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
박지연
101호
2016.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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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양쪽에 거대한 벽이 세워져 있다. 그 사이로 (마치 가구와 가구 사이에 난 틈처럼) 좁은 공간이 있다. 사람 두 명이 겨우 앉을 수 있는 너비다. 야생바퀴 허겁지겁 등장한다. 사색이 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다 틈 사이에 몸을 숨긴다.
등장인물
집바퀴_인간 나이 40대
야생바퀴_인간 나이 20대
집주인(목소리)
무대 양쪽에 거대한 벽이 세워져 있다.
그 사이로 (마치 가구와 가구 사이에 난 틈처럼) 좁은 공간이 있다.
사람 두 명이 겨우 앉을 수 있는 너비다.
야생바퀴 허겁지겁 등장한다.
사색이 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다 틈 사이에 몸을 숨긴다.
- 야생바퀴
- (사시나무 떨 듯이 몸을 떨며) 어흐으.. 어흐으...
- 집바퀴
- (잔뜩 경계하며 낮은 목소리로) 누구야 너.
- 야생바퀴
- 어흐흐으! 깜짝이야. 누구세요!
- 집바퀴
- 쉿! 여기선 숨죽이는 게 상책이야.
- 야생바퀴
- 다리. 내 다리. 내 다리! 씨발 내 다리!
엄마! 어흐으! 내 다리 어디 갔어... - 집바퀴
- (멱살을 잡고) 미친놈아 조용히 안 해?
- 야생바퀴
- (바깥을 보며) 내 다리! 내 다리 저기 있네! 어흐으억...
- 집바퀴
- 책에 깔렸냐 병신 같이. 너 바깥에서 왔지?
- 야생바퀴
- (고통에 신음하며) 흐윽... 예.....
- 집바퀴
- 정신 똑바로 차려라. 아직 저 여자 근처에 있거든?
(머리를 후려치며) 그만 쳐 울어. 새끼야. - 야생바퀴
- 내가... 흐윽.. 왜... 왜 이런...
- 집바퀴
- (바깥을 보며) 간다, 간다, 간다. 어후. 갔다. 후....
- 야생바퀴
- 왜...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합니까...
- 집바퀴
- 하여간 풀때기에서 살다 온 촌놈들은 세상물정을 몰라.
- 야생바퀴
- 풀이 아니고... 나무에서 왔어요....
- 집바퀴
- 나무나 풀이나 씨발. 말이 안 통해. 야 새끼야.
거서 잘 살다가 왜 창문으로 기어들어오고 지랄이냐. - 야생바퀴
- 저는... 창틀에 가만히.. 흐윽... 있었어요....
- 집바퀴
- (머리를 후려치려 한다) 병신아. 눈에 띈 게 잘못이야.
- 야생바퀴
- (후려치는 걸 막으며) 왜.. 잘못입니까...
- 집바퀴
- 아오 얘는 말이... 야. 쉽게 알려줄게.
저 여자 다리가 두 개거든? 근데 넌 몇 개야? - 야생바퀴
- 여섯... 아니 이젠... 으흐윽.... 다섯 개요.... 흐윽....
- 집바퀴
- 그럼 생각해봐. 우리가 움직일 때 다리 여러 개가 막
(누워서 팔다리를 휘두르며) 존나 이렇게 엇갈리는데
다리 두 개 달린 입장에서 얼마나 혐오스럽겠냐. - 야생바퀴
- 으흐윽... 그게 무슨 개소리에요....
- 집바퀴
- 그래. 개소리 같지. 아. 개는 다리가 네 개거든? 근데 걔네는
털 달렸으니까 귀여운 거야. 씨발. 여긴 이런 곳이야. 알겠냐. - 야생바퀴
- 나도 썅... 엄마가... 어흐으... 귀엽다고 했는데....
어흐윽... 엄마.... (울면서 몸부림친다) 엄마! 엄마! - 집바퀴
- 야. 미쳤어? 가만히 있으라고! 저 여자 약 들고 우리 찾으면
둘 다 여기서 끝나 병신아. (순간 바깥을 슬쩍 보며) 워매.
에프킬라 찾으러 간 거였어. 와. 좆됐네. - 야생바퀴
- 왜, 왜, 왜요. 왜... 뭔데요...
- 집바퀴
- (손을 살짝 떨며) 야. 네 덕에 오늘 여기서 뒤질 것 같거든?
- 야생바퀴
- (바깥을 보며 같이 떤다) 저, 저게 뭔데요... 예?
