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극단 <사막 속의 흰개미>
허공 위의 집
김나볏_공연칼럼니스트
151호
2018.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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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문화회관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가변형의 블랙박스 극장인 세종S씨어터가 드디어 관객 만날 채비를 끝마쳐가고 있다. 개관 기념작이라는 뜻깊은 타이틀을 달게 된 작품은 바로 연극 <사막 속의 흰개미>다.
세종문화회관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가변형의 블랙박스 극장인 세종S씨어터가 드디어 관객 만날 채비를 끝마쳐가고 있다. 개관 기념작이라는 뜻깊은 타이틀을 달게 된 작품은 바로 연극 <사막 속의 흰개미>다. 신진작가 황정은의 희곡을 토대로 김광보 서울시극단 예술감독이 연출할 이번 무대는 특히 앞으로 실험과 도전을 바탕으로 한 창작공간으로 발돋움하려는 세종S씨어터의 가능성을 가늠해보는 자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사막 속의 흰개미>는 흰개미 떼의 서식지가 돼버린 100년 된 고택을 배경으로 하는 연극으로, 우리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의식을 담되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유지하고 있는 작품이다. 곧 쓰러지기 직전인 위태위태한 이 집을 둘러싸고 서서히 밝혀지는 진실의 전모를 날카로우면서도 정확한 시선으로 응시함으로써 역설적으로 희망의 실마리를 모색하는 작품이 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어떤 믿음으로 살고 있는가
“글을 쓰기 시작하기 전에 프리랜서로 인터뷰 하는 일을 계속 해왔어요. 잡지를 통해 과학 분야 종사자들, 연구원들 인터뷰를 많이 했죠. 한 번은 흰개미를 퇴치하는 방충업체 과장을 인터뷰한 일이 있어요. 흰개미에 대한 인터뷰를 하면서 굉장히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죠. 그 분 말씀이 흰개미는 사실 개미과가 아니라 바퀴벌레과라는 거예요. 개미는 벌이 조상이라면 흰개미는 바퀴벌레가 조상인 거죠. 집을 갉아먹고 가죽, 시멘트도 갉아먹는 흰개미가 신기하다고 생각했어요. 마침 그때 제가 집에 대한 이야기를 쓰려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글을 쓸 때 이런 저런 생각이 다 합쳐지다가 결국 ‘우리는 어떤 믿음으로 살아가고 있는 걸까’ 라는 쪽으로 모아졌죠.” -황정은 극작가
극 중 대형교회 목사인 석필이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아 살고 있는 이 집은 미스터리한 자연현상에 의해 무너져가고 있다. 외형뿐만 아니라 내적으로도 위기에 봉착해있기는 마찬가지다. 극이 진행되면서 이곳에 살고 있는 석필과 그의 가족은 아버지의 부도덕을 오랜 세월 감추거나 묵인하며 사실상 은밀한 공모자 역할을 해왔음이 드러난다. 오랜 시간이 흐른 현재, 이들에게 남은 것은 피폐함뿐이다.
간접적이지만 충분히 사회성 짙은 서사 중심의 줄거리에 계속해서 어딘가 묘한 기운을 불어넣는 것은 다름 아닌 흰개미, 그리고 이를 연구하는 연구원들의 존재다. 집이 무너져가는 기이한 현상이 결국 흰개미 떼의 페어리 서클(fairy-circle, 아프리카 사막에서 발견되는 둥근 원) 때문이라며 집안을 살피는 곤충 연구원 에밀리아의 등장은 관객으로 하여금 인물들과의 객관적 시선의 거리를 유지하게끔 돕는 역할을 한다. 그럼으로써 관객이 이전 세대인 석필의 아버지가 저지른 과오뿐만 아니라 그 과오를 짐작하면서도 묵과한 가족들, 아들 세대까지 아울러 함께 아울러 바라보도록 이끈다. 이를 통해 결국 관객이 맞닥뜨리게 되는 것은 다름 아닌 ‘나는 저들과 다르다고 할 수 있는가’라는 뼈아픈 질문이다.

아버지 세대를 부정하는 아들 세대를 향해 묻다
“인물들을 객석에 앉혀 놓고 쓰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이 인물들이 만약 객석에서 무대 위 자기들의 모습을 본다면 단 한명도 억울한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죠. 나름의 이유들이 다 보였으면 좋겠어요. 누군가를 비난하고 싶어서 쓴 건 아니거든요. 그들의 입장이 모두 다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황정은 극작가
종교인이 주요 인물들로 등장하지만 특정 종교를 비난하는 작품은 아니라는 게 작가의 말이다. 실제로 이 작품은 종교 이야기라기보다는 어떤 믿음에 대한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쓰러져가는 이 집, 여기서 그 대상과 실체가 무엇인지 모를 믿음 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응시하면서 결국 ‘그렇다면 나는 어떤 믿음으로 살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저절로 향해 가게 만드는 이야기인 셈이다.
주인공 석필이 붙잡고 있는 믿음 중 하나는 아마도 ‘나는 아버지와는 다르다’는 점일 것이다. 때문에 석필은 죽은 아버지 태식의 모든 것을 부정하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헤어 나오기 힘든 깊은 늪에 빠지고 만다. 아버지로부터 피해를 입은 자들의 협박 메시지가 이 집으로 끊임없이 전해지고 급기야는 어느 날 지한이라는 여성이 석필을 직접 찾아오기에 이른다. 그리고 결국 15년 전 벌어진 일에 대한 감출 수 없는 진실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김광보 연출가는 “집을 갉아먹고 있는 흰개미와 무너져가는 고택은 마치 우리 사회가 지닌 불안과 위태로움, 허위와 가식의 역사를 그대로 보여준다”고 극에 대해 설명한다. 안타깝게도 이 극에서 허위와 가식의 역사는 비단 죽은 아버지 태식뿐만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아들 석필에게도 이어지고 있다. <사막 속의 흰개미>는 결국 허위와 가식으로 점철된 과거사들을 현 세대가 어떻게 극복해나가야 할지에 대한 작은 실마리를 던지려는 작품으로 볼 수 있다. “앞 세대의 부정에 대해 ‘나는 그들과 다르다’고 선을 긋는 순간 죄가 대물림되는 것 아닐까”라는 황 작가의 말은 중요한 힌트가 될 듯하다. 결국 예민한 감각으로 과거의 침묵까지 철저히 반성하는 게 남은 자들이 마땅히 감당해야 할 몫인 셈이다.
[사진: 서울시극단 제공]

- 일시
- 11월 9~25일 평일 8시, 토3시7시, 일 3시, 화 쉼
- 장소
-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
- 작
- 황정은
- 연출
- 김광보
- 출연
- 강신구, 백지원, 한동규, 김주완, 최나라, 황선화, 경지은
- 문의
- 세종문화티켓 02-399-1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