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슨
이강한
104호
2016.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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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키 청소도구실 안, 간이의자에 앉아 담배 피고 있는 점장(30대 초, 남)과, 불편한 자세로 서 있는 민규(18, 남) 있다.
나이키 청소도구실 안,
간이의자에 앉아 담배 피고 있는 점장(30대 초, 남)과,
불편한 자세로 서 있는 민규(18, 남) 있다.
- 점장
- (바닥에 침 뱉는) 왜 나만 힘들어? 날씨는 덥지, 애들이랑도 놀아줘야 되지, 부모님 용돈도 드려야 되지…
- 민규
- 아… 힘드실 거 같아요.
- 점장
- (피식 웃는) 그래서, 할 말이 뭔데?
- 민규
- (망설이다) 제가 나이키 일한 지 벌써 4개월이 넘어가잖아요. 점장님.
- 점장
- 벌써 그렇게 됐나? 가만 보면 너도 참 많이 배웠어. 이제 네 뒤에 온 애들 가르칠 줄도 알고, 월급도 너 내가 사장님한테 말해서 5만 원 올려줬다?
- 민규
- (시선 바닥에 두고) 네…
- 점장
- 고등학교 자퇴한 애가 월 130만 원이나 받는 거 보면, 나도 진작 그럴걸 그랬어. 내가 너 때부터 나이키 했음 지금 과장은 달았을껀디.
- 민규
- 저… 점장님.
- 점장
- 괜히 되지도 않는 공부하는 것보다, 일찍 사회생활 하는 편이 나아. 아직 검정고시 못 땄지?
- 민규
- 네…
- 점장
- 그럼 중졸이네. 캬, 너 진짜 일 잘 구했다. 참, 이번 달에 점장이 수주 가는 거 알지? 신상 제대로 뽑아올 테니까, 너도 하나씩 사고 그래. (민규 위아래로 훑는다) 아무렴 그래도 그렇지, 나이키 일하는 애가 일주일 내내 같은 옷 입음 사람들이 뭐라 생각하겠어. 30% 해준다니까?
- 민규
- 제가 생각해 봤는데…
- 점장
- 생각? 무슨 생각? 우리 빨리 들어가 봐야 돼. 지금 매장에 진서 혼자 일하고 있잖아.
- 민규
- 민규 (눈 질끈 감고) 저…일 그만두려구요.
- 점장
- (웃으며, 돌아와 앉는)왜… 또? 넌 또 왜 그래? 왜? 점장한테 뭐 불만 있어?
- 민규
- 아뇨… 그런 건 아니고 제가… 돈을 벌려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거잖아요…
- 점장
- 그렇지. 뭐 돈 안준 적 있나? 제 때 꼬박꼬박 주잖아.
- 민규
- 근데… 주 6일 11시간 반씩 일하는데… 월에 130이면…
- 점장
- 그게 적어? 너 130만 원이 적은 돈이야?
- 민규
- 아뇨. 그건 아니고 큰돈인 건 맞는데, 시급으로 계산해보면… 너무 안 맞아서요.
- 점장
- (깔깔 웃는) 넌 시급 아니라 월급 받잖아. 넌 직원인 거야. 아르바이트가 아니라. (사이) 민규야.
- 민규
- 네?
- 점장
- 너 혹시 지환이랑 연락하니?
- 민규
- (놀라) 아뇨. 왜요?
- 점장
- 아니. 둘이 친했잖아. 근데 지환이 관두고 한 달 꼴랑 지났는데, 그 뒤에 네가 관둔다 하니까… 나 엿 먹이려는 건가.. 싶기도 하고. 지금 새로 들어온 애는 이제 막 일 배우는데..
- 민규
- 아뇨. 지환이 때문은 아니구요… 돈이 많이 필요한데… 어려우니까.
- 점장
- 넌 직원이라니까. 정직원.
- 민규
- 정직원이요?
- 점장
- 얘가 또 어려서 그런 거 모르네. 노동법에 따르면, 정직원은 알바랑 다르게 금액책정이 되는 거야. 응? 너 모르지? 대신 너 복지가 얼마나 좋냐. 매장에 에어컨 빵빵하게 틀어주는 거, 그것도 다 사내 복지로 되는 거야. 몰랐지?
- 민규
- 근로계약서도 안 썼는데 정직원이에요? 제가?
- 점장
- (깔깔 웃는) 너 근로계약서 썼음 이렇게 얘기하면 안 되는 거 알지?
