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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내친김에 <손님들>

행복해질 때까지 리플레이

김나볏_공연칼럼니스트
123호 2017.09.07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 버트런드 러셀은 행복은 저절로 굴러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쟁취해야 하는 것으로 봤다. 경쟁이 당연시 되는 사회 속에서 걱정과 질투를 떨치고 진정한 의미의 삶을 즐기기 위해서는 부단한 마음 수련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사회적인 성공이 아닌 내적인 행복을 쟁취하기 위한 노력, 우리는 과연 얼마나 기울이고 있을까. ...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 버트런드 러셀은 행복은 저절로 굴러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쟁취해야 하는 것으로 봤다. 경쟁이 당연시 되는 사회 속에서 걱정과 질투를 떨치고 진정한 의미의 삶을 즐기기 위해서는 부단한 마음 수련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사회적인 성공이 아닌 내적인 행복을 쟁취하기 위한 노력, 우리는 과연 얼마나 기울이고 있을까. 연극 <손님들>에는 행복을 끝없이 갈구하는 한 소년이 등장한다. 이미 손쓸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버린 가족관계를 두고서도 소년은 무엇이 잘못됐는지 복기하고, 나아질 가능성은 없는지 토론한다.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자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하지만 그 후에도 끝끝내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마치 망가진 기기를 두고 리셋버튼을 끊임없이 누르는 듯한 모습의 소년. 소년은 원하는 행복을 쟁취해낼 수 있을까.

버림받은 존재들

“후반부에 소년이 자기가 어떤 일을 당했고, 어떤 기분을 느끼고 있었는지를 부모 앞에서 일기처럼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어요. 이번 공연에는 올 초에 했던 것과 달리 부모가 자기를 죽을 만큼 괴롭혔던 것에 대한 소년의 서술이 들어가죠. 초연 때는 제 스스로 소년에 대해 과연 얼마나 깊이 이해했는가가 아쉬웠습니다. 소년은 보듬을 수 없는, 상상할 수도 없는 시간을 보냈는데 연출로서 그 마음속에 얼마나 깊이 들어갔는가에 대한 자책이 있었죠. 이번 공연은 그 때보다 조금 더 진해지고 있는 것 같아요.” -김정 연출가

<손님들>은 부모살해 사건에서 모티프를 따온 연극이다. 극의 주인공은 부모를 잔인하게 죽인 이후 여전히 부모와 함께 집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한 소년이다. 소년은 세상에 대한 불만족으로 가득한 부모가 대화를 통해 안분지족의 마음을 갖기를 희망하며 손님들을 초대한다. 초대한 손님들이란 다름 아닌 길고양이, 부서진 동상, 무너진 무덤의 주인 등 우리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버림받은 존재들이다. 소년은 하찮게 다뤄지곤 하는 이들 존재를 귀하게 여기는 마음만 있다면 자신의 부모도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이들을 초대해 대화를 시도하지만 부모는 소년의 희망을 여지없이 깨버린다. 이들의 잔혹하고도 가슴 아픈 이야기는 가족 관계에서 벌어지는 일들로 비춰지지만 동시에 현대사회에 대한 풍자로 읽히기도 한다. 대화 속에 언급되는 이들 가족의 과거사가 일종의 단서 역할을 한다. 소년의 아버지는 군 장교 출신으로 대통령을 꿈꿨지만 꿈을 이루지 못했고, 명문대를 나온 어머니는 남편의 성공을 기대했지만 결국 좌절을 맛봤다. 자신들의 욕망을 채우는 데 실패한 부모는 잦은 다툼을 벌이게 되고 급기야 소년을 희생양으로 삼아 학대하기에 이른다. 훗날 소년은 자신이 받은 내면의 상처를 부모에게 내보이지만 부모는 자신들도 어린 시절에는 학대를 받았다며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할 뿐이다. 마치 성공이 행복의 절대조건인 양 여기고 좌절된 욕망을 권위의식과 폭력으로 쉽게 치환해버리는 어른들의 모습은 아이들 세대에 치유되기 힘든 상흔을 남긴다.

내일은 행복해질 수 있을까

“소년은 결국 행복해지지 못할 거 같아요. 그 시간 속에서 나오지 못할 것 같거든요. 그게 마음이 아픕니다. 극에서 실재하지 않는 존재들, 손님들이 등장하는데요. 이들처럼 주변의 손길이나 관심이 없는 곳, 그늘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이 많다고 생각하는데 이 소년도 결국 그렇게 있다 사라져버릴 존재가 아닐까 싶습니다. 관객들이 그 소년을 엿보고 나서 비슷한 주위의 사람들을 한 번 생각해봤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그런다고 해도 소년이 행복해질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요. 어떻게 보면 소년이 있는 공간이 희망 없는 연옥 같아요.” -김정 연출가

비사실적인 설정 속에 진행되는 이 극은 잔혹성과 희극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부모를 살해한 후 다시금 그들과의 관계 회복을 시도한다는 것 자체가 무척이나 부조리하게 다가오는데, 이는 결국 일련의 이야기들 속에 작가가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숨어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이 극에서 잔인무도한 살인은 주인공 소년이 그간 받은 마음의 상처를 가늠하게 하는 하나의 소재일 뿐이다. 천륜을 저버렸음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의 마음은 부모가 아닌 소년에게 기울게 된다. 소년의 마음속에 여전히 존재하는 때 묻지 않은 순수성, 희망의 마음이 울림을 주기 때문이다. 소년은 만약 자신의 부모가 세상에서 가장 사소한 존재들을 들여다보고 그들에게 진심으로 귀 기울일 줄 알게 된다면, 즉 인간성을 회복하게 된다면 어그러진 가족관계도 회복될 수 있으리라는 희망으로 손님들을 초대한다. 소년의 이 같은 순수한 희망은 이 극이 존속살인이라는 소재의 전형성을 탈피하게 하는 중요한 요소다. 관록이 엿보이는 작품들을 여럿 써온 중견 극작가 고연옥과 신예 연출가 김정이 다시 한 번 만나 펼쳐 보이는 이번 작품에서 소년의 순수한 마음이 온전히 전해질지 기대를 모은다. 사회에서 보잘 것 없는 존재로 치부되는 것들을 마치 신과도 같이 귀하게 여기는 마음, 남들이 거들떠보지 않는 작은 것들도 가치 있게 대할 줄 아는 마음이 이번 공연에서 드러난다면 어쩌면 끝없이 반복되는 잔혹한 현실의 고리를 끊을 단서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사진: 프로젝트 내친김에 제공]

일정
9월 7~17일, 평일 8시, 토3시7시, 일 4시
장소
예술공간 오르다
작
고연옥
연출
김정
출연
김하람, 임영준, 이진경, 문영동, 박종태, 이수미, 오남영
문의
070-8276-09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