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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연극제 <북한의 만담, 다섯 개의 해학>

익숙하고 낯선 북한의 웃음, 만담

김은한
162호 2019.06.27
2019년 6월 7일과 8일 이틀간, 대한민국연극제 '북한의 만담, 다섯 개의 해학' 행사가 진행되었다. 서울연극협회 남북연극교류사업운영위원회가 작년부터 이어온 ‘북한 연극의 이해’의 네 번째 프로그램이다. 이번 행사에서는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만담부터 현대의 화술 소품까지 북한의 코미디 작품 다섯을 남한의 다섯 개 극단이 다시...
2019년 6월 7일과 8일 이틀간, 대한민국연극제 <북한의 만담, 다섯 개의 해학> 행사가 진행되었다. 서울연극협회 남북연극교류사업운영위원회가 작년부터 이어온 ‘북한 연극의 이해’의 네 번째 프로그램이다. 이번 행사에서는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만담부터 현대의 화술 소품까지 북한의 코미디 작품 다섯을 남한의 다섯 개 극단이 다시 시연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어떤 환경에서도 코미디는 만들어지기 마련이고 그것은 또한 상황과 시대를 담고 있기에 북한의 생활과 웃음 연구를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었다.
중국의 ‘상성()’, 일본의 ‘만자이(万才)’ 등 주변 국가에서는 1인 혹은 2인의 화술 공연이 여전히 주류 코미디로 공연되고 있다. 일본의 경우 매년 큰 대회를 개최하면서 웃음을 끌어내는 테크닉을 개발하고 계승, 발전하는 과정을 거친다. 반면 한국에서는 현재 만담이 거의 공연되지 않고 있다. 만담보존회가 있으나 젊은 만담가의 유입을 찾기 어렵고, 활동 또한 간헐적이고 주로 아카이빙의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다. 다행히 음원 스트리밍 사이트에 장소팔 고춘자 콤비나 (전국노래자랑의 사회자로 알려진) 송해 이순주 콤비의 작품이 다수 남아있기에 참고할 수 있다.
한편 북한 만담은 신불출 만담가의 월북으로 이후 꾸준히 창작되며 50년대에 전성기를 맞이한다. 70년대부터는 김정일이 직접 아이디어를 내거나 지도를 하며 당 정책을 민감하게 포착하고 반영하는 장르로 성장하게 된다. 그런 배경으로 현재는 순수하게 웃음을 위해 만들어지는 작품은 없다고 한다.
북한은 나쁜 일도 나쁜 사람도 없이 공평하게 잘 사는 지상낙원을 표방하고 있다. 그래서 코미디 작가는 해학은 가능하나 풍자를 할 수 없다. 대상이 없기 때문이다. (아예 없는 것은 아니고 일제 강점기나 타국의 지도자를 대상으로는 가능하다) 그리하여 계몽적 일화나 미담을 주 소재로 삼는다. 갈등 상황은 ‘반증교양’이라는 단어로 설명할 수 있는데, 더 나은 체제를 위해 결함을 들추어내는 것은 가능하다고 한다.
심재욱 연출과 극단 바바서커스는 신불출의 1인 만담 <계란강짜>(1934)를 2인 부부만담으로 풀어냈다. 계란 한 알을 두고 큰 부자가 되는 허황한 상상을 펼치다가 부부싸움이 일어나고 결국 깨트린다는 이야기를 고풍스런 의상과 발랄한 음악으로 이끌어갔다. 1인 버전이 다소 폭력적이어서 2인 만담으로 재구성했다고 한다.
김수정 연출과 극단 신세계는 박찬수, 최경희 콤비의 재담 <단호한 결심>(1986)을 원래 버전과 2019 남한 버전을 교차시켜 선보였다. 현재의 감수성으로 텍스트를 다듬으려고 노력했으며 어미처리나 몸을 여는 방식 등 규칙을 찾아내어 연습을 진행했다고 한다. 금연운동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라 가장 큰 공감을 끌어낸 작품이었다. “니코틴에 찌든 정자로 무슨 아이를 낳습니까?” 등의 대사에서는 객석에서 폭소가 터졌다. 현재는 김정은의 흡연 장면이 미디어에 노출되면서 당국도 금연을 지시하지 않는다고 한다.
장용철 연출과 창작집단 월요일은 연극의 막간에 공연되던 사이극, 또는 촌극으로 분류되는 <인심 좋은 작업반장>(1987)을 낭독 공연으로 그려냈다. 미용, 이불보 구매, 세대주(북한에서 남성 가장을 부르는 말)의 출장 등의 이유로 노동자들의 이탈을 눈감아주던 작업반장이 지도원에게 들키고 결국 다 같이 반성하는 교훈적 희극이다. 북한의 익살을 우리식으로 해석하기보다는 원작에 충실히 각 인물의 속도감을 살려 표현했다. 여기까지 세 작품은 아내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것으로 웃음을 만들어내려는 장면이 포함되었고, 이 부분에 대한 극단의 노력이 흥미로웠다. 힘의 균형을 재분배하거나 흘려버리는 식으로 재구성되었다.
박혜선 연출과 극단 사개탐사는 현대 북한의 대표 만담가인 리순홍의 <일요일>(2011 공연본)을 북한 남성 버전에 이어 남한 여성 취업준비생 버전을 창작하여 시연했다. 북한 버전은 1인 만담의 매력을 끌어내며 북한의 휴일 풍경을 다루었다. 놀이기구를 처음 탄 사람들, 동물원의 오랑우탄, 코끼리에게 물맞기, 자녀 교육 등 북한의 여가를 살펴볼 수 있었다. 남한 버전은 재정적으로 고립된 취업준비생의 하루를 극적으로 그렸다. 광화문으로 가는 버스의 풍경, 패스트푸드점에서 시간 보내기, 어머니와 통화하고 울컥하기 등 궁상맞지만 차마 외면할 수 없는 일상을 익살맞게 표현했다.
전인철 연출과 극단 돌파구는 2000년대 이후 활발한 순회공연과 방송 활동을 하는 조선인민군협주단 화술소품조의 <덕을 본다>(2016 공연본)를 참고로 구성했다. 공연본은 배우만 보고 연출은 철저히 관객으로서 의문을 제기하는 식으로 연습을 진행했다고 한다. 2000년대 이후에는 북한도 남한의 ‘개그콘서트’ 형식의 춤과 노래, 화술을 다양하게 활용하는 콩트 형식의 코미디가 늘어나는 추세이며 <덕을 본다> 역시 콩 재배와 씨름대회를 슬랩스틱으로 속도감 있게 구성한 작품이다.
관객과의 대화 또한 뜨겁게 진행되었다. ‘이대로 북한에 가져가서 공연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는 연출들이 고개를 저었다. ‘지난 시대의 코미디를 재현하는’ 방식에 아쉬움을 느낀 사람도 있었다. ‘남한의 코미디를 북한의 극단이 공연한다면?’이라는 질문도 상상력을 자극해 즐거웠다. 동시에 우리에게는 어떤 코미디가 있는가? 혹여 너무나 제한된 코미디를 학습하며 자라오지 않았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고유한 코미디 방법론을 가진 극단과 많이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북한의 만담도 어떤 진화를 앞으로 이루게 될지도 흥미롭다. 우리가 얼마나 닮고, 또 달라질지도.
[사진제공: 2019 대한민국연극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