- 민규
- 제가 하루 일당이 44,000원으로 책정되어 있는 거잖아요. 근데 여기서 식비도 지원이 안 되니까 밥값 하루 만 원 쓰면 삼만 사천 원, 오고가고 교통비면 거의 하루 삼만 원씩 버는 거니까…
- 점장
- 뭐, 어디서 너랑 일하자고 연락이라도 왔어?
- 민규
- 아뇨. 그런 건 아닌데…
- 점장
- 그럼, 당장 돈은 어떻게 벌라고?
- 민규
- …돈을 주는 게 점장님이 주시는 건 아니니까, 점장님한테 뭐라고 하는 건 아니구요…
- 점장
- (표정 굳는) 내가 안 좋게 얘기를 함 해볼까? 어? 너 방금 근로계약서 얘기했지? 넌 그걸 악 이용하는 거야. 내가 근로계약서를 안 썼으니 일을 맘대로 관두겠다. 절차나 이런 것도 없이 관둘게요. 네가 내 입장에서 생각을 해 봐.
- 민규
- 점장님.
- 점장
- 뭔가 다른 핑계를 댈 순 없었을까? 꼭 돈으로 이렇게 꼬치꼬치 똑바로 대들어야 했을까? 그래, 너 지금 나 엿 먹이려는 거야.
- 민규
- 최저시급이 안 맞는다고 말씀드리려고…
- 점장
- (욱하는) 그래. 말 잘했다. 너 최저시급 맞으면 일 계속 할 거야? 어?
- 민규
- …네…
- 점장
- 너 핸드폰 켜봐. 계산 해봐. 최저시급으로 한 번 계산해보라고.
- 민규
- (휴대폰 꺼내다) 근데 점장님…
- 점장
- 어.
- 민규
- 제가 최저시급을 요구하는 게, 부당하다고 생각하세요?
- 점장
- 아니. 내 말은 네가 그걸 계속 핑계 삼아서 얘기하니까 이렇게 얘기하는 거야.
- 민규
- (계산기 켜서, 계산하는데)
- 점장
- (언성 높여) 너 내가 월급 5만 원 올려준 거 있지? 내가 니들 시급 올려주려고 얼마나 노력하는데. 끝까지 대드는 구나. 끝까지.
- 민규
- 점장님. 전 점장님이랑 사이가 나빠지고 싶은 게 (‘아니구요’ 하는데)
- 점장
- (자리 벅차고 일어나는, 소리 지르면서) 그렇지. 나도 나빠지고 싶었으면!! 아예 뒤집어 놨지. 나도 그런 건 아니야. 너무 당황스러워서 그런 거야. 야. 너 여기 일한지 몇 달이랬어?
- 민규
- 네 달이요.
- 점장
- 나 여기 온지 몇 달 됐어? 이제 겨우 다섯 달이야. 근데, 내가 발령받고 지금 두 명이나 나갔다 들어오면, 본사에선 나 뭐라고 생각하겠냐? 내 이미지나 이런 건 생각이 안 되는 거야? 너 그렇게 이기적인 애냐? 어? 니들 같은 애들 받아준 게 누구야?
- 민규
- 그러니까, 이 문제가 점장님한테 있다는 게 아니구요.
- 점장
- 알았고! 됐고, 더 얘기 할 것도 없어. 나랑 얘기해봐야 말싸움하는 거 밖에 안 돼. 네가 일을 그만두던 안 그만두던, 그건 네 자유의사 아니냐. 너는 지금 네 맘대로 하겠다는 거고!! (사이) 하… 정말 너한테 서운하다. 그냥 말해. 나랑 일하기 좆같아서 싫고, 나 힘들게 하고 싶다고. 민규야. 나도 우리 집 가장이야. 일터가 아니라도 힘들어.
- 민규
- (울먹이는) …제가 다짜고짜 말씀드린 건 진짜 죄송해요.
- 점장
- (리코더, 케이스에서 빼내면서) 이렇게 학용품 사고, 애들 돌보면 내가 버는 돈 사라지는 것도 순식간이야. 점장이 참 고민이 많다.
- 민규
- (겁먹어, 끅끅 눈물 흘리는) 때리지는 마세요.
- 점장
- 야. 형이야. 형이 때리겠어? 응? 미안해 할 거 없고, 울 거 없어. 야, 형은 스물여섯부터 사회생활 했는데 말야. 네가 아직 잘 몰라서 그러는 거야. 내가 당당하다고, 내 주장만 하면, 그게 사회가 굴러가? 가끔은 양보도 하고, 상대방 입장 생각하고, 거짓말을 해서라도 배려하는 게 사회생활이야. 차라리 돈 말고 다른 핑계를 대.
