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연극 발전을 위한 1차 시국토론회
뜨겁고도 차가웠던, 그리고 너무도 부족했던 시간
Ctrl + V, 붙여넣기해서 사용하세요
지난 3월 6일 오후 2시, 대학로 스타시티 후암스테이지 2관에서 (사)한국연극협회 서울특별시지회에서 주최하는 시국 토론회가 열렸다. 1부 지원 정책, 2부 복지·교육, 3부 종합토론의 식순으로 진행된 토론회에는 연령대에 상관없이 다양한 위치에서 활동하고 있는 150여명의 연극인이 참석하였으며, 오후 6시 40분으로 예정되어있던 폐회 시간에서 식사 시간도 없이 두시간여를 훌쩍 지나서야 끝이 났다. 개인 당 15분씩의 시간은 발제자들에게 너무나 부족했고, 1시간으로 잡혀 있던 질의토론 시간 또한 참석자들이 문제제기와 질문을 하기에도 턱없이 부족했다.
이렇듯 뜨거웠던 열기에는 현 정부의 국정농단과 소위 블랙리스트 작성, 그리고 그것이 실제로 문체부 등의 기관을 통해 연극인들의 지원 배제 및 작품 검열로 작동했음이 드러난 시국에서, 현재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에서 근무 중인 공무원(이영열 예술정책관 등)들이 참석한 데 그 원인이 있을 것이다. 어느 부처보다도 예술인을 가까이에서 보고 그들의 눈높이에 맞춰야할 기관임에도 불구하고 문체부가 이런 성격의 토론회에 직접 참석하여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 것은 극히 희소한 상황이었고 실제로 토론회에 참석했던 다수의 연극인들 또한 이를 지적하며 현장과 행정의 괴리 및 왜곡을 비판하였다.

초대 서울연극협회장 채승훈 연출이 표현의 자유가 생명인 예술가들에게 문화예술위원회가 행한 지원 배제와 검열을 ‘살인’에 비유하며 1부 지원 정책에 대한 발제를 시작했다. 그는 예술인들에게 가까이 있는 지원기구가 되기를 염원했던 문화예술위원회가 과거의 독임제 방식의 관료체제로 돌아갔고, 이는 예전의 사전검열제도에 다름없다고 비판하며 민간 자율의 위원회로 전환해야한다고 역설하였다.
이양구 연출은 블랙리스트 사태를 국가권력에 의한 국가범죄로 규정하며, 이에 대한 충분한 진실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부재한 상황에서 ‘연극 발전’을 위한 ‘지원 정책’과 ‘교육 정책’에 대해 토론의 시의성에 대해 지적했다. 또한 블랙리스트가 헌법 상 ‘사상·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범죄행위이고, 이전 2014 서울연극제 대관 탈락 사태, 2015 창작산실 검열 사태, 팝업씨어터 검열 및 공연 방해 사건 등의 일례를 들며 당시 검열에 대한 진상 규명과 관계자들 처벌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인자 독립기획자는 연단에 송수근 문체부 장관 대행과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박명진 위원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피켓을 들고 올랐고, 또한 기존 검열 사태의 일례 등을 들며 청와대 및 문체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등이 조직적이고 비열하게 이를 주도하고 가담했으며, 속속 진실이 드러남에도 불구하고 진상 규명 및 처벌을 약속하기는커녕 진실을 은폐하고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고 비판하였다.
김소연 평론가는 기관 감사만이 아닌 객관적이고 철저한 조사를 위한 조사위원회의 설치를 촉구하였다. 또한 예술 그 자체를 존중하는 것이 아닌, 예술의 부가 가치, 경제적 가치에 몰두하는 도구적 사고가 현 문화 정책의 파행을 불러왔다고 지적하며, 예술에 대한 공공지원의 토대는 예술 그 자체의 공공성에 대한 합의가 근거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 지적에 대해 이영열 정책관은 모든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이며 문체부 내부에서도 고민과 반성의 목소리가 높고, 지적된 책임 규명과 처벌적인 방법론에 있어서도 검찰과 특검의 수사를 받았고, 강도 높은 기관 감사를 받고 있다고 말하며 이를 기반으로 문체부로서도 거듭나는 기회로 삼겠다고 답변하였다. 연이어 패널 및 참석자 측에서 질문과 항의가 속출하였으나 이미 종료 예정 시간을 1시간을 훌쩍 넘긴 시점이었기에 짧은 휴식 뒤에 2부 발제가 시작되었다.
2부 복지 부분에 대한 발제를 맡은 이경민 한국연극인복지재단 사무국장, 정안나 서울연극협회 복지분과 위원장은 그간 예술인복지재단과 연극인복지재단 사이의 소통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음을 지적하며, 공적 기금을 배당받지 않는 재단으로써 민간 기업의 지원과 일부 예술인들이 내는 기부금으로 운영될 수 밖에 없는 연극인 복지재단의 현실을 역설했다. 또한 복지 전문 인력의 교육/확충에 있어서의 한계를 절감하고 있으며 연극인 복지 연구소를 설립하여 체계적으로 연극인와 국가를 연결시킬 수 있는 복지 정책을 연구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교육 부분에서 국민대 김인준 교수는 문화예술강사 시스템이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작되었음을 지적하며 현재 벌어지고 있는 파견 사업 파행 사태에 우려를 표하며 현장 교사의 처우, 양성, 제도 등의 문제를 조명하였다. 이연심 경기여고 교사 또한 연극 교사의 역량 강화와 처우 개선 등의 문제를 짚었고, 그러나 연극 교과가 연극계의 꾸준한 노력으로 교과 과정 반영 비중이 꾸준히 늘어왔으며, 이에 따라 교원양성 및 교재 개발 등을 통해 내실을 다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문체부는 전반적인 문제 제기에 대해 수긍하며 대책을 세우겠다고 답변하였지만, 실질적인 반영과 대책에 있어서는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못하는 가운데 2부 식순이 종료되었다.
