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경사
김연재
97호
2016.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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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하관과 어깨와 골반이 불거졌다. 나이가 들어 키가 줄었어도 여전히 다부져 보인다. 다리를 전다. 이 까무잡잡하다. 주름이 깊게 패었다. 키가 작고 말랐다. 안내문이 겨우 붙어있다. “대경사 세탁소를 항상 아껴주시고 사랑해주신 여러 고객님들의 덕분으로 40여 년 동안 운영을 잘 해왔습니다만, 아쉽게도 건물 신축공사로 인해 12월 29일자로 영업이 끝나게 되었습니다. 긴 세월동안 고객님들의 성원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맞겨진 세탁물은 12월 29일까지 찾아가지 않으시면 책임질 수 없습니다. -대경사 주인올림- ” 세탁소의 한 구석에 스탠드가 켜져 있다. 깊은 밤, 스탠드 불을 켜 놓고 이가 재봉틀을 돌리고 있다. 최가 방문을 열고 나온다.
초겨울, 낡고 작은 세탁소
최 하관과 어깨와 골반이 불거졌다. 나이가 들어 키가 줄었어도 여전히 다부져 보인다. 다리를 전다.
이 까무잡잡하다. 주름이 깊게 패었다. 키가 작고 말랐다.
안내문이 겨우 붙어있다. “대경사 세탁소를 항상 아껴주시고 사랑해주신 여러 고객님들의 덕분으로 40여 년 동안 운영을 잘 해왔습니다만, 아쉽게도 건물 신축공사로 인해 12월 29일자로 영업이 끝나게 되었습니다. 긴 세월동안 고객님들의 성원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맞겨진 세탁물은 12월 29일까지 찾아가지 않으시면 책임질 수 없습니다. -대경사 주인올림- ”
세탁소의 한 구석에 스탠드가 켜져 있다. 깊은 밤, 스탠드 불을 켜 놓고 이가 재봉틀을 돌리고 있다. 최가 방문을 열고 나온다.
- 최
- 여직 이럭허구 앉았어요? (사이) 저녁두 안 자시고. (긴 사이) 이건 또 어디서 꺼냈수? 아이 시끄러워. 무얼 하는 거야.
- 이
- 손이 심심해서.
- 최
- 쓰잘데기 없이 미싱만 돌리구 있어, 천조가리 가지군. 일복(福)은 제가 만드는 거라고. (사이) 재봉틀은 내가 저기 다 넣어놨잖수. 내일 저 보따리만 번쩍 들구 가게. 뭣허러 다시 꺼내서 지잉-지잉-
- 이
- (재봉틀을 끈다.)
- 최
- 추운데 그만 닫으시지.
- 이
- 도둑으로 몰릴 일 있어.
- 최
- 그러다 아주 터줏귀신 되겠수.
- 이
- 좋지.
- 최
- 이 오바(겉옷)가 원래 있었나.
- 이
- 있었어.
- 최
- (밍크코트를 만지며) 곱다.
- 이
- 찾으러 올 테지.
- 최
- 어떤 여자가 이 퀴퀴한 세탁소에 밍크코트를 맽기려구.
- 이
- 가물가물 해.
- 최
- 영 기억력두.
- 이
- 당신은 그때 없었더랬지?
- 최
- 내가 어디 붙어있었나. 이집 저집 바닥 훔치러. 오바사, 미싱사, 사이사, 아이롱사, 시다....... 그러다가는 나라가 좋아지니까 학교에서 애들 급식두 퍼 주구. (사이)
- 이
- (다시 재봉틀을 작동시킨다.)
- 최
- 아이고. 시끄러워라. 열두시까지만 딱 기다려요. 여기 써 붙여 놨잖아요. 맞겨진 세탁물은 12월 29일까지 찾아가지 않으시면 책임질 수 없습니다. 대경사 주인올림!
- 최
- (퇴장하다가 기대에 차서 문득) 내가 한 번 걸쳐나 볼까요?
- 이
- (재봉틀을 돌린다.)
- 최
- 엉?
- 이
- (아주 천천히 고개를 돌리며) 안 어울려.
- 최
- 그냥 해 본 말이우. (사이) 누가 보면 남의 옷 입는 데 취미 있는 줄 알겠네.
- 이
- 취미 있잖어.
- 최
- 뭐요?
- 이
- 세탁소에 들어오는 털 달린 오바는 죄 입어봤으면서 그래.
- 최
- 내 언제요!
- 이
- 한 여름에두.
- 최
- 이 양반이 생사람을 잡네.
- 이
- 젊은이들 옷 입어보구 그대로 걸어놓으면 내가 모를줄 알았나. (사이) 자크(지퍼) 다 튿어 놔서 두 번 일했지.
- 최
- (우물쭈물 하다가는) 송희 결혼식 날 내가 양복 한 벌 빼다가 당신 입힌 거 알면서 두 암말 안 한 양반이. (사이) 당신은 회색은 영 안 어울려요. 남색깔 입으니까 사람이 살데요.
- 이
- (재봉틀 돌아가는 소리.)
- 최
- 내가 훔치기를 했나, 빼앗기를 했나. (사이) 당신이 옷 한 벌 사줬수!
- 최
- (자다 깨서) 여직 이럭허구 앉았어요?
- 이
- (아주 천천히 이어폰을 귀에 꽂는다.)
- 최
- 자다가 생각이 났어요.
- 이
- 자다가?
- 최
- 크메르 대사 말예요. 저 집에 크메르 대사 살 적에. 그 집에서 맽긴 거 아니우?
- 이
- 너무 옛적이야.
