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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화동1번지 6기 동인 기획초청공연 < 세월호2018 >

기억하기보다는 함께 하기

허영균_예술·공연예술출판사 1도씨 디
139호 2018.05.10
‘벌써’라는 부사가 조심스럽지만, 그날로부터 4년이나 흘렀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아니, 지난 4년간 4월 16일은 매번 놀라운 날이었다. 1995년 봄, TV 화면 안에서 무너져 내리던 분홍색의 건물의 굉음과 그보다 한해 전 가위로 자른 듯 뚝 끊겨버린 성수대교의 충격을 여전히 기억한다. 퇴근이 늦은 아버지를 데리러 나가는 어머니...

나와 그날

‘벌써’라는 부사가 조심스럽지만, 그날로부터 4년이나 흘렀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아니, 지난 4년간 4월 16일은 매번 놀라운 날이었다. 1995년 봄, TV 화면 안에서 무너져 내리던 분홍색의 건물의 굉음과 그보다 한해 전 가위로 자른 듯 뚝 끊겨버린 성수대교의 충격을 여전히 기억한다. 퇴근이 늦은 아버지를 데리러 나가는 어머니를 붙잡으면서 “엄마 다리 건너? 다리 건너면 안 돼?”하면서 매달려 울었던 기억도. 절망의 세계는 쉽게 망각을 허락하지 않는다. 이토록 정확한 비극이 다시 펼쳐지는 걸 보면.

그해 봄 나는 광주에 있었다. 새롭게 개관할 극장에서 일하던 나는 담당은 아니었지만, 전원이 투입되다시피 했던 개관 전 프로그램을 돕느라 정신이 없었다. 금남로 지하도를 몇 번씩 오가면서, 상가에 매달린 TV모니터를 통해 ‘수학여행’, ‘진도 앞바다’, ‘침몰’, ‘구조’ 등의 자막이 다급하게 나타났다 사라지는 모습을 보았다. 때늦은 점심을 먹으러 들어간 식당에서 무거운 다리를 겨우 폈을 때쯤 ‘전원 구조’라는 뉴스 보도가 나왔다. “다행이네요.” 꺼진 배를 채우던 시간도, 말도 참 짧았다.

같은 날 밤이 되고야 실상을 알게 되었고, 그 충격적인 상황은 나의 정신뿐만 아니라 하루를 남겨둔 공연의 감행 여부 자체를 혼돈에 빠뜨렸다. 세월호에 남편 지인의 조카가 타있다더라, 누구네 아는 사람도 그렇다더라 하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재앙은 절망이 되어 가까워졌다. 마침내 ‘안산의 한 고등학교’의 2학년 학생들이 타고 있었다는 정확한 사실을 전해들었을 때, 천천히 다가오던 절망이 내 중앙으로 깊숙이 질주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친구가 막 선생님으로 부임했던 고등학교가 그가 살던 안산에 있었는데, 그 친구네 집 주소에서 보았던 단원이라는 글씨가 뇌리를 파고들었다. 리허설 중이던 극장의 화장실에서 파르르 손을 떨면서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열 번 스무 번을 해도 그랬다.

1주차 <벡사시옹 + 제 10층>

연극과 세월호

2018년 혜화동1번지 6기 동인의 기획 초청 공연 <세월호2018>은 캐치프레이즈는 ‘세월호로 우리의 세계는 재구성되었습니다’이다. 정말로 그렇다. 세월호로 나의 세계는 재구성되었다. 외부 세계에 존재하던 재앙이 처음으로 나의 내부로 파고들었다. 세상의 겉과 안이 뒤바뀔 수 있다는 것, 세상의 비극이 나의 그것이 되어 내 삶에 들러붙을 수 있다는 것을 세월호가 알려주었다. 건너편에서 타오른 불이 우리 마을을 덮칠 수 있는 것처럼, 수백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시작된 지진이 평화로운 바닷마을을 삼킬 수 있는 것처럼. 세월호는 나를 비극의 일원으로 초대했다.

혜화동 1번지 6기 동인은 참사 직후인 2015년부터 매년 여름 세월호를 주제로 한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이를 통해 동인뿐만 아니라 외부의 연극인과 예술인에게 세월호를 기억하고 발언할 기회를 제공해왔다. <세월호2018>은 이전해 보다 규모를 확대하여 10편의 신작을 선보인다. 6기 동인 전원과 윤혜진 연출, 유수연 연출, 프로젝트 쌍시옷의 송정안 연출, 0set프로젝트의 신재 연출이 합류한다. 올해는 세월호를 기억하고 사유하려는 또 다른 시도로서, 고전 희곡, 문학, 철학 텍스트, 오래된 악보를 원작으로 각기 다른 작품을 만들었다. 이는 예술가이자 시민인 우리에게 세월호가 가져온 영향과 변화를 인지하고 실험하기 위함이다. 세월호는 사건을 넘어선 관점이자 세계관이 된다.

