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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주기 기념 <2017 윤영선 페스티벌>

다시 만나 더 반가운 윤영선

허영균_예술·공연예술출판사 1도씨 디
121호 2017.08.03
비스듬히 오른편을 바라보며, 뻐끔 담배를 문 덕에 아랫입술은 두툼하게 내려앉아 있다. 이마에 주욱 하고 그어진 한일자 주름. 내가 기억하는 故 윤영선 선생의 얼굴이다. 『윤영선 희곡집』(2008, 지안출판사)을 읽었을 때는 선생께서 작고하신 뒤였기에, 표지와 내지 곳곳에 새겨져 있는 그림이, 내가 간직할 수 있는 극작가 윤영선의...

비스듬히 오른편을 바라보며, 뻐끔 담배를 문 덕에 아랫입술은 두툼하게 내려앉아 있다. 이마에 주욱 하고 그어진 한일자 주름. 내가 기억하는 故 윤영선 선생의 얼굴이다. 『윤영선 희곡집』(2008, 지안출판사)을 읽었을 때는 선생께서 작고하신 뒤였기에, 표지와 내지 곳곳에 새겨져 있는 그림이, 내가 간직할 수 있는 극작가 윤영선의 모습이었다. 훗날 한참 활동하던 때의 모습을 사진으로 보게 되었을 때, 내 안에 보관하고 있던 느낌과 사뭇 달라서 꽤 놀랐다.
그래서 내내 궁금했다. “누가 그렸을까?” 사람의 얼굴을 그리는 건 정말 어렵다. 그림 솜씨의 좋고 나쁨이나, 세밀하게 그렸는가 혹은 투박하게 그렸는가 따위의 화법 문제는 아니다. 여러 조건을 떠나서, 상대방의 얼굴을 (잘) ‘그리는’ 일은 그 사람을 오래 ‘그렸던’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 같다. 몇 줄 선으로 표현한 담백한 그림에 깊은 주름 한 줄만은 생략지 않고 서까래처럼 이마에 얹은 사람이라면, 분명 극작가 윤영선을 오래 바라보았던 사람이 아니었을까?

올해는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0년째 되는 해다. 10주기를 기념하며, 세 번째 <윤영선 페스티벌>이 열린다. 네 편의 본 공연과 네 편의 낭독공연으로 꾸려져 이달 17일부터 10월 22일까지 이어지는 이 축제의 맨 앞장에도 그의 그려진 얼굴이 있다. 마치 축제가 ‘함께 그를 바라보자’고 권하는 듯하다.
네 편의 본 공연은 이렇다. 공상집단 뚱딴지가 <사팔뜨기 선문답>(연출 문삼화, 황이선)을, 상상만발극장이 <파티: 그로테스크 챔버 앙상블>(연출 박해성), 극단 아어가 <죽음의 집>(연출 윤성호), 극단 백수광부가 <여행>(연출 이성열)을 선돌극장에서 공연하게 된다. 특별히 극단 아어가 준비하는 <죽음의 집>은 미완성작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완결된 초고 파일이 발견되어, 이번 페스티벌에서 초연된다.

故 윤영선 작가의 그림

두루두루 살펴보자. 우선, 공산집단 뚱딴지가 선보일 <사팔뜨기 선문답>은 한 작가의 내면에 떠도는 생각들을 인물로 형상화 시켜놓은 작품이다. 원작에서의 등장인물은 6명인데, 본 공연에선 4명의 주 배우와 1명의 목소리로 구현된다. 등장인물들은 한 작가의 내면에 떠오르는 작가의 생각이나 이미지이면서 동시에 그 생각과 이미지를 구성하는 재료가 된다.
상상만발극장의 <파티: 그로테스크 챔버 앙상블>(원제 <파티: 그로테스크 심포니>)는 윤영선 작가의 대표작 중 하나로 1998년 이성열 연출의 초연 이후 2001년 작가가 직접 연출하여 호평 속에 공연된 바 있다. 안정적인 사회적 계층으로 막 진입한 가족들과 이들에게 불편한 친절을 베푸는 새로운 이웃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그로테스크한 상황은 한국사회의 내밀한 욕망과 부조리한 외연이 충돌하는 공간이다. 연출을 맡은 박해성은 원작과 현재 사이의 20년의 시차를 보정하며, 한국사회와 한국연극이 관통하고 있는 현상과 미학에 대해 새롭게 응시하고자 한다.
최초로 공개되는 <죽음의 집>은 윤영선 작가가 끊임없이 탐구했던 '죽음'을 테마로 현실과 비현실을 넘나드는 작품이다. 여기서는 ‘죽음’이 삶과 현실을 지각하는 지점으로 설정된다. 삶과 죽음, 현실과 비현실의 기묘한 경계에 서서 ‘현실’이라는 틀에 대한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한편, <여행>은 친구의 장례식장으로 향하는 1박 2일 동안 벌어지는 일로, 하루짜리 짧은 여행에 희로애락이 교차하는 인생의 행로를 응축해 놓은 작품이다. 여기서도 ‘죽음’에 대한 테마는 빠지지 않는다. 이성열 연출은 무대 위에 또 하나의 무대를 세워 라이브 연주로 여행의 풍경을 그려낼 예정이다.
이어지는 낭독 공연도 다채롭다. 극단 신작로가 <G코드의 탈출>(연출 이영석)을, 극단 이루가 <임차인>(연출 손기호), 극단 놀땅이 <쥐가 된 사나이>(연출 최진아), 달나라동백꽃이 <미생자>(연출 부새롬)를 준비하고 있다.

<윤영선 페스티벌>을 꼬박 즐기고 나면, 여름을 지나 찬바람이 불어오는 10월의 중턱을 지나게 된다. 공기의 맛이 바뀌고, 쾌활하던 하늘색이 처연해지는, 무언가를 골똘히 바라보기 좋은 계절.


이상도 해라. 왜 나는 정체 모를 이 세상에 인간으로 태어나 이런 글들을 남기는 걸까?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가 우연히 모여 이 육신을 만들었듯 내 이글들도 우연일까.
기억하고 기억하고 또 기억하고 기억하려고 해도 지난 일들은 시간의 풍화작용에 날려가고 남아있는 것들은 그저 희미한 편린들 뿐.
하지만 여기 실린 희곡들은 발표된 당시 그럴만한 이유나 필요에 의한 것들이었을 것이며 시절 인연으로 만난 여러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 것들일 것이다.
그 많은 벗들, 날 떨리게 해주었고 피폐해진 내 가슴에 작은 불씨를 살려낸 그들의 눈빛과 따스한 말들을 어찌 잊겠는가.


-『윤영선 희곡집 1』(2001, 평민사) 작가 서문 중에서


10주기 기념 <윤영선 페스티벌>은 기념보다는 기억하기를, 기억보다는 동행하기를 기대하는 축제다. 되살려진 여덟 편의 작품은 극작가 윤영선과 관객을 이어줄 작은 불씨, 관객들은 그 불씨로 살려낸 눈빛과 말로 사귄 새로운 벗이 될 것이다. 그림 속 비스듬한 눈동자가 스윽- 움직여, 눈이 마주칠 것만 같은 이상한 가을이 상상된다.

p.s 윤영선 선생님은 그림을 참 잘 그리셨다고 합니다. 어쩌면 자화상인 걸까요. 혹시 알려주실 분?

일시
8월 17일~10월 22일 평일 8시, 주말 3시, 월 쉼
장소
대학로 선돌극장
공동주최
공상집단 뚱딴지, 상상만발극장, 극단 아어, 극단 백수광부
문의
코르코르디움 070-7918-9077
독자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