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업씨어터' 사태의 아르코 사과문 발표에 대하여
나의 팝업씨어터는 이것으로 막을 내립니다
염한별
164호
2019.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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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리스트 백서가 나오고 ‘팝업씨어터’가 생각보다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땐 멋쩍은 웃음만 나왔다. 나는 일개 연수단원, 그러니까 인턴이었기 때문에 이 일의 엄중함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도 가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일하는 지인을 통해 아무개 부장은 어디서 일하고 있다더라, 같은 이야기를 들을 땐 짜증과 분...
블랙리스트 백서가 나오고 ‘팝업씨어터’가 생각보다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땐 멋쩍은 웃음만 나왔다. 나는 일개 연수단원, 그러니까 인턴이었기 때문에 이 일의 엄중함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도 가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일하는 지인을 통해 아무개 부장은 어디서 일하고 있다더라, 같은 이야기를 들을 땐 짜증과 분노가 지저분하게 밀려왔다. 2015년으로 돌아가 사무실을 뒤집어 엎어놓는 상상을 해보기도 했다. 어차피 인턴이었던 데다가 지금은 그 언저리에서 일하고 있지도 않은데 그냥 한 번 속 시원하게 난리라도 피울 걸, 하는 아쉬움만 남는 날들이었다.
작년엔 호소문형식으로 글을 써서 제출한 적이 있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당시 내부고발로 인사조치를 당한 선배를 ‘돕고’ 있다고만 생각했다. 부당한 인사이동, 상사의 히스테릭한 행동으로 인해 상처를 입은 것은 선배였다. 그 때문에 난 스스로 그 당시 직접 피해를 받은 일이 있었는지 돌이켜보게 되었고, 이 일이 과연 내게 얼마나 큰일이었는지도 계산해봐야 했다. 그도 그럴 것이 2015년 10월의 모습을 기억해보면 이 일은 나의 일이 아니었다. 공연을 방해받은 연극인들과 가해자였던 윗선들의 일이었다. 다시는 이곳에 오지 않을 생각으로 관계없는 사람처럼 멀찌감치 떨어져서 이 사건을 대했었다. 물론 가끔 차오르는 짜증은 오롯이 내 것이었지만 별수 없었다.
4월, 백서 출간 기념으로 팝업씨어터 조사 보고서 낭독회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왜인지 소외감이 들었다. 하지만 이런 감정을 갖는 것도 어이없는 일이다. 나는 아무것도 한 것 없이 머리와 입으로, 내 SNS로만 놀리고 있었으니 그것은 행동했던 연극인들의 행사임이 맞다. 그렇다고 내게 그런 기회가 주어졌던가, 내 불만을 그들처럼 호소할 방법이 있었나? 그 방법을 내가 찾아보기라도 했었던가. 아쉬움이 다시 상기 되는 시간이었다.
예술 행정, 기획 등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한 번쯤 일해보고 싶은 큰 회사다. 나도 그랬다. 하지만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하다가 일이 힘들어서가 아닌 부조리함과 못난 사람들 때문에 정이 떨어지는 것은 꽤 큰 상처로 남는다. 우리 팀은 그 일이 있고도 한 달여 동안 부장과 한 공간에서 일하고 조사도 받고 공연방해에 대한 그의 되지도 않는 변명도 들으며 사무실에 있었다. 연극인들의 입장에 비해 직원들의 입장은 보이지 않을 수밖에 없었고, 보일 수도 없었다. 정이 떨어지든 말든 직원들은 그냥 회사를 관두면 그만이었다. 박근혜 정권 시절 대부분의 공공기관이 그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옳은 일은 아니지 않은가. 행사 이후 사과와 관련된 일들은 선배의 요구로 시작되어 빠르면서도 느리게 진행되었다. 하루하루 일이 진행됨에 따라 오히려 내가 도움 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선배는 내가, 내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북돋아 주고 있는 것이었다. 고작 인턴이어도 부당함을 당했을 때 소리 내도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외면했던 소외감을 조금씩 지울 수 있게 되었다. 이제야 내 일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조금 더 당당하고 정확하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감사할 따름이다.
