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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경
105호 2016.12.01
무대, 잔잔한 파도가 넘실대는 평온한 해변가. 멀리 등대가 보이고 평온하지만 어딘가 지친기색이 역력한 쿠모가 허리춤을 쥔 채 앉아있다. 그 옆에는 허리띠로 보이는 것이 나뒹굴어 있고 멀리 뱃고동 소리 울리며 막이 시작된다.

무대, 잔잔한 파도가 넘실대는 평온한 해변가. 멀리 등대가 보이고 평온하지만 어딘가 지친기색이 역력한 쿠모가 허리춤을 쥔 채 앉아있다. 그 옆에는 허리띠로 보이는 것이 나뒹굴어 있고 멀리 뱃고동 소리 울리며 막이 시작된다.

(E) 파도소리

쿠모
제길, 허탕만 치고. (바지춤을 치켜 올리며) 다 살자살자 하니 별 개소리만 지껄이고 이거 원 드러워서 퉤에엣! (침 뱉는 시늉하려다 집어 삼키고) 참자, 참을 인 서너개면 내 이딴 곳 두 번 다시 돌아보지도 않겠지 암.

서서히 몸을 일으키는 쿠모, 옆에 나뒹구는 허리띠 스러운 것을 집어 올리다가 손에 쥐고, 한참 바라 보다가 다시 제자리에 돌려놓고는 엉덩이에 묻은 모래를 털고 한숨 쉬며 퇴장.
조명이 어두워진 밤을 표현하고, 저 멀리 등대의 불빛이 밝혀지면 철호가 거의 기어가듯 해변을 거닌다. 모래사장에 앉아 목을 축이는데 옆에서 개 짓는 소리가 들려온다.

(E) 월~월~ 월 월~ 호

철호, 깜짝 놀라 옆을 바라보면 모래사장 한가운데, 내내 조명의 어둠속에 감춰져있던 무대 정중앙에 푸른빛깔을 띈 큰 맨홀이 뚫려있다. 오묘한 빛을 발하는 모습에 한동안 넋을 잃고 바라보는 철호.

철호
(기색이 돌아와) 어? 어어~ 이건, (안을 들여다보며) 그 속에 누구 있어요?
있으면 대답하고, 없으면…… 없어도 대답해 봐요! 내가 왔어요. 내가!

아무 기척도 없자 어둠 속에 맨홀 주변을 손으로 더듬던 철호, 떨어져있는 허리띠를 쥐어들고 열심히 그것을 맨홀 안으로 넣어본다.

철호
자, 이제 됐어요! 이걸 붙잡아요, 자 어서! 옳지, 옳지!

저 뒤 등대불이 철호와 맨홀 쪽을 비추다가 사이렌이 울린다.

(E) 사이렌 소리

쿠모
안 돼!!!!! (허겁지겁 달려와서) 안 돼! 안 돼 이사람, 자네 뭐하는 거야!
철호
(깜짝 놀라며) 아니, 저는 그냥….
쿠모
(철호가 붙잡고 있던 허리띠를 낚아채며) 이런 위험한 짓을! 자네 대체 생각이 있는 건가?
철호
네?
쿠모
생각이 있는 거냐고!
철호
아니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그것보다 아저씨는 누구신데 이러세요?
여기 섬주민이라도 되세요?
쿠모
주민이 아니라 주인. 난 주인이야, 이봐, 난 주인이라구! 이 섬의.
철호
(수긍하는 듯하다가) 아… 아니, 여기는 무인도 아닌가요?
쿠모
무인도는 개뿔. 거 풀 뜯어먹는 소리 그만하고, 자네 나 아니었으면 큰 일 날 뻔 했어!

맨홀의 불빛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철호
네? (쿠모 얼굴 보다가 맨홀 쪽 보고 눈치 채고) 어? 어어~ 여기가 점점
쿠모
냅둬.

쿠모가 여전히 바지춤을 손으로 움켜쥐고 한 발짝 한 발짝 맨홀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그 크기가 점점 작아지다가 한 손안에 들어올 정도의 불빛만이 모래(무대) 위에 남는다.

