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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고지

원소희
95호 2016.07.07
시내버스 저는 날 때부터 시내버스였어요. 지금껏 단 한 번도 시내버스가 아니었던 적이 없어요. 시외버스 그랬지. 네 엄마가 시내버스였으니까.

장소
차고지

등장인물
시외버스
시내버스

시내버스
저는 날 때부터 시내버스였어요. 지금껏 단 한 번도 시내버스가 아니었던 적이 없어요.
시외버스
그랬지. 네 엄마가 시내버스였으니까.
시내버스
만약 제가 아빠처럼 시외버스였다면 오늘 하루 정도는 아빠 옆에서 달릴 수 있었을까요?
시외버스
그건 힘들었겠지.
시내버스
왜요?
시외버스
한 터미널 안에 있는 시외버스가 동시에 같은 곳으로 가는 일은 없거든.
시내버스
저는 아빠 자식이잖아요. 자식한테까지 그러는 게 어디 있어요.
시외버스
너는 어버이날에도 안 찾아오더니 갑자기 왜 이러냐. 있을 때 잘 해야지. 이제 와서 그래봤자 늦었어.
시내버스
아빠는 시외버스고 저는 시내버스니까 차고지에 머무는 시간이 매번 엇갈려서 그런 거 아시잖아요.
시외버스
그래. 네 말대로야. 이번에도 그런 것뿐이야. 아까부터 시외버스니 시내버스니 하는데 그런 건 상관없어. 네가 시외버스였다면 무언가 달라졌을 것 같니? 애초에 넌 시외버스가 적성에 안 맞아. 분명 지금보다 나을 건 없었을 거야.
시내버스
매번 정해진 노선에 따라 정류장만 쫓아다니는 시내버스는 적성에 맞고요?
시외버스
가끔씩 노선이 바뀌잖니. 내 종착지가 종종 바뀌는 것처럼 말이야.
시내버스
전 거의 오 분에 한 번 꼴로 문을 열고 닫아요. 그때마다 사람들이 안에 올라타죠. 그렇게 하루에 지나치는 사람이 하루에 수백 명이에요.
시외버스
적어도 외롭지는 않겠구나.
시내버스
동기인 시외버스 녀석이랑 똑같은 말을 하시네요. 오히려 절 찾는 사람이 적었다면 비참하지는 않았을 텐데요. 그거 아세요? 사람들을 그렇게나 많이 태우고 다니면 안면이 트는 사람이 생길 법도 한데 그런 사람은 결코 나타나지 않아요.
시외버스
너는 휑한 고속도로가 아니라 마을 안에 난 도로로 다니잖니. 사람이 사는 마을은 얼마 달리지 않아도 순식간에 풍경이 바뀌지. 처음엔 그 사실이 낯설 수도 있어. 하지만 금세 애착이 생길 거야. 나 혼자만 있을 때는 결코 보지 못하는 거니까.
시내버스
애착이요? 전 아직도 제가 일하는 마을이 낯설어요. 쉴 틈도 없이 매일 정해진 길을 도는 걸 반복하는데도 익숙해지는 게 하나도 없다고요. 스피커에선 얼굴도 모르는 여자가 이번 정류장은 어디니까 다음엔 어디로 가라고 재촉하죠. 그 얘기를 듣고 다음 정류장에 도착하면 얼마나 타고 있었다고 사람들이 또 떠나버려요. 그저 제 갈 길 가려고 저를 찾는 것뿐이지 아무도 저 자체에게는 관심이 없어요. 계속해서 다음 역, 다음 역, 다음 역. 모두 다음 역으로 가라고 재촉하니까 별 수 없이 그렇게 하는 거예요. 이 일을 해서 저한테 남는 게 뭐죠? 주유비 좀 벌어서 먹고 사는 게 전분가요?
시외버스
네가 평생할 일이야. 네 태도를 바꾸지 않으면 평생 고생할 거야.
시내버스
그래요. 평생 할 일이죠. 제가 그렇게 태어났기 때문에요. 그렇지만 평생 중 하루 정도는 괜찮잖아요. 오늘 하루만 가지 말아요, 아빠. 오늘은 제 옆에 있어요.
시외버스
바로 5시 15분에 출발예정이 있는데 그게 무슨 소리냐.
시내버스
어차피 타는 사람도 없잖아요. 많아봤자 서너 명이 전부잖아요. 다음 버스를 타면 그만이죠.
시외버스
늘 그 시간에 타는 사람이 있잖니.
시내버스
그 여자애 말이에요?
시외버스
그 앤 그 시간에 버스를 안타면 학교를 못 가.
시내버스
그 앤 매일 타던 버스가 아빠인지 아닌지조차 구분 못해요. 아무리 아빠가 매일같이 몇 백 킬로미터를 빙빙 돌아도 아빠를 탄 사람 그 누구도 아빠를 기억 못한다고요.
시외버스
그래. 지금껏 타고 다닌 버스의 차번호가 뭔지 타이어 모양은 어땠는지 기억하는 사람은 물론 거의 없다. 그래서 그게 어떻다는 거냐.
시내버스
당장 내일 아빠가 사라져도 아무도 아빠를 찾지 않을 거라고요. 아무도 기억하지 않을 거라고요.
시외버스
그렇지만 버스를 탄 사실은 기억하지 않겠니. 나는 잊어도 매일 새벽마다 버스를 타고 왕복 대여섯 시간 거리를 오갔다는 사실은 잊지 않을 거야. 그 기억이 꼭 좋은 것으로 남는 것도 아니겠지. 버스가 지긋지긋하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을 거야. 이 긴 길을 갈 바엔 그냥 집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났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 나를 싫어했을 지도 몰라.
시내버스
좋은 게 하나도 없잖아요.
시외버스
그렇지만 그건 버스를 타고 있는 시간을 견디는 게 힘들어서 그런 거야. 그 시간 동안 다른 일을 할 수도 있을 텐데, 꼼짝 없이 하나의 일에 매여 있는 게 힘들어서야. 하지만 목적지에 도착하면 버스에 탄 걸 잘했다고 생각할 거야. 버스에 탔기 때문에 그 장소에 도착했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시내버스
더 이상 사람을 태우지 못하는 몸이 되면 사라지잖아요. 사람들이 많이 찾지않아도 사라지고요.
시외버스
그래. 네 말대로 우리는 사람들이 필요로 하기 때문에 존재하지.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 갈 곳을 정하지 못해. 사람들이 정한 노선대로밖에 움직이지 못한단 말야. 승객이 적다는 이유로 5시 15분 배차를 없애버리면 나는 그 여자애를 더 이상 태우지 못하겠지.
시내버스
아빠가 이곳을 떠나는 것도 다 사람들의 결정이고요.
시외버스
그래. 나는 철저히 다른 사람들이 정한 길만을 갔어. 태어나고 죽는 것조차. 내가 시외버스로 태어난 것도 다 누군가 그렇게 정했기 때문이야.
시내버스
내일 아빠가 폐차되는 것도요?
시외버스
따를 수밖에 없다는 걸 알잖니. 그래서 네가 투덜거리면서도 계속 네 일을 하는 거고.
시내버스
마지막이잖아요. 그럼 마지막은 제 옆에 있어요.
시외버스
남이 정한 일을 한다고 해서 순전히 내 의지에 벗어난 일만을 한 건 아니었어. 나는 시키는 대로 사람들을 태우고 달렸어. 하지만 나를 탄 사람들은 누가 시키기 때문에 버스에 탄 게 아니야. 사람들이 나를 그곳에 가는 수단으로 스스로 선택했고, 그래서 나는 그 사람들을 태운 거지. 스스로 갈 길을 정할 수 있는 사람들을 태우고 있다는 건 좋은 일 아니니. 나는 사람들이 나를 나 자체로 기억하지 못한다 해도, 수많은 버스들 중에서 나를 가려내지 못한다고 해도 괜찮다고 생각했어. 그 생각은 변함이 없어. 사람들은 우리들을 잘 구별하지 못하지. 그래서 나와 전혀 관계없는 버스를 보고 나를 떠올릴 수 있는 거야. 어떤 식으로든 그 사람들은 기억해. 내가 있었다는 걸.

