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두산아트랩 <대안 가정 생태 보고서>
결재 사인을 기다리는 무대 위의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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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장 입장 전, 박서혜 극작가가 쓴 한 장의 보고서를 받아든다. <대안 가정 생태 보고서>. 객석에 자리하고 보고서를 찬찬히 읽는다. 곧이어 불이 꺼지고 막이 오른다. 무...
2016년 대산대학문학상 희곡 부문에 등단한 박서혜 극작가의 데뷔작이 2017 두산아트랩을 통해 지난 2월 16일부터 3일간 무대에 올랐다.
공연장 입장 전, 박서혜 극작가가 쓴 한 장의 보고서를 받아든다. <대안 가정 생태 보고서>. 객석에 자리하고 보고서를 찬찬히 읽는다. 곧이어 불이 꺼지고 막이 오른다. 무대 위로 여섯 명[6], 세 명[3], 두 명[2], 한 명[1]으로 구성된 가정 모습이 소환된다. 아니 마치 보고회처럼 발표된다고 할까. 배우들은 대사를 연기하는 동시에 행동 지문을 보고하듯 읊는다. 배우의 몸을 통해 발현되지 못한 행동 지문의 낯선 감각은 이 연극이 어느 정도 픽션이고 보고인지를 관객 스스로 상상하게 한다. 그것은 꼭 내가 속한 가정을 되돌아보는 일이 된다.

발표되는 네 유형의 가정은 세대 구성원 수에 투영된 어떤 생태를 뒤집는다. 이를테면 이 연극에서 [6]은 조부모, 부모, 자식 구성이 아닌 고모부가 껴있고 [3]은 전통적 부부와 자식 구성이 아닌 새엄마가 들어온다. [2]는 전통적 부부나 혈연지간이 아니라 위장부부이며 [1]은 가장 많은 1인 가구 세대인 청년이나 노인이 아니라 강아지 한 마리를 키우는 중년 남성이다. 애초에 정상가정의 표본(아빠 엄마 자식 둘)처럼 여겨지는 숫자 4가 빠져있는 것 또한 이해가 되는 지점이다. 일일드라마가 재생산하는 가정이나 데이터로 확인할 수 있는 가정은 이 보고서에 빠져있는 셈이다.
무대의 배경은 거실이다. 거실은 정상가정 이미지가 재생산되는 대표적인 공간 아닌가. 그러나 그 거실엔 단단하고 ‘정상’적인 가정은 온데간데없다. 오히려 무대 위 네 가정은 거실 내외부에 도사리는 폭력들에 대응하는 방식으로 무너지고 또 세워진다.
무대 중앙엔 탁자만이 놓인다. 그 무대를 거실이라고 할 때, 관객들은 그 공간을 상상으로 채워나간다. 그 상상의 단초는 극 중 균열 혹은 통합의 제스처들 속에서 엿볼 수 있는 경제적 여건일 것이다. 그것은 극 중 상황들의 계층적 위치를 따져볼 수 있게 한다. 이를테면 [6]에서 월 200만 원 정도 받는 중년 출판업 종사자가 자녀의 유학을 선뜻 보내주지 못하는 상황, [2]에서 빈곤 청년 예술가들이 생존을 위해 위장결혼을 하려는 상황, [1]에서 유학 간 딸을 둔 중년 1인 가구 일용직 건설업 노동자의 상황 등을 떠올려보면 충분하다. 우리는 이 정보들로 으레 거실에 있어야할 가족사진, TV, 쇼파 등의 주거 사물들의 유무를 상상하며 풍경을 그려낼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상상은 이 픽션의 보고 성격을 강화한다. 내가 속한 가정을 되돌아보는 것과 무대 위 거실의 그려보는 것. 그것은 내가 어떤 거실에서 왔고, 어떤 거실에 있는가, 를 인식하는 일이다.

네 파트 이야기 중 유난히 아쉬웠던 건 극 두 번째에 위치한 [3]이다. [3]은 아빠와 딸, 그리고 새엄마가 될 사람의 첫 만남을 담고 있다. 나는 이들 사이에 오고가는 말들 속에서 이들의 계층적 위치를 가늠할 수 없었다. 이 극은 도대체 어떤 계층 생애 과정의 한 순간일까? 어떤 풍경의 거실일까? 박서혜 극작가도 일관된 표현의 부재를 모르는 일은 아니다. 앞서 받아든 보고서에 ‘어떤 부분에서는 삶의 파편들이 부딪혀 생긴 파장이 일렁이는 대로 무작정 받아 적은 것에 불과하다’고 언급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네 가정의 관찰 의의가 작가의 말처럼 ‘어찌어찌 빛 한 줄기 정도는 꾸역꾸역 채워 넣어야’한다는 ‘약간의 희망과 어떤 대안’에 대한 전망이라면 각 가정의 계층적 위치는 더욱 중요해진다. 그것은 가정이 어디서 왔고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물리적 조건이기 때문이다.
<대안 가정 생태 보고서> 속 가정들이 기존 통념에 벗어났다고 해서 곧바로 ‘대안’이 될 수는 없다. 통념을 대신하는 안이라는 점에서 ‘약간의 희망’의 구심력이 될 수 있으리라. 어쩌면 원심력을 상상하는 일은 관객인 우리의 몫이다. 최종적으로 이 보고서에 우리의 결재 사인이 필요한 이유다.
[사진: 두산아트센터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