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축하해
임지수
61호
2015.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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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우 役
형사 役
취조실. 무대엔 책상과 의자 두 개가 놓여 있고 한 쪽엔 정장 차림의 남자, 그 반대쪽엔 교복을 입은 단정한 흑색 긴 생머리의 여학생이 정자세로 앉아 있다. 남자는 자신의 앞에 있는 파일과 여학생을 번갈아 본다. 여학생은 딱히 이 상황에 대해 집중하지 않는 모습이다. 남자가 파일을 집어 듦과 동시에 극이 시작된다.
- 형사
- 이름이 임연우. 그래, 연우. 나이는 열일곱이고, 98년 11월 8일생?
미래고 재학 중…… 어, 너 내일 생일이네?
연우, 형사의 질문에 한 번씩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을 대신한다.
- 형사
- 생일 날 입소를 하는구나.
- 연우
- 네. 생일이 뭐 대수인가요.
연우, 엄지, 검지손가락을 번갈아 물어뜯기 시작한다.
- 형사
- 이제 마지막이기도 하고, 그래서 오늘은 네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왔어.
- 연우
- 내 이야기요?
- 형사
- 그래, 네 이야기.
- 연우
- 내 이야기라…
- 형사
- 동생을 죽인 이유를 말해 주면 더 좋고.
- 연우
- (사이) 그래요. 마지막이니까.
- 형사
- 천천히, 생각나는 말 아무렇게나 다 해도 돼.
- 연우
- 아저씨, 생일이 특별한 날인가요?
- 형사
- 그렇지? 자신이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된 날이잖니.
- 연우
- 그렇구나.
- 형사
- 왜?
- 연우
- 우리 엄마는 나한테 그랬거든요. 네가 없어졌어야 할 날이었다고.
나 같은 건 태어나는 게 아니었다고.
(사이)
- 연우
- 아저씨, 저 사실 경찰서 처음 아니에요.
- 형사
- 아저씨 아니고 형사님이야.
- 연우
- 저 기억, 하시죠. 저 아시잖아요.
- 형사
- 글쎄, 기억이 잘. 미안하다. 서에 왔다 간 친구들이 한 둘이어야지.
- 연우
- 전 그때 기억나는데.
아저씨 그때 서에 부모 출두 안 한 애새끼는 내가 처음이라고
욕했던 아저씨들이랑 같이 있었잖아요. - 형사
- 아아, 그랬니.
- 연우
- 그때 저 왜 그냥 풀려난 거였어요?
아아, 처음이라구, 미성년자 가출 하도 건수가 많아서
처음이기도 하구 해서 풀려난 거였나?
(사이) 아저씨. - 형사
- 형사님이라니까.
- 연우
- 내가 그때 같이 놀러 갔던 남자애들이랑 한바탕 섹스를 할 뻔했는데요,
사실 그러려구 클럽에 가기도 했구. 아무튼 못하긴 했지만 만약 내가 그 애들이랑
섹스를 하고 나서 아주 절망스럽게도, 그중 한 남자아이의 애를 덜컥 배 버렸어.
그랬으면 알았을까? - 형사
- 뭘, 뭘 말이니.
- 연우
- 우리 엄마 기분을 말이에요.
(사이) 원치 않는 아이 뱃속에 데리구 살았던 기분 말이야.
난 진짜, 아직도 궁금해요. 우리 엄마 기분.
엄마랑 제 나이 차이가 16살밖에 안 나거든요. 아빠랑은 20살.
저는 알고 싶었어요. 열여섯의 엄마가 느꼈던 그 기분을요.
(사이) 아, 그리고 그때요. 조사 받고 집에 갔거든요. 갔는데 아무도 없더라구요.
난 서에 오지도 않길래 집에서 텔레비전이나 보고 있겠거니, 했는데
동생년 데리고 외식하러 나갔더라구요. 동생년은 왜 낳은 거지.
걔한텐 왜 그렇게 잘해 주는 걸까요.
나나 그 씨발 동생년이나 다를 게 뭐가 있다고? 어? - 형사
- 연우야, 말 가려서 하자.
- 연우
- 나는 왜! 왜 새 옷 하나 제대로 선물 받아본 적 없는 건데?
그리고 그날이, 동생년 생일이었어요.
(사이) 아저씨, 우리 엄마 아빠는 내 생일을 축하해 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어요. - 형사
- 연우야.
- 연우
- (혼잣말로 아주 작게) 내 생일 좀 기억하라구,
좆같은 동생년 생일만 기억할 게 아니라 내 생일도 좀 기억하라구……
아저씨, 그런데 만약 우리 엄마 아빠가 아예 내 생일을 모르고 있었다면요?
그런 거였음 내가 애초에 이럴 이유가……
(사이)
- 연우
- 아저씨 평소엔 말 많이 했었잖아요. 오늘은 왜 이래?
- 형사
- 넌 평소에 말 많이 안 했었잖아. 오늘은 아니네.
- 연우
- 그래서 싫으세요?
- 형사
- 전혀, 지금 같은 식으로 동생 죽인 이유도 말 해 주면
- 연우
- 그래서, 오늘 온대요?
- 형사
- 응?
- 연우
- 엄마랑 아빠, 오나구요.
- 형사
- 오늘은 오실 거야. 연우 네가 볼 수 있는 시간은 10분 남짓이지만.
- 연우
- 와, 생각보다 기네요.
- 형사
- 긴 건가?
- 연우
- 이번엔 오네. 접때는 안 왔었잖아. 2년 전엔. 연지 생일날엔.
