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수지에서
한지윤
97호
2016.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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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수지는 정말 오랜만이다. 특히나 이렇게 늦은 밤의 저수지라니... 어렸을 때 외할머니가 살던 곳에 커다란 저수지가 있었다. 저수지에 대한 유일한 기억이라곤 키우던 거북이를 놓아주었다는 것밖에 없다. 왜 놓아주어야했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어렸을 때 저수지 관리인이 있다는 걸 알았다면 거북이의 행방을 쫓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관리인은 거북이를 한번쯤 보았을 수도 있으니까. 어쩌면 이곳 저수지에 그 거북이가 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지... 저수지에서 문득 물방울 하나가 솟았다가 터졌다. 정말로 거북이가 살고 있는 걸까? 나는 수십 개의 물방울이 터지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그 뒤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커다란 지느러미였다. 그것은 반쯤 모습을 드러냈다가 사라졌다. 나는 그것이 인어꼬리라고 생각했다. 어둠에서도 비늘 모습이 보였기 때문에. (노트를 덮자 무대조명이 꺼진다)
등장인물
남자 30세
노인 65세
우체부 50세
남자, 노트에 무언가를 쓰고 있다.
한참 후에 펜 뚜껑을 닫고 종이에 쓰인 문장을 읽기 시작한다.
- 남자
- 저수지는 정말 오랜만이다. 특히나 이렇게 늦은 밤의 저수지라니... 어렸을 때 외할머니가 살던 곳에 커다란 저수지가 있었다. 저수지에 대한 유일한 기억이라곤 키우던 거북이를 놓아주었다는 것밖에 없다. 왜 놓아주어야했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어렸을 때 저수지 관리인이 있다는 걸 알았다면 거북이의 행방을 쫓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관리인은 거북이를 한번쯤 보았을 수도 있으니까. 어쩌면 이곳 저수지에 그 거북이가 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지... 저수지에서 문득 물방울 하나가 솟았다가 터졌다. 정말로 거북이가 살고 있는 걸까? 나는 수십 개의 물방울이 터지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그 뒤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커다란 지느러미였다. 그것은 반쯤 모습을 드러냈다가 사라졌다. 나는 그것이 인어꼬리라고 생각했다. 어둠에서도 비늘 모습이 보였기 때문에. (노트를 덮자 무대조명이 꺼진다)
- 노인
- 당신... 수영할 줄 알아요?
- 남자
- 네? 난데없이...
- 노인
- 수영할 줄 알아요?
- 남자
- 아니요. 못합니다.
- 우체부
- 간밤에 잠 좀 자셨어요?
- 남자
- 네. 그렇긴 한데 확실히 물가라서 그런지 몸이 으슬으슬하네요. 감기 기운이 도는 것 같아요.
- 우체부
- 내일은 약국에서 종합 감기약을 하나 사올게요. 감기 가볍게 여기시면 안 돼요. 전에 관리인 하던 사람들도 대부분 감기가 악화돼서 물러난 경우니까요.
- 남자
- 처음 듣는 얘기네요... 주의할게요.
- 우체부
- (가방을 뒤적이며) 벌써 우편이 세 개나 왔어요.
- 남자
- 고맙습니다. 이제야 여기가 제 일터이자 쉼터가 된 게 실감나네요.
- 우체부
- 하하. 그런데 아까 할아버지가 뭐라고 하셨어요?
- 남자
- 아, 보셨어요? 갑자기 불쑥 나타나서는 수영할 줄 아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 우체부
- 그래서 뭐라고 대답하셨어요?
- 남자
- 못한다고 얘기했죠.
- 우체부
- 처음이라 당황하셨겠지만 그러려니 하세요. 그 할아버지 딸이 물에 빠져 죽었거든요. 이곳 저수지는 아닌데... 이 근방에 물고여 있는 곳이 여기 저수지뿐이라서. 자기 딸이 여기에 빠져죽은 줄 알아요.
- 남자
- 아...
- 우체부
- 이전 관리인들에게도 늘 물으러 왔었어요. 나중에는 다들 상대도 안 했죠.
- 남자
- 저, 그런데 이 우편물은 제 것이 아닌 것 같아요. 전 산악동호회에 가입한 적이 없는데...
- 남자
- (양손에 돌을 움켜쥐고) 돌이 참 맨들하고 곱다. 왜 이렇게 둥글게 생겼지? 이런 걸 조약돌이라고 말하던데. 색깔도 생각보다 다양하네. 딱 어항에 넣으면 좋을 것 같은데...
- 남자
- 할아버지. 같이 돌멩이 주우실래요?
- 노인
- (남자를 멀뚱하게 바라보다가) 수영... 할 줄 알아요?
- 남자
- 저수지에 무엇이 살고 있는지는 알고 있어요. 여기로 와보세요.
