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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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상자로 이루어진 거실의 모습. 무대 한쪽에는 소파와 테이블이 그리고 티비가 놓여 있고 반대 쪽 서랍위에는 빈 꽃병과 돌아선 작은 액자가 있다. 그리고 무대 뒤편에는 부엌으로서 싱크대가 놓여있다. 테이블에는 빈 소주병 몇 개와 아직 따지 않은 소주 몇 병, 반쯤 남은 소주 댓 병, 정종, 그리고 일회용 접시에 마른 오징어가 지저분하게 널브러져 있다. 남자는 소파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코를 골며 자고 있다. 심한 코골이와 떡진 머리, 거친 그의 얼굴은 그가 지난 시간동알 얼마나 피곤하게 지내왔는지를 보여주는 듯하다. 다 늘어난 흰색 반팔 티에 흰색잠옷바지를 입고 있는 그는 몇 번의 코골이 후한번의 긴 코골이가 절정에 다다르자 스스로 놀라 눈을 뜬다. 그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눈을 부라리지만 좀처럼 정신이 차려지지 않은 모양이다.
- 남자
- 꿈도 참 별 거지같은 꿈을... (뭔가 베기는 지 엉덩이 쪽에 손을 넣자 만 원, 오만 원짜리 지폐 몇 개와 동전이 잡혀 나온다.) 이건 또 뭐고. (테이블에 대충 던져 놓는다.) 남자는 그러다 이내 인상을 쓰며 눈을 찌푸리더니 두통을 호소한다.
- 남자
- 아으, 머리야. (숨을 깊게 들이 쉬었다 뱉는다.) 대가리 깨지겠네.
- 남자
- 에이, 씨...
- 남자
- 뭐고.
- 남자
- (싱크대를 응시한 채) 여보? (대답이 없자 다시 한걸음) 여보. (역시나 대답이 없다.) 당신이가? 진짜 당신 맞나? 설거지 그만 하고 대답을 해봐라. 진짜 당신 뫘냐고.
- 남자
- 아니, 이 여편네야. 귀신이든 사람이든 남편이 말하면 대답을 해야 할 거 아니가!
- 남자
- 뭐고 당신. 귀신이가? 어? 여는 와 왔노? 말해봐라. 설거지 할라고 온건 아닐 테고. 맞제? 어이? 사람이 말을 하면 대답을 좀 해봐라.
- 남자
- 지금 내 본 거제? 지금 내 보고 있는 거 맞제? 어어...
- 남자
- 아니, 니 지금 뭐하자는 긴데? 설마 니 지금 테이블 치우는 기가? 아니 무슨 귀신이...
- 남자
- (어이없는 웃음) 어이구, 이 미련한 여편네야. 니는 우째 죽어서까지 집안일 밖에 모르노. (남자는 쓸쓸한 표정으로 관객을 바라본다.) 어느 날부터 죽은 아내와 생활하기 시작했다.
- 남자
- (바닥을 보며) 뭔 놈에 빨래가 개도개도 끝이 없는 것 같노? (시선을 들고는) 팔 안 아프나? 내가 좀 주물러 줄까? (스스로 어이없는 웃음) 내가 점점 미쳐가는 갑다. 내가 니를 우째 주물러 주겠노. 뭘 만질 수가 있어야지. 내가 살아 있었으면 또 몰라도... (잠시 생각하더니 자신의 손을 본다.) 미친자슥. 살아 있었을 때는 거들떠도 안 보든기...다시 빨래 개는 모습을 보더니 표정이 어두워진다.
- 남자
- 여보. 얼굴이 와그렇노? 와? 어디 아프나? (급하게 일어나 욕실로 달려가는 모습을 시선으로 쫒더니 따라 일어나쫒아간다.) 어디가노! (그러다 욕식 앞에서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실소.) 아~ 똥. 낸 또 뭐라고. (팔짱을 끼고 빈 꽃병에 시선을 두더니 금세 다시 욕실로 시선이 향한다.) 거참, 휴지 좀 이렇게, (손을 둘둘 말아 보이며) 많이 좀 써라. 휴지 값 그 돈 아껴가 얼마나 모으겠다고. 에헤이. 그러다 손에 묻을라 에이...참. (욕실을 따라 나오며) 그나저나 뭐 벌써 다 싸노? 아 맞다. 당신 설사 심했제? 그러니깐 내가 장이 안 좋으면 진작 약을 좀 지어 먹으라 캤다 아이가. (다시 거실 바닥에 앉는다) 그 약 한 첩 지어먹어봤자 돈 몇 푼 한다고.. 자식 남편 보약은 잘도 지어오면서...지 아픈 거는 신경도 안 쓰고. (일어나는 모습에 시선이 향한다.) 다 갰나? 어이구. 욕봤다. (방에 들어가는 모습까지 본 뒤 혼자 어색하게 중얼거린다.) 수고했다...
