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브리즈
임종원
86호
2016.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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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원룸
종호는 방바닥에 드러누워 책을 보고 있다.
- 경원
- (집에 들어오자마자 냄새를 맡고는) 진짜. 자꾸 이럴래?
- 종호
- 왜?
- 경원
- 왜? 몰라서 그래?
- 종호
- 뭐가?
- 경원
- 내가 방에서 피지 말라고 했지.
- 종호
- 냄새 나냐?
- 경원
- 그럼 이 좁은 데서 폈는데 안 나겠냐?
- 종호
- 미안.
- 경원
- 왜 이렇게 배려가 없냐.
- 종호
- 미안하다고.
- 경원
- 왜 내가 너 때문에 담배냄새 밴 옷을 입어야 되지? 너 일부러 그러는 거지?
- 종호
- 밖에 추워서 그랬어. 앞으로 안 그럴게.
- 경원
- 앞으로 안 그런다고 한 게 벌써 몇 번째냐고.
- 종호
- 미안하다고 그만 좀 찡찡대.
- 경원
- 뭐? 찡찡? 됐다. 내가 너랑 무슨 이야길 하냐.
경원은 화를 참고 자기 가방에서 츄리닝을 꺼내 아무데나 던져놓고는 자신이 입을 옷들을 찾기 시작한다.
- 경원
- 아.. 진짜 미치겠네. 옷에 냄새 다 뱄잖아.
- 종호
- 어디 나가?
- 경원
- 어.
- 종호
- 어디 가는데?
- 경원
- 알아서 뭐하게.
- 종호
- 은서 만나러 가냐?
- 경원
- 어.
- 종호
- 그래? 근데 너 진짜 은서랑 사귀냐?
- 경원
- 그럼 가짜로 사귀냐?
- 종호
- 그런 말이 아니잖아… 근데 솔직히 이건 좀 아니지 않나 싶네.
- 경원
- 뭐가?
- 종호
- 인간 적으로 너네 사귀기 전에 나한테 얘기라도 해야 되는 거 아니냐?
- 경원
- …왜?
- 종호
- 아니 그렇잖아. 솔직히 니네 나 때문에 알게 된 사이잖아.
- 경원
- 근데 그게 뭐? 아… 고마워라도 하라고? 고맙습니다. 당신이 아니었다면 우린 못 만났을지도 모르겠네요.
- 종호
- 뒤질래? 그게 아니라. 은서도 너도 나한텐 친한 친군데 둘이 사귀면 난 뭐가 되냐고.
- 경원
- 뭐가 되긴 그냥 친구지.
- 종호
- 몰라. 솔직히 배신당한 기분이야.
- 경원
- 배신은 무슨 배신이야. 니네 둘이 술 마시는 데 나 부른 거 소개해 주려고 그런 거 아녔어?
- 종호
- 말은 똑바로 하자. 내가 불렀냐? 내가 은서랑 마시는데 니가 여자랑 있다는 이야기 듣고 막무가내로 온 거잖아.
- 경원
- 어쨌거나. 그래서 우리가 사귀는 게 싫다고?
- 종호
- 뭐 그런 건 아닌데…
- 경원
- 야. 근데 어디다 뒀냐?
- 종호
- 뭐?
- 경원
- 페브리즈.
- 종호
- (건네주며) 여기.
경원은 옷에 페브리즈를 뿌리기 시작한다.
- 경원
- 근데 페브리즈 참 편한 거 같애. 어떤 냄새가 배도 그냥 그거 다 없애버리잖아.
- 종호
- 그래도 냄새 분자가 다 사라지는 건 아니잖아?
- 경원
- 이 자식 이거 이렇게 무식해서 어떻게 하냐. 페브리즈는 냄새분자 자체를 증발시킴으로써 그 냄새를 없애는 거야.
- 종호
- 병신. 아주 페브리즈 홍보대사 나셨다.
- 경원
- 그냥 그렇다고.
종호는 들떠있는 경원을 씁쓸하게 바라본다.
- 종호
- 근데 넌 은서 어디가 좋냐?
- 경원
- 왜?
- 종호
- 은서 말야. 니 이상형하고 거리가 좀 멀지 않냐?
- 경원
- 내 이상형이 뭔데?
- 종호
- 너? 정리정돈 잘하고 깔끔하고 청순한 스타일. 아냐?
- 경원
- 뭐 그것도 좋은데 요즘엔 너무 청순한 것보다 섹시한 스타일이 좋더라고.
- 종호
- 뭐? 섹시? 은서가?
