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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반대연극인행동 3월 월례포럼 현장

침묵의 카르텔을 흔드는 언어 찾기

전강희_연극칼럼니스트
137호 2018.04.05
지난 2월 이윤택 성폭력 사건 고발을 시작으로, 연극계 내에서는 미투(#metoo) 선언이 연달아 터져 나오고 있다.

지난 2월 이윤택 성폭력 사건 고발을 시작으로, 연극계 내에서는 미투(#metoo) 선언이 연달아 터져 나오고 있다. 2월 21일 밤 10시 극단 고래 연습실에서 100여 명의 연극인이 모여 이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토론이 오갔다. 이윤택 사건의 진행 추이를 지켜보고, 앞으로 있을 또 다른 미투의 주체들과 효과적인 연대를 이루어내기 위해 실무적인 사항들을 능동적으로 처리해나갈 구성원이 필요했다. 토론이 마무리될 무렵 실무진을 자처하겠다는 연극인 30여 명이 자리에 남았다. 위계가 발생할 수 없는 조직이 되고자 대표 없는 체제로 모임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성폭력반대연극인행동(이하 성반연)’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다음을 약속하고 집에 돌아오니 시간은 새벽 5시를 향하고 있었다.

성반연은 곧바로 행동을 이어나갔다. 운영팀, 대외협력팀, 온라인팀, 피해자지원팀, 지지자지원팀으로 업무를 나누었다. ‘피해자 중심의 지원활동’, ‘미투 발언을 소모하고 있는 언론 견제’, ‘국회 등에 현 사안에 대한 의견 개진과 대책 마련 촉구’, ‘미투 운동에 화답하는 위드유(#withyou) 지지자들과 연대’, ‘학교와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 제시’를 기본으로 삼고 활동 중이다.

3월 25일에 있었던 월례포럼 첫 번째, <미투(#metoo)가 폭로한 침묵의 카르텔>이 있기까지 다양한 모임이 있었다. 매주 월요일마다 있었던 정기모임이 <지금 말하기 자리>라는 이름으로 명칭을 바꿔 운영되며 8회 모임을 앞두고 있다. 지금 말하기 자리는 대개는 사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진행된다. 다루는 사안에 따라 구성원은 조금씩 달라진다. 성반연 실무진뿐만 아니라 관심을 가지고 연락해오는 분들의 발언으로 진행되는 자리이다. 사적인 이야기가 나를 넘어 타인에게 전해지는 최초의 자리라고까지 의미 부여할 수 있겠다. 사적인 이야기는 사적인 고통과 같은 말이다. 지금 말하기 자리에서 발화되는 사적인 고통의 양상은 대부분 닮아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라도 너의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월례포럼은 저항 담론이 될 수 있는 정교한 언어를 찾기 위해 기획되었다. 지금 말하기 자리 등에서 쏟아져 나온 말들이 담론이 될 수 있는 길을 모색하기 위한 자리이기도 하여, 공개포럼 형식을 취했다. 월례포럼 첫 번째, “미투(#metoo)가 폭로한 침묵의 카르텔”은 다섯 개의 발제를 듣고 질의하는 시간과 자유발언 시간 두 부분으로 구성되었다.
1부는 아카데미의 영역에 있는 이진아, 김숙현 평론가의 발제와 창작현장의 최진아 연출가, 이리 배우의 발제로 구성되었다. 발제 제목은 다음과 같다.

기조발제_한국연극의 폭력적인 제도 전반에 대하여
1. 극단/현장에서 침묵은 어떻게 발생했나_최진아(연출가)
2. 대학, 대학교수, 비평가 그리고 권력에 대하여_이진아(평론가)
3. 연극계의 부당권력은 왜 견제의 대상이 되지 못했나?-전제된 질문과 함께_김숙현(평론가)
4. 왜 연극계 안에서 여성연대는 이뤄지지 않았나?_이리(배우)

성반연은 발제자들에게 ‘포럼을 위한 질문들’을 보냈다. ‘연극평론가에 대해서, 대학교수에 대해서(직위, 수업, 최근 성폭력 및 위계 폭력 관련), 연출가에 대해서, 창작 주체에 대해서’라는 네 개의 카테고리를 정하고 해당 발제자에게 각각의 질문을 던졌다. 질문은 학생, 조연출, 배우, 젊은 평론가 들이 작성한 것으로, 몇 가지 예시를 들자면 다음과 같다.

Q. 평론의 대상에서 제작 과정 또는 예술가의 윤리는 분리되어야 하나요?
Q. 예술(연극)을 가르치는 교수들은 오늘날 예술(연극) 교육이 훌륭한 예술/예술가를 낳을 수 있다고 믿나요? 학교가 제공하는 커리큘럼이 과연 예술가의 성장을 돕는다고 생각하시는 지요?
Q. 연출가에 권력이 집중되어 있다면,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Q. 왜 연극계 안에서 여성연대는 이뤄지지 않았나요?
Q. 왜 동료여성의 문제에 대해 ‘힘있는’ 여성창작주체들은 나서지 않았나요?

질문에 대한 답변을 발제하는 형식으로, 연극계를 떠받쳐왔던 견고한 카르텔이 유지되는 양상을 각자의 위치에서 살펴보았다.

