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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훈
109호
2017.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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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철수콜센터 천사 24번무대철수가 혼자 사는 좁고 허름한 반지하방. 그리고 무대 상수 쪽에 공간이 있다.철수의 방안에는 뜯어진 과자봉지와 비어있는 소주병이 어지럽게 놓여 있다.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소리가 소음처럼 들린다. 철수는 리모컨을 들고 멍하게 텔레비전을 보고 있지만 집중하고 있지는 않다. 그리고 다른 한 손으로 소주병을...
등장인물
철수
콜센터 천사 24번
무대
철수가 혼자 사는 좁고 허름한 반지하방. 그리고 무대 상수 쪽에 공간이 있다.
철수의 방안에는 뜯어진 과자봉지와 비어있는 소주병이 어지럽게 놓여 있다.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소리가 소음처럼 들린다. 철수는 리모컨을 들고 멍하게 텔레비전을 보고 있지만 집중하고 있지는 않다. 그리고 다른 한 손으로 소주병을 쥐고 병째로 마시고 있다.
- 철수
- 티브이도 재미없네. (리모컨을 눌러 티브이를 끄고 리모컨을 집어 던진다. 소주를 한 모금 마신다.) 눈을 낮추면 취업이 될 거라고 그러더니만 취업은 개뿔. (다시 소주를 한 모금 들이킨다. 문자 알람소리가 울린다.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문자를 확인한다.) 고객님 25일까지 연체금을 납부하지 못하실 경우 카드가 정지 될 수도 아 진짜. 정지시켜 이 새끼들아. (소주를 한 모금 마신다. 전화기를 만지작거리며 영희의 사진을 본다.) 눈물.. 언젠간 마르겠지. (피식 웃는다.) 이 년도 진짜 웃기네. 백수 새끼 미래가 안 보인다고 뻥 차버리고선 지가 눈물? 웃기지도 않네. (소주 한 모금 마신다.) 내 인생 왜 이러지? 대 낮에 반 지하방에 앉아서 드라마 재방송 보면서 혼자 술이나 마시고. 잉여네. 잉여. (한숨을 쉬며) 이렇게 숨 쉬는 것도 사치스럽네. 이렇게 살아서 뭐해. (남은 소주를 모두 마신다.) 죽으면 이렇게 힘들지는 않겠지? 지옥도 여기보다는 좋을 것 같은데.
- 철수
- 여보세요.
- 천사
- 안녕하십니까. 김철수님 되십니까?
- 철수
- 네.
- 천사
- 네. 김철수님 반갑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저는 천국 자살방지 협의회에서 일하는 콜센터 천사 24번입니다. 지금 자살하시려고 하셔서 이번에 나온 좋은 상품 하나 소개시켜 드리기 위해 이렇게 전화 드렸습니다.
- 철수
- 네? 어디라고요?
- 천사
- 네, 저희는 천국 산하기관인 자살방지 협의회고요, 새로 개발된 여러분의 인생을 다시 살게 해드리는 상품을 오늘부터 딱 3일간만 자살을 시도하시는 모든 분들에게 프로모션 행사를 진행 중 입니다.
- 철수
- 네? 그게 무슨 상품인데요?
- 천사
- 네. 매우 간단한데요, 김철수님이 지금까지 거의 30년을 살아오시면서 내가 다시 이때로 돌아가면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었을 텐데 라고 생각하신 적 있으시죠?
- 철수
- 네.
- 천사
- 그래서 저희가 이 상품을 개발 하였습니다. 김철수님이 지금까지 살아 온 시간 중에서 원하시는 시기를 말씀만 해주시면 저희가 다시 그때로 돌아가게끔 해드리는 겁니다.
- 철수
- 그럼 제가 10년 전이요 하면 10년 전으로 돌아가는 건가요?
- 천사
- 네 그렇습니다. 대신에 10년 전 이라고 하시면 오늘로부터 정확히 10년 전인 2006년 7월 13일 오후 3시 20분으로 돌아가시는 겁니다.
- 철수
- 진짜요?
- 천사
- 그럼요. 쉽게 오는 기회가 아닙니다. 서비스를 이용하기 싫으시면 그냥 죽으시려고 하시던 거 계속 하시면 됩니다.
- 철수
- 아니에요. 저 그 서비스 이용할래요.
- 천사
- 감사합니다. 김철수님. 그럼 언제로 돌아가시고 싶으신가요?
- 철수
-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는데 저희 집이 원래 되게 부자였거든요. 아버지가 사기당해서 가지고 있는 재산 모두 날리기 전까지만 해도요. 그때로 돌아가서 아버지한테 그 사기꾼 믿지 말라고 이야기 해주면 우리 집은 망하지 않을 거고, 그러면 저도 흙수저가 아닌 금수저 인생을 살 수 있잖아요. 그때로 돌아갈래요.
- 천사
- 네, 시기가 정확히 기억이 안 나신다고 하셨는데 제가 조회 해본 결과 아버님께서는 정확히 1990년 3월 7일에 모든 재산을 다 날리셨네요. 그럼 그 이전인 1989년 연말 정도로 돌아가시면 될까요?
- 철수
- 1990년 3월이요?
- 천사
- 네, 그렇습니다.
