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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걸음프로젝트 <싱크홀>

우리, 여기에서라면 대화할 수 있을까?

허영균_공연예술출판사 1도씨 디렉터
127호 2017.11.09
나에게는 절친한 친구들이 있다. 서로의 거의 모든 것을 안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들. 그들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 친척 일가의 속사정까지 알고 있는, 약점과 치부를 가리지 않고 드러내고 공유하는 이들. 일상과 일탈 사이, 그 많은 일들을 함께 해왔으면서도, 결코 같이 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연극보기’다. 물론...

나에게는 절친한 친구들이 있다. 서로의 거의 모든 것을 안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들. 그들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 친척 일가의 속사정까지 알고 있는, 약점과 치부를 가리지 않고 드러내고 공유하는 이들. 일상과 일탈 사이, 그 많은 일들을 함께 해왔으면서도, 결코 같이 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연극보기’다. 물론, 나의 사랑하는 친구들은 그들의 친구가 처음으로 참여했던 공연에 꽃다발을 들고 와주었고, 작품에서 수행하는 낯선 역할에 대해 (예를 들면, 드라마터그 같은) 이해하고자 검색에 검색을 거듭했다.(고마워!) 그럼에도, 우리가 함께 연극을 보는 일은 없다. 나 역시 그들을 초대하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공연장에 가서 연극을 보는 일이, 그들에겐 ‘시간을 견디는 일’일이기 때문이다. 친구인 나를 위해, 시간을 쪼개어 시간을 견딘다. 공연이 끝나면 작품 이야기가 아니라 “수고했어”라는 인사를 받는다. 그러니 어찌 “연극 보러 가자”는 말을 건넬 수 있겠는가.

마음에 구멍 난 두 사람

11월 9일, 처음 무대에 오를 작품 <싱크홀>은 <요요현상>(정의신 작)으로 연출가로 활동을 시작한 손지형이 직접 쓰고 연출하는 2인극이다. 평범한 출근길에 싱크홀로 추락한 중년 남자와 그 안에 먼저 빠져있던 30세 청년이 두 명의 주인공인데, 2인극답게 두 인물의 대화로 극은 이어진다. 이들이 나눌 이야기를 짐작하기 위해, 등장인물을 조금 더 가까이 들여다본다.
먼저 중년 남성, 68년생 48세. 이른바 386세대다. 대학 시절 학생운동을 하다가 부모님의 설득으로 포기. 군대를 다녀온 뒤 평범한 학생으로 살며, 취업도 하고, 결혼도 해서 현재는 고등학생 아들과 중학생 딸이 있다. 작은 규모의 개인 사업 운영하고 있는데 회사 사정이 그다지 좋지 않다. 많은 386세대가 그렇듯 민주화를 이뤄냈다는 성취감에 젖어 있지만, 중도에 포기한 것에 대한 부채감을 지니고 있다. 화려했던 과거를 뒤로 하고, 지금은 가정과 회사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다 자신을 잃어가는 아버지다.
한편, 87년생 30세 청년이 있다. 소위 88만 원 세대다. 20대 중반까지 음악을 하다가 포기하고 우울증으로 부모님 집에서 얹혀살며 은둔형 외톨이 같은 생활을 해왔다. 그러다 힘들어 하시는 부모님 모습을 보고 집을 나왔다. 현재는 고시원에서 머물며 아르바이트와 공무원 시험 준비를 병행하고 있다. 일찍이 좌절된 꿈과 이후 사회에서 겪은 크고 작은 좌절들로 패배 의식에 젖어있다. 지금은 꿈보다는 현실에 충실해 보려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오랜 시간 바닥을 친 그의 마음은 도전도 포기도 어느 것 하나 쉽지 않다.
단 몇 줄의 설명만으로도, 고구마호박(호!박!고!구!마!)을 먹은 것처럼 가슴이 답답해지는 두 사람이, 답답한 ‘싱크홀’에 빠졌다. 이들이 할 수 있는 건 대화뿐이다.
손지형은 의미를 덧씌우기보다 명확한 이야기 방식을 택한 작품이라고 <싱크홀>을 소개했다. 싱크홀은 마음에 난 구멍을 은유하는데, 마음이 갑갑하고 공허한 두 사람이 대화를 통해, 공감하거나 서로의 차이를 알아가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그러기 위해 두 사람이 대화할 수밖에 없는 장소를 택했다. 두 인물은 말하고 듣기를 통해 서로의 다름을 아는 것이, 서로를 더 잘 이해하는 길임을 깨닫게 된다.

느리게 살아온 작가의 거북이걸음프로젝트

청년 그래요. 근데... 아저씬 지금 여기가 어딘 줄 아세요?
남자: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청년: 그럼 길은 벌써 잃어버리신 거잖아요.
남자: 그러니까.... 지금 잘못 움직이면 길을 더 잃어버릴 수도 있다 이거지.
청년: 이미 잃어버린 길을 더 잃어버릴 수도 있나요?


손지형 작가·연출가는 실질적인 이야기가 하고 싶었다. 사람 사는 이야기. 들어보고, 겪어보고, 본 이야기를 통해, 이해할 수 있는 범위의 인물들과 상황을 만들어 냈다. 거북이걸음프로젝트라는 팀 이름에 맞게, 작가는 스스로 느리게 살아왔다고 말한다. 방황하며 보낸 긴 시간이 ‘청년’의 삶으로, 그때 가늠한 미래가 ‘중년남자’의 모습에 녹아있다.
작품의 전반에는 두 사람의 어긋남이 보인다. 서로 듣고 싶은 이야기가 다르고, 전제된 생각이 다르다. 그러나 후반에 이를수록 둘은 동병상련의 정을 느끼게 되는데, 의지할 곳 없는 상황이 만들어내는 필연적인 집중, 그러니까 ‘진지한 듣기’가 만들어낸 공감의 연대 덕분이다.
두 인물이 그러하듯이, 손지형 역시 관객과의 공감을 기대하는 작업자다. 관객과 동떨어지지 않은, 극장에 대한 괴리감을 매울 수 있는 작업을 지향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 있어 <싱크홀>은 큰 노력을 기울였다. 함께 연극을 본 친구들이 (자신은 감동에 빠져있는데) 힘들어 하는 모습을 기억하며, 이들도 극장을 찾게 하는 연극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 손 연출이다. 싱크홀 속 두 남자가 놓인 무기력한 상황은 지금 이 세대가 놓인 현실이면서, 작가이자 연출 자신과 자신의 친구들을 위한 대화의 장이다.

무언가 함께 하는 이유는 아마도 ‘대화’하기 위해서 일 것이다. 공유하는 시간이 더 이상 대화를 빚어내지 못 할 때, 연인들은 이별을 택한다. 절친한 이들과 삶의 반경이 달라지니, 마음을 기울이는 방향에 교차점이 사라진다. 나는 쓸쓸함에 휘감긴다. 마치 ‘싱크홀’에 빠진 것처럼. 싱크홀 위에서는 여전히 차도 사람도 왕왕거리며 지나간다. 그러나 싱크홀 안은 고요하다. <싱크홀>을 통해, 연극 보기의 또 다른 역할을 기대한다. 극장 안에서 그리고 극장 밖에서 우리들의 ‘대화’를 풍요롭게 하는 것. <싱크홀>이라면 나의 친구들과 다시 함께, 연극을 볼 수 있을까?

[사진: 거북이걸음프로젝트 제공]

일시
11월 9~19일 평일 8시, 주말 3시, 월 쉼
장소
30스튜디오
작/연출
손지형
출연
김문식, 김지훈
문의
02-852-96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