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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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
노인(60대 중반)
노파(60대 중반)
알바생(20대 초반)
겨울, 교외의 찻집 안. 식어버린 커피 잔을 두고 두 노인이 마주 보고 앉아 있다.
노파, 연신 찻잔을 만지작거리고 있고, 노인은 노파의 손을 바라보고 있다.
창밖에는 눈이 조금씩 내리고 있다. 두 사람의 머리에도 흰 눈이 내려앉았다.
장례식에 다녀온 두 사람의 검은 옷차림.
- 노인
- 허리는 괘아녀?
- 노파
- 응, 그 뭐시냐, 운동.. 뭐시기..치료 센터? 그런 게 있다대?
- 노인
- 다행이어. 허리 수술 함부로 하능 거 아닝게.
- 노파
- 내 허린디 뭔 상관이댜.
- 노인
- 걱정을 해줘도 지럴이네?
- 노파
- 아따, 퍽이나 걱정이여?
- 노인
- 홍가네가 디스큰지 무시긴지 그거 잘못해갖고 마비가 와가지고 합병증 와갖고.. 이짝 난거 아녀.
- 노파
- 멀리도 가네.
- 노파
- (노인을 슬쩍보며) 죽을까비 걱정이여?
- 노인
- 그라믄, 안혀?
- 노파
- 가능 거 순서 없응게. 아따, 참말로 시끌시끌 허대. 밤새는 인간도 허다하고.. 화환두 많구.
- 노인
- 홍가네가 사람이 참 좋았자녀. 안팎으로 두루두루 사람도 잘 챙기고. 양반두 그런 양반이 없었지.
- 노파
- 그런 양반 장례식에서 그렇게 썽을 냈댜?
- 노인
- 쌍노무자식들이 호상,호상 해쌌는디 썽이 안나? 호상이 어딨어? 사람 죽는데?
- 노파
- 긍게. 그 망할 놈의 호상 땜시 안 봐도 될 얼굴까지 보네.
- 노인
- 안 봐도 될 것 같으문 뭐더러 여기까지 따라 왔댜.
- 노파
- 이런 건 또 어디서 처발라가지고 왔대? 홀애비 냄시나게시리. 아들메느리 욕이나 멕이지?
- 노인
- 뭐여?
- 노파
- 어이구..
- 노인
- (싫지는 않은 듯)귀찮게 스리.
- 노파
- (점점 더 세게 닦으며) 아이구, 쭈글쭈글 다 쭈그렁방탱이네이?
- 노인
- (노파의 손을 치우며) 에이, 치워? 자네는 거울 안 보는가?
- 노파
- 승질머리하고는..
- 노인
- 그려, 어디 가간디? 평생 이러고 살랑게.
- 노인
- 안 물어보능가?
- 노파
- 뭐시기를?
- 노인
- 뭐하고 지내능가..
- 노파
- 얼굴 매꼬롬 한 것이 배때지 불렀고만 뭘.
- 노인
- 말혀. 뺑뺑이 돌릴 거 읎어.
- 노파
- (웃으며) 작두 타야겄네, 늘그막에.
- 노인
- 이렇게 순순히 따라나성게 어디 있을 법한 일이어야지? 천지가 개벽허고 천지가 공로..
- 노파
- 아이고, 누가 들으면 노망난 줄 알 것네. 뭐 갈라서고 첨 보간?
- 노인
- 말혀.
- 노파
- …홀애비 냄시가 진동허네. 이렁게 누가 오지도 안능겨.
- 노인
- 결국 그 치한테 갈라나부네?
- 노파
- ….
- 노인
- 내 이럴줄 알았지?
- 노파
- 당신이 내 속을 어찌 알어.
- 노인
- 얼굴에 대문짝만허게 써있구만 무얼.. 다 늙어가지고 쫓아 댕기는 영감도 있고, 잘 되았고마이.
- 노파
- 저,
- 노인
- (말 끊으며) 미안허다, 뭐 그런 소리 하지 말어?
- 노파
- 암 말도 하지 마?
- 노인
- 이 나이에 뭘 그렇게 미안해혀. 나능 암시랑토 안항게. 글고 나 좋다는 아지매들 쎄고 쎘네!
- 노파
- 남원댁..
- 노인
- 응? 이렁거는 기싱같이 기억허네?
- 노파
- 망할 놈의 여편네 함바집에 실실 쪼개면서 맨날 당신한테 덤벼 들었잖여? 내가 눈 시퍼렇게 뜨고 옆에서 쳐다보고 있는 대도!
- 노인
- 질투도 하구 아주 가지가지 혔네.
- 노파
- 내가 뭐 나무 토막이간.
- 노파
- (수그러진) 뭐.. 잘 되얐어?
- 노인
- 뭐가?
- 노파
- 손은 야무징게 (노인 옷 가리키며) 거기 옷튿어진거능 잘 꼬매것지.
인자 홀애비 냄시도 안나겠네이. - 노파
- 이제 그만 일어나게. 이러다 백날천날 있겄네.
- 노파
- 앞장서? 눈 더 쌓이면 꼼짝 없응게..
