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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elter

김지영
109호 2017.02.09
무대 다운센터에 등받이 없는 벤치가 하나 있다. 조명 켜지면, 무대 업센터에 관객을 등지고 선 몇 명의 인물들. 까만 옷을 입고, 군중을 표현한다. 배우는 절대 관객에게 얼굴을 보이지 않는다.마이크와 피켓 등을 들고 시위하는 군중들. 군중1 아름답지 않은 것은 큰 죄이다! 그에 마땅한 처벌을 해야 한다!군중2 ‘...

무대 다운센터에 등받이 없는 벤치가 하나 있다. 조명 켜지면, 무대 업센터에 관객을 등지고 선 몇 명의 인물들. 까만 옷을 입고, 군중을 표현한다. 배우는 절대 관객에게 얼굴을 보이지 않는다. 마이크와 피켓 등을 들고 시위하는 군중들.

군중1
아름답지 않은 것은 큰 죄이다! 그에 마땅한 처벌을 해야 한다!
군중2
‘못생긴’ 사람들이 세상을 망치고 있다! 처벌하라!
군중들
처벌하라! 처벌하라!
군중1
현대적인 미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이는 나라를 이끌어나갈 자격이 없다!
군중2
‘못생긴’ 대통령은 당장 사퇴하라!
군중들
사퇴하라! 사퇴하라!

군중들의 목소리 점점 높아진다. 무대 뒤 사람들까지 합세해 ‘처벌’과 ‘사퇴’를 외친다. 암전.

Nar.
(뉴스 아나운서 목소리) …모든 시민들이 외출 시 가면을 쓰도록 규정하는 일명 ‘가면법’의 합헌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헌법재판소는 오늘 가면법에 대한 위헌 심판 선고에서 재판관 10명 중 8명의 합헌 의견으로 가면법이 합헌이라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현 시대의 외모지상주의가 시민들의 의식 변화 촉구로는 해결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기에 마땅히 법률의 규제를 받아야 한다고 합헌 결정 사유를 밝혔습니다. 이로써 모든 시민들은 내일부터 순차적으로 지급될 가면을 반드시 착용해야하며 이를 지키지 않을 시 형사처분을 받게 됩니다. 또, 가면에 색을 칠하는 등 모양을 변형시키는 행위가 발각되는 즉시 벌금형에 처하게 됩니다. 이와 같은 법률이 시행된 것은 이례적인 일이며 가면법이 만연한 외모지상주의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이 될 수 있을지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습니다…

내레이션 나오고 동시에 조명 밝아지면, 가면을 쓰고 일상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 그 틈에 섞여있던 B, 다운스테이지로 나와 벤치에 앉는다. 다리를 꼬고 누군가를 기다리는데 불안해 보인다. 역시나 가면을 쓴 A 다운스테이지로 등장. 기분이 좋아 보이는 모습. A가 B의 앞에 멈춰서고 둘 마주한다. A도 적당한 거리를 두고 벤치에 앉는다. 업스테이지에서 움직이던 사람들은 자연스레 사라지고 조명도 거둬진다. 둘, 정면을 보고 대화한다.

A
오랜만이네.
B
그러게. 한 십 년만인가.
A
하고 있는 일은 잘 돼 가?
B
그럴 리가. 난 성형외과 의사였잖아. 이 망할 가면 때문에 직장을 잃었지.
A
(조금 웃으며) 성형외과 의사가 실직을 하다니. 불과 십 년 전만 해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는데. 그치?
B
(언짢은 듯) …넌?
A
나야 잘 살고 있지. 가면을 쓰게 된 이후로 편해졌어.
B
네가 어떻게 생겼었지? (A를 가만히 본다) 아, 넌 그때보다 지금이 훨씬 살기 좋겠구나.
A
이제는 이 가면이 내 얼굴이니까. 못 생기지 않았고, 늙지 않는 이 얼굴이.
B
아름다움은 권력이자, 옳은 것이야. 꼭 그래야만 하는 것. 아름다움이 사라지니까, 추한 것들이 자기들의 세상인 양 날뛰잖아. 쳐내야 할 썩은 가지들이.