- 남자
- (일어나며) 인자 밥 먹는 기가? (소파에 가서 옆에 앉는다.) 무슨 아침밥을 맨날 이렇게 늦게 먹노.
- 남자
- 잘 묵는다 잘 묵어. 그러니 살이 찌지. 아니, 근데 와 숟가락질 밖에 안 하노? 반찬은? 반찬 좀 꺼내가 식탁에서 먹지. 허구한 날 이래. 대충 비벼 먹었드나?
- 남자
- 천천히 좀 먹어라. 그러다 체할라. 어이구 어이구. 아이고야. 개 안나? 거 내가 뭐라카드노. (남자 부엌으로 향한다.)기다리 봐라 내가 물 떠다 주꾸마. (부엌에 다다르자 순간 멈춰 선다) 에휴, 이러다 내가 진짜 미친놈 되지. (소파를 보며) 퍼뜩 니가 와가 물먹어라. 아니, 가슴만 치지 말고 퍼뜩 와가 물마시라고. (다시금 소파로 향한다.) 내가 물이라고 카면 자다가도 일 나가 물 떠다 주는 여편네가, 우째 지 목 막힐 때는 가슴만 치고 마노. 어이구, 미련한기라... 어휴 참, 그나저나 진짜 잘 묵네. (잠시 먹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있다 아이가 여보. 뜬금없지만 내는 요즘이 진짜 좋다. 맨날 이렇게 니랑 같이 있고, 이래 니 밥 묵는 모습도 보고. 뭐, 이제 와서 등신같이, 그 말하기는 뭣하지만. 만일 살아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한다, 그래가 서로 마주보고 밥도 묵고 얘기도 이래 내만 씨부리는 게 아이라 서로 막 뭐라 카면서 침도 튀기고. 그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카는 말인데.. 그, (고개를 돌린다.) 내가 당신을... 사.. 사랑... 사랑한다꼬. (다시금 소파를 보자 이미 없다. 시선을 돌려 부엌을 보는 남자) 에이, 거 여편네. 서방님이 중요한 얘기 하시는데... (일어나 부엌을 향했다 방으로 향한다.) 밥 다 먹었으니 인자 바로 청소 할 거제? (시선 방에서 빠르게 욕실로 향한다. 놀라 비켜선다.) 아니, 무슨. 먹자마자 싸나! (웃어 보인다.)
- 남자
- 11일 9시 20분 친구랑 15분 동안 전화통화. 맞고. 14일에는 내랑 15초 통화... 맞네. 그라고 이 날 오후 1시에 장보러 간 것도 어어, 여 영수증 있네. 맨날 드라마 보는 시간에다가 드라마 결방 난 날짜도 그래 맞네. 어디보자, 이것도 맞아떨어지고, 요것도 얼추 계산 해보면 맞네. 그라면 오늘이 25일 이니깐 마트에서 장을 보고 마트에서 여 까지 도보로 10분정도에 오는 길에 늘 동네 입구 벤치에 앉아가 5분 정도 있으니깐... (시계를 본다.) 지금 시간이27분. 그라면 하나..둘..셋..카면 (돌아본다.) 정답! 나이스. 당신 장보고 왔나? 얼른 내려놓고 여 앉아봐라. 일일연속극 할 시간인데 봐야지. 거 대강대강 정리하고. 그래. (시선 걸음에 맞춰 소파로 향한다. 테이블을 탁 치며) 내 드디어 알아냈다. 당신의 정체를. 그간 당신이 움직이고 행동했던 거를 빼곡히 기록해가 이래 맞춰 본 결과, 당신은 당신이 죽기 1년 전의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났던 기다. 당신은 사람도 아니지만 귀신도 아니다. 그라면 당신은 뭘까? 그냥 당신은 뭔가 늘, 이래 지금 내가 중요한 얘기를 하는데도 드라마 보며 실실 웃고 있는 것처럼. 늘 그냥 당신의 일상생활을 했다. 그래서 내가 조사한 결과 당신은 1년 전의, 그리고 1년간의, 살았을 때 당신 모습의 잔상이다. 어떻노 내 추리가? (시선 소파에서 부엌으로 향한다.) 어어.. 봐라 봐라. 지금 내말 듣고 있나? 거, 드라마 보다 말고 지금 뭐하노? 내 계산이 맞다면 이거 오늘이 마지막 회다. 마지막 회는 봐야 안 되겠나. (순간 멈칫한다.)
