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포토시스와 총
안소랑
87호
2016.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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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교실에서 사건 하나 일어났어요. 무슨 사건인지는 모르겠는데 누가 우리 반에서 자살을 했대요. 학교에서는 묻으려고 조용히 끝내려 한다는데, 여튼 그때 형사 하나가 수사를 하려 교실에 들어왔었는데 총을 두고 간 모양이에요.
등장인물
학생 , 형사
무대
교실 책상, 교실 의자
어두운 교실 안에 총을 든 학생이 서있다.
- 학생
- (관객석을 바라보며) 주말에 교실에서 사건 하나 일어났어요. 무슨 사건인지는 모르겠는데 누가 우리 반에서 자살을 했대요. 학교에서는 묻으려고 조용히 끝내려 한다는데, 여튼 그때 형사 하나가 수사를 하려 교실에 들어왔었는데 총을 두고 간 모양이에요. 총은 제 자리 위에 있었어요. 이게 무슨 뜻인 줄 알아요? 나한테 기회가 왔단 뜻이에요. 전부터 마음에 안 드는 년 한 명이 있었어요, 제 1등자릴 빼앗은 년이죠. 이번 중간고사, 그 년 때문에 다 말아먹었어요, 나한테 검정색 볼펜 하나를 빌려갔는데 보니까 그게 저한테 있던 마지막 볼펜이었던 거예요. 덕분에 전 시험을 제대로 못 봤어요. 답이란 답은 죄다 밀려 쓰고, 서술형 답 맞춤법을 틀려버렸다고요. 그래서 전 그 년한테 복수할 계획을 세우려고 했어요. 하지만 어떻게 세워야 할지 막막했죠. 이런 기회가 생길 줄도 모르고요.
그때 누군가가 반 열쇠를 여는 소리가 들린다.
학생은 침착하게 자신이 숨어있을 곳을 향해 숨어 어둠속에 파묻힌다.
교실 문을 연 것은 형사였다. 형사는 열쇠로 머리를 긁적이며 교실 안으로 들어온다.
- 형사
- 에이 시발, 건망증도 이런 건망증이 없지. 총을 두고 다니는 형사가 세상에 어디 있어. 어제는 뭐 기집 애가 죽지를 않나. 분명 여긴 터가 안 좋은 거야, 터가.
형사는 자신이 있던 책상으로 걸어간다.
하지만 책상 위는 깨끗하게 비어있다.
- 형사
- 어? 뭐야, 분명 내가 총을 여기에다가, 여기에다가 두고 갔는데! (관객석을 바라보며) 저기요, 여기 계속 앉아 있었어요? 그럼 내 총, 내 총 어디 있는지 알아요? 몰라? 모른다는 거야, 안다는 거야. 내가 어제 총 없어진 거 알고 얼마나 노심초사 했는지 알아? 아주 나타나기만 해봐, 내가 돈이란 돈은 다 물려서 깜빵으로 시원하게 보내버릴……. (학생이 숨어있는 곳을 발견하며) 왁!
- 학생
- (저를 찾은 형사를 발견하며) 악!
- 형사
- 왁!
- 학생
- 악!
- 형사
- 왁!
- 학생
- 악!
- 형사
- 학생 왜 거기에 쥐새끼처럼 숨어있어!
- 학생
- 아저씨야 말로 왜 이 시간에 교실에 들어와 있어요!
- 형사
- 나야, 내……. 학생, 그나저나 여기 책상 위에 있던 총 본 적 없어?
- 학생
- 모, 몰라요.
- 형사
- 모를 리가 있나, 새까만 거! 총 말이야, 총! 빵빵! 총!
- 학생
- (들고 있던 총을 뒤로 숨기며) 아니, 그걸 왜 저한테 찾아요! 아저씨가 잊어버린걸.
- 형사
- 그러니까 지금 찾고 있는 거 아니야, 거 뒤에 숨긴 건 뭐야.
- 학생
- 뒤에 숨긴 거 없어요.
- 형사
- 숨긴 게 없기는, 빨리 내놔 봐.
- 학생
- 왜 그러세요, 진짜! 이거 성추행으로 신고할 거예요!
- 형사
- (학생에게 다가가며) 성추행은 무슨! 만지지도 않았고만! 빨리 뒤에 좀 봐, 학생!
- 학생
- (허겁지겁 형사에게 총을 겨눈다) 저리 가라니까!
- 형사
- 악! 니가 가진 거 맞잖아! 그거 위험한 거야. 진짜 탄알이 들어가 있는 거라고, 얼른 총 내려 놔. 내려놓고 우리 천천히. 그래, 말로 하자! 말로!
- 학생
- 저 이 기회 놓치면 진짜 등신이에요. 쓰고 바로 돌려 드릴게요, 그러니까 제발 한 번 만요!
- 형사
- 학생! 사람 쏘면 살인이야! 그리고 우리 형사들도 총 같은 거 함부로 못 쓰게 되어 있어!
- 학생
- 거짓말 마요! 영화에서 보면 막 빵빵 쏴죽이고 그러잖아요!