A, B의 말을 무시하고 문득 고개 들어 하늘을 보며 지난날을 회상한다.

A
그때도 하늘은 지금처럼 맑았어. 세상이 이렇게도 순식간에 바뀌었는데, 하늘만큼은 변한 게 없네.

B, A를 본다. 사이.

A
(취한 듯) 가면이 있으니까 너무 행복해. 가면 속에 숨어 있으면 세상도, 사람도 무섭지 않아.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아. 눈치 보지 않고.
B
난 모든 사람들을 아름답게 해 주겠다는 꿈을 잃었어.
A
(B 향해 이해받길 원하는 듯) 가면이 없을 때 나는 너무 힘들었어. 너도 알잖아.
B
아름답지 않다면 책임을 져야지.
A
하지만 나는 잘못한 게 없는 걸. 내가 못 생긴 게 내 잘못만은 아니니까…
B
(말 끊으며) 아름다움은 권력이자, 옳은 것이야. 꼭 그래야만 하는 것.

A, B를 보고는 말을 멈춘다.
마침 둘의 앞을 지나가는 행인들. A를 가리키며 수군거린다.

행인1
저 사람 봐. 너무 뚱뚱한 거 아냐?
행인2
게다가 키도 작은 것 같아. 어휴. 창피해서 어떻게 살아.

키득거리며 사라지는 둘. A,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한다. 주위를 둘러보자, 사람들 자연스레 등장해 A를 힐끔거리고 A의 몸에 손가락질하며 지나간다. 웅성거리며 비웃는 소리. 얼마간의 시간을 두고 사람들은 또 사라진다.

B
아름다움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 거야. 세상엔 다양한 종류의 아름다움이 있으니까.
A
(충격 받은 듯, 멍하게) 난 언제까지 이 고통 속에서 시달려야 하는 거야?
B
간단하잖아. 아름다운 사람이 되면 돼.

B, 웃는다. A는 손톱을 물어뜯고 있다.

B
그 버릇 아직 못 고쳤네.
A
……
B
(일어서서 A를 지나쳐 퇴장하려 한다) 사람은, 니 생각처럼 쉽게 바뀌는 게 아니야. 더군다나 오래 세뇌 받아온 것이라면.
A
(정면 향해) 너 같은 사람들이 나를 망쳤어. 외모만 보고 판단하고, 구분 짓고…
B
(멈추고 A 돌아본다) 너, 막상 너라고 다를 것 같아? 모든 인간들은 똑같아. 자기는 아닐 거라 생각하고, 피해자인 척. 발만 쏙 빼는 거 말이야.
A
……
B
외모를 가린다고 사람들의 깊은 사고방식까지 바뀌는 건 아니지. 여전히 누군가는 외모로 사람을 판단해. 그건 너도 마찬가지고. (사이, 감정을 조금 가라앉히고) 내가 잘 나가는 성형의사가 될 수 있었던 건, 그만큼 성형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거고, 그만큼 외모가 중요하게 여겨지는 세상이었던 거지. 난 그저,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보고 배운 것뿐이야. ‘못 생긴 사람은 너에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한다.’ 다들 그러더라고.

B, 돌아서 갈 길 간다. 죄 지은 사람처럼 앉아있는 A. 문득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든다.

A
남의 일이라고, 나는 그렇지 않다고 방관하는, 당신들이 문제야. 한 사람의 인생이 당신의 짧은 시선으로 인해 좌지우지되는데, 어쩌면 그렇게 태평할 수 있나? 무서운 세상이야.

A 일어나 뒤돈다. 가면을 벗어 바닥에 떨어트리는 A. B가 갔던 방향으로 걸어서 퇴장. 떨어진 가면 향해 조명 모아진다. 어두운 음악 딤인.


마침.

호들갑 작가소개
1997년 12월 31일에 태어나 부산에서 20년을 살았어요. 지금은 동아대학교 한국어문학과에 다니면서 극예술연구회 활동을 하고 있어요. 앞으로도 극작가 겸 배우 겸 연출가로서, 늘 무대에 서있고 싶어요. 극장에서 다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