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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상상공터 <땡볕에 서다>

가혹한 현실, 그러나 포기할 수 없는 꿈

김나볏_공연칼럼니스트
140호 2018.05.24
순순히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21세기에도 사람들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계급이 존재한다. 오랜 세월 동안 공고했던 계급사회가 자본주의와 만나면서 다소간 흔들린 것은 사실이지만, 이제는 또 다른 엄격한 기준이 솟아나 사람과 사람 사이를 쩍쩍 갈라놓고 있다. 요즘 사회에서 신분을 나누는 절대 잣대는 다름 아닌 돈이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굳이...

순순히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21세기에도 사람들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계급이 존재한다. 오랜 세월 동안 공고했던 계급사회가 자본주의와 만나면서 다소간 흔들린 것은 사실이지만, 이제는 또 다른 엄격한 기준이 솟아나 사람과 사람 사이를 쩍쩍 갈라놓고 있다. 요즘 사회에서 신분을 나누는 절대 잣대는 다름 아닌 돈이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돈은 시시각각 위력을 떨치며 ‘없는 사람들’을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움츠러들게 만든다. 자본주의의 냉혹한 현실에 비하자면 과거 귀족과 양반들의 놀음은 차라리 낭만적으로 보일 지경이다.

감히 넘볼 수 없을 수준의 엄청난 부자를 제외하고 갑남을녀 사이에서 중산층과 서민의 신분을 나누는 상징적 기준 중 하나는 바로 아파트다. 너와 나를 구분하기 위해, 서로 섞이지 않기 위해 누군가는 담을 쌓고, 철조망을 친다는 뉴스가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이 표준화된 주거 공간은 비단 어른들 간 계급을 나누는 데 그치지 않고 같은 반 아이들 사이마저 조각조각 내고 있는 실정이다. 아파트가 빼곡히 들어선 한국의 여느 도심을 보고 있노라면 신분사회는 오히려 과거보다 더 세분화되고 공고해진 느낌이다. 극단 상상공터의 <땡볕에 서다>는 주거 공간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 같은 비극적 현실에 주목하고 더 늦기 전 사람들에게 작지만 분명한 경종을 울리고 있는 작품이다.

누군가에겐 너무나 가혹한 현실

<땡볕에 서다>는 가난을 보듬어주기는커녕 되레 꼬리표로 붙여놔야 속 시원해하는 요즘 한국사회, 한국 사람들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땡볕에 서다>는 사는 곳이 어디인가를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게 마치 자연스러운 문화처럼, 일반적 상식처럼 굳어지는 데 경종을 울리려는 듯한 작품이다. 앞서 인권연극제를 통해 두 차례 선보인 이 연극은 올해는 대학로로 자리를 옮겨 관객을 만날 예정이다.

시장에서 노점상을 하는 덕이와 지적장애를 가지고 있는 순이는 결혼한 지 5년이 지나도록 아이가 없다. 세상이 좋아져 인공수정이다 뭐다 아이를 가질 방법이 많다는데, 배운 것도 짧고 하루하루 벌어먹기 바쁜 이 부부에게는 낯선 이야기이다. 7살 지능을 가진 순이는 그저 하늘에 지성을 드릴 뿐이고, 덕이는 아내와 앞으로 태어날 아이를 위해 매일 시장에서 열심히 일할 뿐이다. 그들에게 가장 큰 소망은 아이와 함께 살 ‘임대아파트’에 입주하는 것이다. 그러던 차에 드디어 순이가 임신을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13개월이 지나도록 아이는 나오지 않는다.

제목에서 짐작 가능하듯 이 작품은 김유정의 소설 <땡볕>을 작품의 모티프로 삼아 만들어졌다. 다만 원작을 그대로 올리는 대신 동시대적 관점으로 새롭게 재해석하는 방법을 택했다. 덕이와 순이 부부의 임신이 주요 소재인 점은 소설과 같지만 잉태한 아이를 출산하고자 집을 나서면서 시작하는 원작과 달리 2018년을 사는 덕이와 순이는 아직 아이를 품고 있지도, 집을 갖고 있지도 않다. 아이와 아파트를 동시에 열망하는 덕이와 순이는 마침내 아이를 갖는 데는 성공하지만 이들이 감당하지 못할 병이 엄습해오면서 위기를 맞는다.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쉬울 수 있는 일이지만 이들 부부에게는 치명적일 정도로 힘겨운 사건이자 사고가 된다.

바보 같지만 바보 같지 않은 사람들

“여전히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을 다시 한번 이야기 해보고 싶어서 세 번째 공연을 올리게 됐어요. 움직임, 빛과 그림자로 작업하는 것을 좋아해서 별다른 무대장치를 따로 마련하지는 않았습니다. 극 중 중요한 배경으로 등장하는 아파트랑 달과 해도 빛과 그림자를 활용해 이미지적으로 풀어내는 정도예요. 스토리가 있는 연극이지만 덕이와 순이 외에 정형화, 상징화시킨 인물들의 경우 움직임과 이미지적 요소를 많이 쓰는 식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서정애 연출가

2014년에 만들어진 상상공터는 연극을 기반으로 하되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이 모여 함께 작업하는 연극집단이다. 배우에서 출발해 연출가로 전향한 서정애가 극단을 이끌고 있고, 이밖에 클래식 음악 전공자, 안무가, 배우 등 다채로운 예술가들이 작업에 힘을 보태는 중이다. 다양한 장르의 사람들이 모인 이유는 표현방식을 좀 더 확장하기 위해서다. 상상공터라는 이름은 상상하기만 하면 뭐든지 펼쳐지던, 어린 시절 놀던 공터같은 극단이 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번 작품의 경우 원작이 있다 보니 아무래도 대사량이 있는 편이지만 보통의 경우 상상공터는 개인과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담되 움직임이나 소리, 이미지 요소를 극대화한 연극을 지향한다.

세상의 기준에는 한없이 모자라기만 한 덕이와 순이에게 ‘임대아파트’는 그야말로 꿈에 그리던 공간이다. 이 연극은 누군가에게 절실한 꿈의 공간이 누군가에게는 욕심을 채우는 데 방해가 되는 하찮은 장애물로만 여겨지는 현실을 무대 위에 고스란히 담아낸다. 연극은 원작 소설과 많이 다르지만 한편으론 유사한 대목도 있다. 연극 <땡볕에 서다> 또한 현실을 직접적으로 비판하며 가기보다는 있는 현실을 가만히 들여다봄으로써 관객에게 생각할 거리를 넌지시 던지는 방식을 택했다는 점이다. 정답을 강요하는 연극은 아니지만 누군가에게는 조금 불편한 진실을 테이블 위에 넌지시 올리며 공론화를 꾀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작품이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이 자신의 주거 문제뿐만 아니라 주변 이웃들의 주거 문제에 대해 고민해봤으면 하는 마음이야말로 이 공연을 계속해서 만드는 이유라고 연출가는 설명한다.

[사진: 극단 상상공터 제공]

일시
5월 29일~6월 3일 평일 8시, 토3시7시, 일 4시
장소
대학로 아름다운극장
원작
김유정
작/연출
서정애
출연
지병국, 장경숙, 김이수, 오세윤, 윤재우
문의
010-5360-14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