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극장 블랙텐트 ‘봄이 온다’ 페스티벌 참가작 <후시기나 포켓또>를 마치고
재회한 소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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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이 끝났다. 공연이 끝나자마자 빌려온 보면대를 반납하기 위해 나는 대학로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제 막 어둑해지기 시작한 거리로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나는 달리 어떤 생각을 할 수 없었다. 30분 남짓했던 공연의 시작, 중간, 끝 그 어느 것도 실감나지 않았다. 다만 정신이 없었고, 무언가가 밀려오는데 실체를 알 수 없었으며, 후련하지도 개운하지도 않았다. 나는 멍청히 서서 내 감정을 설명할 말을 찾고 있었다. 헤어진 옛 연인과 잠깐, 아주 진하게 만났다가 다시 각자 길로 걸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고개를 돌려 다시 한 번 그 뒷모습을 바라보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어색하게 앞만 보고 걸어가는 내 모습이 보였다.
<후시기나 포켓또>와 나의 첫 만남은 20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나는 BnTMP라는 프로젝트 그룹에서 한 달에 한 번씩 ‘한 사람’에 대해 다양한 방식으로 이야기하는 프로젝트를 하고 있었다. <후시기나 포켓또>는 세 번째달 프로젝트로, ‘한 사람’의 자서전에 나오는 이야기 중 ‘주머니, 소맷자락’에 얽힌 내용을 극으로 구성한 것이었다.
<후시기나 포켓또>는 원래 2015년 10월 24일, 25일 양일간 씨어터카페에서 올라갔어야 했지만 일명 ‘팝업씨어터 사태’로 인해 무산되었다. 주최 측이었던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센터의 공연 방해 및 대본 검열에 항의하며 공연을 보이콧하였지만, 나는 그 당시에도 쿨하게 그 공연을 보내주지 못했다. 급하게 단골 술집 사장님께 부탁드려 공연을 올렸다. 질펀하게 뒷풀이를 했고, 정신을 차리고 거리에서 피켓을 들었다. 그렇게 <후시기나 포켓또>와 처음 작별했다. 어느덧 반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후, ‘권리장전 2016 검열각하’ 참가작인 <15분>이라는 작품을 준비하며 <후시기나 포켓또>와 다시 만났다.

<15분>에는 공연을 보이콧 해야할지 말아야할지 고민하며 <후시기나 포켓또> 대본을 들춰보는 장면이 있다.
- 배우1
- ‘여태까지 연습했던 시간들...
그 시간들은 관객을 만나지 못 한다면 어디로 가버리는 걸까?
내가 여기서 죽어버린다면, 자연스럽게 공연도 못하게 되겠지’
그저, 너는 멍하니 돌아앉아 <후시기나 포켓또> 대본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배우2, <후시기나 포켓또>의 한 대목을 소리내어 읽는다.
- 배우2
- 나는 여느 때처럼 거실 밖의 마루에 꿇어앉아 내 잘못을 빌었다.
대답이 없었다.
다시 세 번 나는 반복해서 빌었다.
모두는 식사를 마쳤다.
맥없이 내 방으로 돌아와 나는 또 엎어져 울었다. 창문 옆의 벽에 기대 앉아 나는 한참동안 그저 내 발만 쳐다보고 있었다. “기타소리”
스크린에 <후시기나 포켓또> 공연 영상이 흐릿하게 나타난다. 배우2의 음성과 영상의 소리가 겹친다.
- 음성
- 12시 반 급행이 아직 안 지나갔을 거야. 그거야. 눈을 감고 한 번에 뛰어들면 돼.
서두르지 않으면 시간에 맞게 도착할 수 없다.
보따리를 겨드랑이 밑에 감추고 나는 뒷문으로 빠져나왔다.
그러고는 정신없이 뛰었다. - 배우2
- “호흡이 가빠진다”
- 음성
- 역에서 가까운 동쪽 터미널까지 왔다. 시그널이 아직 내려와 있지 않았다.