총 열 편의 작품 가운데, 1, 2주차인 윤혜진 연출의 <벡사시옹 + 제 10층>과 프로젝트 그룹 쌍시옷과 송정안 연출의 <행복한 날들>은 막 공연을 마쳤다. <백사시옹>은 작곡가 에릭 사티의 작품으로, 4분 음표 13개를 840번 반복하는 미니멀 음악이다. 악보를 대신하여 연극의 텍스트를 차용하고 변주했던 작품이다. 사무엘 베케트 원작의 <행복한 날들>은 2016년 결성한 프로젝트그룹 쌍시옷의 신작이다. 그밖에도 루쉰의 광인일기를 원작으로 한 극단 신세계의 <광인일기>, 극단 작은방의 <키스>, 낭만유랑단이 송경화 연출이 베르나르 마리 콜테스 원작의 <숲에 이르기 직전의 밤>을 준비하고 있다.

<키스>는 윤영선 원작으로 “너 거기있고, 나 여기있지”라는 대사로 유명한 그 작품이 맞다. 연출은 극단 작은방의 신재훈이 맡았다. ‘극장은 세상의 작은방’이라는 뜻의 작은방은 2009년에 창단해 2016년에 비로소 공동체를 이룬 극단이다. 떨어져 있는 남녀가 이름을 부르고, 곳곳을 헤매며 서로를 찾으려 애쓰지만 만날 수가 없다. 남과 여는 말을 멈추고 ‘그냥 가까이’ 다가가려고 한다. 조용히 숨소리만 내며, 서로가 내뱉은 욕설마저 힌트삼아 상황을 추적해야 한다. 둘은 침묵과 추측으로 보이지 않는 상대를 가늠한다.

5주차 작품인 <숲에 이르기 직전의 밤>은 1977년에 발표된 프랑스 작품을 원작으로 한다. 자기 스스로를 이방인이라 부르는 ‘나’는 비 오는 밤, 어느 거리에서 보이지 않는 ‘너’에게 말을 건다. ‘나’는 거리를 가득 메운 타인들은 모두 나와 너를 위협하는 위험한 존재들이며, 그들 위에 있는 더 커다란 집단의 하수인들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전 세계의 모든 곳에서 이방인들을 장악하고 있다. 나는 너와 함께 쉴 수 있는 ‘방’을, ‘숲’을, ‘풀밭’을 찾지 못한 채 계속해서 떠돈다. 낭만유랑단의 송경화가 연출한다.

그밖에도 아트클럽 농이 릴케 원작의 <말테>를 6주차에 공연한다. 연극제답게, 셰익스피어를 원작으로 하는 작품도 세 편 있다. 극단 창세의 백석현 연출이 <한여름 밤의 꿈, 너머>와 여기는 당연히, 극장의 구자혜 연출이 맡은 <소네트> 그리고 마지막 작품인 앤드씨어터의 <도처의 햄릿>이 그것이다. 9주차에는 초청 연출인 신재의 <배우에 관한 역설>이 공연된다. 사회적 이슈의 당사자들과 함께 작업해온 0set 프로젝트 작업의 연장선에 있는 작품이다.

2주차 <행복한 날들>(촬영: 이로)

기억하기보다 함께 하기

괜한 오해를 살 것 같아 밝혀야 할 것 같다. 그 친구는 무사하다. 친구가 무사하다고 말하는 것과 혹은 가정 하에 그 반대였다고 해도, 그것을 말하기는 참 어려운 일이다. 나는 세월호 때문에 매일 슬프지 않다. 나는 세월호를 매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을 ‘내 것 아닌 것’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 조금의 노력은 기울이고 싶다. 혜화동 1번지의 <세월호2018> 덕분에 나는 올해도 티끌 같은 무게라도 나눌 수 있다. 그런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조금의 무게를 더 짊어지는 이들에게 감사한다. 내 세계의 절반에, 나의 일부에, 계속하여 슬픔이 들러붙어 있도록 해주는 연극이라는 이름의 행동을 존경한다.

주차 공연기간 제목 공연단체 연출 표
주차 공연기간 제목 공연단체 연출
1주차 4.19 - 22 벡사시옹 + 제10층 - 윤혜진
2주차 4.26 - 29 행복한 날들 프로젝트 쌍시옷 송정안
3주차 5.3 - 6 광인일기 극단 신세계 김수정
4주차 5.10 - 13 키스 극단 작은방 신재훈
5주차 5.17 - 20 숲에 이르기 직전의 밤 낭만유랑단 송경화
6주차 5.24 - 27 Malte말테 아트클럽 농 유수연
7주차 5.31 - 6.3 한여름 밤의 꿈, 너머 극단 창세 백석현
8주차 6.7 - 10 셰익스피어 소네트 여기는 당연히, 극장 구자혜
9주차 6.14 - 17 배우에 관한 역설 0set 프로젝트 신재
10주차 6.21 - 24 도처의 햄릿 앤드씨어터 전윤환

기간
4월 19일~6월 24일
장소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
문의
hhdlab6@gmail.com, hhdlab@facebook·twit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