- 노인
- 아이고, 지 할 말만 하고 홀랑 나갈라고?
(창밖을 가리키며) 곱게도 오는 고만. 조금만 더 있어봐. 오랜만이잖여. - 노파
- (창밖을 보며) 곱기야.. 곱지.. 한정없네이..
- 노인
- 소리도 없이 오네이... (슬쩍 다가가며)
- 노파
- (비껴서며) 바퀴에 감는 거 그거 있당가?
- 노인
- (조금 더 다가가며) 허따.. 온 시상 다 덮어버렸으면 좋것네이..?
- 노파
- (한숨) 녹으면.. 다 그대론디. 뭐가 변하간디..
- 알바생
- (차를 따르며)차 좀 더 드릴게요.
- 노인
- (반사적으로) 응, 응, 고맙고마이?
- 노인
- 예나 지금이나 여긴 눈이 참 고와..?
- 노파
- 좋았지..
- 노인
- 그랬지.
- 노인
- …일어날까?
- 노파
- (찻잔 가리키며) 인자 받았는디?
- 노인
- 거시기, 바퀴에 체인 없응게. 가드라고.
- 노파
- 아까 와서 어찌 남겨.
- 노인
- 하나쯤은.. 하나쯤은 새 걸로 남겨두면 안되야?
- 노파
- (커피를 보며 들릴 듯 말듯하게) …그럴까?
- 노파
- 내가 낼라네.
- 노인
- 아니여, 내가 내야지. 내가 앞장 섰응게.
- 노파
- 저녁도 샀잖여? 긍게 내가..
- 노인
- (버럭) 싫여?!
- 노파
- 왜 그런댜…
- 노인
- 내가 낸다잖여.
- 노파
- 돈 몬내서 죽은 기싱 붙었능가?
- 노인
- 왜 이렇게 고집이 세?
- 노파
- (크게 한숨) 그럼 이려. 반반 냐.
- 노인
- 이 할망탱이가 진짜!
- 노파
- 끝까지 이럴라고?
- 노인
- 이것도 빚지는 거 같간?? 뭔 놈의 자존심이 글케 중혀?
- 노파
- 이제 못 갚응게.
- 노인
- 갚으면 되자녀.
- 노파
- 쭈그러진 얼굴 뭐더러 또 본댜..?
- 노인
- 다신 안 볼라고?
- 노파
- 또.. 언제 보겄어.. (토닥이며) 내가, 낼게요이?
- 노파
- 고마워요이.
- 노인
- 뭐가….
- 노파
- 같이 눈 봐줬응게...?
- 노인
- (퉁명스럽게) 녹으면 끝인디?
- 노파
- 그래도.. 퍽 고웅게.
- 노파
- (눈을 보며) 허따.. 참말로 한정없다. 곱다. 고와...
노파, 흘겨보다가 노인에게 손을 뻗는다.
노파, 침을 묻혀 노인 입가의 치약 자국을 닦아준다.
노파, 기가 막힌 듯 보고 피식 웃는다.
사이. 노파 컵을 만지작 거린다.
사이
노파, 타박하며 노인의 옷깃을 살짝 잡고 털어준다.
노인은 그 모습을 지켜본다.
사이
노인, 노파를 보고 빙그레 웃는다. 노파, 모른척한다.
사이. 노인 어렵게 입을 열려고 할 때, 말을 막는 노파.
사이
사이
사이. 투블럭 머리를 한 남자 알바생이 따뜻한 차를 내온다.
김이 올라오는 찻잔을 말없이 내려다보는 노인. 노파, 톡,하고 노인을 건드린다.
알바생, 상냥하게 웃어보이고 퇴장한다. 노인, 알바생의 뒷모습을 그리운 듯이 본다.
잠시 노래 듣는다. 노파, 소리 없이 웃는다.
창밖을 보는 두 사람.
긴 사이
노인, 테이블 위의 계산서를 잡으려는데 노파가 노인의 손목에 빠르고 가볍게 손끝을 댄다.
멈추는 노인. 노파를 향해 천천히 고개를 돌린다.
사이
사이
노인 버럭 화를 내려는데, 노파, 노인의 손목을 감싼다.
사이
사이. 노파, 계산서를 들고 일어서면 노인의 어깨를 토닥이며, 같이 카운터로 나가려고 한다.
노인, 어정쩡하게 노파를 뉘따른다.
노파, 웃으며 일어나서 계산하려다가 노인을 향해 돌아선다.
노인, 창밖을 본다. 눈이 펑펑 나린다.
노인, 차마 노파를 보지 못한다. 노파, 계산하고 나간다. 알바생,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지만 말을 걸 지는 못한다. 노인, 천천히 가게를 둘러보고 가게를 나선다. 눈이 더 펑펑 내리기 시작하고, 커피 잔에 서는 여전히 김이 모락모락 솟아오른다. 까페 문에 달린 종소리가 울린다.
문간에 서서 두 사람의 뒷모습을 지켜보는 알바생. 막.
- 호들갑 작가소개
- 본명입니다. 얼마 전에 누군가 저의 8할은 눈물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글을 쓸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