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주지윤
44호
2014.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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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윤
joojiyun@hanmail.net
등장인물
아내
남편
때
현재
장소
옥상
무대
늦은 밤, 주택가 옥상. 무대 앞으로 난간, 무대 왼편은 옥상으로 올라오는 계단 입구, 무대 중앙에는 평상, 그 위에는 빵빵하게 채워진 꽃무늬 여행용 가방, 무대 오른편에는 몇 개의 장독대와 화분이 놓여 있다.
환갑을 넘긴 부부
아내는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남편은 그런 아내를 쳐다본다.
남 편이봐.
아내, 별 반응이 없자
남편, 아내를 툭툭 친다.
남 편뭐가 보여?
아 내(남편 보며) 참 기네요.
남 편뭐가?
아 내(하늘 보며) 밤이요.
남편, 한심하다는 듯
남 편싱겁기는!
아 내(침묵)
남 편뭐가 있긴 해?
아 내아뇨.
남 편근데 왜 그러는 거야?
아 내그냥…이상해서요.
남 편어떤 게?
아 내온통 새까맣잖아요.
남 편새삼스럽기는, 밤은 원래 그래.
아 내옛날엔 안 그랬던 것 같은데…
남 편당신도 이젠 늙었구만.
아내, 남편을 물끄러미 본다.
남 편그러니까 세월 타령만 하지 말고 화장품 사다 주면 바르는 시늉이라도 좀 해.
아 내크림 찍어 바른다고 뭐가 달라져요?
남 편나 봐봐, 피부 좋아진 거 안 보여?
아 내(웃음) 그러니까 나한테 고마워해요.
남 편뭐?
아 내당신 사다 나른 거 내가 묵혀놓고 안 바르는 덕분에 당신 피부만 호강하잖아요.
남 편오죽하면 그랬겠어! 비싼 돈 주고 사다 줘도 고마운 줄 모르니, 나 원.
아 내이 나이에 고와져봤자 어디에 쓰이겠어요?
남 편거 사람 참!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말 몰라?
아 내겉이 그러면 뭘 해요? 속은 문드러져서 안 쑤시는 데가 없는데.
남 편왜? 어디 아파?
아내, 남편을 물끄러미 본다.
아 내웬일이래요?
남 편뭐가?
아 내지금, 나 걱정해주는 거예요?
남 편걱정은 무슨!
아 내그럼 그렇지.
남 편운동 해. 운동.
아 내아우,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가쁘고 심장이 벌렁벌렁한다는데 운동은 무슨!
남 편그게 살아있다는 증거야. 그러니까 세상에서 제일 힘든 게 숨 쉬는 거라고.
아 내누가 그래요?
남 편(머뭇) 내가!
아 내난 또, 어디 티비 프로그램에서 주워들은 얘기라고…
남 편이봐, 내 말 들어서 나쁠 거 하나 없어. 내가 하는 말은 다 맞는 얘기라고.
아 내일 등 하겠어요.
남 편뭐로?
아 내우기는 거요.
남 편이 여편네가 진짜!
아내, 남편의 시선을 피해 평상에 앉는다.
남편, 아내 옆에 꽃무늬 백팩을 보고
남 편그건 뭐야? 샀어?
아내, 조심스레 가방을 메고
남편에게 보여주며
아 내어때요? 어울려요?
남 편점잖지 못하게 꽃무늬가 뭐야?
아 내왜요? 내 눈에는 곱기만 하구만…
남 편곱긴 뭐가 고와? 촌스럽지!
아 내꽃이 촌스러워요?
남 편여자들은 희한해. 젊을 땐 꽃 사다주면 돈으로 주지 뭐 이런 걸 샀냐고 타박하더니 늙어서는 새빨갛고 샛노랗고
알록달록한 것만 봐도 저렇게 좋다고 난리니.
아내, 살짝 삐친 듯
가방을 툭 내던진다.
남편, 아내의 눈치를 살피며
그 옆에 앉아서 가방 먼지를 털며
남 편얼마 줬어?
아 내알아서 뭐하게요?
