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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
아버지(늙은 남자)
아들(젊은 남자)
집안
창문으로 푸르스름한 빛이 들어오고 있는 이른 새벽
얇은 매리야스에 팬티바람을 한 늙은 남자가 쇼파에 앉아 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 티비 화면을 보고 있다. 표정없이 화면만 보고 있는 늙은 남자 얼굴 위에 여러가지 빛깔들이 계속해서 지나간다. 남자는 이따금씩 팔을 들어 자신의 등을 매만진다. 손에 양말을 든 젊은 남자가 늙은 남자에게 다가간다.
- 아들
- (쭈그려 앉아 양말을 신으며) 빨래가 잘 안 마르네요. 회사에 신고 갈 양말이 없어요.
- 아버지
- (천천히) 습해서 그래.
- 아들
- 우리집이 여름에 습했었나? 어머니 계실 땐 안 이랬던거 같은데. 그렇지 않아요?
- 아들
- (놀라서 다가가며) 등에 이게 뭐예요?
- 아버지
- 아프다. 아파.
- 아들
- 거북이 같아요.
- 아버지
- (티비를 바라보며) 습해서 그래.
- 아들
- 집안이 습해서 등껍질이 생겼다고요?
- 아버지
- 등껍질이 먼저야.
- 아들
- 네?
- 아버지
- 등껍질이 생겨서 집안이 습해졌다고.
- 아들
- 그니까요. 그게 왜 생기는 건데요. 어디 아프신 거에요?
- 아버지
- 뜯어줘.
- 아들
- 아프세요? 안될 것 같은데. 병원에 다녀오세요. 저는 우선 출근할게요. 밥 챙겨드시고요. 집안 습한 건 제가 방법 좀 찾아 볼게요. 밀린 설거지랑 빨래 좀 해주세요. 설거지는
- 아버지
- (아들 말을 끊으며) 물 만지기 싫다.
- 아들
- 그래요. 제가 할게요.
- 아들
- 저 오늘 저녁 약속 있어요. (머뭇거리다) 어머니 장례 도와주신 분들 식사라도 대접해야죠.
- 아버지
- (읊조리듯) 습해지고 싶지 않아.
- 아들
- 아버지 저 왔어요. 제가 이거 사왔어요.
- 아버지
- ……
- 아들
- (침대 앞에서 제습기 전원을 킨다) 짜잔. 이제 습하지 않아요.
- 아들
- 아..버지
- 아버지
- 등이 너무 아프다.
- 아들
- 병원에 가세요.
- 아버지
- 집안이 너무 습한 것 같다.
- 아들
- 언제부터 그랬어요. 언제부터 그렇게 변한거예요.
- 아버지
- 얼마 전부터.
- 아들
- 아프면 병원에 가셔야죠. 제가 어떻게 전부다 신경을 써요. 어머니 장례 때문에 저도 정신이 없었단 말이예요.
- 아버지
- 뜯어줘라. 거북이가 되고 싶지 않아. 벗어나고 싶다.
- 아버지
- 그만. 그만해라. 안되겠다. 떼어내려 하면 할수록 더 아파.
- 아들
- (놀라며) 집이 왜 이래요.
- 아버지
- (천천히) 습해야 돼. 그래야 아프지 않아.
- 아들
- 진짜 거북이가 되기로 하신 거예요? 왜 그러세요 진짜.
- 아버지
- 아프고 싶지 않다. 거북이든 뭐든.
- 아들
- 말도 안돼요. 등에 그것 좀 떼버리세요. 제발.
- 아들
- (등껍질을 잡아당기며) 이것 때문이에요. 습해지면 안돼요. 이것에게 잡아먹힐 수 없어요. 이겨내야 해요. 아버지.
- 아버지
- (울먹이며 소리친다) 아니야. 이겨 낼 수 없다. 이렇게 살아야해. 우린. 평생 괴로울꺼야.
아버지, 티비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으며 또 다시 자신의 등을 만진다. 아버지의 손을 따라 이동하던 아들의 시선이 아버지 등에 생긴 등껍질에 이른다.
아버지, 등을 돌려 아들에게 보여준다. 아들, 떨떠름한 표정으로 등껍질 윗부분을 긁어본다. 아버지, 움찔한다.
아들, 일어나 현관에서 신발을 신는다.
아들 일어나 현관문을 열고 나간다.
아버지, 소파 위에서 일정한 시간을 보내다가 침실로 들어가 등을 보인 채 엎드려 눕는다.
늦은밤
엎드려 잠들어 있는 아버지 곁으로 아들이 다가온다. 손에는 제습기가 들려있다. 아들, 취한 듯 웃음기 있는 표정으로 비틀거린다.
아버지, 반응이 없다.
아들이 허리를 굽혀 아버지에게 손을 대려 하자 아버지가 고개를 돌린다. 아들, 신음을 내며 자리에 주저 앉는다. 아버지, 천천히 일어나 침대에 걸터앉는다.
아버지의 등은 조금 더 뚜렷한 거북이 등껍질의 모습을 하고 있다.
아들, 힘을 주어 뜯기 시작한다. 아버지, 아파한다.
아버지 천천히 일어나 아들을 지나쳐 방을 나간다. 아들, 조심스럽게 자신의 등을 만진다.
암전.
늦은밤
집안에 물기가 가득하다. 부서진 제습기 옆에 온몸이 젖은 아버지가 쪼그려 앉아있다. 아버지 등에는 뚜렷한 거북이 등껍질이 만들어져 있다. 아들, 현관을 열고 들어온다.
아들, 아버지 등껍질로 손을 뻗는다. 아버지 놀라 도망간다. 온 집안을 술래잡기 하듯 둘은 도망치고 쫓아간다. 집안에 물기가 가득해진다. 얼마 후 지친 아버지가 아들에게 잡힌다. 아들, 거북이 등껍질을 있는 힘껏 잡아당긴다. 아버지 등을 붙잡고 소리친다.
아들, 동작을 멈춘다. 아픔에 흐느끼는 아버지의 울음소리만 들린다. 아들이 아버지에게서 한걸음씩 뒷걸음질 친다. 움직이던 아들이 뒤돌아 선다. 아들의 등 뒤에 희미하게 무언가 그려진다. 천천히 아들은 침대 위에 몸을 눕힌다. 천장을 보고 눕는다. 그러다 다시 몸을 뒤집어 엎드려 눕는다. 아들의 등위에 거북이 등껍질 모양이 그려진다.
암전
- 호들갑 작가소개
- 93년 6월생. 자신의 오른손에 있던 큰 점을 빼고 난 후 손재주를 잃어버렸다고 생각한다. 지금 그 재주 없는 손을 가지고 글을 쓴다.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누구보다 잘 쓰고 싶어 한다. 잘, 하고 싶어서 부끄러움 뒤에 숨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