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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 연극인 연대

느슨하지만 꾸준히, 느리지만 언젠가는

김태희_연극평론가
166호 2019.08.22
페미니스트 연극인 연대(페연연)의 출발은 연극계 성폭력 문제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던 201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미 그 전부터 연극계 내 페미니스트 연대에 대한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었던 이들은, 연극계 성폭력 문제가 수면위로 부상하면서 공식적인 활동에 나섰다. 하루하루 최악이 갱신되는 경험을 하고 있을 무렵이었던 터라 페연연의 등장은 무척 반가...
페미니스트 연극인 연대(페연연)의 출발은 연극계 성폭력 문제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던 201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미 그 전부터 연극계 내 페미니스트 연대에 대한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었던 이들은, 연극계 성폭력 문제가 수면위로 부상하면서 공식적인 활동에 나섰다. 하루하루 최악이 갱신되는 경험을 하고 있을 무렵이었던 터라 페연연의 등장은 무척 반가운 일이었다. 당시 성폭력반대연극인행동(이하 성반연)도 구성되어 활동을 시작했는데, 두 단체의 색깔은 조금 달랐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를테면 초기 성반연이 여성운동단체와 연대하여 피해자들을 구제하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면, 페연연은 권위적인 문화 자체를 바꾸는 일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인상이었다.
‘페미니스트’가 어때서
페연연이 처음 만들어질 무렵만 해도 ‘페미니스트’는 껄끄러운 단어였다. 그것은 대체로 공격적인, 과격한, 여성들만의, 따위를 함의하고 있었다. 사실 페미니스트라는 단어를 부대껴하는 이유는 그보다 더 다양하고 제각각이어서, 혹자는 페미니스트가 여성과 남성을 적대시하게 만든다고도 했고 또 혹자는 좁은 범주만을 포함하기 때문에 연극계 전체를 아우르기에는 부족한 용어라고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기도 한 일화지만 한편으로는 당시 분위기가 얼마나 경직되어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어쨌든 페연연 내부에서는 그렇다면 더욱 더 ‘페미니스트’라는 단어를 뺄 수 없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고 결국 단체의 이름은 ‘페미니스트 연극인 연대’로 정해졌다. 페연연에서 활동 중인 멤버는 공식적으로 8명이다. 이들은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일상에 만연한 다종다양한 폭력들에 대해 폭로하는 한편, 여러 집회에 참여해 목소리를 냈다. 그런데 여기서 재밌는 장면이 연출되곤 했다. 페연연은 집회 때마다 자신들의 깃발을 지참했는데 어느새 인가 연극인들이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깃발 아래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게 아닌가. 만나자고 약속을 했던 것도 아니고 그 집회가 반드시 페미니즘과 연관되어 있었던 것도 아닌데 말이다. 연극하는 ‘페미니스트’라는 말이 더 이상 조심스러운 용어가 아니게 된 것, 사람들이 집회 때 자연스럽게 페연연의 깃발 아래에 모이게 된 것은 바꿔 말하면 이들이 해온 작업들이 혹은 이들의 존재 자체가 일종의 안전망이 되고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페미니스트에게만 유독 철저한 도덕성을 요구하며 온갖 규범적 잣대를 들이대는 이상한 세계에서, 분연히 반발하고 일어선 이들은 페미니스트 되기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몸소 증명하고 있다.
분노가 지나간 자리에서
동료나 스승에 의한 성폭력이 고발될 때마다 연극계는 분노했다. 분노는 너무 뜨거운 감정이어서 한동안은 거리를 둘 수 없었고 그래서 작업을 지속하기 어려운 시간들이 이어졌다. (아직은 부족하지만) 가해자들이 처벌을 받고 피해자들이 일상으로 돌아오면서 페연연 내부에서도 변화가 있었다.
예전에는 무언가 강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할 것만 같았고 거대한 악과 싸워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었다면, 이제는 그런 부담감을 좀 내려놓고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하는 데 집중하게 되었다. ‘여유’가 생긴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문제의식의 폭이 넓어져서 성폭력 문제에서 더 나아가 퀴어, 배리어 프리, 수화 번역 등에 대한 고민이 생겨났다. 집회에 나가고 소모임을 만들고 스터디를 하는 등 예전 방식의 활동도 여전히 계획에는 포함되어 있지만, 지금은 일단 각자의 자리에서 다양한 작업을 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그것이 자연스럽게 담론으로 형성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들이 선보인 작품들이 우리 연극계에서 크고 작은 화두를 던지고 있는 것을 보면,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작업은 담론을 만드는 가장 확실한 방법임은 분명하다.
각자 작업에 집중하는 건 좋지만 페연연으로서의 활동은 정체되어 있는 게 아닌가 슬쩍 도발적인 질문을 던져봤더니, 의외로 순순히(?) 현재 상황을 받아들인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다만 지금은 여전히 꺼지지 않는 불씨들을 예의주시하면서 언제 어디서 어떤 상황이 벌어지든 싸울 수 있는 힘을 기르는 시간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실제로 페연연은 안전한 작업환경을 만들기 위한 일들을 지속적으로 해왔다. 자체적인 규약을 만들어보기도 하고 새로운 작업을 시작할 때 작업 수칙을 정하고 실행할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자신이 속해있는 프로젝트팀부터 변화시키고자 노력하고 있는 셈이다. 페연연 멤버들은 직장이 안전해져야 그 다음을 이야기할 수 있고 개인의 역량 역시 발휘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신체적인 폭력, 언어폭력으로부터 안전을 보장받게 되자 이제는 임금에 대해 고민할 수 있게 되었고 계약서를 써야 한다는 주장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들에게 생긴 ‘여유’란 문화를 바꾸는 일이 매우 느리고 점진적인 변화라는 것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생긴 것인지도 모르겠다.
문화를 바꾸는 일은 중요하지만 동시에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제 겨우 안전한 작업 환경을 요구하는 것이 유난스럽지 않은 단계에 도달했을 뿐이니 말이다. 여전히 많은 것을 바꿔야 하고 끊임없이 시험에 들지도 모른다. 가령 자발적 연대체는 지속을 위해 필연적으로 느슨해질 수밖에 없다는 한계가 있는데, 페연연도 여기서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같은 목표를 지향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그 느슨함은 촘촘하게 메워질 수밖에 없다. 그것이 끊임없는 시험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되지 않을까.
  • * 페연연의 활동은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공유된다. 글에서 언급된 에세이를 읽거나 소모임에 참여하고 싶다면, 페연연 페이스북 페이지를 방문해보자.
‘페미니스트 연극인 연대’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feyeonye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