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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馬)

조세웅
110호 2017.02.23
등장인물나청춘(20대 초반,)정동호(20대 초반, 재벌 3세)남진석(20대 초반, 정치인 2세)최시리(20대 초반, 무속인 3세)변호사(50대 초반)무대에 의자와 테이블이 놓여 있다. 변호사 등장해 무대 중앙에 위치한다.변호사 :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저는 변호사입니다. 저는 한 부자...

등장인물
나청춘(20대 초반,)
정동호(20대 초반, 재벌 3세)
남진석(20대 초반, 정치인 2세)
최시리(20대 초반, 무속인 3세)
변호사(50대 초반)

무대에 의자와 테이블이 놓여 있다.
변호사 등장해 무대 중앙에 위치한다.

변호사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저는 변호사입니다. 저는 한 부자의 담당 변호사였습니다. 그는 말을 무척이나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에게는 누구나 탐낼 만큼 훌륭한 말 한필이 있었습니다. 그랬던 그가 얼마 전 숨을 거두면서 유언을 하나 남겼습니다. 바로 훌륭한 젊은이에게 자신이 사랑하는 그 말을 물려주라는 얘기였지요. 그래서 담당 변호사인 제가 적합한 젊은이를 찾아 말을 전해주게 되었습니다. 저는 오늘 그 후보자들을 만나기로 했습니다.

변호사 의자에 앉는다. 나청춘 등장.

변호사
그래, 말을 가지고 싶다고?
나청춘
네, 그렇습니다.
변호사
어째서 말이 필요한지 설명하지?
나청춘
네, 저는 지금 승마 선수로 활동하고 있으며 최근 국내 승마 대회에서 금메달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이번 국제 대회에서 탈 말을 구하기 위해서…
변호사
넌 따로 말이 없니? 여태까지 어떻게 승마대회에 나간거지?
나청춘
네, 승마학교에서 대여해주는 말을 타고 그동안 대회에 출전했습니다. 그렇지만 국제 대회에서는 개인용 말로밖에 출전이 안 되서...
변호사
자기 말도 없이 용케도 금메달을 땄네?
나청춘
그만큼 노력했다고 자부합니다!
변호사
(고개를 돌리고) 흔하디흔한 노력하는 흙수저네.
나청춘
네?
변호사
아니야, 알겠어.

정동호, 남진석 등장.

정동호
(건들거리며)안녕하세! 변호사님!
남진석
안녕하세요. 변호사님.

정동호와 남진석은 서로를 못마땅하게 쳐다본다.

변호사
아니, 자네들은!
정동호
저 아시죠? 칠성그룹의 정동호에요.
변호사
알고말고. 정 회장님은 잘 계시고?
정동호
우리 집 노인네야 몸에 좋다는 건 다 먹어가지고 너무 건강해요.
변호사
하하, 이 사람도 참.

남진석은 정동호와 변호사 사이에 끼어든다.

남진석
안녕하세요, 변호사님. 오랜만에 찾아뵙습니다. 저 남진석입니다. 저 기억하세요?
변호사
당연히 기억하고말고! 오랜만일세, 진석군. 그나저나 자네 아버님이 이번에 당대표가 되셨다고!
남진석
감사합니다. 이게 다 변호사님처럼 훌륭하신 분들이 도와주신 덕분입니다.
변호사
아니, 내가 한 게 뭐가 있다고. 어쨌든 아버님께 축하한다고 전해드리게.

정동호가 남진석과 변호사 사이에 끼어든다.

정동호
아, 그런데 요즘 경기가 안 좋아서 큰일이에요.
변호사
그러게 말이야.
정동호
그래서 아버님께서 요즘 힘들어하시는데 노조다 뭐다 하는 것들 때문에 더 힘들어하시는 것 같아요.
변호사
아니, 자네 아버님처럼 나라 경제에 이바지 하시는 분이 어디 있다고!
정동호
그러니까요, 그렇지만 저희 아버지께서 요즘 즐기시고 있는 게…
변호사
요새 말을 모으시는 취미가 생겼다고!
정동호
네, 그래서 말인데, 제가 사업으로 힘드실 아버지께 드릴 선물을 찾고 있거든요.
변호사
세상에 둘도 없는 효자네, 효자! 아버지께서 아들을 훌륭하게 키우셨어. 그렇다면 혹시 그 선물이라는 게?
정동호
네, 바로....

남진석이 정동호와 변호사 사이에 끼어든다.

