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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텐트, 뼈의 외침

송경화_낭만유랑단 대표
111호 2017.03.09
봄바람인지 겨울바람인지 알 수 없는 칼바람이 블랙텐트의 천막 사이를 강하게 파고든다. ‘끼이익 깡깡 뻐걱 삐걱’ 텐트의 뼈들이 바람을 견디며 우는 소리가 연신 들려온다. 텐트 안에서 리허설 중인 예술가의 기타소리가 블랙텐트를 달랜다. 천막이 나풀거릴 때마다 들어오는 햇빛, 자글자글 피어나는 아지랑이. 광장의 고독을 광장의 운치로 바꾸어주는 것은 분명...

봄바람인지 겨울바람인지 알 수 없는 칼바람이 블랙텐트의 천막 사이를 강하게 파고든다. ‘끼이익 깡깡 뻐걱 삐걱’ 텐트의 뼈들이 바람을 견디며 우는 소리가 연신 들려온다. 텐트 안에서 리허설 중인 예술가의 기타소리가 블랙텐트를 달랜다. 천막이 나풀거릴 때마다 들어오는 햇빛, 자글자글 피어나는 아지랑이. 광장의 고독을 광장의 운치로 바꾸어주는 것은 분명 저 음악 덕분일 거다. 당신의 ‘어떠한’ 시간을 ‘어떠한’ 시간으로 거슬러주는 일, 그것이 예술의 역役 일 것이다. 예술이 쓸모없게 느껴지더라도 그것은 분명 쓸 만하다.

SNS를 통해 광장에 극장이 세워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처음에는 공연을 위한 야외무대를 설치하는 줄 알았는데, 천막을 두른 극장 사진이 실시간으로 올라왔다. 극장을 짓고 있는데, 극장을 짓기 위해서는 사람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대체 누가 왜 광장 한가운데 극장을 짓기로 했는가. 극장을 짓고 있는데 왜 지을 사람이 없다는 걸까. 사람이 급하게 필요하다고 하니, 도와주러 가긴 가야할 것 같은데, 아이를 보는 중이었다. 아이를 보느라 갈 수 없다고 댓글을 달기도 구차했다. 누군가 일하고 있고 나는 집에 있다는 사실에 죄책감이 밀려왔다. 광장의 문화예술인 텐트촌에 연극인 텐트가 입주했을 때 느꼈던 그것과도 같다. 누구는 길 위에서 잤고, 나는 집에서 잔다는 불편함. 젠장. 그 사이 극장이 세워졌다.

개관식에 혜화동1번지 6기동인으로 참여했다. 이번엔 아예 아이를 안고 갔다. 돼지저금통에 돈도 꽂아줬다. 조금이나마 죄책감이 덜어진 것 같았다. 게다가 이해성 극장장님의 선언문 낭독은 정말 째지게 멋졌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이 극장이 대체 왜 어떻게 누구에 의해서 세워지게 된 건지. 모두의 극장이라고 하는데, 그 모두는 누구인지, 이제 이 극장은 어떻게 운영 되는건지, 어떻게 함께하면 되는 건지. 여전히 알 수 없음의 연속성 속에서, 이미 개막공연 ‘빨간시’를 시작으로 많은 공연들이 프로그래밍 되어져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모종의 배신감이란. 이 라인업이 너무 괜찮은 라인업인데 내 작품이 없다는 모종의 상실감 혹은 열패감이란. 이거 모두의 극장 진짜 맞음??

세종시 문화관광부로 가는 1박 2일 블랙리스트 연극인 버스에 탔다. 개관식과 마찬가지로 혜화동1번지 6기동인으로서 참여했다. 그 날 새벽, 이해성 극장장님이 (또)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다. 동인들에게 극장 운영의 노하우를 전수해달라고도 했다. 드디어 물어볼 수 있었다. 대체 이 극장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다섯 손가락에 꼽는 운영위원이 서로 일당백하며 이일저일 사방팔방 닥치는 데로 일하고 있었다. 게다가 이 분들의 전공이 극장운영 및 기술도 아니다. 배우고 연출이고 평론가일 뿐이다. 진퇴유곡으로 발 한 쪽 진창에 넣고 방패 없이 칼싸움중이다. 아, 진짜 이 형들 어떻게 하면 좋아.

