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여자아이는 누구냐
하요아
113호
2017.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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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 박규솔 (남, 30대) 황준호 (남, 30대) 안효경 (남, 30대) 여자아이 할머니 무대 가구 하나 없는 방. 한 번씩 빠르게 깜박거리는 백열등. 벽지는 벗겨지다 말아 있다. 폐가옥인 듯한 방의 하나 있는 창문이 이상하리만큼 크다. 세 명의 남자가 바닥에 누워 있는 여자아이를 둘러싸고 있다...
등장인물
박규솔 (남, 30대)
황준호 (남, 30대)
안효경 (남, 30대)
여자아이
할머니
무대
가구 하나 없는 방. 한 번씩 빠르게 깜박거리는 백열등. 벽지는 벗겨지다 말아 있다. 폐가옥인 듯한 방의 하나 있는 창문이 이상하리만큼 크다. 세 명의 남자가 바닥에 누워 있는 여자아이를 둘러싸고 있다.
- 박규솔
- (심각한 얼굴로) 죽었다니까 그러네.
- 황준호
-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 박규솔
- 목을 봐. 저거 삭흔이잖아.
- 안효경
- (창가로 걸어가며) 씨.
- 황준호
- 그냥 주름 아닌가? 좀 빨간 주름 같은데.
- 박규솔
- 목눌림에는 세 가지 유형이 있어. 목맴 흔적, 손 조름 흔적, 그리고 마지막이 끈 조름 흔적이야. 교살이라는 거지.
- 황준호
- 무슨 이유로? 아직 애잖아? 열 살도 안 돼 보이는데?
- 박규솔
- (들리지 않는 듯) 목이 눌려 죽은 사람의 특징이 있는데 얼굴에 울혈이 심하고 결막에 점상 출혈이 나타난다는 거야. 내부 장기의 울혈도 심상치 않지. 혈액은 아주 검붉은 색을 띤다고.
- 안효경
- (성큼성큼 다가오며) 한번 보자.
- 안효경
- 아! 왜? 죽었는지 보자고!
- 황준호
- 그러다 벌 받는 거 몰라?
- 안효경
- (어이없어하며) 벌을 누가 내리는데?
- 황준호
- (말없이 하늘을 가리킨다)
- 박규솔
- 뉴스 못 봤어? 미용실 딸 납치 사건.
- 황준호
- 맞아! 그거 알아!
- 안효경
- (못마땅한 듯 혀를 찬다)
- 박규솔
- 비밀수사 원칙을 고수했대. 비공개로 실시한 탐문수사에만 몇 명 안 되는 인력을 투입했다가 사건 발생 오 일째에 공개수사로 전환했대. 전국 고속도로나 지하철 전광판은 물론이고 교통방송 라디오 같은 데를 통해서도 그 애 사건 정보를 내보냈지.
- 황준호
- (집중하며) 아……!
- 박규솔
- 배부된 전단지만 이십만 장이야. 행적을 추적하기 위해 조회한 구미시 인근의 통화내역만 이만 건이 넘고 실종 지역 인근에서 조사받은 차량만 이천오백 대였어.
- 안효경
- 네가 범인 아냐?
- 박규솔
- (오히려 목소리 낮춰서) 뭐?
- 안효경
- 그렇게까지 상세하게 아는 이유가 뭐야? 실종 사건이 있으면 그런 게 있구나 안타깝구나 하고 마는 거지 말이야.
- 황준호
- 쟨 원래 그런 데 관심 많아. 실종 사건 관련해서 책 쓰는 중이거든.
- 안효경
- (일부러 웃으면서 창가로 향한다)
- 박규솔
- (효경을 신경 쓰며) 지금은 수사본부가 해체하고 전화 제보만 받는 상태야. 이 아이가 걔일지도 몰라. 얼굴이 낯익어.
- 황준호
- 그러고 보니까……!
- 안효경
- 죽었는지 확인해 봐야 한다니까.
- 박규솔
- (애매하게) 저기 피하출혈 흔적 보이지? 정맥이 터져서 그런 건데, 그런 좌상은 눈으로만 봐서는 안 돼. 절개해서 출혈 유무나 범위를 확인해야 한다고. 좌상 모양이 때로는 그것을 만든 물체의 작용면을 본뜬 형태를 보이기도 하거든.
- 안효경
- (지친 듯) 목 졸려 죽었다면서?
- 박규솔
- (아이의 신체 어딘가를 애매하게 가리키며) 표피박탈!
- 황준호
- (두리번거리며) 그건 뭔데?
- 박규솔
- 표면이 거친 물체가 피부를 스치면서 살갗 바깥 부분이 벗겨진 걸 말하는 거야. 그러니까 피부의 가장 바깥 부분을 표피라고 하거든? 표피가 허옇게 일어난 걸 보면 찰과 방향 알 수 있어. 목맨 자국처럼 짧게 반복 마찰하여 생기는 걸 마찰성 표피박탈이라고 불러. 바로 저기에 있는 저거지.
- 황준호
- 역시 죽은 거 맞네. 불쌍해.
- 박규솔
- 불쌍하지.
- 안효경
- 네들만 하겠냐?
- 안효경
- (성큼성큼 다가와) 비켜 봐!
- 박규솔
- 증거 보존 원칙 몰라?
- 황준호
- 벌 받아!
- 안효경
- 놔! 안 놔?
- 할머니
- 이쁜아, 할매 일 다 했다. 은자 집에 가자.
- 여자아이
- (눈을 비비며) 할머니 나 배고파.
- 할머니
- 오뎅 사 묵자. 가서 호떡하고 오뎅 사 묵자.
- 황준호
- 뭐야 이게?
- 안효경
- 안 죽었다니까 그러네.
- 박규솔
- (헛기침만)
- 황준호
- 이때까지 뭐했던 거야, 우리?
- 안효경
- 가자.
- 박규솔
- 어디로?
- 안효경
- (말없이 창문을 가리키며)
(규솔과 준호가 황급히 막아선다)
(세 사람 천장을 쳐다보자 알전구가 일순 깜박거린다)
(알전구가 빠르게 깜박거린다)
(규솔과 준호가 아이를 건들지 못하게 효경에게 매달린다)
(갑자기 문이 벌컥 열리는 바람에 셋은 언다. 할머니가 걸어와 아이를 조심스럽게 흔든다.)
(여자아이 일어난다)
(세 남자 문밖으로 나가는 여자아이를 멍하니 쳐다본다. 달칵하고 불 꺼지는 방. 할머니도 방을 나선다.)
(알전구가 빠르게 깜박거린다)
- 호들갑 작가소개
- 혼자인 게 좋습니다. 거기에 익숙해지다 보니 익숙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낯설어지는군요. 과거의 신념과 강박이 서서히 표백되어 다른 게 되는 걸 지켜보노라면, 거울 속의 나도 내일쯤에는 낯선 게 될까 봐 두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