- 형사
- 그건 영화잖아, 등신아! 얼른 총 내려 놔, 아저씨 진짜 화 낼 거야! 나 진짜 화내!
- 학생
- 아! 알았어요. (형사와 자신의 거리 가운데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그럼 총 여기, 여기에 둘게요. 여기에 둘 테니까 건들이지 마요.
- 형사
- 알았다고! 알았다고!
학생은 조심스레 들고 있던 총을 바닥에 내려둔다.
학생이 총을 내려놓은 것을 확인한 형사도 안도하며 자리에 털썩 주저앉는다.
- 형사
- 아이고, 식겁했네. 야, 총은 영화에서 보던 것처럼 멋있게 탕, 탕하고 쏠 수 있는 게 아니야.
- 학생
- 아무것도 모르면서, 제가 이 기회가 얼마나 중요한데요.
- 형사
- 왜, 왜! 누굴 쏘려고, 뭘 누굴 쏘려고 중요한 기회 타령이야!
- 학생
- 제 자리를 찾을 수 있는 중요한 기회예요, 걜 죽이면 저는 제 자리를 찾을 수 있어요.
- 형사
- 니가 지금 있는 자리가 뭔데.
- 학생
- 1등이요.
- 형사
- 뭐? 1등? 겨우 1등 자리가지고 사람을 죽이겠다고? 와, 요즘 애들 무섭네.
- 학생
- 겨우 1등 자리 아니에요. 제가 여태까지 줄곧 지켜오던 자리라고요!
- 형사
- 그냥 다시 그 1등자린가 뭔가를 뺏으면 될 거 아냐, 꼭 사람까지 죽여야 겠냐?
- 학생
- 네, 죽여야 해요. 저는 제 물건, 제 자리 건드리는 애들은 가만 안 둬요.
- 형사
- 그럼 총은 더더욱 못 빌려준다. 아니 애초에 빌려주지도 못해.
- 학생
- 아저씨, 아저씨는 제가 얼마나 필사적인지 모르잖아요!
- 형사
- 그게 필사적이라고? 그건 필사적인 게 아니라 충돌적인거야! 너 충돌적인 살인이 얼마나 무서운 건지 알기는 아냐?
- 학생
- 충돌적인 거 아니에요, 그리고 걔는 죽어도 상관없는 애라고요.
- 형사
- 세상엔 죽어도 될 만한 이유를 가진 애는 없어! 그리고 너가 뭔데 죽어도 되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판단 하냐, 니가 판사라도 되냐?
- 학생
- 아저씨!
- 형사
- 내가 원래 이런 도덕적인 말 쓰는 거 싫어하는데, 너한테는 써도 되겠다. 학생! 생명은 소중한 거야!
- 학생
- 아저씨가 뭘 안다고 저한테 충고예요.
- 형사
- 아잇, 시끄러워. 철없는 고삐리 얘길 처음부터 들어주는 게 아닌데.
형사가 앉았던 자리에서 엉덩이를 털며 일어서자 학생이 바닥에 두었던 총을 잽싸게 챙긴다.
그러자 형사가 학생의 팔을 꽉 부여잡으며 총을 빼앗으려 한다.
- 형사
- 너 그거 이리 안 내놔?
- 학생
- 안돼요! 못 줘요! 아저씨가 제 책상 위에 두고 간 거잖아요! 그러니까 이건 이제 제 꺼에요!
- 형사
- 그건 내 총이야! 그리고 잊어버린 거지, 너한테 버린 게 아니거든!
- 학생
- 아이씨, 시간 없어요! 이제 안소랑 올 때 다 됐단 말이에요!
그때 필사적으로 총을 받으려 하던 형사가 멈춰 선다.
형사가 학생을 바라보자, 학생도 형사를 바라본다.
- 형사
- 안소랑이라니.
- 학생
- 뭐가요.
- 형사
- 지금 너가 안소랑이라면서.
- 학생
- 네, 왜요?
- 형사
- 그, 그러니까 니가 여태까지 죽인다 하고 떠든 애 이름이 안소랑이야?
- 학생
- 네. 제가 죽인다 하고 떠든 애가 안소랑이에요.
형사가 말없이 침묵을 유지하다 학생을 바라보며 말한다.
- 형사
- 걔 죽었어, 여기 교실에서.
- 호들갑 작가소개
- 이번년도는 제게 참 중요한 시기입니다. 제가 고3이거든요. ……음, 일단 헛짓거리 하지 않고 글 열심히 쓰겠습니다. 보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지만 대학에 집중해야 한다는 사실이 슬프기만 합니다. 이 공모 덕분에 제게 극작가라는, 구체적이지 않은 장래희망이 생기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 공모를 알려주신 고양예고 3학년 B반 실기 선생님께 감사합니다. N년도에 서울연극센터에 제대로 된 연극 하나 올릴 테니까 다들 기대해주세요. 그럼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이제 그만 다음 글 읽으시러 가보셔도 됩니다!)
독자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