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국립극단 <좋아하고있어>
사랑이라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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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여자아이들 셋의 싱그러운 일상이 무대에 펼쳐진다. 저마다 여러 가지 불안한 생각과 혼란스런 고민에 빠져 있지만 극의 분위기는 너무 진지하지도, 또 너무 가볍지도 않다. 청소년기 특유의 생기가 기분 좋게 감돌고 있는 일상의 풍경, 연극 <좋아하고있어> 공연팀이 그리고자 하는 세계다. 동성애를 다루지만 아주 덤덤하게, 힘주지 않고 이야기를 가만히 풀어나가는 힘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좋아하고있어>는 지난해 국립극단의 청소년극 창작희곡 개발 프로그램 ‘예술가청소년창작벨트’를 통해 발굴된 작품이다. 이 프로그램은 작가와 연출가, 배우, 청소년이 함께 작업에 참여하며 10대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하는 목표로 진행된다. 공연팀은 <아는 사이>라는 제목으로 쇼케이스를 마치고 작품을 재정비한 후 이제 무대에서 완성작으로 관객 맞을 채비를 하는 중이다. 이 과정에서 작품명은 <좋아하고있어>라는, 좀 더 감각적인 제목으로 바뀌었다.

우리 주변 청소년들의 연애이야기
“작가랑 제일 처음 만났을 때 저한테 ‘이거 연애이야기예요. 청소년들이 연애하는 이야기.’, 이렇게 얘기하더라고요. 그러고 나서 텍스트를 읽어봤고 고민을 많이 했는데, 일단 텍스트 자체가 아주 독특해요. 드라마틱한 장면이 나오지 않아요. 이야기가 잔잔히 진행되는 듯하다 어느 순간 드라마틱한 상황에 영향을 받은 일상이 툭툭 나오는 그런 느낌이에요. ‘작가가 청소년 동성애가 아니라 오히려 일상을 더 조명하고 싶었구나’ 싶더라고요.” -김미란 연출가
작품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일상의 정서다. 좋아하는 마음에 대해 당당하게 표현할 줄 아는 요즘의 여자 고등학생들이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자신의 감정에 대해 결국은 솔직한 선택을 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다만 우여곡절이 극적으로 고조되거나 하는 장면은 없다. 누군가를 좋아하는데 그 대상이 동성인 상황, 그 가운데 누구보다도 힘들었을 아이들의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는 데 집중하는 연극이다. 작품은 전체적으로 간결하고 담백하다.
연습현장에서 만난 연출가는 이 작품에 대해 관객들이 ‘아, 저들이 서로 좋아하고 있구나’ 정도의 감정으로 연극을 느끼고 바라봤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작품 속에서 인물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여러 가지 것들을 계속해서 말하듯,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게 최대한 평범하게 들리도록 무대화한다는 계획이다. 이들을 문제적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고 주변에 있는 평범한 고등학생들로 보이게끔 하는 게 목표다.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는 과정
“관객이 공연을 보고 나갈 때 기분 좋은 마음으로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만들었습니다. 그들의 일상이 나오는데 거기에 때로는 나의 모습도 투영이 되기도 하고, 또 이 여자아이들의 대화를 지켜보는 것 자체가 기분 좋은 순간이 있거든요. 좀 마음이 뭉글뭉글해져서 나갔으면 좋겠어요. 내 친구를 떠올릴 수도 있겠죠. 인간이어서 사랑한다, 이런 개념보다는 최대한 관객들이 이 사람들을 가까이 느끼면서 나갔으면 해요. 멀리 한 걸음 떨어져서 마치 그들이 별도의 집단인 양 바라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다르지만 분명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니까요.” -김미란 연출가
흥미로운 점은 극에서 인물들의 감정이 드러나는 방식이다. 극이 진행되면서 세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과 이들이 속한 사회가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이리저리 얽히면서 이들 마음의 복잡한 결이 서서히 드러난다. 원치 않게 아웃팅을 당하는 소희, 친한 언니였던 소희를 바라보며 감정이 복잡해지는 혜주, 내 친구 혜주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지은은 예상치 못한 시점에 감정의 파고를 저 나름대로 겪는다. 처음에는 받아들이지 못하고, 다투기도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서로를 이해해나가기 시작한다. 이해의 바탕이 되는 것은 동성애자든 이성애자든 관계없이 서로를 아끼고 좋아하는 마음이다.
무대는 이들의 감정을 최대한 잘 전달되게 하는 방식으로 꾸며질 예정이다. 극의 주요 배경은 혜주가 자취하는 공간과 운동장인데, 사실적인 표현을 피하고 타일 질감을 낸 큐빅을 활용하거나 흙의 질감을 연상시키는 바닥을 연출하는 식이다. 공간을 연상시키는 정도로만 무대를 만드는 이유는 관객들이 인물들의 이야기에 좀 더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기 위해서다. 무대 효과를 배우들의 입을 빌어 의성어와 의태어로 표현할 예정인데 역시 이유는 같다. 가령 불이 나가기 직전의 전구가 깜박거리는 정도를 목소리로 묘사함으로써 인물들의 심리를 더욱 직접적으로 와 닿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무엇보다도 청소년들이 자신의 당면한 상황을 피하는 대신 충분한 고민과 생각을 거쳐 겪어내고 스스로 자기 감정을 선택하고 결정하도록 하는 과정이 세밀하게 그려진다는 점이 이 작품의 가장 큰 묘미라 할 수 있다. 이들이 사랑이라는 감각에 대해 인정하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무대 위에 표현하는 것 그 자체가 바로 이 공연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아닐까. 무엇이 옳다, 그르다를 강요하는 대신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들어주는 게 동성애를 향한 사회적 편견을 극복하는 가장 빠른 길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따뜻하고 세심한 시선이 깃든 무대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사진: (재)국립극단 제공]

- 일정
- 10월 13~29일 평일 7시반, 주말 3시(화 쉼)
- 장소
- 국립극단 소극장 판
- 작
- 황나영
- 연출
- 김미란
- 출연
- 김미수, 김별, 김민주
- 문의
- 1644-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