3부에 대한 기록은 쉽지 않다. 한정된 시간 동안 너무나 많은 목소리들이 너무나 많은 문제에 대해 말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이미 토론회 폐회시간이 지난 시점에 3부 청중을 포함하는 토론이 시작되었고, 자리한 연극인들은 저녁 끼니도 잊은 채 각자 질문과 문제 제기를 계속하였다.
참석한 많은 연극인들과 발제자들은 연극이란 예술의 도구화/대상화와 그에 따라 연극인들이 작업현장/교육현장 등에서 겪는 다양한 부조리와 열악함에 대해 토로했다. 그리고 현 정부의 문화정책 파행과 블랙리스트 검열 사태에 대한 절망과 두려움을 피력하며, 정부 정책을 실행하는 문체부 등 기관에 대해 진상규명 및 처벌에 있어 책임감을 가지고 임할 것을 당부하며 동시에 실질적 개선에 대한 약속을 강하게 요구했다.
진행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도 있었다. 복지와 교육 또한 연극 발전을 위해 필수적으로 논의되어야함은 틀림없으나 블랙리스트 검열 사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은 시국에서 한정된 시간 안에 너무 많은 사안을 토론회에 몰아넣은 게 아니냐는 취지였다. 참석했던 한 원로 배우는 발제자들과 일부 참석자들에게 좌파 연극인들이라 칭하며, 특정 연극인 일행이 발언을 독점한다고 주장하며 식순을 무시하고 발언하는 등 ‘촌극’을 연출하기도 했다. 그만큼 현 시국과 정부 기관에 대한 불만과 분노가 쌓여있는 것으로 보인다.
분노만 있던 것도 아니다. 교육, 작업 등 현장에서 목격하고 겪은 부조리를 냉정한 눈으로 분석하고 정리하여 전달하면서 실질적인 대책을 요구했던 참석자들도 많았다. 참석자 모두가 분노와 냉정 사이에서 각자의 온도를 유지하며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끝날 것 같지 않던 토론회도 어느덧 끝이 났다.
토론회가 끝나던 순간 그 자리에 있던 모두의 머릿속을 스친 건, 이날 발제되고 논의되었던 사안들이 과연 얼마나 실질적으로 반영될 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었을거라고 필자는 확신한다. 단지 탁상 위의 토론으로만 그치는 것은 아닐까. 물론 단 한번의, 그것도 일부 문체부 직원을 대동한 토론회만으로 그동안의 적폐가 개선될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러나 수많은 연극인, 그리고 예술인들이 지난 긴 시간 수취인불명의 지난한 저항을 계속했기에, 그만큼 이 날 토론에 대한 관심과 기대가 커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탄핵이 인용되든 기각되든, 정권이 바뀌든 바뀌지 않든, 그리 멀지 않은 시기에 새로운 정부가 들어설 것이고, 또다시 문화정책의 수정과 함께 새로운 지원, 복지, 교육에 대한 정책이 등장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또다시 이번 블랙리스트 검열 사태가 재발하는 것을 막을 기본 전제는 이 날 지속적으로 얘기되었던 것처럼 정확한 진상 규명 및 관련자의 처벌이다. 또한 이번 사태처럼 문체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등 기관에 근무하는 관료들이 단지 윗선의 요구를 따르는 ‘성실한 공무원’으로 존재해서도 안된다. 이영열 정책관이 말했던 것처럼 그들이 진정 공직자로서의 자존심을 가지고 있었다면, 또 그들의 행동이 예술인들에게 실제로 어떤 결과를 미칠지에 대한 상상력이 있었다면, 이렇게 절망스러운 사태까지는 이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물론 개개인의 정의감과 양심에 모든 책임을 묻자는 것은 아니다. 과거 사례에서 우리는 거대한 권력 앞에서 개인이 얼마나 무력해질 수 있는지도 동시에 보아왔고, 그것을 막는데 법적, 제도적 보완이 필수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역시 토론 내내 수없이 지적되었던 것처럼 문체부 및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등 기관의 독립성과 정책의 연속성, 행정의 투명성을 어떻게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한 실질적인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 당장의 한걸음만으로 해결할 수 없고, 긴 시간을 두고 진실한 대화를 통해 풀어나가야 한다.
그것이
이날 좁은 극장에서 자리를 지키던,
그리고 긴 기간 형언할 수 없는 권리의 침해와 불이익을 당하면서도 외롭고 지난한 저항을 계속하던,
연극인들이 진정 바라는 바일 것이다.
[사진: 서울연극협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