에 따르면 ‘일을 잘하고 친절한’ 직원은 ‘호인’이고, ‘일을 잘하는데 싸가지 없는’ 직원은 호랑이다. 또, ‘일은 못 하지만 친절한’ 직원은 호구다. 구진남을 굳이 분류하자면 ‘호구’에 속한다. 하지만 회사가 할 일을 주지 않아 못하는 것이니 억울할 수도 있다. 같은 팀인 부서의 부서장, 대리, 주임은 모두 거의 일을 하지 않으니 모두다 ‘호구’과 여야 하는데, 호랑이도, 호로XX도 이상하게 있다. 호사분면에 가장 잘 적용되는 직원이 있다면, ‘김 과장’이다. 사무실에서 유일하게 컴퓨터를 두드리고 있는 사람 말이다.

신은 직장에 다닌다.
이 이상을 말하는 것은 지나친 ‘스포’일 듯하다. 직장에서 일하는 김 과장이 도리어 이상해 보이는 이 비현실적 회사와 이 대단한 회사에 들어온 구진남의 비현실적 상황을 현실화하는, 신(神)이라 부를만한 무언가를 찾는 것은 관객의 몫이다.
막바지에 이르면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이야기’이던 이 작품의 불가능성과 비현실성은 홀연히 사라진다. 그러다 다시 구진남이 10년이나 대학을 다녀야 했던, 2년 동안 서류통과도 될 수 없었던, 그 현실로 돌아와 있다. 현실은 그대로일 뿐인데, 짙은 비현실의 안개를 뚫고 돌아온 현실은 몇 배는 더 탁하고 씁쓸해져 있다.
어떤 조건들이 신의 직장을 만드는가? 신의 직장은 누구의 직장인가? ‘현실에서 불가능했으면 하는 이야기’라 한 것은 일 년에 5,000만 원을 벌지 못하는 이의 질투가 아니다. 구진남의 <신의 직장>이 된 그곳이 기꺼이 살아가고 싶은 현실 속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비록 나를 매혹하지 못했을지라도, 이 작품이 <신의 직장>이어야 할 이유는 여기에 있다. 이 현실이 조금이라도 덜 텁텁하려면, 구진남이 계속해서 호구로 남지 않길 바라는 수밖에 없다.
[사진: 극단 구십구도 제공]

- 일정
- 2.24~3.5 평일 8시, 토공휴일(3.1) 3·7시, 일 3시
- 장소
- 노을소극장
- 작
- 홍승오
- 각색·연출
- 장석원
- 출연
- 홍승오, 김국빈, 강해진, 김민우, 계영호, 이수진
- 문의
- 070-4251-36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