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왕녀들을 위한 파반느
한나래
112호
2017.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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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룸. 이케아표 소파 하나에 침대 하나. 모던한 방이다. 샷시가 없는 창문. 방의 왼쪽엔 빨래 거치대와 살색 스타킹이 널려 있다. 중앙 테이블에 치킨과 소주, 핸드폰이 올라가 있다. 마주보고 치킨을 뜯으며 이야기하는 여자 두 명. 경상도 사투리.
원룸. 이케아표 소파 하나에 침대 하나. 모던한 방이다. 샷시가 없는 창문.
방의 왼쪽엔 빨래 거치대와 살색 스타킹이 널려 있다.
중앙 테이블에 치킨과 소주, 핸드폰이 올라가 있다.
마주보고 치킨을 뜯으며 이야기하는 여자 두 명. 경상도 사투리.
(‘짠’ 잔을 친다.)
- a
- (핸드폰을 뒤지며) 야 유진이 언니는 피아노 학원하면서 고급스럽게 엄청 잘사는 거 같더라.
- b
- (치킨을 뜯으며) 뭐가.
- a
- 막 엄청 샤방샤방하게 집도 꾸미고.
- b
- (핸드폰을 들여다보지도 않는) 뭐라하노.
- a
- 인스타그램에 그래 나와 있는데.
- b
- (술잔을 들며) 술 취했나. 인스타그램의 노예네. 니는 내 예전 SNS를 보고도 그라나.
- a
- 그래도 그 언니는 진짜 좀 고급지다. 원래 집이 잘 살았어.
- b
- 미쳤나. 우리 집도 잘 사는데. 내가 구질구질하게 살아서 그렇지.
- a
- 아 맞네 니 의사 집안 엄친녀. 자꾸 까먹는다. 니는 왜 구질구질하게 사는데.
- b
- 비싼 거 두르고 살아도 구질구질 할 때는 다 구질구질 하다.
속이 구질구질하든 겉이 구질구질하든. 그리고 내 부모 돈이 내 돈이가?
내가 번 돈이 내 돈이지.(‘짠’ 잔을 친다.)
- a
- 근데 유진이 언니는 진짜 행복한 것 같은데.
- b
- 뭐 니가 그렇게 보이면 그런 거겠지. 니는 행복하지 않나?
- a
- 행복한 건가요? ‘로얄알버트’ 찻잔 하나 없는데.(웃음)
- b
- (웃음) 니가 한 번 허세 짓을 해봐야 뭐가 허세인줄 안다. 그냥 보는 거로는 계속 몰라.
- a
- 허세 짓 하고 있잖아. ‘로얄알버트’ 특가 검색.
- b
- 잘하네. TWG 티세트도 같이 사셔야죠. 흐흐 왜 SNS에 여태 속고 앉아있노.
- a
- 자주 안하니까 모르지.
- b
- 진짜 허세 짓의 완성은 SNS다. 허세 팔이 동네에서는 자주 해주야 모여들고
무시를 안 하더라고. 한 번 해봐라. 아주 끝을 보면 누가 허세 짓 하는지 금방 보인다.
속아주면서 댓글다는 것도 창피하다 창피해.(혼자 술을 들이키는) - a
- (같이 술을 마시는)
- b
- 무엇을 허세라고 하는지 나는 이 집단에서 학-실하게 배운다.
살아볼끼 라고. 내 그저께 올린 와인 사진 봤제?
무슨 청담동에서 유명한 집이라나 뭐라나. 맛있긴 하던데 거기서 네 명이서
백만 원 나온 거야. 야 근데 천 원 단위까지 나누는데 그래 살 일이가? 이라면서 동기 모임 나가고 있다. - a
- 푸흐흐흐. 항상 있는 일이지.
- b
- 근데 외국 가서 팁은 딱 일 달러 준단 말이야. 내가 오불주면 미쳤다고 한다.
- a
- 야, 일불이면 되지 뭘 더 주노. 그리고 돈은 확실하게 갈라야지.
- b
- 백 원 단위까지 나누는 애가 사진은 또 제일 허세로 올려요. 와인 잔 기울이다 찍고. 알제 먼지. 푸흐흐gm. 간만에 목 축인다면서. 잘 모르지만 즐겨 마신다면서 겸손한 척하고 알제. 요가 포즈 사진 올리고 좋은 집에 시집갈라고 뒤에서 이 남자 저 남자 다 만나다가 결국 사기꾼 만나고. 그런 애들.
- a
- 푸흐흐흐 잘 알지.
