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주쿠양산박 & 극공작소 마방진 <시대는 서커스의 코끼리를 타고>
당신은 (아직) 아메리카에 살고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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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신주쿠양산박과 극공작소 마방진이 테라야마 슈지 원작의 <시대는 서커스의 코끼리를 타고>를 무대에 올린다. 오는 11월,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이다. 신주쿠양산박 김수진의 연출과 작가 백하룡의 각색을 거쳐, 극공작소 마방진의 배우들이 1969년 원작의 시간을 2017년 한국으로 옮겨온다.

‘이것은 일종의 정신적 랠리이다.’
대본의 첫 장, 큼직하게 적힌 제목의 밑에 바짝 붙은 글귀는 다음과 같다. ‘이것은 일종의 정신적 랠리(rally, 영혼의 집회의 실천)이다. 배우들은 연기하다가 아니라 "나타나다, 드러나다"이기에 자신의 언어를, 폭력으로써의 언어를 가져야 한다.’ 이것은 원작자인 테라야마 슈지의 말로서, 이제부터 이 작품이 테라야마 슈지의 정신 아래에서 진행될 것임을 밝히고 있다.
일본의 영화감독이자 시인, 극작가로 다양한 활동을 펼쳤던 테라야마 슈지는 1967년 극단 텐조사지키를 설립해 연극 작업을 시작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책을 버리고 거리로 나가자』라는 평론집을 출간했고(아이러니하게도 책이다), 1971년에는 영화계에도 데뷔하여 다채롭고도 의욕적으로 살다가 1983년 급사했다. 그야말로 불타오르다 사라진 인물. 유럽의 전위주의, 초현실주의, 부조리극을 위시한 실험극들의 영향을 받아, 극단적 형식주의와 일본 전통과 결합, 독특한 예술 세계를 추구했던 테라야마 슈지가 창단 2년 후 발표하여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작품이 바로 <시대는 서커스의 코끼리를 타고>다. 베트남전쟁 등을 소재로 일본의 젊은이들에게 “일본에게 있어 도대체 전쟁은 무엇이냐”고 물었던, 그 작품이 지금 한국으로 왔다. 이 랠리는 어떻게 이어질 것인가?
여덟 편의 에피소드 그리고 음악
음악을 매개로 하는 옴니버스 형식의 이 작품은 총 여덟 편의 에피소드로 구성된다. 사각의 링을 무대로, 열여섯 명의 배우가 노래하고 춤을 추며 이야기를 이어간다. 배경은 전쟁이 끊이지 않는 시대다. 각 에피소드들의 제목을 몇 개 살펴보면, ‘영어를 공부하자!’, ‘다 같이 진할로우를 간지럽히자’, ‘Fuck are you 16’, ‘우리들은 전쟁에 나가고 싶다’ 등이다.
예로부터(?) 어학연수는 종로에서란 말이 있듯이, 첫 번째 에피소드 ‘영어를 공부하자!’는 종로 학원가에서 기초회화를 공부하는 한국인 이야기다. 미식축구선수가 등장하여, 그에게 영어를 왜 공부하는지 묻는다. 그는 미국에 가기 위해 영어를 공부한다고 대답한다. 이에 미식축구선수는 왜 미국에 가는지 묻고, 그는 영어를 공부하기 위해서라고 답한다. 둘의 문답이 오갈수록 장면은 점점 놀이가 된다.
네 번째 에피소드는 피씨방이 배경이다. 하루 종일 게임 ‘서든어택’을 하며 게임 속에서 살상을 즐기던 중학생들이 등장한다. 내일 중간고사를 앞두고, 이만 집으로 돌아가자는 금수저 ‘하얀 옷깃’과 잘 되어봐야 맥도널드 배달이 나의 미래라고 이야기 하는 ‘흙수저’ 아이들이 대립한다. 그러다 알바생 누나에게 도발하는 흙수저 아이들. 알바생은 9급 공무원 시험 준비 중이다. 참고서 값이라도 벌어보려고 하는 알바인데, 왠 어린 것들이 어쭙잖게 덤빈다. 중학생들도 지지 않고, 공무원 되어봐야 하루 종일 공문 복사밖에 더 하느냐고 대든다. 지금의 청년과 미래의 청년들이 인식하는 적나라한 현실의 표상이 드러난다. 그밖에도 해방조선, 80년대의 한국, 독재 시대 등, 한국 사회가 겪어온 ‘전쟁’들이 열차의 차량처럼, 칸칸이 이어져 달린다.

‘아메리카!’ 통증의 구호
서커스 그리고 서커스 코끼리. 제목은 어떤 이야기를 하는 걸까? 원작에서는 럭비, 레코드, 서부영화, 마를린 먼로 등 미국 대중문화가 에피소드의 바탕이 된다. 미국에 대한 동경과 반발이 작품 전체에 흐르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으로 건너오며 이 지점은 조금 누그러지는데, 원작이 상연되었던 1969년의 일본과 2017년의 한국 사회의 간극과 변화된 세계정세 때문일 것이다. 베트남전쟁이 이어지던 시기, 1960년대 일본의 앙그라 연극 등 전위적인 분위기 속에서 전쟁에 대한 반발과 반전에 대한 희망을 역동적으로 노래했던 <시대는 서커스의 코끼리를 타고>는 2017년 한국의 더딘 성장과 저하된 삶의 질이라는 현실로 흡수되면서, 미국에 대한 동경이 사라지게 된다. 도리어 미국의 대중문화가 남기고 떠난, 저속한 문화와 정서의 폐허를 아스라이 만지게 한다.
김수진 연출은 “우리는 모두 평화스러운 나라를 그리워하지만, 전쟁은 끊이지 않고 인류사회에 존재한다. 나는 이 시대 서커스의 코끼리를 지시하는 이들이 있다고 믿고, 그 보이지 않는 손이 무엇인지, 누구인지를 이 작품을 통해 함께 생각해보고자 한다.”며 작품의 기획의도를 밝혔다. 극 중에는 '행복의 나라로', '에레나가 된 순이', '나성에 가면', 'San Francisco' 등의 각 시대를 대표하는 곡들이 밴드의 라이브 연주로 더해진다. 세계적인 국악 연주가인 민영치가 연주를 맡아 더욱 기대를 모은다.
전쟁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전쟁은 계속된다. 시대가 서로를 할퀴고 간 자리, 역사라 불리는, 삶의 가슴 아픈 랠리를 우리는 웃으며 볼 수 있을까?
[사진: 극공작소 마방진 제공]

- 일시
- 11월 4~12일 평일 8시, 토 3시7시, 일 3시, 월화 쉼
- 장소
-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 작
- 테라야마 슈지
- 각색
- 백하룡
- 연출
- 김수진(신주쿠양산박 대표)
- 예술감독
- 고선웅
- 출연
- 선종남, 이혜원, 김정현, 김명기, 견민성, 홍의준 외
- 문의
- 02-3676-78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