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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신세계 <말 잘 듣는 사람들>

그런데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허영균_예술.공연예술 출판사 1도씨
115호 2017.05.11
극단 신세계의 새로운 작품 <말 잘 듣는 사람들>이 5월 18일부터 알과핵 소극장에서 공연된다. 서울연극제 공식 참가작으로 극단 상임 연출이자 안무가인 김수정이 작, 연출을 동시에 맡았다. 극단 신세계는 지난해 <파란나라>, <사랑하는 대한민국>, <보지체크>, <...

극단 신세계의 새로운 작품 <말 잘 듣는 사람들>이 5월 18일부터 알과핵 소극장에서 공연된다. 서울연극제 공식 참가작으로 극단 상임 연출이자 안무가인 김수정이 작, 연출을 동시에 맡았다. 극단 신세계는 지난해 <파란나라>, <사랑하는 대한민국>, <보지체크>, <2016 그러므로 포르노>, <멋진 신세계>를 연달아 선보였고, 올해만 해도 이미 두 작품을 공연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열 손가락을 꼬박 다 사용해야 셀 수 있을 만큼의 작품이 발표되는 동안, 김수정의 연출과 극단 신세계의 색감 또한 짙어지고 있다. 적나라한 표현과 날 것 그대로를 거침없이 무대 위로 올리는 대범함은 신작인 <말 잘 듣는 사람들>에서 다시 한번 드러날 듯하다. 그러니 전작을 본 관객들이라면 무대가 시작되기 전 심호흡은 필수. 마음을 단단히 한 채로 객석에 앉아야 할 것이다. 어떤 지독한 ‘사건’이 펼쳐질지 모르니 말이다.

(벤타)블랙코미디

‘우스꽝스럽지만 안쓰러워 보이는 ‘말 잘 듣는 사람들’에 대한 블랙코미디다.’ 극단 신세계는 <말 잘 듣는 사람들>을 이렇게 소개한다. ‘블랙코미디’와 이 극단의 조합이 낯설지 않은 이유는 이전 작품인 <그러므로 포르노>와 <보지체크> 등 또한 블랙코미디를 지향했기 때문이다. 인간과 세계의 모순성이나 부조리함을 통해 역설적으로 웃음을 빚어내는 블랙코미디는 대체로 풍자, 희화화, 패러디 등의 기법을 이용하여 꺼림칙한 웃음을 유발한다. 몸 밖으로 터져 나오는 폭소가 아닐지라도, 입꼬리를 비집고 얼굴을 타오르는 웃음을 통해 관객은 더욱 씁쓸하고 고단한 감정을 맛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말 잘 듣는 사람들>은 검어도 너무 검다. 대본을 통해서는 도무지 웃을 순간을 찾아낼 수 없을 정도로 빼곡한 블랙. 특히나 2004년 4월 9일 미국 캔터키 주 맥도날드에서 있던 사건을 바탕으로 한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렇다. 세상에서 가장 검은색이라는 ‘벤타블랙’쯤 될까? 벤타블랙은 빛 흡수율이 99.6%인 물질로 음영 구분이 되지 않아 입체도 평면으로 보이게 하는 색이다. 틀림없이 지어낸 이야기로 느껴질 정도로, 실화의 완곡을 사건의 암흑 속에 묻고야 마는 <말 잘 듣는 사람들>, 이 검은 이야기는 이렇다.

보이지 않는 명령

복날, 강남의 삼계탕집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발신자는 강력계 형사 최대한이다. 그는 절도사건으로 신고가 접수되었다며 삼계탕집 홀 서빙 직원 한 명을 용의자로 지목하면서 전화를 받은 식당 매니저 미옥의 협조를 구한다. 용의자는 21세 여자직원으로 머리를 노랗게 물들인 예슬이다. 저조한 매출과 잦은 정산 오류로 사장에게 닦달당하는 미옥은 이 일로 또다시 사장의 심기를 건드리게 될까 두려워 형사의 요청에 응한다.
전화기 너머의 형사는 몇 마디 말로 안절부절 못하는 미옥을 단숨에 제압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미옥 씨가 알아 두셔야 할 게 있는데 만약 미옥 씨가 관리하는 홀에서 사건이 발생했을 시 다른 사람에게 특별한 정황이 잡히지 않으면 지금 현재, 혐의가 미옥 씨에게 돌아갈 수도 있습니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반박할 수 있었을 형사의 말이다. 그러나 정신없이 돌아가는 복날 삼계탕집의 소란과 “내가 정말 이런 얘기까지 안 하려고 했는데, 또 차액 발생하면 이제부터 미옥 씨 월급에서 깔 거야”라는 주인의 엄포에 혼란스러워진 미옥은 덜컥 발목이 잡힌다. 그리고 예슬에게 말한다. “나는 너를 믿지만, 지금부터 나는 형사가 시키는 걸 해야만 돼.”

복종과 저항 사이

미옥은 왜 형사에 말을 따르게 된 것일까? 무엇이 미옥으로 하여금 결백을 주장하는 예슬에게 그토록 모순적인 말을 하게 하는 것일까?
전화를 걸어온 사람이 형사라는 사실이 무엇보다 강력한 원인이 된다. 형사의 말은 법의 말이다. 법은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기 위해 만들어진 것일 뿐, 법을 지키기 위해 사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내 삶이 법의 과녁이 될 때, 법의 말은 무엇보다 날카로운 화살이 된다. 형사의 말은 미옥의 삶을 위협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사실을 확인할 틈도 없이, 믿음을 헤아릴 틈도 없이 미옥의 사고는 완전히 차단된다. 화살은 미옥을 통과하여 예슬을 향하고, 예슬은 사람들의 과녁이 된다.
<말 잘 듣는 사람들>은 미옥을 통해 개인이 자기 행동을 정당화하는 방식의 빈틈을 벌려 드러낸다. 그 틈을 통해, 미옥이 형사의 말에 복종함으로써 법에 따르고, 도덕을 이행한다고 믿게 만드는 힘의 실체와 그 힘의 작동원리를 탐색하는 것이다. 행동의 결정권자가 아닌 명령의 이행자가 되고 마는 작품 속의 인물들은 보이지 않는 법의 목소리가 유발하는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생존을 위한 책임 회피, 두려움이 빚어낸 무지함은 그들을 폭력으로 이끈다.
복종과 저항 사이, 개인의 자율성은 존재하는가? <말 잘 듣는 사람들>은 ‘나쁜 의도 없는’ 사람들이 무(의)지가 야기하는 폭력과 그로인해 상실된 인간의 존엄성에 관하여 던지는, 아주 검고 어두운 질문이다.

[사진: 극단 신세계 제공]

일정
5월 18~28일 평일 8시, 주말 3시 (월 쉼)
장소
알과 핵 소극장
작·연출
김수정
출연
김두진, 김보경, 김선기, 김시영, 김정화, 김형준, 박경찬
문의
070-8118-7237 / newworld_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