- b
- (고개 절레절레 하는)
(‘짠’ 잔을 친다.)
b는 소주잔과 테이블을 맞추어 핸드폰 각도를 위로 하여 10장정도 사진을 찍는다.
a는 알아서 몸을 뒤로 빼 준다. - b
- 태그당산 태그간만에 태그한잔 사람태그 ukb.. 난 그래도 약간 담백하지 않나.
띵동. a에게 태그 알림이 온다.
a는 침대에서 핸드폰을 들고 와서 확인한다. - a
- 닌 진짜 사진 잘 찍네 이쁘게. 우째 이런데서 이런 사진을 찍노.
- b
- 그게 SNS의 기본 아니겠나. 그 다음이 유료 포샵 어플.
(b는 핸드폰을 보면서 정기적으로 클릭 클릭 하며 화면을 올린다) - a
- 그게 먼데.
- b
- 야. 백 날 말해줘도 모르노. 삼천 원 정도면 떡을 친다.
- a
- 아아 어플. 스프링도 있던데.
- b
- 다리 길게 하는거 아니가. 그건 나는 안 한다.
- a
- 왜 이미 다리 길어서?
- b
- 아니 그건 진짜 양심상 못하던데.
- a
- 크흐흐흐흐
- b
-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아이가. 다른 사람들이 혹하게 사교적으로 가야지.
다 비즈니스다. 셀프 브랜딩 모르나. 셀프 포장. - a
- 미친.
- b
- (핸드폰을 침대로 던지며) ...질린다.
- a
- 안하면 되잖아.
- b
- (급 화색) 또 올리면 재미있긴 해? 좋아요 막 올라가면 기분 좋고.
- a
- 니는 진짜 이랬다 저랬다 미쳤다.
- b
- 이런 삶을 원하지 않는다 나도. 나도 이제 관종이 다 되었나보다.
누가 악플을 달든지 말든지 보든지 말든지 뭐 없어도 위풍당당하던 때가 언젠지도 모르겠다. - a
- 어른이 된 거 아니겠나.
- b
- (코웃음 치며) 어른 좋아하네. 더 바보가 된 것 같다. 하트 하나에 울고 웃고.
진짜 하기 싫다. 살라면 해야 하고. 나는 미쳤다. 언제까지 미쳐야 하나요? - a
- 왜 크크큭. 결혼해서 애를 낳고 키워야 어른이 되나요?
- b
- 애가 애 낳으면 애끼리 투닥 하면서 크는 거지 되지 뭐가 어른이고.
어른이 애를 낳아야 키우는 거지. - a
- 푸흐흐흐흐 그르치. 육아스타그램.
- b
- (정색하며) 말하지 마라 육아스타그램... 태그 디백팔 태그 천사맘... 말 길어진다.
- a
- 태그 세상효자 태그 사랑한다.
- b
- (웃으며) 하지마라.
- a
- 니 내일 출근할거 다 쌌나?
- b
- 응 다 쌌지. 옷만 좀 더 넣었다. 어서 자자.
b는 일어나서 주섬주섬 상을 정리한다. 밖에 왔다 갔다 하며 상을 치운다.
a는 벽에 걸린 b의 스케줄 표를 쳐다본다. - a
- 야 내일 또 시엠립이가? 몇 박 며칠이고?
- b
- 3박 4일.
- a
- 또 한참 뒤에 오겠네.
- b
- 난 언니들 비키니 사진 찍어드리고 올게.
- a
- (소파에 걸터앉으며)햐 국제선 타본게 언제고. 작년에도 못 나갔는데.
- b
- 따라온나. 가자. (빨래 거치대에 걸린 스타킹을 하나 접어서 캐리어에 넣는다.)
- a
- (방을 돌아다니다가 다시 침대에 누으며)
...딱히 빡센 건 없는데 왜 시간이 안 나는 것 같노? 술 마실 짬 밖에 안 나네. - b
- 나도 딱히 빡센 건 없는데 외국 나가면 병 걸린 사람 같다.
- a
- (천장을 쳐다보며) 지환이도 연수원에 들어가 있고.. 술 먹을 사람도 없다.
b는 화장실에서 칫솔을 입에 물고 방으로 들어온다.
- b
- (칫솔질 하며) 없어? 뻥치시네.
- a
- 흐흐흐흐. (침대에 벌러덩 누우며 핸드폰을 올려본다.) 그르치. 뒤지면 다 나오지.
- b
- (거품을 입에 물고) ..다 나오지.
- a
- 다 나오지..
b 불끄고 퇴장.
암전.
- 호들갑 작가소개
내 손이 말하다니... 내 손이 말하기 시작했다.
독자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