- 경원
- 이 새끼 잘 모르네. 은서가 얼마나 섹시한데.
- 종호
- 야. 어거지 부리지마. 솔직히 걔가 뭐가 섹시해. 가슴도 겁나 작아서 등짝이랑 구분도 안 되더만. 난 걔 보면 가끔 깜짝깜짝 놀래. 목 돌아간 줄 알고.
잠깐 사이에 생긴 침묵
- 경원
- 너 나 좋아하냐?
- 종호
- 뭐? 또라이냐?
- 경원
- 아니면 너 은서 좋아해?
- 종호
- 자꾸 개똥같은 소리 할래?
- 경원
- 너 오늘 하는 꼬라지가 이상해서 그래. 너 오늘 하는 행동들이 나랑 은서 만나는 거 불만이라고 대놓고 이야기 하는 거 같다고.
- 종호
- 불만은 무슨… 걱정 되서 그래. 괜히 너네 만나다 헤어지면 나만 입장 곤란해지잖아.
- 경원
- 걱정하지마. 그럴 일 없으니깐. 근데 너 진짜 은서 좋아하는 거 아니지?
- 종호
- 미친놈아. 내가 왜 그 껌딱지를 좋아하냐?
또 다시 생긴 침묵
- 경원
- 아니면 됐다. 사실 좀 걱정했거든 니가 은서 좋아하는 거 아닌가 해서. 아니지?
- 종호
- 아니지.
- 경원
- 근데 넌 연애 안 하냐?
- 종호
- 연애는 뭐 나 혼자 하냐?
- 경원
- 그러니깐 내가 소개팅 해준다니깐. 내 주변에 여자 많아.
- 종호
- 싫어. 어색한 거. 야 근데 오늘 늦어?
- 경원
- 왜?
- 종호
- 저녁에 삼겹살이나 사다 구워 먹을려고 했지.
- 경원
- 지랄! 야 여기서 삼겹살 구워 먹으면 그 냄새는 어떻게 하게.
- 종호
- 어차피 페브리즈 뿌리면 되잖아. 냄새 다 증발시킨다며.
- 경원
- 그것도 정도껏이지. 새끼야. 그리고 나 오늘 안 들어올 수도 있어.
- 종호
- (경원을 때리며) 미친새끼아!
갑자기 욕을 한 종호. 그리고 갑자기 욕을 들은 경원 둘 다 놀란다.
- 경원
- 왜?
- 종호
- …어디서 외박이야.
- 경원
- 내가 외박을 하든 말든.
- 종호
- 하든 말든? 그건 같이 사는 사람으로서의 예의가 아니지.
- 경원
- 뭔 예의
- 종호
- 됐고. 안 들어오기만 해봐.
- 경원
- 안 들어오면 뭐.
- 종호
- 내가 페북에다가 니네 지금 떡치는 중이라고 다 올릴 거야.
- 경원
- (종호를 때리며) 뭐? 이 미친 새끼야. 야 누가 은서랑 외박한데? 은서 만났다가 고등학교 동창들 만날 거야.
- 종호
- 아… 그런거야?
- 경원
- 너 진짜 수상해. 아니지?
- 종호
- 뭐가.
- 경원
- 은서 좋아하는 거.
- 종호
- 아니라고. 미친 새끼야.
- 경원
- 알았어. 그럼 나 나갔다 온다.
- 종호
- 잠깐만. (경원이 옷에서 먼지를 떼어내며) 좀 깔끔하게 하고 다녀. 난 남자가 이렇게 하고 다니는 거 싫더라.
- 경원
- 종호야. 너 지금 멘트 꼭 부인 같았다.
- 종호
- 어?
- 경원
- 하여튼 알았다. 나 간다.
경원이 나가고 종호는 경원이 꺼내놓은 츄리닝을 접는다. 그러다가 츄리닝을 집어 던지고는 옆에 놓인 페브리즈를 바라본다.
- 종호
- 분자자체를 없앤다라….
종호는 페브리즈를 자신한테 뿌린다.
- 호들갑 작가소개
- 1985년 겨울에 태어난 연극배우. 시간이 가능할 때면 글도 쓰고 연출도 하는 연극인. 세상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직접 쓰고 싶은 마음에 쓰기 시작한 글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수다 떠는 걸 좋아해 글로 세상과 수다 떨고 싶어하는 사람. 언제나 삶은 재미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연기도 글도 항상 즐겁게 하는 배우이자 작가. 앞으로도 재미있는 글과 연기 기대하시길…
독자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