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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가 태어나면 우는 이유

이기영
112호 2017.03.23
등장인물임산부 : 쌍꺼풀이 없는 사람10개월 된 태아 : 쌍꺼풀이 없는 사람삼신할머니산부인과 의사무대임산부와 태아 사이에 천막이 있다. 그 천막은 길게 가운데가 갈라져 있다.

등장인물
임산부 : 쌍꺼풀이 없는 사람
10개월 된 태아 : 쌍꺼풀이 없는 사람
삼신할머니
산부인과 의사

무대
임산부와 태아 사이에 천막이 있다.
그 천막은 길게 가운데가 갈라져 있다.

임산부
(원빈 사진을 보며 간절히) 제발 원빈처럼 눈 크고 쌍꺼풀 짙은 아들 낳게 해주세요. 제발, 제발.
태아
(간절히) 제발 원빈 아빠, 이나영 엄마처럼 눈 크고 잘생기고 예쁜 엄마아빠한테 태어나게 해주세요. 제발, 제발.
임산부
수학 잘하고, 영어회화 잘하는 아이 낳게 해주세요. 제발, 제발.
태아
엄마는 최소 이대 이상, 아빠는 최소 연고대 이상 졸업한 사람 만나게 해주세요. 제발, 제발.
임산부
운동도 잘하고 돈 복 있는 아이 낳게 해주세요. 제발, 제발.
태아
최소 40평대 강남아파트 갖고 있는 엄마아빠 만나게 해주세요. 제발, 제발.
임산부
아. 내가 이럴 때가 아니지. 머리 좋은 아이 낳으려면 내가 공부로 태교를 해야겠어. 정석이 어디 있지? (정석을 찾는다) 음, 오랜만에 공부한번 해볼까? (책을 펼치며) 아. 진짜 내가 학생 때도 안하던 공부를……
임산부
(정석책 읽기) 수열에서 엔이 한없이 커질 때, 에이엔의 값이 한없이 커지면 수열 에이엔은 양의 무한대로 발산하고, 에이엔의 값이 음수이면서 그 절댓값이 한 없이 커지면 수열 에이엔은 음의 무한대로 발산하고, 수열 에이엔이 수렴하지도 않고 양의 무한대나 음의 무한대로 발산 하지도 않으면 수열 에이엔은 진동한다.
태아
(책 읽는 동시에 고통스러워한다) 아~ 머리아파. 하지마! 하지마! 아~ 괴로워~
임산부
(책 읽기 멈추고 멍하니 책을 바라본다) 내가 이래서 수학 포기 했었지.
태아
(임산부가 책읽기 멈추는 동시에 편안해지는 표정)
임산부
그럼, 영어라도. 나도 영어는 곧잘 했어. (영어교재를 꺼내 읽는다. 열심히)
The fairy and the woodcutter. A long time ago, a woodcutter lived alone in the forest. One day when he was cutting wood,……
태아
어? 엄마 소리가 이상해. 이 소리는 엄마가 아닌데. (불안해하며) 우리 엄마 어디 갔어?

(삼신할머니 등장)

삼신할머니
자, 이제 때가 됐다. (천막을 가르며) 너희 엄마다. 어서 여기서 나가라.
임산부
(진통이 온 표정) 악, 애가 나올 때가 됐나봐. (침대에 눕는다)

(산부인과 의사 등장)

의사
이제 애기 곧 나올거에요~ 라마즈호흡 하시고, 지금은 힘 빼세요~
태아
(기대에 찬 눈빛으로 천막 사이로 엄마를 훔쳐본다) 어, 이건 제가 원하는 게 아닌데요.
삼신할머니
니가 원하는 게 뭐니?
태아
잘생기고 예쁘고 멋진 몸매 갖은 부자 똑똑한 엄마아빠
삼신할머니
얘야, 그건 니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란다.
태아
왜요? 왜요? 이 아줌마 맘에 안 들어~
삼신할머니
너랑 너~무 닮았잖아. 딱 니 엄마잖아. 자 빨리 나가. 시간이 없다 (태아를 천막으로 밀어 넣으려고 한다.)
태아
(안 나가려고 버티면서, 사진을 보여준다) 이 사람한테 태어나게 해주세요.
삼신할머니
(사진을 들여다보고 어이없어하면서) 허허, 원빈? 양심이 있어봐라.
태아
왜요? 왜요?
삼신할머니
하나도 안 닮았잖아. 자, 이제 나가라 (태아를 밀어 넣으려고 한다)
의사
이제 힘을 주세요. 힘!
임산부
(힘을 준다)
태아
(나가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며) 아~ 싫어 싫어. (태아 다리 한쪽이 천막 밖으로 나온다)
의사
이런, 아이가 거꾸로 있어요. 머리부터 나와야 하는데. (다리를 다시 밀어 넣는다)
삼신할머니
거~참. (태아의 머리를 밀어 넣으려고 한다) 빨리 나가. 늦으면 나 야근해야해.
태아
아, 싫어 싫어. 진~짜 싫어.
(한동안 실갱이 하다 결국 삼신할머니에게 밀려 천막을 뚫고 나온다.)
임산부
아들아~
태아
응애~ 응애~ 아, 이건 아니야. 응애~ 응애~ 아, 이번 생은 끝났어. 응애~ 응애~
호들갑 작가소개
하고 싶은 것만 할 수 있는 세상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하고 싶은 것보다 시켜주는 것을 먼저 선택해왔습니다. 그렇게 10년 넘게 나를 괴롭혔습니다.
내 글을 읽고, 피식 웃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위로 받는 사람이 있다면, 용기를 얻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이 이 세상에 단 한명이라도 있다면 글을 쓰고 싶습니다. 적지 않은 나이에 처음으로 갖게 된 꿈입니다.
독자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