- 남자
- 여기 저수지에는 인어가 살아요. 인어. 어제 밤에 둑 위에 서서 저수지를 바라봤거든요. 저수지 표면 위로 달빛이 부서지면서 인어의 꼬리지느러미가 보였어요. 달빛에 비늘 문양이 보이고 꼬리가 사라진 저수지 표면은 금세 잠잠해졌어요.
- 노인
- 나는... 인어를 낳은 적이 없어.
- 남자
- 밤에 와보시겠어요? 다시 나타날지는 모르겠지만 언제 어디서 나타나는지는 알려드릴 수 있어요.
- 노인
- ...추워.
- 남자
- 네, 춥죠... 물가는 항상 서늘해요. 저수지에서는 다른 곳보다 계절이 빨리 오는 것 같아요. 아직 가을인데도 바람이 불면 금세 겨울 날씨가 되어서 얼어붙고 말죠. 거북이를 저수지에 풀어줄 때도 그랬어요. 얼른 놓아버리고 차 안으로 들어가고 싶었으니까. 다시 못 볼 줄 알았으면 그렇게 빨리 놔주진 않았을 거예요.
- 노인
- ...거북이?
- 남자
- 다섯 살 때 키우던 거북이를 저수지에 풀어줬어요. 거북이는 작고 등껍질이 거칠했어요.
- 우체부
- 같이 계셨네요?
- 남자
- 안녕하세요. 다시 어쩐 일이세요?
- 우체부
- 감기 기운 있다고 하니까 걱정 돼서. (종합감기약을 내민다) 내일 주면 늦을 것 같아서요.
- 남자
- 아... 감사합니다.
- 우체부
- 어, 할아버지!
- 남자
- 금세 가버리시네요.
- 우체부
- 무슨 얘길 나누고 있었어요?
- 남자
- 그냥... 저수지에 살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었어요.
- 우체부
- 손에 쥐고 있는 돌은요?
- 남자
- 아, 돌이 예뻐서 줍긴 했는데. 어항을 만들까 봐요. 빈 플라스틱 통에 주운 돌들 담아서 물을 채워 넣을까 해요.
- 우체부
- 어항이라. 좋은 생각이네요. 추수철이 지나고 나니까 할 일이 없긴 하죠? 마땅히 물 대줄 논이 남은 것도 아니고... 시간 때우는 방법을 아는 것도 중요하죠. 그래서 말인데 여기서 차타고 십 분이면 제법 큰 강이 나와요. 낚시하러 가시겠어요?
- 남자
- 낚시 좋죠. 잠시 만요. (플라스틱 통을 들고) 여기에 돌이랑 물만 채우고요.
- 남자
- 어떡하죠. 오늘도 수영은 못하는데...
- 노인
- 이거... (주먹 쥔 손등을 내민다)
- 남자
- 이게 뭐죠?
- 노인
- 단단하고... 물속에서도 살 수 있고...
- 남자
- (두 손을 겹쳐들고 물건을 본다) 돌로 만든 거북이로군요!
- 노인
- 사라지지도 않는 거북이.
- 남자
- 발톱까지 조각되어있네요... 훌륭해요. 어디서 난 거예요?
- 노인
- 내가...
- 남자
- 할아버지가 만든 거예요?
- 노인
- 응.
- 남자
- 고맙습니다. 안 그래도 어제 어항을 만들었어요. 플라스틱 통에 물과 조약돌을 담고서요. 그곳에 거북이를 넣어두면 되겠네요.
- 남자
- 마치... 작은 저수지의 기념비 같아요.
남자, 아침이 되고 둑 위에 서서 저수지(객석)를(을) 바라본다.
그때 발소리가 들리더니 노인이 나타난다.
노인이 무대에서 퇴장한다.
오토바이 소리가 들리고 우체부가 등장한다.
우체부, 무대를 퇴장한다.
남자는 둑 아래에 내려가 돌멩이를 줍고 있다.
노인, 다시 무대 위로 등장한다. 무대 위의 앞쪽에는 남자가 쪼그리고 앉아있다. 노인은 그 뒤에 대각선으로 서있는다.
노인, 남자가 있는 앞쪽으로 다가간다.
오토바이 소리가 들린다.
우체부, 노인과 남자가 있는 무대 앞쪽으로 다가온다.
남자와 우체부 모두 무대를 퇴장한다. 조명이 꺼진다.
남자, 아침이 되고 둑 위에 서서 저수지(객석)를(을) 바라본다.
그때 발소리가 들리더니 노인이 나타난다.
남자, 어항에 거북이를 넣는다.
- 호들갑 작가소개
- 파출소 직원 : 고향이 어디야?
김 씨 : 제 고향은… 제 감정이에요.
파출소 직원 : 아름다운 말이군. 하지만 힘들잖아. 그렇게 사는 거.
김 씨 : 어르신도 그렇게 견디고 있잖아요.
김경주, 내가 가장 아름다울 때 내 곁엔 사랑하는 이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