2부 자유발언시간에도 여러 사람들이 자리를 지켜주었다. 1부 발제에 이어 ‘다양한’ 목소리를 더해 ‘정교한’ 말을 찾고자 했으나 아직은 쉽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예상치 못하고 갑작스레 터져 나오는 외침들이 많을 수밖에 없는 자리였다. 외침이 말이나 담론이 되기 전에 겪어내야 하는 고통의 시간, 자신이 처한 상황을 사회적인 맥락 속에서 살펴보는 시간이 아직은 조금 더 필요한 것 같다. 물론 단 한 차례의 포럼만으로 정교한 언어 찾기가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사적인 이야기가 사적인 것만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으로도 여전히 벅찬 감이 있다.

우리의 말이 카르텔을 흔들 수 있을까?
내부자를 여전히 감싸는 연극인들을 신뢰할 수 있는가?, 라고 어느 참가자가 질문을 던졌다. 이리 배우는 “신뢰할 수 없다. 하지만 전 오늘 여기 와 있는 여러분을 믿는다”고 말했다. 이 말을 조금 바꿔 “전 오늘 여기 와 있는 여러분의 말을 듣고 믿는다”, 라고 한다면, “우리의 말이 카르텔을 흔들 수 있을까?”의 답변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포럼에서 터져 나온 말들 중 몇 가지를 남긴다.

“저는 이러한 당연한 목소리들을 통해 연극계라는 하나의 세계가 전복될 수 있는 시기라고 믿습니다.”

“저는 저에게 일어났던 일이 성폭력이었다는 것을 최근에야 인지하게 되었습니다.”

“작년부터 젠더 이슈뿐 아니라 페미니즘 이슈에 대한 의식의 차원이 많이 고양된 아주 고무적인 현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고무적인 현상에 경도되느라 지속적인 논의는 곧 사라질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연극계는 거대담론을 워낙 좋아하는데, 위계나 젠더, 페미니즘 문제는 거대담론 축에 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성폭력이 만연한 사회에서 홀로 안전했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나는 침묵했다가 되는 것이다.”

“내가 몸담았던 극회는 전통적으로 한국 희곡만 공연했기 때문에 상황은 더 처참했다. 처음에는 그저 역할에 대한 문제의식이었다. 왜 온통 엄마, 아내, 비서, 여자친구, 술집 작부, 기생, 미친 여자, 히스테릭한 중년 여자, 삼신할매, 치매 할머니, 복부인, 형수, 처제, 되바라진 여고생, 클럽녀, 유혹녀, 수퍼 아줌마, 집주인 아줌마, 연애 못하는 노처녀뿐인 걸까. 나도 주인공이 하고 싶었는데, 주인공을 하려면 머리가 길어야 했고, 여성스러워야 했기 때문에, 그리고 사실 그 1번 여성 역할들은 주인공이 아니었고, 자신의 내러티브가 없었으며, 주체적으로 사건을 끌고 가지 않았고, 성녀- 창녀- 자궁- 미친 여자 중 하나였기 때문에(혹은 그것들의 혼합물) 나는 남자 역을 하지 않으면 할 수 있거나 하고 싶은 공연이 별로 없었다.”

“현재 교도소에 수감된 사람들 중 절반이 성추행, 성폭행으로 들어온 사람들입니다.”

“학원에서 입시만 쭉 공부하다 대학에 들어오면, 교수가 연극의 전부입니다.”

“때로 권력은 숨만 쉬고 살았는데도 나이가 들어 생기기도 하고 오래 일했다고 생기기도 합니다.”

“폭력이 관행으로, 기행으로 용인되고 포장되어왔던 문제의 근저에 바로 아카데미와 현장의 불가분의 관계망이 존재한다고 봅니다.”

"사람이 안보이고 사람이 삭제된 연극, 문제적인 성적 이슈를 마주해도, 서구의 미학적 용어로 해석해주기 바빴던 연극평론가들 역시 깊은 반성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 많은 젊은 여자 연출들, 신진 여자 배우들, 여자 예술대 석박사 조교들 다 어디로 갔는가? 분명히 어릴 때는 예체능계에 여자가 훨씬 많았는데.
이게 다 남자 연출들이 연출을 잘하고, 남자 배우들이 연기를 잘하기 때문인가. 남자 극작가가 쓴 고전 희곡이 더 많기 때문에? 남자들이 큰일을 하고 주역을 차지하는 것이 역사적으로도 그래왔고 현실이기 때문에? 운동장이 기울어지고 여자들이 유리 천장아래 머무르는 동안 남자들이 유리 에스컬레이터 타서 그런 게 아니고? 임신하고 출산하고 육아하는 동안 그 양육 노동을 다 여자들이 짊어지고, 우리의 노동 환경이 육아를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아서가 아니라? 우리가 하는 작업들이 젠더적으로 후지고 우리의 작업 환경이 성 착취적이라서 우리가 떠나는 동료들을 지키지 못한 것이 아니라? 그렇지 않아도 사회적 경제적으로 버티기 힘든 이 연극동네에서 작업의 기회와 제대로 된 평가가 주어지지 않은 동료들이 이를 악물고 포기한 것이 아니라?”

[사진: 성폭력반대연극인행동 제공]

독자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