사이.

시외버스
출발할 시간이다.
시내버스
기어이 가셔야겠어요?
시외버스
만약에 네 엄마가 시내버스가 아니었다면 뭔가 달라졌을 것 같니?
시내버스
엄마아빠를 탓하고 싶은 게 아니에요. (사이) 그래요. 만약에 제가 지금 시외버스가 된다고 해도 달라질 건 없었겠죠. 좁은 마을만을 누비던 시내버스가 갑자기 시외버스가 된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게 있겠어요? 정류장 꽁무니만 쫓던 시내버스가 끝날 기미도 보이지 않는 기다란 길을 갈 수 있겠냐고요. 버스보다 커다란 덤프트럭이 무서운 속도로 달리고 빠져나갈 길은 도통 나타나질 않는데요. 알아요. 저는 시내버스일 수밖에 없다는 걸요. 그 이전에 버스에 불과하다는 것도요.
시외버스
버스는 확실히 남이 정한 삶을 살지.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네가 달리는 길이야. 네가 사람들이 정한대로 가고만 있다면 가는 도중에 네가 무얼 느끼고 생각하는 것까지 간섭하진 못해. 꼭 명심해라. 몸조심하고.

버스 시동 소리. 시외버스, 퇴장.

시내버스
아빠가 떠났으니까 저는 이제 완전히 혼자예요. 아빠가 사라졌는데도 계속해서 같은 길을 목적도 없이 돈다고요. 그래도 괜찮아요?

암전.

호들갑 작가소개
사실 제가 아는 희곡이란 건 모의고사나 수능 기출문제에서 본 것이 대부분입니다. 제가 이렇게 무지한 탓에 희곡이 아니라 괜히 말만 길게 늘어놓은 것에 불과한 글을 쓰는 게 아닐까 걱정되어서 희곡을 완성하고 나면 다시 들여다보지도 않았습니다. 제가 봐도 뭔가 이상한 것 같았고 이렇게 쓰면 안 될 것 같았어요. 여전히 제가 잘 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곳에 글을 싣게 된 걸 보면 잘못하고 있는 건 아닌가보다 싶어 안심이 됩니다. 시험과 공부는 일상이었지만 고삼은 올해 처음입니다. 수능과 글에 치이며 열심히 살겠습니다.


독자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