그렇게 나는 혜화동1번지 6기동인과 함께 블랙텐트 무대감독이 되었다.

블랙텐트에는 있을 건 다 있지만 없는 건 없다. 그야말로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 (짝짝짝) 정말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있어야할 것들은 다 있다. 공연에 필요한 최소한의 설비는 다 되어 있다. 나머지는 철저히 공연팀 몫이다. 없는 건 없는 광장의 극장이니 알아서 준비 해와야 한다. 공연팀은 협력과 연대의식을 가지고 함께 해야만 한다. 매연냄새 작살인 경유발전기가 만든 전기로 조명과 난방이 들어온다. 무대감독 팀은 심지어 핸드폰 충전조차도 공연팀에게 자제할 것을 부탁했다. 많은 사람들의 후원으로 유지되는 피 같은 전기였다. 리허설 때는 가급적 난방기 한 쪽만 가동했고, 배우들은 얼어붙은 김밥을 먹으며 맨발로 차가운 무대에 올랐다. 공연 진행팀은 엄동설한에 최소 세시간 이상 텐트 밖에서 모금함을 지키며 공연 중 텐트로 난입하는 시민들을 온몸으로 막아내야 했다. 공연은 거의 매진 사례였다. 자리가 없어 돌려보내야하는 관객들도 있었다. 이제 대학로에서는 보기 힘든 일이다. 맥도날드까지 관객이 줄섰다는 전설은 술자리 속으로 자취를 감춘지 오래다. 전설이 현실로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극장에서 만나기 어려운 일반관객들이 백여명이상 블랙텐트의 공연을 보기 위해 줄을 선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광장에 극장이 들어서고 나서야 예술은 비로소 자신의 역을 찾은 것이다. 그것이 블랙텐트가 만들어낸 수많은 유의미함들 중에 가장 최고로 의미있는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무대감독으로서 그것을 목격 할 수 있어서 다행스러웠다.

내가 글을 쓰면서 혜화동1번지 6기동인에 대해 계속해서 운운하는 것은 나의 나약함과 비겁함을 말하고자 함이다. 만약에 내가 혜화동1번지 6기동인이 아니었다면, 집에서 핸드폰으로 좋아요만 누르고 있었을지 모른다. 나는 여전히 선뜻, 극장의 개관식에 가지도 못했을 거고, 블랙리스트 버스에 오를 용기도 내지 못 했을 거고,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을 때 적극적으로 손을 들고 무대감독을 자청하지도 못했을 거다. 뭔가 하긴 해야할 것 같은데, 아는 사람도 없고, 무턱대고 찾아가기도 뭐하고, 나의 소심함이나 나약함으로 죄책감과 불편함, 부담감 등에 짓눌려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공연으로 초청받지 못해 열패감에 휩싸여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블랙텐트에 나와서 조금이나마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동인들이 내게 함께하자고 손을 내밀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현장에서 함께하지 못한 동료 예술가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그 마음 다 안다고. 나도 그렇다고. 그러니 괜찮다고. 다음 기회에는 우리 한번 얼굴보자고. 당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나는 궁금하다고, 이야기 나누고 싶다고 전하고 싶다. 그리고 꼭 그랬으면 좋겠다.

한국사회에서 예술가로써의 삶을 지속 하기위해서는 예술인 스스로 예술에 대한 가치, 의미, 신념 등을 끊임없이 찾아내고 설득해야 한다. 얼어붙은 현실 앞에서, 기름도 없이 우리는 전기를 생산해내야 한다. 게다가 예술 철학이라고는 1도 없는 정치인들에 의해 검열당하고 리스트업 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블랙텐트를 통하여 예술의 역을 되찾았다. 다음 번에는 어떻게 하면 예술의 역을 지속해나갈 수 있을지 함께 논의를 이어나가야 할 것이다. 텐트의 뼈들처럼 모이고 모여 ‘삐그덕’ 거릴지언정 꽃샘추위와 칼바람으로부터 우리의 예술과 극장을 지켜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