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탕 배 설전
이소희
88호
2016.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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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 몇 개가 다 인 작은 곰탕집. 간판에는 ‘40년 전통 도가니 곰탕’이라고 쓰여 있다. 손님 한 명 없는 가게 안에서 주인이 테이블을 닦고 있다. 잠시 후, 이강희가 문을 열고 들어선다.
등장인물
이강희 (여, 30세)
남승기 (남, 30세)
곰탕집 주인 (남, 60세)
무대
테이블 몇 개가 다 인 작은 곰탕집.
간판에는 ‘40년 전통 도가니 곰탕’이라고 쓰여 있다.
손님 한 명 없는 가게 안에서 주인이 테이블을 닦고 있다.
잠시 후, 이강희가 문을 열고 들어선다.
- 주인
- 이 비서!
- 강희
- 안녕하세요. 사장님, 도가니 곰탕 하나만 포장해 주세요.
아, 참! 저희 회장님께서 드실 거니까, 특별히 신경 써 주시구요. - 주인
- (곤란한) 아이고, 이걸 어쩌나.
- 강희
- 왜요?
- 주인
- 오늘 단체 손님들이 들이닥쳐서, 곰탕이 한 방울도 안 남았는데.
- 강희
- (놀라) 네? 안돼요! 사장님, 저희 회장님 성질머리 잘 아시죠?
지시하신 거 재깍재깍 대령 안 하면, 어떻게 되는지. - 주인
- 알지. 운전기사 폭행죄로 들어갔다가 나오신지 얼마 안 됐잖아.
그럼 미리 전화를 주지 그랬어? 전에는 꼬박꼬박 전활 주더니만... - 강희
- 마침 이 근처에 나와 있는데, 전화로 지시하셔서 그냥 가지러 왔죠.
어떻게 좀 안 돼요? 냉동실에 얼려 놓은 거라도 없으세요? - 주인
- 이 비서도 잘 알잖아. 우린 그 날 쓸 재료만 딱 받아서 다 팔리면 그냥 영업 종료 하는 거.
- 강희
- 알죠. 제가 얼마나 답답하면 이러겠어요.
- 주인
- 딴 가게라도 가서 사지 그래?
- 강희
- 저희 회장님이 여기 삼십 년 단골이신데, 맛 차이를 모르시겠어요?
- 주인
- 아~ 이걸 어쩐다.
- 강희
- 할 수 없죠 뭐. 오늘은 제발 재떨이만은 날아오지 않길.
- 강희
- 사장님, 이건 뭐예요?
- 주인
- 아, 그거...
- 승기
- 아까 전화로 도가니 곰탕 하나 포장 예약했는데요.
- 주인
- (승기에게 포장 봉투를 슬그머니 내밀며 강희 눈치를 본다)
저... 여기 있긴... 한데... - 강희
- 잠깐!
- 승기
- 이강희?
- 강희
- 남승기!
- 주인
- 서로 아는 사이야?
- 강희
-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 승기
- 누가 할 소릴! 야, 내 곰탕에서 당장 손 떼.
- 강희
- (차마 손 못 떼고) 너... 이거 나한테 양보해라.
- 승기
- 뭐? 얘 웃기는 애네. 내가 왜? 미쳤어?
- 주인
- 아는 사이 같은데, 웬만하면 손님이 좀 양보해 주시죠.
이게 마지막 곰탕인데, 여기 이 손님이 꼭 필요해서 그래요.
대신 다음에 오시면 내가 두 배로 드릴게. - 강희
- 그래, 내가 사정상 이걸 꼭 사가야 해서 그래.
- 승기
- (크게 웃는) 야~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넌 어떻게 변한 게 하나도 없냐?
- 강희
- 내가 동안이란 얘길 좀 많이 듣긴 해.
- 승기
- 아니, 니 얼굴 말고, 니 싸가지.
- 강희
- 뭐?
- 승기
- 그날도 먹을 거 때문에 그 쌩 난리를 치더니만.
- 강희
- 야! 너 그날 얘기는 꺼내지도 마.
내가 잊어버리려고 얼마나 노력했는데... - 승기
- 누가 할 소릴! 내가 진짜 창피해서...
친구들한테도 그냥 성격차이로 헤어졌다고 했다.
어떻게 떡볶이 안 사준다고 남자친구 따귀를 때려? - 주인
- 정말?
- 강희
- 니가 기어코 햄버거 먹겠다고 육두문자 날리면서 소리 지르니까 그랬지!
- 주인
- 에이~ 맞아도 싸네.
- 승기
- 내가 그 전에도 우긴 적 있었어? 니가 하자는 대로 뭐든지 다 해줬었잖아.
푸드 파이터 대회 상품 타고 싶다고 하도 졸라서, 나 핫도그 먹다가 죽을 뻔 했던 거 기억 안 나? - 강희
- 혜정언니랑 사귈 땐 죽으라고 했더니, 진짜 죽으려고 쌩쇼 했었다며?
- 승기
- 야~ 너 진짜 유치하다. 그럼 너 나 수시로 테스트 해 본 거였어?
- 강희
- 유치? 내가 널 얼마나 사랑했으면 그랬을까, 그런 생각은 안 드니?
- 승기
- 뺨까지 맞아가며 떡볶이 안 먹겠다고 우길 땐, 그럴 만한 사정이 있어서 그랬을 거란 생각은 안 해봤니?
- 강희
- 눈치는 챘지만, 이제와선 궁금하지도 않아.
- 주인
- 난 궁금한데...
- 승기
- 어린 마음에 떡볶이 장사하는 엄마가 창피해서 그랬다.
사랑하는 여자친구한테 보여 주기 쪽팔려서! - 주인
- (혀를 차며) 에구, 이런... 그랬구만...
- 강희
- 찌질한 놈.
- 승기
- 뭐?
- 강희
- 그날 내가 어머니한테 잘 보이려고, 얼마나 열심히 준비했었는데...
- 주인
- 한성빌딩 십오 층, 회장 비서실이야.
강희가 힘없이 문을 나서려는데, 계산대 위에 올려져 있는 포장 봉투를 발견한다.
그 때, 승기가 문을 열고 들어온다.
강희가 얼른 봉투를 부여잡자, 승기도 뺏길 새라 봉투를 끌어안는다.
봉투를 놓고 실랑이하던 두 사람이,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는 경악한다.
강희가 울면서 문을 열고 나가버린다.
승기는 멍한 표정으로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우두커니 서있다.
그러자 주인이 미소 지으며 곰탕 포장 봉투를 승기에게 내민다.
승기는 주인에게서 곰탕 봉투를 받아들고는 가게를 뛰쳐나간다.
끝.
- 호들갑 작가소개
- 매일 매일 창작의 고통에 시달리는 오래 묵은 망생이.
턱없이 부족한 재능을 노력으로 채워보려 용쓰고 있는 망생이입니다.
독자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