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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구의 장례식

임민주
95호 2016.07.07
등장인물 언니 (30대 중반) 동생 (20대 중반) 소녀 암전 상태에서 초인종 소리가 요란하게 들린다. 언니가 급히 나와 거실의 불을 켠다.

등장인물
언니 (30대 중반)
동생 (20대 중반)
소녀

암전 상태에서 초인종 소리가 요란하게 들린다. 언니가 급히 나와 거실의 불을 켠다.

언니
누구세요!
동생
(술에 취한 목소리다.) 언니! 언니 나와 봐! 불꽃이야!
언니
멍청한 녀석, 불꽃놀이는 어둠을 관람하려고 하는 거다. 어둡기는 여기가 더 딱 이야.

언니 현관문을 열어준다.

동생
언니 혹시 예수를 믿어? 성탄절 기념 불꽃축제라던데?
언니
예수가 몇 번 죽었다는 걸 믿지. (동생의 몰골을 보고) 그 시궁창에 사는 것 같은 쥐색 블라우스 좀 집어치우라고 몇 번을 말했어! 선 볼 때는 흰색 스웨터를 입고 가라니까. 오늘 그 남자가 뭐라고 생각했겠어.
동생
쥐색 아니고 그레이. 맥주나 마시자.
언니
....그 남자도 아닌 거냐?

동생 냉장고를 열어 맥주를 찾는다.

동생
우리 이런 놀이 그만하자. 남자 찾느라 언니랑 그레인지 쥐색인지 흰색인지 싸우는 거 매력 없어.
언니
널 위한거야. 남편이 없으면 평생 기록에 힘쓰며 살게 된다. 오늘은 뭘 하고 살았고, 형광등이나 파이프 수리하는 방법 같은 것을.


동생
......아빠는 죽을 때 행복했겠지? (사이) ...‘그 애’는 이제 교복 안 입겠다.
언니
꽤 어렸었지. 아빠 참, 능력도 좋아.
동생
아빠 영정 옆에 교복 입은 여자애가 멀뚱히 앉아있는데 믿어지지가 않더라. 아빠가 정말로 저 여자애랑 같이 잤을까. 몇 번이나 했을까. 그리고 둘 다 괜찮았을까. 가능한 끔찍한 색이 도는 구토를 하고 싶었어.
(사이)
..바다 근처였는데, 그 장례식장. 멋있었잖아.
언니
..연안부두가 있었지.
동생
밀물과 썰물이 있고.
언니
그래, 들어오고 나가는 것. 있지.

돌연히 벨이 울린다. 동생, 현관문 쪽으로 다가간다. 자매 당황한다.

언니
예수일까? 크리스마스잖아.
E
마구예요.
언니
마구는 개야.
E
네. 죽었어요.

자매는 서로 눈을 마주친다. 짧은 암전.

자매의 집 안. 소녀(E)는 두 개의 상자를 들고 있다. 한 상자는 내려놓고 한 상자는 소중하게 안고 있다.

동생
(한 상자를 건드리며) 누가 마구야?
소녀
....
동생
사료를 물에 불려서 줬어야지. 걔는 아주 늙었다고. 혹시 임신을 너무 많이 시킨 건 아니고?
소녀
사료는 잘 줬어요. 그가... (라고 작게 말한다) 임신은 한번이요.
언니
그럼 마구는 왜 죽었어?


소녀
그가 죽고 아주 힘들어 했어요.
동생
장례식은 이제 지겨워.
소녀
...여기서 마구를 키워주셨다고 해서요.
동생
우리 아빠가?
소녀
네.
언니
맞아, 아빠가 데리고 가기 전까지는.
소녀
아.
언니
탓하는 게 아니고..맥주 마실래?

동생 냉장고에서 맥주 한 캔을 꺼내 소녀에게 건넨다. 소녀 벌컥벌컥 마신다.

소녀
점심을 굶었거든요. 그것뿐이었는데 배가 고팠어요. 이걸 구덩이 라고 부르나요?
왠지 기어 나와야 할 것 같아서... (안고 있는 상자를 보며) 아, 이건... 태어나자마자 죽었어요.
(사이)
이것도 묻어주실래요?
동생
마구의 새끼?
소녀
마구는... 한 번도 울지 않았어요. 출혈은 있었지만.
(사이) 저는 인천에 가려고요. 예전에 애기 아빠가 그랬어요. 언젠가 끝없는 갯벌을 걸어보고 싶다고, 걷다가 밀물을 만나 잠기고 싶다고요.
동생
애기아빠가...
언니
혹시
소녀
저는,

이때 폭죽을 쏘아 올리는 소리가 들린다.

소녀
...불꽃이에요!
언니
성탄절 기념이라고...

자매와 소녀 가만히 창에 비치는 불꽃놀이를 바라본다. 소녀 안고 있던 상자를 내려놓고 나가기 위해 문을 연다.

소녀
(사이) 혹시 걔 이름을 지어주실 수 있나요?
언니
.......바다라고 할게.

소녀 문을 닫고 퇴장한다. 암전.

호들갑 작가소개
임민주는 무대소품이던 전화기와 시계를 보면서 그러니까, 그냥 전화와 시계가 아닌 것들을 사랑하면서 스무 살에 귀신이었다가 재작년엔 창녀였던 여배우를 알아가면서 그리고 조명과 객석과 우당탕 아래로 내려가야 하는 소극장을 지망하면서 극작가를 생각했다. 치마를 입고 외출중인 여자, 자가용이 없는 세일즈맨, 아이였던 남자와 어머니였던 여자들, 보통의 사람만이 알아낼 수 있는 세상의 비밀을 풀어놓고 싶어 한다. 그리하여 그들의 삶이 언어를 물려받은 이들에게 따뜻한 극이 되어줄 것을 믿는다.


독자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