- 최
- 크메르는 덥댔수. 눈두 안 올테지. 대사 사모가 사람이 좋았어요. ‘미시스 리, 미시스 리’하면서. 내가, ‘아녜요. 나는 최 씨여요. 미쓰 최- 해요.’해두 언제나 ‘미시스 리, 미시스 리.’ ‘나는 이 씨가 아니여요.’ 왜 그랬는가 몰라. (사이) 대사 사모가 겨울이면 맨 털옷만 입었지. ‘아유, 사모님, 크메르는 추운가 봐요.’ 했더니 그렇지 않대. 아주 덥대. 크메르가 어딨는지두 몰랐는데, 월남 옆에 있다구 알려주데요. 당신 겨우내 대사 사모 털옷 수선하느라 애 먹었댔지. 거기서 빠진 거 아니요?
- 이
- 글씨.......
- 최
- 당신은 참 미련맞아요!
- 이
- (끄덕인다.)
- 최
- 다 잊어먹구 이사를 갔을테지. 문 앞에 안내문 써 붙인 지 몇 달이 지났는데 여직 안 찾으러 온 걸 보면 서교동 뜬지 오래인 거 아니우? 여기 발도 못 들이게, 오도 가도 못하게, 눈이나 풀풀 오지. 함지박으로 푹푹 풀만큼 수북이. (긴 사이) 아주 갇혔음 좋겠소.
- 이
- (최에게) 밤잠도 없어. 나참.
- 최
- 3월이면 저기 홍익여중 애들이 치마 줄인다구 아주 줄을 섰댔지. 하복 입기 시작하는 유월에두. 예일여고서두 넘어오구. 니 치마는 월남서 수입했냐. 아주 월남치마네! "아유, 엄마가 교복점에 가서 이래요. '아줌마, 기장은 발목으로 맞춰줘요' 라구요." "야아 이 정도면 어떠니." "안돼요 아줌마. 한 단만 더." "너 똥꼬 다 뵌다." (까르르 웃는다.) 애들이 다 입이 대빨 나와가지군! 그때는 당신....... 아주버님 찾아다닐 때였으니까.
- 이
- 공부하는 애들 죄 날라리 맨들구.
- 최
- 나는 그때가 가장 좋았어요, 뭘. 당신은 감감 무소식이지, 밤마다 어둑어둑헌 게 무섬증 일구. 근데두 낮이면 종아리 통통한 여학생들이 아줌마, 아줌마, 하고 들이닥치는 게.
- 이
- 주인이....... 안 오나.
- 최
- 애시당초! 오밤중에 오긴 누가 와요.
- 이
- 31일로 착각헌 걸까.
- 최
- 잃어버린 사람이 없대두. 까맣게 잊어버린 거라니까.
- 이
- 밍크야, 밍크.
- 최
- 혹시 당신 오바 주인이랑 배 맞았수?
- 이
- (고개를 들어 불쾌하다는 듯 최를 바라본다.)
- 최
- 여태 기다리는 걸 보니. 그럴 수도 있잖우?
- 이
- 당신이랑 배 맞은 놈팽이가 선물한 건 아닐테구?
- 최
- 그래 그렇다고 하면 당신 이제 그만 문 닫구 들어와 주무시겠수?
- 이
- 그럭허지.
- 최
- 내 만약 그랬다면 그 길로 그 놈팽이 따라 나섰을 거요. (퇴장.)
- 이
- 불쌍헌 놈팽이.
- 최
- (목소리만) 여보. (적막하다. 조금 후에) 여보오. (긴 사이) 여보오-.
- 이
- 뭐야.
- 최
- 여보!
- 이
- 정신 사나워.
- 최
- 휴지.
- 이
- 오좀 눈다며.
- 최
- 둘 다 눴어.
- 이
- 어떡허라구.
- 최
- 휴지!
- 이
- 그 놈팽이한테 달라구 해.
- 최
- 말이 되는 소릴! (사이) 에이, 삐쳤어요?
- 이
- 어딨어.
- 최
- 빼닫이 맨 밑에.
- 이
- (목소리만) 없어.
- 최
- 왜 없어요.
- 이
- 다 짐 싼 거 아니야?최 에그. 맞다. 어쩐담.
- 최
- (다시 무대로 나오며) 오늘은 거기서 자.
- 이
- 남는 천두 없나.
- 최
- 더럽게. (사이) 물로 씻어!
- 이
- 차가와요.
- 최
- 어떡허라구.
- 이
- 당신 내내 미싱 돌리던 천조가리 있죠.
- 최
- 왜.
- 이
- 줘요.
- 최
- 싫어.
- 이
- 확 그냥 똥통에 빠져서 변소귀신 될 거에요.
- 최
- 재수 없게.
- 이
- 손 씻구 나와!
- 이
- 우유 도로 가져가. 우리 이사 가.
최, 퇴장. 적막한 와중에 재봉틀 소리. 이는 무얼 만드는지, 고개 숙인 채 재봉틀을 돌린다.
못 들은 척 TV를 켠다. 백색의 화면에 '치지이-' 하는 소음. 함께 백색의 화면을 바라본다.
최, 방 안의 스위치를 껐다 켰다 한다. 무대가 환히 보인다. 보이지 않았던 것들도 보인다.
싸 놓은 짐들과 오래된 세탁소가 남루하다.
이, 재봉틀을 끄고 방에 들어간다. 텅 빈 무대.
이, 재봉틀에서 천을 가져가 최에게 준다.
아주 멀리서부터 동이 터오기 시작한다. 우유배달, 신문배달 소리. 쓰레기차 소리.
우유배달 청년이 우유를 놓고 가는 기척이 들린다.
이, 세탁소 문을 연다.
- 호들갑 작가소개
- 1995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산에서 중고등학교를 졸업했다.
현재 동덕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재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