아직 괜찮아. 곧 오겠지. 담장 그늘에 숨어 나는 기차를 기다렸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기차는 오지 않았다.
그때서야 나는 기차가 벌써 통과한 뒤라는 것을 알았다.
“백천으로! 백천으로!” - 배우2
- “호흡, 더 가빠진다”
- 음성
- 나는 건널목을 돌진하여 달렸다. 깊은 강 주변에는 다행히도 아무도 없었다.
나는 휴 하고 한숨을 쉬며 자갈 위로 쓰러졌다. - 배우2
- “숨소리 잦아들면,
배우, 자리에서 일어나 깊은 연못 가운데를 가만히 들여다본다.
갑자기 매미소리.
배우, 주위를 둘러본다.
갑자기 슬퍼진다.”
<후시기나 포켓또> 영상이 사라지고,
배우2, <후시기나 포켓또>의 다음 대목을 읽어내려간다.
- 배우2
- 나는 버드나무에 기대어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내가 만약 여기서 죽어버린다면 할머니는 나에 대해 뭐라 말할까.
어머니와 세상 사람들에게 내가 무엇 때문에 죽었다고 말할까.
어떠한 거짓말을 늘어놓아도 나는 더 이상 "그게 아니에요."라고
변명조차 하지 못한다.
그렇다. 나처럼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고통을 주는 사람들에게 복수해야 한다.
그렇다, 죽어서는 안 된다.
나는 더 이상 아이가 아니었다. 가슴에 가시를 지닌 작은 악마와도 같았다. - 배우1
- 너는 더 이상 아이가 아니었다. 가슴에 가시를 지닌 작은 악마와도 같았다.
화면에서 글이 나온다. 배우2, 대본을 한 장씩 찢는다.
- 연출 윤혜숙입니다.
지난 10월 20일, 공연장을 변경하라는 통보를 받고, 대본 제출을 요청받은 이후로
마음이 어려웠습니다.
같은 팝업씨어터 참여 팀으로서,
지난 공연이 주최 측에 의해서 제대로 공연되지 못하였다는 사실이
계속 마음 깊이 남아있습니다.
리허설을 불과 몇 시간 앞둔 이 시점까지도
예기치 못한 어떠한 이유로
공연 당일 주최 측으로부터 어떤 제지를 당할지, 공연이 침해받지는 않을지
불안한 마음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지난 공연 방해 사건으로 주최 측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렸습니다.
공연을 책임지는 연출로서 이러한 마음으로 관객을 만나는 것은
관객에게도, 공연팀에게도 바람직한 경우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후시기나 포켓또>를 공연하지 않기로 최종 결정하였음을 밝힙니다.
2015년 10월 23일, 연출 윤혜숙.
그렇게 작별이라고 생각했다. <15분> 공연을 끝내며, <후시기나 포켓또>와도 팝업씨어터 사태와도 작별해야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2016년 10월, 박근혜정부의 블랙리스트가 실체를 드러내며 다시 검열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리고 광화문 광장 한복판에 극장이 세워졌다.

그 당시 눈을 뜨면 하는 일 중 하나는 클래식 연주 동영상을 찾아보는 것이었다.
음악을 듣는 것도 좋지만 굳이 동영상을 찾아보았던 이유는 연주자의 표정을 보는 것 자체가 좋았기 때문이다. 선율에 흠뻑 젖어있는 연주자들의 얼굴은 신비로웠다. 고통스러워 보이기도 했고, 선율 안에 갇혀버린 것 같기도 했으며, 세상의 어떤 것도 줄 수 없는 안식을 찾은 듯하기도 했다. 그들이 도대체 어떤 세계에 가 있는지 너무 궁금해서 자꾸만 영상을 찾아보았다.
나도 그 세계에 가 닿고 싶었다. 그것은 호기심이라기보다는 욕망에 가까웠다.
나에게 극장은, 내 힘으로 걸어서 그 세계로 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 극장 문이 닫히면, 극장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기이한 시공간을 머금고 나를 이리 저리 데리고 다녔다. 여태까지 내가 경험했던, 꿈꾸었던 극장은 그러했다.