지금까지의 과정들은 순탄치 않았다. 이것은 개인의 사고가 아니었고 조직적인 차원의 거대한 일이었기 때문에 진중하고 무겁게 진행되어야 했고 위원장의 사과를 듣는 것으로 합의를 해야 했다. 긴 시간, 많은 사람과 회의를 거쳐 몇 차례의 수정을 통해 사과문은 완성되었다. 이마저도 정권이 바뀌고 나서야 변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협조적인 모습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작년엔 호소문형식으로 글을 써서 제출한 적이 있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당시 내부고발로 인사조치를 당한 선배를 ‘돕고’ 있다고만 생각했다. 부당한 인사이동, 상사의 히스테릭한 행동으로 인해 상처를 입은 것은 선배였다. 그 때문에 난 스스로 그 당시 직접 피해를 받은 일이 있었는지 돌이켜보게 되었고, 이 일이 과연 내게 얼마나 큰일이었는지도 계산해봐야 했다. 그도 그럴 것이 2015년 10월의 모습을 기억해보면 이 일은 나의 일이 아니었다. 공연을 방해받은 연극인들과 가해자였던 윗선들의 일이었다. 다시는 이곳에 오지 않을 생각으로 관계없는 사람처럼 멀찌감치 떨어져서 이 사건을 대했었다. 물론 가끔 차오르는 짜증은 오롯이 내 것이었지만 별수 없었다.
4월, 백서 출간 기념으로 팝업씨어터 조사 보고서 낭독회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왜인지 소외감이 들었다. 하지만 이런 감정을 갖는 것도 어이없는 일이다. 나는 아무것도 한 것 없이 머리와 입으로, 내 SNS로만 놀리고 있었으니 그것은 행동했던 연극인들의 행사임이 맞다. 그렇다고 내게 그런 기회가 주어졌던가, 내 불만을 그들처럼 호소할 방법이 있었나? 그 방법을 내가 찾아보기라도 했었던가. 아쉬움이 다시 상기 되는 시간이었다.
예술 행정, 기획 등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한 번쯤 일해보고 싶은 큰 회사다. 나도 그랬다. 하지만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하다가 일이 힘들어서가 아닌 부조리함과 못난 사람들 때문에 정이 떨어지는 것은 꽤 큰 상처로 남는다. 우리 팀은 그 일이 있고도 한 달여 동안 부장과 한 공간에서 일하고 조사도 받고 공연방해에 대한 그의 되지도 않는 변명도 들으며 사무실에 있었다. 연극인들의 입장에 비해 직원들의 입장은 보이지 않을 수밖에 없었고, 보일 수도 없었다. 정이 떨어지든 말든 직원들은 그냥 회사를 관두면 그만이었다. 박근혜 정권 시절 대부분의 공공기관이 그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옳은 일은 아니지 않은가. 행사 이후 사과와 관련된 일들은 선배의 요구로 시작되어 빠르면서도 느리게 진행되었다. 하루하루 일이 진행됨에 따라 오히려 내가 도움 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선배는 내가, 내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북돋아 주고 있는 것이었다. 고작 인턴이어도 부당함을 당했을 때 소리 내도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외면했던 소외감을 조금씩 지울 수 있게 되었다. 이제야 내 일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조금 더 당당하고 정확하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감사할 따름이다.
지금까지의 과정들은 순탄치 않았다. 이것은 개인의 사고가 아니었고 조직적인 차원의 거대한 일이었기 때문에 진중하고 무겁게 진행되어야 했고 위원장의 사과를 듣는 것으로 합의를 해야 했다. 긴 시간, 많은 사람과 회의를 거쳐 몇 차례의 수정을 통해 사과문은 완성되었다. 이마저도 정권이 바뀌고 나서야 변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협조적인 모습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19일, 사과문이 발표되었다. 가해 당사자의 심정은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공식적으로 조직이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했다. 미적지근한 마음인 것은 바로 그 부분이다. 잘못을 행했던 당사자가 아닌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이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생각보다 속 시원한 일은 아니다. 직접 공연을 방해했던 그 몇 명의 직원들에게서는 서면 사과도 받지 못했다. 사과의 뜻을 비쳤다고는 하나 확실히 알 길이 없다. 그게 그토록 힘든 일이고 어려울 일인지 정말 이해할 수 없다. 이것으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진정성을 느낄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찌 되었든 이 과정을 거쳐 잘못 인정과 수습을 하는 모습이 다른 기관에 선례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후부터는 우리가 아닌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노력해야 할 문제다. 우리 모두에게 참 고생스러운 일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