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찬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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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김나연 고3 수험생
김양자 나연의 홀어머니
무대
양자와 나연의 집.
여자아이의 방이라고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꾸며져 있지 않은 나연의 방, 왼편에는 으레 독서실에서나 볼 수 있는 낡은 느낌의 책상이 놓여있다. 고3이라는 것을 증명하듯이 책상 위에는 교재들이 아무렇게나 쌓여있고 벽면에는 명언, 시험 범위, 목표 등이 적힌 형형색색의 포스트잇이 붙여져 있다. 방의 오른쪽에는 부엌으로 통하는 문이 있다. 한 눈에 보기에도 오래 된 냉장고, 버너, 싱크대가 전부인 단출한 부엌이다. 부엌의 중앙에 둥그런 스테인리스 식탁이 놓여있고, 마른 반찬과 밥 한 공기가 신문지로 덮어져있다. 냉장고 옆에는 양자의 방으로 보이는 문이 하나 더 있다. 때는 겨울이다.
제1장
부엌의 시계는 새벽 5시, 빠글빠글한 파마머리에 촌스러운 보라색 외투를 입고 긴 주름치마를 입은 양자가 방에서 나온다. 굳게 닫혀있는 나연의 방을 슬쩍 열자 나연이 이불을 덮고 자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미소를 짓는 양자. 그 때 양자의 시선에 들어온 구겨진 이불 밑으로 살짝 삐져나온 나연의 발. 조심스레 나연의 방으로 들어간 양자가 이불을 똑바로 펴 나연의 발을 덮어준다. 양자가 다시 몸을 돌려 나연의 방을 나오려는데, 소리를 내며 뒤척이는 나연. 그 자리에서 멈춰 선 양자가 고개를 돌려 나연을 확인한다. 자세를 바꿔 잘 자고 있는 나연. 양자는 더욱 조심스럽게 방을 나가 문을 닫는다.
- 양자
- (신문을 들어 호주머니 속에 든 볼펜을 꺼내 글씨를 쓴다) 밥 챙겨… 먹고… 나가라… 밖에 추우니… 따뜻한 외투 걸치고… (다시 신문을 덮어두고 시계를 확인한다) 아이고, 우얏꼬!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발걸음을 재촉하다 현관에 아무렇게나 벗어져있는 나연의 신발을 정리하고 종종걸음으로 집을 나선다)
나연의 알람시계가 울린다. 습관적으로 알람을 끄는 나연. 그러나 곧 벌떡 이부자리에서 일어나 시간을 확인한다. 아침 8시, 나연은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 나연
- 아, 아―! 지각이잖아! (교복으로 갈아입으며 소리친다) 엄마! 왜 안 깨웠어?! (방문을 열어 식탁을 확인하곤 이제야 깨달았다는 듯이 자리에 멈춰서 담담한 어조로) 아… 이제 엄마 일 나가지. (고갤 들어 시계를 확인한다) 헐. 미쳤어, 김나연! (의자에 걸려있던 교복 마이를 입으며 가방을 들곤 급하게 집 밖으로 나간다)
쾅! 하는 현관문 소리가 크게 울린다. 조명이 다 꺼지고 부엌 가운데에 놓인 식탁만이 조명을 받는다.
제2장
밤 9시, 집을 나서던 모습 그대로의 양자가 한 손에는 대파, 두부 등 저녁거리가 담긴 검은 비닐봉지를 들고 집에 들어온다.
- 양자
- 나연아, 왔나? (식탁 위 신문지를 들추며) 하이고―. 밥 먹고 가라고 캤디마. 일―절 안 건드리고 가뿟네. (비닐봉지를 싱크대 위에 얹어두고 나연의 방문을 조심스럽게 열어본다) 이불도 안개고― 난-리났네, 난-리났어. (널브러진 이불을 개 넣다가 책상 위의 쌓인 교재 중 너덜너덜한 영어 교재를 집어 든다) 그래도 우리 딸, 공부는 열심히 하나보네. (교재를 펼친다) 유, 유… 파, 파운… (한 템포 쉬고) 에이, 잡… (한숨 쉬고 책을 덮고 책상 위를 정리하다 포스트잇이 붙여진 벽을 마주하고 선다) 기자의 사명. 신속, 정확, 공정. 와― 우리 나연이가 기자 될라카나. 멋지네. (두리번거리다 책상 위에 놓인 포스트잇을 한 장 떼어 호주머니 속에서 볼펜을 들어 무언가 적는다)
- 나연
- (집으로 들어오며) 아―! 추워. 엄마, 보일러는?
- 양자
- 아이고! (급하게 벽면에 포스트잇을 붙이고 허겁지겁 나연의 방에서 나온다) 나연이 왔나?
- 나연
- 엄마 또 내 방 건드렸어?! (발을 쿵쾅거리며 걸어가 자신의 방문을 활짝 연다) 아, 내 방 건드리지 말라고 했잖아!
- 양자
- (눈치를 보다 비닐봉지에서 대파를 꺼내 씻고 썰기 시작한다) 이불 밖에 안 갰다. 니 안개고 갔―
- 나연
- (책상을 확인한 뒤) 책상도 건드렸잖아! 아, 오늘 복습해야 할 순서대로 쌓아둔 거였단 말이야! 아, 진짜 짜증나! (방문을 세게 닫는다)
- 양자
- (말없이 버너에 물이 담긴 냄비를 올리고 불을 켜지만 켜지지 않는다) 가스가 다 됐나… (호주머니를 뒤져 꼬깃꼬깃한 천 원짜리 몇 장을 꺼내어 한참을 바라본다) 나연아, 니 밥 안 먹을끼가?
