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간옥(無間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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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암흑 속,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린다.
- 목소리1
-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요.
- 목소리2
- ……잘못한 게 아니야. 우린 그저 돈을 벌고 싶었을 뿐이지.
서서히 무대 한편이 환해지며 책상에 엎드려 있는 남자2가 나타난다. 잠에서 깬 듯 눈을 뜨더니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핀다. 책상에 놓인 서류철을 확인하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자연스레 서류철을 넘긴다. 한동안 서류철을 들여다보던 남자2, 말한다.
- 남자2
- ……34살. 왜 경력이 없나요.
서서히 반대편 무대가 환해진다. 역시나 고개를 푹 숙이고 의자에 앉아 있던 남자1, 눈을 뜨고는 남자2를 쳐다본다.
- 남자2
- 이해하기 힘들군요.
- 남자1
- ……그게 그렇게 큰 죄 인가요
- 남자2
- 열심히 살지 않았다는 증거니까요,
- 남자1
- ……열심히요.
남자1, 숨을 길게 몰아쉬고는 질끈 눈을 감는다.
- 남자1
- ……저에 대해 얼마나 아시나요.
- 남자2
- ?
- 남자1
- 어떤 근거로 그렇게 함부로 평가하는 겁니까?
남자2, 잠시 말없이 남자1을 바라본다.
- 남자2
- (가만히 어깨가 결린 듯 주무르며) ……면접 처음이신가요?
- 남자1
- ……
그때, 책상에 올려둔 남자2의 폰이 울리기 시작한다. 남자2, 폰을 잠시 보다가 지친 듯 인상을 찌푸린다.
- 남자1
- ……결국 이럴 거면서 애초에 서류 전형은 왜 통과 시킨 겁니까.
남자2, 버튼을 눌러 폰 진동을 정지시킨다.
- 남자2
- (안경을 벗고는 침침한 눈을 비비며) 서류는 제가 통과 시킨 게 아닙니다.
- 남자1
- ……
- 남자2
- 저는 면접만 볼 뿐이죠.
- 남자1
- ……
- 남자2
- 그러니까 저는 제 위치에서, 맡은 바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는 셈이지요.
그러고 난 뒤 한동안 둘 사이에는 아무 말이 없다.
- 남자2
- (하품을 하며) 방금 그 발언과 태도들, 입사할 의사가 없다고 판단해도 되겠습니까.
- 남자1
- ……
- 남자2
- 이만 됐습니다. (내선전화 버튼을 누르며) 다음 면접자 들여보내세요.
- 남자1
- 지금까지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니까, 제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했습니다.
남자2, 대답 하지 않는다. 남자1의 시선을 외면한 채 가만히 서류철만 넘긴다.
남자1, 천천히 일어나 돌아선다. 그때, ‘똑똑’ 노크소리.
- 남자2
- ……
다시 똑똑 노크소리.
- 남자2
- 들어오세요.
다시 똑똑 노크소리.
- 남자2
- 들어오시면 됩니다.
남자2, 가만히 문 쪽을 바라본다. 이번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 남자2
- ?
- 목소리
- 이제 끝났습니다. 여기가 모든 사건의 중심점 이었군요, 그래서 그렇게 된 거군요.
- 남자2
- (뭔가 생각하다가) ……죄송합니다.
- 목소리
- 괜찮습니다. 모두들 처음엔 자신이 죽은 줄 모르고 계속 재현을 이어가는 법이죠.
- 남자2
- ……
- 목소리
- 이제 충분합니다,
- 남자2
- 제 말은……, 이상합니다. 제가 정말 왜 이렇게 된 건지 기억이 안 난다는 겁니다.
- 목소리
- 아, 그렇군요. 돌연사 하셨습니다. 이날은, 야근이 거의 일주일 동안 계속된 직후였죠.
- 남자2
- 맞아. 그랬죠.
- 남자1
- 저는?
- 목소리
- 술을 잔뜩 마신 채 한강으로 뛰어내렸습니다. 기억 안 나세요?
- 남자1
- ……
잠시 정적이 흐른다.
- 목소리
- ……이제 가셔야 합니다.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남자2와 걸음을 못 떼는 남자1.
- 남자2
- 어디로 가는 겁니까.
- 목소리
- (살짝 웃음기가 섞인 채) 글쎄요. 모르겠는데요.
- 남자1
- 네?
- 목소리
- 태어났을 때나, 살아가면서 누구한테 그런 질문 해본 적 있나요?
- 남자1
- 아뇨.
- 목소리
- 그럴 겁니다. 저희가 그렇게 기획한 거니까요.
그때, 어디선가 웅성거리는 소리에 남자1, 2 관객석 쪽을 본다.
- 남자1,2
- ?
- 목소리
- 저들도 당신들과 비슷한 사례로 여기에 왔습니다. 마찬가지로 재현을 하고 안내를 받을 겁니다.
- 남자2
- 저렇게나 많이.
남자 1, 2 구슬픈 눈으로 관객석을 바라본다. 그때, 끼이익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 목소리
- 저 문을 나가면 됩니다. 믿기지 않겠지만, 있던 곳과는 사뭇 다를 겁니다. 오히려 적응하기 힘들 수도 있겠군요. 다시는 보는 일 없기를 바랍니다.
남자1, 2 여전히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한다.
- 목소리
- 모든 자료를 검토하고 당신들이 경험한 고통의 무게를 감안했을 때, 원죄에서 벗어났다고 최종 판단한 겁니다.
- 남자2
- 그럼, 지금껏 우리는……
열린 문으로 서서히 빛이 들어온다.
- 남자1,2
- ……
남자1, 2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문으로 걸어간다.
암전.
** 무간옥(無間獄): ‘무간’은 끊임없다는 의미로, 숨 쉴 틈이 없을 정도로 끊어질 사이 없이 혹독한 고통이 계속되는 감옥을 뜻한다.
- 호들갑 작가소개
- 지금은 회사를 다니면서 학위를 따기 위해 사이버 강의를 열심히 듣고 있지만 한 때 연극을 참 좋아했고 공연도 많이 올렸다. 처음엔 배우가 되고 싶어서 연극을 했고 대학교 가서는 극작가가 되고 싶어서 연극을 했다. 졸업 후에는 연출가가 되고 싶어서 연극을 했지만 결국엔 아무 것도 되지 못했다. 아무려나 지금은 나를 잊지 않기 위해 틈틈이 글을 써서 블로그에 올리고 가끔 지인들이 쓰고, 출연하는 연극을 보러 다닌다. 공연을 볼 때마다 그들이 있기에 그나마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고 기댈 곳이 있다는 사실에 다시금 안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