남 편별 것도 아닌 거 쓸데없이 돈 많이 줬을까봐 그런다.
아내, 남편이 들고 있는 가방을 뺏어서
서류 봉투를 꺼내 준다.
아 내받아요.
남 편뭔데?
남편, 봉투 받으며
아 내열어 봐요.
남 편이 밤에 뭐가 보여야 말이지.
아 내돋보기 없어요?
남 편없어.
남편, 봉투에서 서류를 꺼내 보려고 하자
아내, 주머니에서 휴대용 미니 손전등 꺼내서 켠다.
남 편그건 또 어디서 났어?
아 내샀어요. 지하철 안에서…
남 편얼마에?
아 내오천 원요.
남 편(큰소리로) 이 여편네가 진짜!
아 내아우, 깜짝이야. 나 아직 귀 안 먹었어요!
남 편누가 뭐래?
아 내비싸게 주고 산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소리를 질러요?
남 편딱 보면 몰라? 그깟 거 천 원 한 장이면 뒤집어쓰겠구만!
아 내바가지인 거 알고 샀어요.
남 편이래도 흥, 저래도 흥! 어째 당신은 나이 들수록 더 해?
아 내열 올리지 마요. 당신 그렇게 흥분하면 오줌 지리잖아요.
남 편내가 오죽하면 그래? 오죽하면!
아 내쓸데없이 화내면 오줌소태 더 심해져요.
남 편당신이 자꾸 곰 같은 짓을 하니까 그러는 거 아냐!
남편, 서류 내팽개치며
남 편에이씨, 안 봐!
아내, 남편 물끄러미 본다.
아 내주어요.
남 편뭐?
아 내주우라고요.
남 편싫어!
아내, 이혼신고서를 주워서 남편 손에 쥐어준다.
아 내찬찬히 봐요.
남 편이게 뭔데 난리야?
아 내보면 알거에요.
남 편(이혼 신고서 보다 말고) 안 보여! 그냥 말로 해, 말로!
사이
아 내끝내요.
남 편뭐?
아 내그만 살자구요.
남 편(아내 이마를 짚으며) 진짜 어디 아파?
아내, 남편의 손을 뿌리치며 남편을 본다.
아 내이만큼 했으면 됐어요.
남 편뭐?
아 내오래 살았다구요.
남 편이 여편네가 진짜! 저녁때는 밥 차려주기 귀찮아서 빵쪼가리 쥐어주더니 이제는 자다 말고 옥상까지 끌고 와서는
뭐? 뭐가 어째? 이젠 하다하다가 뭐? 이혼? 다 늙어서 노망났어?
아 내(침묵)
남 편왜? 갑자기 왜!
아 내(침묵)
남 편그 나이에 어디 변변한 친정이라도 있어?
아 내(침묵)
남 편젊어서는 그래! 변변한 친정이라도 있었으니 그랬다 치자. 근데 그 나이 먹어서 받아 줄 친정이 어디 있어?
장모님 돌아가신 지가 20년도 더 됐는데 이젠 큰 처남도 없겠다 당신이 갈 데가 어디 있냐고!
아 내(침묵)
남 편그럼 밥은? 내 밥은!
아 내한 끼 안 먹는다고 안 죽어요.
남 편기운이 없잖아, 기운이!
아 내정 그러면 직접 해 드시구려.
남 편뭐?
아 내전기밥솥 있겠다. 밥통에 쌀만 넣고 버튼 누르면 밥도 되고, 반찬은…요 앞에 반찬가게 생겼으니 당신 좋아하는
소고기 무국, 불고기, 장조림 틈틈이 잡수고 싶을 때마다 사다 드시면 되겠네요.
남 편이봐!
남편, 아내의 팔을 잡으려고 하는데
아내, 남편의 손길을 피해 평상에서 일어난다.
아내, 옥상 난간으로 가서 하늘 본다.
남 편은영 엄마!
아 내(침묵)
남 편여보!
아 내(침묵)
남 편순심아!
아내, 뒤돌아서 남편을 보며 웃는다.
어디선가 송창식의 <꽃보다 귀한 여인> 노래가 나온다.
막.

독자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