남진석
그나저나 이제 슬슬 선거철이 다가오겠네요.
변호사
음? 듣고 보니 그렇군.
남진석
요새 경기도 안 좋아서 선거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 모르겠어요. 저희 아버지께서도 그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계신 것 같아요.
변호사
아니, 나랏일 하시느라 바쁘실 텐데 선거까지 신경 쓰셔야 하니, 쯧쯧. 내 생각에는 자네 아버님처럼 큰 정치인은 선거를 치르지 않아도 국회의원을 할 수 있도록 해야 돼! 어차피 당선되실 텐데 뭐 하러 4년마다 고생을 해?
남진석
하하, 변호사님도 참. 그건 그렇고 변호사님, 실은 제가 한국 승마협회 청년 위원이거든요.
변호사
자네같이 훌륭한 젊은이가 승마에 관심을 가지다니, 한극 승마의 미래가 아주 밝아!
남진석
그래서 말인데 변호사님, 요새 승마협회에 좋은 말이 부족해요, 그런데 마침 변호사님께서...

정동호가 남진석과 변호사 사이에 끼어든다.

정동호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 변호사님, 실은 변호사님께서 가지고 계신 말이 실은 예전부터 저희 아버님께서 갖고 싶어 하던 말입니다. 아버지를 위한 선물로 말을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남진석
넌 왜 자꾸 내가 말하는데 끼어들어. 아닙니다, 변호사님. 저야말로 그 말이 필요합니다. 저는 제 개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한국 승마의 발전을 위해서 그 말을 승마협회에 기부하고자 합니다!

정동호와 남진석은 서로 노려본다.

정동호
변호사님, 이건 제 성의.(품 안에서 흰 봉투를 꺼내 변호사에게 건넨다.)
변호사
아니, 뭘 이런 걸다.

변호사가 봉투를 받으려는 것을 남진석이 낚아챈다.

남진석
아니, 지금 뭐하는 거야! 지금 변호사님이 이런 거에 넘어가실 분으로 보여?

변호사는 앞으로 내민 손을 뒤로 뺀다.

정동호
넌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남진석
뭐긴 뭐야. 이거 뇌물이잖아.
정동호
뇌물이라니, 무슨! 이건 기부야!
남진석
기부라고?
정동호
변호사님처럼 훌륭하신 분께서 좋은 일에 쓰시라고 드리는 돈이니까 당연히 기부지.
남진석
어디서 뻔한 수작을 부려. 변호사님께서 너 같은 줄 알아? 그렇지 않습니까, 변호사님?
변호사
응? 아니, 꼭 그렇지만은 아니면서도...뭐랄까, 어차피 말의 주인은 가려져야 하니 기왕이면 서로에게 좋은 결과가 생긴다면 뭐 바랄게 없달까. 게다가 의뢰인도 돌아가셔서 지금 내 사정이...그래서 말인데 말이야 어차피 말의 주인이 정해져야 한다는 말이지. 그러니 말에 대해서 이런 말 저런 말 해봤자 말이야 기왕이면 내 말이 어떤 말이냐면, 말이 누군가에게 꼭 주어져야 한다는 말이다 이 말이야...
남진석
(휴대폰을 꺼내며) 네 아버지, 아 공천이요? 아, 그러고 보니 곧 다음 공천이 얼마 안 남았네요. 그런데 저보고 후보를 추천해보라고요? 글쎄요, 제가 아시는 분들 중에서...
변호사
자네 같은 훌륭한 젊은이에게 주어져야 하는 게 마땅하다, 이 말이야! 고인께서도 살아계셨더라면 자네처럼 말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꼭 말을 전하셨을 걸세!
정동호
지금 뭐하는 거야! 이런 식으로 뒷거래를 하다니!
변호사
흠흠, 뒷거래라고 하기 보다는...
남진석
뒷거래라니, 무슨 말이야! 나는 내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한국 승마의 발전을 위해서 대한승마협회에 말을 기부 하려는 거야!
정동호
참나, 누가 정치인 자식 아니랄까봐 앞에서는 점잖게 굴면서 뒤에서는 수작부리긴. 이게 누굴 바보로 알아? 네 아버지가 승마협회 명예회장이잖아. 저번에 네가 SNS에 국민 수준이 낮다느니 이상한 막말을 해서 아버지에게 찍혀서가지고 지금 말을 받쳐서 잘 보이려고 그러는 거 아냐!
남진석
누가 재벌 자식 아니랄까봐 버릇없이 굴긴. 야, 너 내가 모를 줄 알아? 너야 말로 네가 저번에 회사 직원에게 갑질 해서 난리가 난 것 때문에 아버지에게 찍혀서 그걸 만회하려고 말을 갖다 바치려는 거잖아! 어디서 아버지께 드리는 선물? 어디서 되지도 않는 효자 코스프레야!
남진석
어떻게 수준 떨어지게 사람을 돈으로 매수를 하려고 해? 돈이면 다 되는 줄 알아?
정동호
피차일반이야! 권력을 미끼로 사람을 유혹하다니, 누가 보면 네 아버지가 아니라 네가 국회의원인줄 알겠다.
남진석
아버지 권력이 다 내 권력이야. 너야 말로 네가 쓰는 그 돈이 다 네 돈인 줄 알아?
정동호
어차피 나중에 가면 다 내 돈이야.
정동호
돈이 최고지.
남진석
돈보다는 권력이지.
정동호
이런 정치인 자식이!
남진석
이런 재벌 자식이!