철호
저 안에서 분명 뭔가 소리가 났다고요.
쿠모
분명, 개 짖는 소리겠지.
철호
개요? 아니요 분명 저 안에는 사람이 있었어요.
쿠모
사람? 아니 분명 저 속에는 내가 키우던 개가 있네. 요크셔테리어
(손가락으로 검지 손가락만 펴 보이며 1을 강조하며) 딱 한 마리. 내가 키우던.
철호
(어이없지만) 아저씨 개라면 그래도 구해야죠! 왠지 울고 있는 것 같았어요.
쿠모
(콧방귀 끼며) 칫, 내가 저 녀석을 어언 30년을 데리고 있었네. 우는지 웃는지 그 정도는 내가 잘 알지. (바지 치켜 올리며 철호의 행색을 살피는) 으흠, 행색을 보자 하니 이 섬을 꽤나 헤맸나본데 내가 저 등대로 불을 밝힐 테니 자네는 어서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게
철호
원래 있던 곳……. 저, 배가 언제쯤 들어오죠?
쿠모
내가 연락 하지. 그러니까 여기서든 어디서든 대충 잠을 좀 자 두게. 내일이면
(말을 멈추고) 아차, 혹여 등대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말게나. 자네 줄 식량도 잠을 재워줄만한 공간도 없으니까, 말했다시피 여긴 내 섬이고 내가 주인이야. 저 등대 역시 나 없이는 제기능을 할 수가 없으니 따로 여유 공간 같은 것도 없으니까 꿈도 꾸지 말고.
철호
네……. 그런데 저… 또 그 개가 울면 어떡하죠?

쿠모, 퇴장하려다 발걸음을 멈춘다.

쿠모
또 개가 울면, 그때는, 내가 장담하고 구하지. 녀석이 아마 배가 고플지도 모르겠군. 가끔 먹이를 던져줘야 하거든.

쿠모 퇴장하고, 철호는 다시 어둠이 짙게 깔린 모래사장에 털썩 주저앉아 옆에 허리띠스러운 것을 손아귀에 쥐어본다.

철호
기다려……, 구해줄게.

(E) 월~월~ 월 월~ 호

때마침 울음소리가 들리고 맨홀이 다시 넓어지며 철호는 몸을 일으켜 그 안으로 손을 깊숙이 넣는다. 저 멀리 등대가 그런 철호의 모습을 조명으로 비추고 개 울음소리가 점차 잦아들면서
암전.

조명이 밝으면 무대 위에는 아무도 없이 모래 위에 허리띠만이 놓여있다. 뚜벅뚜벅 걸어오는 쿠모. 조용히 바닥의 허리띠를 주어 올려 내내 헐렁하던 허리 바지춤에 끼워 넣으며 철호의 흔적으로 보이는 푹 파인 모래 웅덩이를 지그시 바라본다.

쿠모
참았어야지 이 사람아. 이곳은 내 섬이야. 내 말을 들었어야지. (이번에는 맨홀이 있던 자리를 바라보며) 이 녀석아, 이제 좀 살 것 같지? 그래, 살아서 오래오래 네 존재를 알리렴. 나 하나 어떻게 되든 상관 말고, 너는 여기 두고두고 남아서 계속 알리려무나. 10년이 되었든, 20년이 되었든, 300년이 되었든, 너의 그 울음소리로 네가 왜 그 속에 갇혀있는지를 말이다. 그것만 약속 해주렴. 내 저 등대지기로 평생을 살아오면서 차마 딱 한 가지 못할 짓을 했다면 더 많은 어둠을, 더 많은 선박들을 지켜주지 못했구나. 나는 사라져도 너는 거기 그렇게 남아서 울어라. 울다가 배부르면 자거라. 자다가 억울하면 깨어나 다시 울거라. 그렇게 너의 존재를 알려라. 여기가 더 이상 사람들이 찾지 않는 외딴 섬이라 할지라도, 사람 발길 닿지 않는 그런 곳이라 한들, 너의 그 울음소리에 그 청년처럼 분명 누군가 알아주겠지. 자, 이제 그만 나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의 희생은 바라지 말고.

바지가 흘러내리지 않아 이제야 두 손이 자유로워진 쿠모는 한 숨을 쉬며, 그러나 웃는 얼굴로 고개를 천천히 끄덕인다.

암전.

호들갑 작가소개
자유롭게 이야기를 하고, 자유롭게 생각을 전해 들으며, 글로 나누는 것이 즐거웠다. 꿈이었던 것을 쫓다가, 그것을 바라보는 꿈 바라기가 되고, 현실로 와서 이제 꿈 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로써의 즐거움이라는 큰 기쁨과 마주 한다. 놓지 못한다. 그래서 더디지만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 혹, 그 시절 나와 같은 고민과 꿈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한 동생 꿈 바라기들이 있다면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며 앞으로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