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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로창고극장 재개관식에 다녀와서

이유가 있다면 다시 열릴 것이다. 언제든

유혜영
143호 2018.07.05
명동에 위치한 삼일로창고극장이 지난 6월 22일 금요일 오후에 재개관 기념행사를 열었다. 이전에 가 본 적 없었던 극장의 ‘재’개관식이었지만 적잖이 설렜다.

명동에 위치한 삼일로창고극장이 지난 6월 22일 금요일 오후에 재개관 기념행사를 열었다. 이전에 가 본 적 없었던 극장의 ‘재’개관식이었지만 적잖이 설렜다. 1970-80년대 한국 연극계의 아방가르드이자 엄청난 관객동원 사례로까지 기록된 삼일로창고극장의 역사가 동시대 관객인 나와 얼마나 재미있게 조우할 수 있을지, 다시 ‘시작’을 외치는 공간에서 앞으로 어떤 작품들을 볼 수 있을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극장으로 올라가는 언덕의 공기는 꽤나 무겁고 후텁지근했다. 하지만 극장 간판 아래 삼삼오오 모여든 사람들의 들뜬 호흡과 하늘로 훅 트인 중정 덕분에 극장에는 산뜻한 활기가 있었다. 모인 사람들 모두에게 어떤 벅참과 기대가 있었다.
입구에서 흰 종이가 드문드문 묶인 나뭇가지를 나누어주었다. ‘서리화’라 부르는데, 봄이 오기 전부터 봄을 염원하는 생명력을 의미한다고 한다. 서리화로 예감하듯 개관행사는 길놀이로 시작하여 비나리와 축원으로 이어지는 전통 방식의 잔치였다. 비나리가 진행된 공연장은 관객들로 가득 차고도 넘쳤다. 극장 안팎을 한 마당처럼 활용한 행사는 관객들이 직접 적은 소원지로 복을 빌고, 막걸리와 떡을 나누는 모두가 함께하는 퍼포먼스였다. 연습실로 사용될 예정이라는 ‘스튜디오’에는 관객들이 계속 편하게 먹고 쉴 수 있는 리셉션도 마련되었다.
극장에는 흥미로운 공간들이 많았다. 간판에 ‘공연장, 갤러리, 연습실, 카페’라고 쓰여 있듯 그야말로 복합공간의 면모를 갖추고 있는데, 세월이 느껴지는 벽돌 계단을 따라 각 공간을 이어주는 복도, 옥상, 경사길과 구석의 틈새들이 말끔히 새로 지어진 건물과는 확실히 다른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듯했다. 공연장과 갤러리, 스튜디오, 그리고 매표소 안쪽으로만 통하는 지하실까지 각각의 공간들은 거칠고 짓궂게, 묘하고 독특하게 남아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들은 과거와 현재의 공존을 증명하고 있었다.

공연장에서는 퍼포먼스에 앞서 재개관 기념 영상이 상영되고, 빨간 피터로 분한 배우들이 삼일로창고극장의 역사와 바람을 압축한 몇몇 문장들을 예언하듯 낭독했다. 서정협 서울시 문화본부장, 주철환 서울문화재단 대표와 민간 운영위원들 즉, 앞으로 이 극장을 운영해나갈 주체들의 인사가 이어졌다. 내일에 대한 기대와 바람이 음악의 흥으로 넘실거렸다. 다만, 그날을 낳은 삼일로창고극장 역사의 맥락을 이어간다는 측면에서는 다소 아쉬움이 있었다. 행사는 내내 극장을 어슬렁거리던 빨간 피터들처럼 어딘지 어색했다. 배포된 개관식 안내지와 공간 운영 소개를 담은 리플렛에는 “과거와 현재가 만나”, “과거와 현재를 잇는”이라는 수식어가 여러 번 나온다. 그러나 “과거” 극장을 회상할 수 있는 사실 정보는 물론, 그 안에 담겼을 여러 연극적 시도들, 관객의 반응 등을 짐작해볼 수 있는 단서는 충분하지 않았다. 특히, 개관기념 영상이나 퍼포먼스 어디에서도 방태수, 이원경, 추송웅 등 대표적으로 삼일로창고극장을 이끌었던 예술가들의 자취를 찾아보기 어려웠다는 점이 매우 섭섭했다. 그분들만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면, 지난 시절의 정신을 이제 이곳의 새 주인이 될 후배들에게 물려주고, 그들의 앞날을 빌어주는 것이었을 것이다. 성대한 비나리에 복을 빌어줄 사람은 없고, 복을 받을 사람들만 모여 반쪽 잔치를 벌인 것은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다행히 삼일로창고극장을 최초 개관했던 극단 에저또를 주제로 한 전시 <이 연극의 제목은 없읍니다>를 통해 과거 유산의 일부를 짐작할 수 있었다. ‘긴급조치’가 내려진 차가운 정치 상황에서도 각종 연기 훈련과 신체 워크숍 활동까지 이어갔던 극단 에저또의 활동 기록은 그들이 보여준 실험과 전위극들의 밑바탕에 시대도 어찌해볼 수 없는 예술에 대한 갈망이 있었음을 느끼게 했다.

재개관 행사에서 빨간 피터는 삼일로창고극장 역사에는 ‘알려지지 않은 여백과 부침’이 있었고, ‘극장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논쟁적인 지점들’이 여전히 있다고 말한다. 이 문장들은 현장에서 배포된 소책자 <삼일로창고극장 보고서 2017>의 에필로그에서 발췌되었다. 민관공동운영, 나아가 지속가능한 극장 운영의 이슈가 운영진들의 고민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듯했다. 삼일로창고극장이 일곱 번이나 폐관할 수밖에 없었던 것을 배경으로 대학로 소극장들의 운영난, 공공극장 운영자들과 창작자들 간 커뮤니케이션 문제까지 지속적으로 불거지는 연극계 형편에서 삼일로창고극장은 새로운 경영방식에 대한 토론과 자문, 고민에 많은 시간을 쏟았다. 그래서일까, 운영자 관점, 운영자 중심의 재개관식이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예술현장과 소통하고 동행하는 극장이 되겠다는 각오는 운영의 태도, 그 이상이 아니다. 예술현장이 어디인지, 누구인지도 모호하다. 관객으로서 필자는 왜 지금 이 극장의 문이 다시 열렸는가, 어떤 작품과 노력으로 그 이유를 실천하려 하는가, 그래서 나는 여기서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가 훨씬 궁금하다.
어디든 공연장 운영진을 춤추게 하는 것은 좋은 작품과 좋은 예술가, 좋은 관객이다. 삼일로창고극장은 여덟 번이나 다시 열렸다. 다시 열렸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다시 열 이유가 있다면 혹시 다시 닫히더라도 계속 다시 열릴 것이다. 그 이유를 계속 찾고, 쌓아서 단단해질 수 있기를 바란다. 삼일로창고극장이 이제부터 이어나갈 여러 기획 프로그램들은 확실히 다르고, 열려있고, 흥미롭다. 그 프로그램들을 통해 연극 예술이 계속 삼일로창고극장에 있어야 하는 이유를 증명할 수 있기를 바란다. 좋은 공간이 생겨서 설렌다.

[사진: 서울문화재단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