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국립극단 차세대연극인스튜디오 쇼케이스 <누수공사>
사람도, 일도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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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일이 풀리지 않을 때가 있다. 사람 사이 관계도 마찬가지다. 일이건 인간관계건 나름대로의 머릿속에는 계획대로 착착 진행될 것처럼 보이지만 막상 실전에서 좌충우돌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그러다보면 나도 모르게 핑계를 찾게 된다. ‘잘 해볼 수 있었는데 주위 환경이 받쳐주질 않는다’는 식의 핑계 말이다.
사실 핑계가 아닐지도 모른다. 삶 속에서는 실제로 주위 환경이 받쳐주지 않아 애를 먹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니 말이다. 일이건, 인간관계건, 사랑이건 온전히 집중하는 데 방해가 되는 요소들은 이 세상에 너무나도 많이 널려 있다. 내 생각과 계획의 범위를 벗어나 행동하는 존재들은 결국 내 세계를 구축하는 데 불필요한 침입자 혹은 방해물처럼 느껴진다.
인생이 내 생각 같지 않게 흘러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과연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또 원인을 찾으려 하면 찾을 수 있는 것일까. 혹시 나는 내 인생을 통제할 수 있다는 헛된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닐까. 국립극단 ‘2017 차세대연극인스튜디오 쇼케이스’ 참여작인 윤성호 작, 이강욱 연출의 연극 <누수공사>는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인생살이에 대해 성찰할 지점을 제공하는 작품이다. 소소한 일상의 경험을 출발점으로 삼되 단순히 거기서 머물지 않고 인간의 존재 조건에 대해 파헤치는 데까지 나아가려고 한다. 원하지 않는 타이밍에 누수공사가 벌어지고, 그마저도 쉽게 마무리 되지 않는 가운데 작품은 나와 너, 우리가 존재하는 방식에 대한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누구나 겪었음직한 인간관계 속 ‘멘붕’ 상황
“<누수공사> 초고를 봤을 때의 기억이 있어요. 처음에는 15페이지짜리였는데 지금은 45페이지가 됐죠. 초고에는 각 인물들이 한 번씩 등장하는 정도였습니다. 마치 소동극 같은 느낌이었어요. 윤성호 작가 특유의 코미디 같은 느낌이어서 재밌게 봤지요. 게다가 제가 남자, 집주인 등 작품 속 인물들을 알고, 작품의 배경이 된 그 집도 알고 있거든요. 윤성호 작가의 집이죠(웃음). 그런데 작품 속 인물들이 현실적인 말들을 반복적으로 하다 보니 굉장히 연극적이 되더라고요. 재미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강욱 연출가
시간에 쫓기는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데 뜻하지 않은 무엇인가가 방해를 하는 상황, 어쩐지 익숙하지 않은가. 연극 <누수공사>에서 한 남자는 중요한 원고 마감을 앞두고 집에서 작업 중인데 집주인이 누수공사를 지금 꼭 해야 한다며 기술자를 불러 온 집안을 헤집어 놓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누수는 빨리 잡히지 않고, 예상치 못한 ‘침입자들’은 점점 늘어간다.
평생에 걸쳐 수없이 겪는, 이 같은 예상치 못한 방해는 어쩌면 인간인 우리가 영영 벗어나지 못할 삶의 조건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런 저런 모습으로 다른 사람들과 엮여서 살아가는 존재이자, 또 저마다의 입장이 다른 존재이기 때문이다. 각자가 생각이 다르고,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도 다르다. 누군가가 선의로 한 일이 누군가에게는 해가 되기도 하고, 반대로 해악이라고 생각했던 일이 나중에 보면 꼭 필요했던 일로 둔갑해버리기도 한다. 문제는 그 깨달음에 도달하기 전, 우리가 겪어내야 하는 스트레스다.
작품은 이런 스트레스를 해소하려 들지 않는다. 그냥 스트레스 유발 상황은 커지면 커지는 대로 그냥 내버려둔다. 극 중 남자는 딱할 지경까지 방해를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이 작품을 재미있게 지켜볼 수 있는 까닭은 기본적으로 희극적 흐름을 띠기 때문이다. 배우로 활약해오다 연출로서는 첫 정식 데뷔하는 이강욱이 놓치지 않으려 하는 부분이 바로 이 대목이다. 관객이 극 중 누수공사 과정에서 벌어지는 코미디적 상황을 일정 거리를 두고 웃으며 바라보다가 남자의 옛 애인과의 관계가 무대에 드러나는 어느 순간 그 속에서 자기의 모습을 발견하게 하는 게 목표 중 하나다. 즉, 이화에서 동화로의 전환을 노리는 셈이다.

‘조리 있는 부조리극’
“작품이 처음에는 사실 기반으로 흘러가지만 어느 순간 분위기가 전환돼요. 누수를 고치려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 ‘아, 모르겠어. 이 집은 잘 지은 집이 아니었나봐’라고 말하기 시작하는데 그래서인지 작품을 보는 디자이너들은 다들 부조리극이라고 하더라고요. 반면 연기하는 배우들은 그렇게 느끼지는 않아요. 요즘 제가 좋아하는 말이 있어요. 제가 만들어낸 말인데, ‘조리 있는 부조리극’입니다(웃음)” -이강욱 연출가
무대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이미지는 아마도 문이 되지 않을까 싶다.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고, 열고, 들어오는 과정에서 침입 혹은 방해라는 키워드가 상징적으로 표현될 예정이다. 또 한 가지는 색의 변화다. 대체로 회색빛깔을 띠던 남자의 집에 집주인, 기술자, 조수, 옛 애인, 아랫집 남자, 낯선 남자 등 다양한 사람들이 침입하면서 다채로운 색깔로 무대를 어지럽힐 예정이다.
인물들 간 엇비슷한 말이 계속 오고가는 가운데 영영 헤어 나올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이 작품 속에서 계속 이어질 예정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부조리극과는 조금은 결이 다른, 현실적 감각이 부각된다는 점이 이 작품의 특징이 아닐까 싶다. 원래의 희곡에서도 결론이 어느 정도 명확한 편이다. 다만 이 연출가는 희곡 속에 존재하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다’라는 감각을 부각시키되, 설명적인 방식은 되도록 피한다는 계획이다. 즉 작품 속 남자 입장에서는 자기가 쓸 수 있는 카드들을 쓰고 있다고 느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 풀리는 문제들이 있다는 것을 좀 더 선명하게 부각시킨다는 얘기다.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안 되는 상황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어쩌면 그렇게 인생 속 우리의 스트레스는 풀릴지도 모를 일이다.
[사진: (재)국립극단 제공]

- 일정
- 5월 17~22일, 평일 8시, 주말 4시(화 쉼)
※ 단, 5.20(토) 16시, 20시 2회 공연 - 장소
- 국립극단 소극장판
- 작
- 윤성호
- 연출
- 이강욱
- 출연
- 김은석, 권택기, 송재룡, 김보나, 백석광, 박세정, 한기장
- 문의
- 1644-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