- 철수
- 그럼 26년 전이잖아요. 그럼 난 그때 대충 2, 3살인데. 말도 못하는 애기가 어떻게 아버지를 말려. 괜히 그때로 돌아갔다가 이런 거지같은 인생을 똑같이 또 살아야 되잖아. 안되지. 저 잠시 만요. 돌아가는 시기 바꿔도 될까요?
- 천사
- 네 물론입니다. 언제로 인생을 돌려드릴까요?
- 철수
- 음... 금수저는 힘드니깐, 그래.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가서 일류대학교를 나와서 자수성가 하는 거야. 내가 지금 학벌이 딸려서 취업을 못하는 거지 대학만 좋은데 나왔으면 취업 같은 거 아무것도 아니라고. 저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갈래요.
- 천사
- 네. 그럼 고등학교 1학년, 2학년, 3학년 시절 중 언제로 돌아가시겠습니까?
- 철수
- 음.... 잠시 만요. 만약 내가 다른 대학을 가게 되면 신입생 때부터 함께 했던 그 친구들 다 못 보는 거잖아. 그리고 1학년 과 엠티 때 만난 내 첫사랑 소영이도 못 만나는데... 그래. 대학은 일단 원래 갔던데 들어가고 좋은 대학으로 편입을 하는 거야. 저 고등학교 시절 말고 대학교 2학년 끝날 때 정도로 돌아가고 싶은데 괜찮은 가요?
- 천사
- 또 마음이 바뀌셨군요. 네. 물론 가능합니다. 대학교 2학년 마치시고 언제 정도로 해드릴까요? 지금 보시니깐 3학년 마치시고 5월에 군대를 가셨었는데 그 이전으로 해드릴까요?
- 철수
- 아. 맞아. 군대. 잠시 만요. 군대를 어떻게 또 가... 그래도 엄청난 기회인데 놓치면 안될 거 같은데... 아,,, 그런데 군대.... 어떻게 또 가냐고.... 그래도 군대에서 참 재밌는 일도 많았고 좋은 사람도 많았는데... 저 질문 있는데요, 제가 군대를 또 가게 되면 제가 나왔던 부대로 다시 들어 갈 수 있는 건가요? 만약 그렇게 된다면 2학년 마친 시점으로 돌아가도 될 거 같은데요.
- 천사
- 아, 그건 저희가 확답을 못 드립니다. 이 상품은 김철수님이 원하시는 때로 다시 시간을 돌려드리지 그 이후의 살아가시면서 생기는 일은 지금까지 살아 오신대로 김철수님께서 책임을 지셔야 합니다.
- 철수
- 그럼 확실하지 않다는 거네요.
- 천사
- 네 그렇습니다.
- 철수
- 그럼.... 잠시 만요. 그럼 어쩌지? 그래. 군대 갔다 와서 편입준비해도 되겠지... 그럼 저 군대 전역하고 난 뒤로 정해볼게요.
- 천사
- 네. 그런데 군대 전역하신지 2년 정도 되셨는데 그 중에 언제로 해드릴까요?
- 철수
- 그러니깐.... 음.....
- 천사
- 네. 천천히 생각하셔도 됩니다.
- 철수
- 그러니깐....... 저 그냥 안 할래요.
- 천사
- 네? 안 하신다고요?
- 철수
- 네. 그냥 살래요.
- 천사
- 아니, 방금 전까지 자살하시려고 하신 거 아니었나요?
- 철수
- 네. 그런데 지금까지 살아온 거 되돌아보니깐 그리 나쁘지도 않네요. 가족도 있고, 친구도 있고. 사랑했었던 추억들도 있고. 그리고 다시 돌아가면 뭐해요. 어차피 내가 했던 일들, 똑같이 하겠죠.
- 천사
- 지금까지 줄곧 남 탓만 하셨는데 괜찮으신 건가요?
- 철수
- 네. 괜찮아요.
- 천사
- 알겠습니다. 김철수님. 그래도 혹시 마음이 바뀌시면 오늘처럼 소주 3병 병째로 드시고 3일안에 다시 한 번 자살시도해 주세요. 그럼 다른 콜센터 천사가 전화드릴 수도 있습니다.
- 철수
- 네. 알겠습니다.
- 천사
-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자살방지 협의회 콜센터 천사 24번이었습니다. 즐거운 하루되세요.
- 철수
- 그래. 그리 나쁘진 않았어. 꽤 잘 살고 있었어.
철수는 잠시 생각을 하다가 무엇인가 홀린 듯이 일어나 의자를 가져와 무대 중앙에 놓는다. 그리고 넥타이를 꺼내 천장에 매단다. 서서히 넥타이 안에 목을 집어넣는다. 전화벨 소리가 울린다. 철수는 멈칫하면서 주저하다가 전화를 받는다. 철수가 전화를 받으면 무대 상수 쪽 공간에 조명이 들어오면서 천사가 콜센터 이어폰을 끼고 있다.
철수는 전화기를 바라보며 살짝 미소 짓는다. 전화기를 주머니에 넣고 천장에 매달아 놓은 넥타이를 풀고 의자에서 내려온다.
철수는 흩어져 있는 소주병과 과자 봉지를 정리한다. 암전.
- 호들갑 작가소개
- 재밌게 살고 싶습니다. 다 함께 즐겁게 살고 싶습니다. 우리의 삶에 행복이라는 의미를 더하고 싶습니다. 최소한 우리가 함께하는 무대 위에서만이라도.
독자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