- 나연
- (신경질적으로 교재를 뒤진다)
- 양자
- (소리를 좀 더 크게 내어) 밥 안 먹나?
- 나연
- (큰 소리로) 아, 안 먹어―!
- 양자
- (혼잣말로) 내일 올 때 가스 사와야겠네….
양자는 저녁을 준비하다말고 다시 정리를 한다. 그리고 식탁에 앉아 새벽에 차려놓은 마른 반찬과 다 식은 찬밥에 저녁을 먹기 시작한다. 같은 시각, 나연은 방에서 온갖 짜증을 내고 있다.
- 나연
- 아, 진짜. 일기도 본 거 아니야? (서랍장을 열어본다) 씨… 건드렸네―! 아씨! (서랍장을 세게 닫는다) 이번 모의고사 성적표도 봤으려나…? 성적 떨어졌는데… 짜증나, 진짜! (의자에 앉아 머리를 마구 헝클이다 바닥에 떨어진 자신의 포스트잇을 발견하곤 다시 벽에 붙여놓는다) 어….
못 보던 포스트잇을 발견한 나연. 포스트잇을 자세히 살펴본다. 무대 밖에서 양자의 ‘너무 착한 우리 딸, 공부가 다가 아닌 거 알지? 엄마는 우리 딸이 건강하기만 하면 돼. 그 이상 바라는 거 없으니까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말고, 힘내. 파이팅!’이라는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나연은 입술을 꽉 깨물고 포스트잇을 벽에 다시 붙여놓는다. 조심스레 일어나 방문을 열어보는 나연. 양자가 찬밥을 먹고 있는 모습을 보다 슬쩍 방에서 나온다.
- 양자
- 씻을라고? 있어봐라. (자리에서 일어나려하며) 보일라 틀어주께.
- 나연
- (퉁명스러운 어투로) 아니야, 안 씻어. 밥 먹을 거야. (양자의 옆에 앉는다)
- 양자
- 아이고, 진작 말하지! 가스 다 떨어져가 국 안 끓있는데…
- 나연
- (여전히 퉁명스러운 어투로) 됐어―! 엄마는 꼭 내가 있어야만 국 끓여먹더라. 차게 먹는 거 좋아해?
- 양자
- (자리에서 일어나 밥솥에서 밥 한 공기를 떠 나연의 앞에 놓으며) 그럼! 엄마가 찬 거 얼마나 좋아하는데. 니 여태 것도 몰랐나?
- 나연
- 치… 근데 왜 아이스크림은 안 먹어?
- 양자
- (능청스럽게) 엄마 단 거 싫어한다 아이가.
- 나연
- 땅콩 캐러멜은 단 거 아니야? (툴툴 대며) 만날 사와서 엄마가 다 먹으면서.
- 양자
- 니가 안 먹으이 칸다 아이가.
- 나연
- (양자의 밥그릇을 뺏어들며) 나 찬밥 먹을래.
- 양자
- (밥그릇을 뺏어들며) 아이고― 가시나가 뭐라카노! 여 뜨뜻한 밥 냅두고 뭣 하러 찬밥 먹을라고!
- 나연
- (다시 밥그릇을 뺏어들며) 아, 나 찬밥 좋아해―! 여태 것도 몰랐어?
- 양자
- (또 다시 밥그릇을 뺏어들며) 웃기고 앉았네. 찬밥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있노?
- 나연
- 아까 엄마가 찬 거 좋아한다며!
- 양자
- 엄마는 예외제. 엄마는… 특별하잖아.
- 나연
- (퉁명스럽게) 특별하기는… (미소 지으며 혼잣말로) 그렇긴 하지만… (다시 큰소리치며) 아, 그래도 찬밥 버리고 따뜻한 밥 먹어!
- 양자
- 이 멀쩡한 거 와버리노!
- 나연
- 뭐가 멀쩡해, 다 식었잖아!
- 양자
- 식으면 안 멀쩡한 기가. 치아라, 엄마 먹는다. (밥을 들고 나연에게 등을 돌린다)
- 나연
- 아, 내놔! (양자의 등에 업히듯 매달려 밥을 뺏으려한다)
- 양자
- (웃으며) 무겁다, 이 가시나야!
- 나연
- (웃으며) 아, 대학가면 살 빠진대!
- 양자
- 누가 카드노. 그거 다 거짓말인 거 아나?
- 나연
- 웬열? 엄마가 그랬잖아!
양자와 나연, 계속 티격태격하며 서서히 점등한다.
- 호들갑 작가소개
- 초등학교 3학년, 교내 글짓기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고 처음으로 박수 세례를 받은 것이 매우 기뻐 그 감동을 잊지 못하고 계속해서 펜을 쥐는 중이다. 시, 수필, 소설, 장르를 가리지 않고 무작정 글을 써내려가던 그가 기어코 희곡 대본에도 손을 대고야 말았다. 너무나 서투른 솜씨다. 희곡 대본을 써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면 말 다했다. 그의 이름, 김희정. 1996년생으로 현재 계명대학교 언론영상학과에 재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