광장극장 블랙텐트는 전혀 다른 감각의 극장이었다.
양 옆 도로에서 차들이 귀 옆을 스치듯 쌩쌩 지나다녔고, 해고노동자들과 세월호 유가족들의 천막이 곁에 있었다. ‘지금, 여기, 너와 나’를 끊임없이 환기시키는 공간이었다. 어떠한 마케팅으로도 만날 수 없었던 실로 다양한 관객들이 극장을 찾았다. 극장에 들어오기 겸연쩍은 몇몇 분들은 가만히 걸음을 멈추고 천막을 들추어 극장 안을 들여다보기도 했다. 예술가들이 신비로운 세계에 흠뻑 빠지고, 관객들은 조용히 그 세계를 엿보는 극장이 아니었다. 나직하게 이야기해도 모두가 귀 기울여 듣는, 목이 찢어져라 외쳐도 미간을 찌푸리지 않는, 광장 속 극장이었다. 극장 밖 광장이었다.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 싶은 마음에 블랙텐트 주변을 기웃거리다가 다른 연출들과 함께 무대감독 일을 하게 되었다. 가까이서 공연을 지켜보며,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 <후시기나 포켓또>를 떠올리고 있었다. 잊고 지냈던 마음을 다시 꺼내보고 싶어졌다.
잊고 살았던 마음이 부끄러웠지만 꼭 한 번 다시 만나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다시, 사진이며 주고받았던 편지며 하는 것들을 들춰보는 마음으로 공연을 준비했다.
이름 하나만으로도, 작은 글귀 하나만으로도 많은 것들이 우수수 딸려 나왔다.
함께 했던 사람들의 마음들도 생각났다. 이 극장을 광장에 세운 여러 사람들의 노고, 추운 겨울 함께 피켓을 들어주었던 많은 사람들의 정성과 발걸음, 그리고 내가 헤아리지 못했던 것들까지도.
천하대장군처럼 극장 상하수를 지키고 서 있었던 검정색 평판 두 개를 돌려 세워, 자신의 과거와 씨름하며 자서전을 쓰고 있었을 ‘한 사람’의 감옥을 만들었다. 연주가 시작되고, 배우가 들어와 그 공간을 가만히 채웠다. “1923년 9월 1일 오전 11시 58분. 갑자기 간토지방이 땅 밑에서부터 요동치기 시작했다. 집들이 우지직 신음을 내며 뒤틀리고 무너지고 사람들은 집에 깔려 생매장 당했다. 겨우 살아난 자들도 미친개처럼 울부짖으며 헤매고 있었다. 격동, 불안 그리고 말도 안 되는 유언비어가 난무했고 소동이 벌어졌다.” 라는 문장을 뱉을 때, 때마침 미친 듯이 바람이 불었고, 천막은 우지직 신음을 내며 흔들렸다. 그렇게 공연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어느새 공연이 끝나있었다. 나는 그토록 가보고 싶었던 ‘그 세계’에 다녀온 것일까? 뜨거운 만남이었고, 허탈한 헤어짐이었다.
내일이면 블랙텐트를 해체한다. 뒤돌아본다한들 뒷모습조차 볼 수 없게 된다. 매서운 비바람을 견디던 천막을 걷어내고나면 극장은 마침내 뼈를 드러내며 역사 속으로, 기억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블랙텐트의 기록은 여기서 끝이 나지만, 앞으로 남은 과제들을 향해 서로 부둥켜안고 나아가야 할 것이다. 극장을 세우고 채웠던 손길과 발걸음들을 기억하며.
<후시기나 포켓또>의 마지막 구절로 글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머지않아 나는 이 세상에서 존재가 완전히 지워질 것이다. 그러나 모든 현상은 현상으로서는 멸해도 영원의 실재 중에는 존속하는 것이라 나는 생각한다. 나는 지금 평온하고 냉정한 마음으로 이 조잡한 기록의 붓을 내려놓는다.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 위에 축복이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