잠깐만. (영수증 한 장을 쥐어든다.) 미역, 당면, 오뎅, 소고기... 2015년 5월 27일... 내 생일... 그라고, 당신... (싱크대로 급히 향한다.) 나가라. 퍼뜩 사람 많은 데로 나가라. 알겠제? 뭐하노 안 나가고. 니 지금 미역국 끼릴라꼬 그라제? 응? 등신 같은 거 미역국 끼리 줄 생각하지 말고 퍼뜩 나가라꼬. 니 도와줄 사람 많은 데로... 나가라 안 카나. 니, 니 여 있다가 오늘 심장마비로 죽는다. 그라이끼네 제발 좀 나가라꼬! (잡아 끌어내려 하지만 잡히지 않는다.) 이런 씨... (테이블로 달려가 서류며 영수증을 집어 던지고는 나가버린다.) - 남자
- (무대 앞쪽을 보며) 밖에 뭐 있나? 하기사, 니는 밖에서 산책하는 거 좋아했었제? 연애 할 때는 자주 댕깄는데, 결혼하고는 먹고살기 바빠가 같이 놀러도 몇 번 못 갔네. 미안타. 그래. 먹고 살기 바빴다는 것도 핑계고 나 내탓이다. 진짜로 미안타. 못해준 것도 미안코, 니랑 그냥 조금이라도 함께 못해준 게 다 미안타. 그라이끼네 약속하나만 하자. 니 지금 내한테 전화 할 낀데, 내한테 하지 말고 119에 바로 해라. 알겠제? 응? 쓰레기 같은 새끼는 마누라 아픈 줄도 모르고 지 생일이라고 노래방에서 탬버린 흔들고 있으니깐 그러니깐 바로 119에 전화해라고 응? 알겠제? 대답해봐라. 알겠... 여보.. (급히 무대 앞으로 가더니 안절부절 못한다.) 여보... (급히 따라 테이블로 간다.) 자, 119. 어서 그냥 119. 119 누르라고 쫌!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다가는) 맞다. 내 받는다. 내도 전화는 받으이끼네, 쎅쎅거리지만 말고 단디 말해라. 저 등신 같은 놈이 알아차릴 수 있도록 아프다고, 아프니깐 빨리 좀 데리러 오라고 캐라 제발!
- 남자
- 살아있을 때 ... 살아있을 때...
- 남자
- 여보... 사... 살은기가? 참말로 살아난 기가? (시선 부엌으로 향하고 천천히 따라가다) 진짜 당신이 살... (갑자기 멈춰서는 돌아져있던 액자를 본다.) 아...뭐꼬? 살아난 기 아니네. (숨을 몰아쉰다.) 당신, 당신은 원래 안 죽었었네... (자신의 발끝부터 손까지 천천히 본다.) 그날, 그 내생일 날 죽었던 거는... 맞다. 생각났다. (아내가 있는 곳을 보며) 다행이네. 진짜 다행이네 여보.
- 남자
- 미안타. 진짜로 미안하고 고맙고, 사랑한다. 살아있을 때, 살아있을 때 캐줬으면 좋았을 긴데.
두통을 호소하던 그는 갑자기 기침을 하기 시작한다. 목이 갈라진 듯한 마른기침을 하던 그는 겨우 자신을 진정시키며 인상을 쓴 채 침을 모아 삼킨다. 그리고 한숨. 그러나 다시 기침이 나오고 고통에 인상을 쓰며 테이블 위에 물을 찾지만 물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 테이블 옆을 보더니 소주댓병의 뚜껑을 열고 들이키다 뿜어버린다.