정동호와 남진석은 서로의 멱살을 잡는다.

변호사
(어쩔 줄 몰라 하며)아니, 자네들 둘 다 왜 그래.
나청춘
변호사님, 지금 저 두 사람 중 한 명에게 말을 주시려는 거예요? 버릇없는 재벌 자식하고 겉과 속이 다른 정치인 자식 둘 중 한 명에게?
정동호, 남진석
뭐라고?
변호사
흠흠, 자네 아직도 있었나?
나청춘
네, 처음부터 지금까지 계속 있었습니다. 변호사님하고 저 재벌하고 정치인 자식들이 무슨 얘길 하는지도 들었구요. 변호사님, 저하고 저 애들에게 하는 행동이 왜 그렇게 다르세요? 네? 변호사가 아니, 어른이 그래도 되는 거예요?

변호사는 나청춘의 말에 딴청을 부린다.

정동호
참나,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궁금하지도 않고. 어쨌든 세상이 원래 이런 거 몰라?
남진석
이보세요, 당신은 그러는 당신은 지금껏 살면서 한 점 부끄러움도 없이 살았어요?
나청춘
적어도 당신들같이 돈과 권력을 함부로 휘두르진 않았어.
정동호
휘두를 돈과 권력이 없었겠지.
남진석
당신이 돈과 권력이 있으면 우리랑 다를 것 같아?
변호사
자자, 이제 그만들 하지. 나청춘 양, 내가 말을 자네에게 주지 않을 것 같다고 해서 사람을 그런 식으로 음해해도 되는 건가?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하고 싶지 않으면 가만있게.
나청춘
당신들 정말....

최시리 등장. 무속인 복장을 입고 비싼 명품 백을 둘렀다.

최시리
모두들 잠깐!
남진석, 정동호
뭐야?
변호사
아니, 너는?
최시리
안녕하세요, 변호사님. 최시리에요.
나청춘
쟤는 또 뭐에요?
남진석
아 너는 그 말로만 듣던 비선실세의 딸?
정동호
뭐? 걔가 쟤야?
나청춘
비선실세?
변호사
그, 그래. 근데 여기는 어쩐 일이니?
최시리
변호사님, (변호사에게 다가가면서) 실은 제가 이번에 승마특기자 전형으로 대학에 가야 하거든요. 공부에는 관심 없지만 그래도 대학 졸업장은 따 놓는 게 좋으니까요. 그렇지 않나요?
변호사
그, 그렇지. 대학이 무척 중요하지.
최시리
그런데 승마대회에서 말이 참 중요하단 말이에요. 솔직히 말이 승마대회 성적 대부분을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그런데 변호사님께서 매우 좋은 말을 가지고 계신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변호사
아, 그렇구나. 그런데 그게 말이야, 실은 이미 말 주인이...
정동호
말 주인은 벌써 가려졌어!
남진석
말은 내꺼야!

최시리는 정동호와 남진석을 훑어본다.