- 집바퀴
- (혼잣말로) 우리 집안이 여기서 3대째 알을 깠는데. 죽을 순 없지.
친구야. 잘 들어. 너랑 나랑 여기 가만히 있으면 둘 다 죽어. - 야생바퀴
- 그, 그럼 어떻게 해요....
- 집바퀴
- 그러니까. 너는 집으로 돌아가는 거야. 나무로. 응?
- 야생바퀴
- 지, 지, 지금 나가라고요? 좆됐다매요. 죽는 거 아녜요!
- 집바퀴
- 안 죽어. 바퀴가 쉽게 죽냐. 자존감을 좀 높여.
- 야생바퀴
- 저거 맞으면 죽을 거 아녜요! 나 지금 미끼로 쓰려는 거죠?
- 집바퀴
- 얌마 미끼라니! 나이도 어려 뵈는데 여기서 내보내려는 거지.
- 야생바퀴
- 시, 싫어요. 절대 싫어요. 안 나가... 못 나가요.
- 집바퀴
- 야 씨발 그럼 내가 대신 나가서 끄에엑 뒤지고 너 평생 혼자서, 어?
이런 먼지구덩이 시궁창에서 죽을 때까지 뒹굴래? - 야생바퀴
- 저, 적어도 개죽음은 안 당하겠죠... 아, 알도 까고요.
- 집바퀴
- 얌마... 알 까는 게 인생의 전부가 아냐.
씨발 그럼 우정이 왜 있고. 어? 사랑이 왜 있냐! - 야생바퀴
- 알 까려고 있죠!
- 집바퀴
- 어린 섀끼가 개판이네 진짜... 야 이 섀끼야 니가 여기에
적응할 수 있을 것 같냐. 얼마나 말도 안 되는 곳인 줄 알아?
씨발 우리 조상이 새운데 저 여잔 주말마다 쉬림프 피자 시켜먹어.
심지어 새우는 다리가 10개야! 근데 처먹어. 우린 죽여! - 야생바퀴
- 토핑 새우는 다리 잘라서 나오잖아요...
- 집바퀴
- 씨발 말이...! 후... 야. 그뿐인 줄 알어? 저 여자 맨날 페북에서
‘멸종 위기 하프물범을 지켜주세요’ 이런 거에 좋아요 누르는데
쇠똥구리도 멸종 위기거든? 누가 ‘우리 쇠똥구리를 지켜주세요’ 하냐?
좆같이 생기면 사라져야 한다고! 이게 납득 되냐? 말이 되냐! - 야생바퀴
- 아저씨... 말 안 되는 건 세상에 널렸어요.
그러니 말이 안 되도 납득해야지. 일단 살아야죠... - 집바퀴
- 어린 섀끼가 뭐 처먹고 자랐길래 이런 꼰대 같은 발상을 하지?
얌마. 낭만을 가져! 가끔 산책이라도 하고 싶어서 한 발자국 나갔다가
냅다 눌려 터지는 게 여기 삶이란 말이야. 나무는 얼마나 좋냐. 볕도 쬐고.
다리 0개든 340개든 다 같이 먹고 자고 싸고. 유토피아 아니냐! - 야생바퀴
- 에휴. 아저씨는 먼지만 처먹어서 철이 없어요?
- 집바퀴
- 이 씨발놈이. (헤드락을 하며 구타한다) 자연으로 돌아가 씨발놈아.
- 야생바퀴
- (저항하며 같이 때린다) 아, 아저씨나 바깥에서 새 인생 사세요!
- 집주인(목소리)
- 꺄아아아아악!
- 집바퀴
- 난 다음 생에 하프 물범으로 태어날 거야.
가쁘게 숨을 몰아쉬는 야생바퀴의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린다.
집바퀴, 감시하듯 바깥을 두리번거리며 허공을 바라본다.
야생바퀴, 공포에 질려 흐느끼다가 옆구리에 통증을 느낀다.
옆구리를 더듬다가 아연실색한다.
집바퀴와 야생바퀴 격렬하게 몸싸움을 벌인다. 서로를 마구 밀쳐낸다.
한참을 뒤엉켜서 싸우다가 발이 꼬여서 무대 중앙으로 넘어진다.
서로 엉켜있는 집바퀴와, 야생바퀴. 멍하니 허공을 바라본다.
암전.
- 호들갑 작가소개
- 아무 것도 아닌 얘기가 아무 것이 되는 그날까지 쭉 씁니다.
독자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