(사이)
- 연우
- 언제 오는데요? 엄마 아빠.
- 형사
- 지금이 두 시니까 한 시간쯤 뒤에나 오실 거야. 왜 계속 묻는 거니.
- 연우
- 아니요. 그냥.
- 형사
- 그래도 입소 직전이 되니 뵙고 싶기는 한 거구나.
- 연우
- 아뇨. (혼잣말로 아주 작게) 보고 싶기야 항상 보고 싶었죠.
- 형사
- 연우 너, 이제부터 혼잣말 금지야.
- 연우
- (다시 엄지, 검지손가락을 입에 가져다 대며) 갑자기 보기 싫어졌어요.
저 여기서 언제 나가요? - 형사
- 이제 한 5분 남았어.
- 연우
- 엄마 아빠 오시면 좀 전해 주세요.
- 형사
- 무얼 말이니?
- 연우
- 으음, 잠시만요. 생각 좀.
- 형사
- 뭔데. 물건이 아니야?
- 연우
- 네, 아니에요. (사이) 한때 소원이었던 거 대신 이뤄 주는 거라구요.
그런데 내가 죽기는 싫은 거 있지. 그래서 죽여 봤다구. 이렇게 전해 주세요. - 형사
-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니.
- 연우
- 연지 죽인 이유 궁금해 하셨잖아요.
- 형사
- 이해가 잘 안 되는데.
- 연우
- 전해들을 두 사람은 잘 알 거예요.
- 형사
- 그래.
(계속해서 손을 입에 물고 있는 연우를 보다 자신의 손목시계로 시간을 확인하며)
이제 나가야 할 시간이야. 부모님 뵙고 들어갈 시간은 있는데 정말 안 뵐 거야?
그리고 너, 손가락 물어뜯지 마. 되게 아파 보여. - 연우
- 네?
- 형사
- 그 손가락. 그 안에 세균이 다 들어가는 거야.
- 연우
- 아아.
- 형사
- 왜.
- 연우
- 처음이에요.
연우, 두 손가락과 형사를 번갈아 본다.
- 연우
- 아, 아저씨. 면회 의무, 뭐 그런 건 없어요?
- 형사
- 형사님이라니까. 그리고 그런 건 없어.
- 연우
- (갑자기 빠른 어조로)
그런 거 있으면 어쨌든 주기적으로 보기 싫은 내 얼굴 한 번은
보러 와야 하는 거 아니에요. 왜? 왜?
그러면 나 소년원에 있는 동안 한 번도 안 올 수도 있는 거야? 응? 진짜? - 형사
- 연우야.
- 연우
- 왜… 왜요… 왜…
- 형사
- 연우야.
- 연우
- 왜! 왜요…
- 형사
- 나도 마지막으로 질문해야 할 게 있어.
- 연우
- 뭔데요.
- 형사
- 살인을 저지른 것에 대한, 죄책감은 없니?
연우, 대답 없이 쥐어뜯던 손가락을 바라본다.
(사이)
- 형사
- (자리에서 일어서며) 그래, 이제 일어날 시간이야.
- 연우
- (일어서며) 아저씨.
- 형사
- 형사님이래도.
- 연우
- 그래요. 형사님. (사이) 그냥, 내가 죽을 걸 그랬나 봐요.
형사, 대답 없이 취조실의 문을 열며 고개를 바깥쪽으로 까딱거린다.
- 연우
- (천천히 문 쪽으로 가서는 나가기 직전 멈춰 서서)
근데, 내가 죽어버리면 정말로 좋아할까 봐. - 형사
- (사이) 이제 그만 나가자.
- 연우
- 뭐, 죽은 뒤의 나라면 알 수는 없지만요.
- 형사
- 후우.
- 연우
- 형사님.
- 형사
- 응.
- 연우
- 전 임연우예요. 올해 열여덟이구요.
- 형사
- 그래.
- 연우
- 전 우리 엄마 아빠 딸이에요.
(사이) 그런데 우리 엄마 아빠만 몰라 줬어.
(사이)
- 연우
- 아, 그리고 하나 더 있어요.
- 형사
- 뭐니.
- 연우
- 이건 아저씨한테 하는 부탁이에요.
- 형사
- 나한테?
- 연우
- 생일 축하한다고 해 주세요.
- 형사
- 우리 내일도 봐. 그 말은 내일 해 줄게.
- 연우
- 네.
(두 사람, 취조실을 나간다.)
- 호들갑 작가소개
- <생일 축하해>를 쓴 작가 임지수는 1995년의 추운 겨울날 서울 대림동에서 태어났다. 작가는 왼손잡이이다. ‘왼손잡이는 재주가 많다.’ 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작가는 자신의 재주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아내지 못한 채 자라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제 생각을 표현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던 작가는 머릿속에 수많은 공상을 지닌 채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나 보냈다. 그러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되던 해, 대학로에서 <고스트 라디오>라는 연극으로 생애 처음 극을 접했고, 작은 무대에서 하나의 세계를 본 작가는 당시 제 가슴을 마구 두드렸던 연극이라는 것에 빠지게 된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없는 재주를 만들어 보기라도 할 심산이었던 것이다. 이제 성인이 된지 14개월 차, 자신의 머리 안에서 수차례 지리멸렬을 반복했던 공상들을 펼치려면 한참 멀었다. 또한 머리에, 가슴에 다 담지 못한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그녀는 앞으로 어찌 이어질지 모를 길을 빛내기 위해 그 길을 열심히 갈고 닦을 예정이다. (편집위원 오세혁)
독자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