- 민규
- (듣다가, 눈물 다시 쏙 들어가는)점장님… 제가 기분 좋게 말씀드릴 수 있었는데 돈 때문이라고 바로 말한 건 다시 죄송해요. 저는 우물쭈물 할까봐 단도직입적으로 말씀 드린 건데…
- 점장
- 이것도 모르는 거야. 우물쭈물하는 게 윗사람한텐, 오히려 생각을 하고 너를 동정할 수 있게 된다구. 너처럼 대드는 방식 말고, 그런 게 때론 윗사람의 마음을 더 움직이기도 하는 거야. 곤란하다는 걸 느끼니까. (사이) 그래… 이제 더 말 해봤자, 말싸움만 되니까, s] 뜻 알겠다. 내일부터 나오지 마. (리코더 세게 이곳저곳 치다가, 던져버린다.) 나오지 마.
- 민규
- 네. 알겠습니다.
- 점장
- 참, 아까 시급은 얼마 나오디?
- 민규
- 거의 이백 가까이 나오는데…
- 점장
- (웃는) 민규야… 너 어디가도 그 돈 못 받는다. 가 봐.
- 민규
- (문 앞으로 가서, 손잡이 잡고)저, 점장님.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해도 될까요?
- 점장
- (민규 보며)
- 민규
- 나중에, 점장님 아들이 컸을 때… 꼭 점장님 같이 좋은 분 만나면 좋겠어요. 예절도 배우고.
- 점장
- (표정 싹 굳어서, 분노하는데) 야. 박민규.
- 민규
- 그리고, 하나 더. 일했던 건 입금해 주세요.
- 점장
- (픽 웃는) 남자가 끝까지 찌질하긴. 월급날 들어갈 거야.
- 민규
- 그동안 일했던 거, 제대로 시급 쳐서 못 받은 거 까지 싹 다요.
- 점장
- ?!
- 민규
- 주휴수당까지 다요.
- 점장
- (민규한테 위협적으로 천천히, 다가가는데)
- 민규
- 멈추세요.
- 점장
- 왜? 무서워? 내가 때리기라도 할까봐?
- 민규
- 아뇨.
- 점장
- 그럼 왜 멈추라는 건데?
- 민규
- 어른이 되면 겁이 없어지나요?
- 점장
- (깔깔 웃는) 뭐라고?
- 민규
- 어른에게 오백만 원은 아무 것도 아니겠죠?
- 점장
- (뭔 소리야 싶은, 가까이 다가가) 이 새끼가 미쳤나? (멱살 잡는데)
- 민규
- 사실 오늘 점장님이랑 한 대화. 전부 녹음했어요. 지금은 클라우드를 떠돌고 있겠죠? 오늘의 강의들이.
- 점장
- (멱살 내려놓는다.)
- 민규
- 근로계약서 미작성은 오백만 원, 제가 받아야 할 월급이랑 그동안 차액까지 하면 거의 천만 원 돈 되겠어요. 전부 인정한다고 녹음돼 있고.
- 점장
- (크게 소리지른다) 야!!
- 민규
- 점장님, 아니 형. 아까 형이라고 하셨죠? 형. 알바 어플 찾아보니까, 우리 사장님이 새로운 매니저 한 명 뽑고 있던데… 형이랑은 상관없는 건가?
- 점장
- (민규 집어 던지려는데)
- 민규
- (안간힘을 써서 버티는) 못 배운 티는 저만 나는 건 아닌 거 같아요. 형도 이번 기회에 많이 받으셨죠? 수강료 제때 잘 입금해주시구요. 점장님, 제가 신고하더라도 새로운 매니저한테 흔들릴 정도는 아니죠? (사이, 귓속말) 그래도, 기왕 이렇게 된 거, 저는 그게 형 자리였음 좋겠어요.
점장, 피던 담배 끄고, 일어나 나가려는데,
점장, 도구함에 보관돼있는 리코더 꺼내든다.
민규, 바닥에 침 뱉고, 점장 손 뿌리치고 나간다.
- 호들갑 작가소개
- 난 정말로 모르는 게 많지만, 글을 쓰는 내가 행복하다는 건 알겠습니다.
하나 더, 앞으로 계속 행복할 거라는 것도요.
독자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