소주를 테이블에 툭 올려놓은 채 일어나, 물을 가지려 부엌으로 가려한다. 그러다 남자의 시선은 문득 싱크대를 향해 멈추고 경직. 이내 비명을 지르며 뒤로 나자빠진다.
몇 번 숨을 몰아쉬더니 조심스레 싱크대를 본다. 그리고는 나지막이 비명. 그는 테이블위의 빈 소주병을 몇 개 집어보더니이내 새 소주를 따서는 떨리는 손으로 종이컵에 따라 붓는다. 그리고 다시 뒤를 돌아본다. 놀라지만 이번엔 고개를 돌리지 않는 남자. 그러나 정신이 없는지 종이컵을 여전히 잡은 채 소주병을 입에 가져다 대고는 마신다. 살짝 술기운이 감돌자 남자는 손에서 병과 잔을 내려놓고 일어나 싱크대로 몇 걸음 걷는다.
남자는 이번에도 대답을 기다리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 그러자 남자 벌컥 화를 낸다.
남자는 거칠게 다가가 어깨를 잡아 돌리려 손을 뻗지만 허공에 헛손질을 한다. 놀라 뒷걸음질 친다. 다시 테이블로 다가가술을 병째로 들이킨다. 그리고 잠깐 진정을 하더니 다시 싱크대를 향해 몇 걸음 간다.
남자 순간 자신을 바라보는 모습에 순간 숨이 멎는다.
남자가 말을 끝내는 순간 남자는 자신을 향해 오는 모습에 놀라며 옆으로 비켜선다. 테이블에 향하는 시선.
남자의 시선은 다시 싱크대로 천천히 향한다.
남자는 바닥에 앉아있는 모습을 보고는 곁에 주저앉는다.
남자의 시선은 다시 부엌에서 소파로 향한다.
남자는 테이블이며 주위에 있는 소주병을 치운다. 그리고 나서 시선은 테이블과 얼굴을 몇 번 번갈아가며 움직인다. 밥 먹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남자.
다시금 몇 번의 숟가락질에 시선이 따라가고 점점 빨라지는 숟가락질.
남자는 방으로 들어가 공책과 여러 서류들, 영수증 뭉치를 들고 나와서는 테이블에 앉아 펼친다. 이리 저리 영수증과 서류를 보며 수첩에 메모하는 남자.
남자 다시 들어오면 초조한 듯 시계를 보며 이리저리 걸어 다닌다.
남자 무릎 꿇고 흐느낀다.
그러다 문득 기척에 시선을 든다. 시선은 일어나는 모습에 따라 점점 높아진다. 그리고 따라 일어나는 남자.
남자 액자를 살며시 돌려놓고 무대 서서히 어두워진다.
무대 완전히 어두워진다. 다시 밝아지면 앞치마를 한 여성 스태프가 쟁반에 미역국이 담긴 그릇과 국화꽃 한 송이를 가져와 병에 꽂고는 사진 앞에 국을 두고 퇴장. 무대 조명. 꽃병과 남자의 사진, 그리고 미역국을 가장 오래 비춘 채 어두워진다.
공연 막을 내린다.
이 극의 무대에 실체로서 존재 했던 인물은 보이지 않았던 아내였고.
무대를 맴돌았던 건 남편의 잔상이었다.
End.
- 호들갑 작가소개
- <잔상>의 작가 양강민은 1990년 1월. 엄동설한에 엄마를 엄청 (라임 좋고) 감동시키며 태어난 2016년도기준 28세의 친구들을 둔 27세, 빠른 년생의 극작가 지망생이다. 초등학교시절 학예회 발표로 접하게 된 연극은 이후 중학교, 고등학교 까지 이어지다 잠시 주춤한다. 그러다 성인이 되어 연극은 어느새 그의 인생에서 중요한 한 부분으로 자리 잡았고 지금은 한국연극협회 밀양지부 소속이자, 극단 ‘메들리’의 배우이다. 2010년도 경남연극제를 데뷔로 현재 까지 배우로서 활발히 활동 중이며, 간간히 직접 쓴 작품의 배역을 맡기도 한다. 그는 현재 ‘배우’와 중학교 ‘연극 강사’를 하며 늘 꿈꾸던 ‘안톤 체홉을 넘어서는 극작가’란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작품을 구상하고 희곡을 써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