최시리
어머, 재벌 자식이랑 정치인 자식이잖아. 근데 너희 캐릭터가 너무 정직한 거 아니니? 너무 뻔하다. 너네 같은 캐릭터는 드라마나 영화에 너무 자주 나와서 이제는 질려. 재벌이랑 정치인, 너무 흔하디흔하잖아. 내말이 틀려? 이제는 사람들은 새로운 걸 원한다고. 안 그래요 변호사님?
변호사
응? 그, 그렇긴 한데...
정동호
뭐라고!
남진석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야?
최시리
내가 너희들이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캐릭터를 보여줄게. 변호사님은 누구의 변호사시죠?
변호사
나? 나는 원래 돌아가신 회장님 담당 변호사였지. 그런데 이제는 돌아가셨으니...
최시리
그렇다면 만약 돌아가신 회장님께서 말의 주인을 결정하시면 그대로 따르시는 건가요?
변호사
음? 그게 무슨 말이니?
최시리
제가 비선실세의 힘을 보여드리죠.

최시리가 명품백에서 십자가와 목탁을 꺼낸다.

최시리
오 아싸라비야 콜롬비야! 나무아미할레루불앗살라알랄리쿰사와디캅헬로봉쥬암욜맨링기리디기링딩동진진자라지리지리픽미픽미픽미업얍!(꼭 이렇게 주문을 외울 필요는 없다.)

최시리가 주문을 외우며 춤을 춘다.
조명이 깜박거린다. 바람이 세차게 부는 소리와 천둥번개 소리가 들린다.
정동호와 남진석은 겁에 질린 채 서로를 껴안는다. 나청춘은 놀라서 최시리를 바라본다.
최시리가 눈을 뒤집은 채 굵은 남자 목소리로 말한다.

최시리
변호사!
변호사
아니, 설마!
최시리
날세!
변호사
회장님!
최시리
내가 남긴 유언을 잘 처리하고 있나?
변호사
아니, 저 그게…
최시리
설마 재벌이나 정치인 자식에게 말을 물려주려는 건 아니겠지?
변호사
아니 그게 아니라...죄송합니다, 회장님 죽을죄를 졌습니다!
최시리
생명줄이라고 할 만큼 중요한 내 유언을! 이런 해도해도않되는 망할새끼 같으니라고!
변호사
잘못했습니다. 용서해주십시오, 회장님!
최시리
지금 내가 빙의해 있는 이 아이야 말로 진정한 말의 주인일세!
변호사
(무릎을 꿇고 빌면서) 네 맞습니다! 맞습니다! 최시리가 말의 주인입니다!

최시리 변호사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최시리
변호사님, 그럼 제가 말을 가지는 게 맞죠?
변호사
그래, 그래! 네가 말의 주인이야!
최시리
네, 그럼 변호사님만 믿을게요.

최시리는 입을 벌리고 있는 나청춘, 정동호, 남진석을 본다.

최시리
부럽니? 이런 능력 없으면 너네 부모를 원망해. 이것도 다 실력이야. 그럼 이만.

히히히힝!하는 말소리가 들린다.

최시리
달그닥 훅! 달그닥 훅!

최시리는 말 타는 시늉을 하며 퇴장한다.

변호사
서류를 작성해야하는데! 앗, 첨부가 되질 않았습니다! 시리양, 잠깐만요!

변호사는 최시리를 쫓아간다.

정동호
맙소사. 이거 장르가 뭐야. 내부자들 찍다가 갑자기 곡성이 튀어나왔어.
남진석
세상에, 현실이 상상을 뛰어 넘었어. 저런 캐릭터는 진짜로 처음 보는데.

정동호, 남진석 퇴장한다.

사이

나청춘 홀로 무대에 서있다. 암전이 되고 조명이 나청춘을 비춘다.

나청춘
결국 말의 주인은 재벌도, 정치인도 아니라, 기독교인지, 불교인지 무교인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사이비가 되었습니다. 저도 그런 건 또 처음 봤네요. 저는 제가 살던 세상에 상식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렇지만 상식이란 것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제가 알던 세상은 무너져 버렸습니다. 결국 세상에서 발버둥을 쳐봤자 무슨 소용일까요? 열심히 공부해봤자, 부지런히 일해 봤자,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봤자 뭐하죠? 저는 지금, 우리 엄마 아빠가 보고 싶습니다.

천천히 암전이 된다.

막

호들갑 작가소개
생각지도 못하게 좋은 소식을 받았습니다. 부족한 점이 많지만 선정해주신 심사위원분들께 정말 감사합니다. 눈에 띄는 작가 소개를 쓰고 싶지만 아직은 부끄러움이 많아, 함께 글을 써준 우리 ‘한량한량’ 대본 소모임 멤버들에 대한 감사의 인사로 대신 하려고 합니다. 정환 선배, 연하, 민형, 명선, 화승 다들 고마워요! 여러분 덕분에 제 작품이 선정될 수 있었어요!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글을 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