냐옹
이지은
113호
2017.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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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성 (술에 취한 말투) 저 달은 너무하네, 너무해. 혼자 저렇게 밝으니까 뒤에 있는 별빛이 하나도 안 보이잖아. 이기적인 녀석, 혼자 덩치도 제~일 커서는. (자리에 갑자기 선다) 아, 오늘은 일 년에 한두 번 있을까 말까한 대단한 날이었어! 정말 술 잘 받는 날이었다니까! 마셔도 마셔도 취하지 않는 날! 나비야~ 냐옹~ 나비야~ 냐...
- 준성
- (술에 취한 말투) 저 달은 너무하네, 너무해. 혼자 저렇게 밝으니까 뒤에 있는 별빛이 하나도 안 보이잖아. 이기적인 녀석, 혼자 덩치도 제~일 커서는. (자리에 갑자기 선다) 아, 오늘은 일 년에 한두 번 있을까 말까한 대단한 날이었어! 정말 술 잘 받는 날이었다니까! 마셔도 마셔도 취하지 않는 날! 나비야~ 냐옹~ 나비야~ 냐옹~
- 준성
- (남자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야, 너 언제 이렇게 뚱뚱해졌어? 완전 돼지 고양이네. (자켓 주머니에서 소세지를 꺼내며) 받아. 먹어. 돼지 고양이에게 어울리는 간식이다. (의아하다는 듯) 근데 어제까지만 해도 잘 먹던 녀석이.... 갑자기 싫어? 응? 너 이거 엄~청 먹고 이렇게 커진 거잖아. 이제 와서 다이어트 하는 거야?
- 남자
- 저.... 죄송한데 저는 고양이가 아닌데요.
- 준성
- (자리에 자빠져서) 나, 나, 나비가 말을 하다니!
- 남자
- 저는 나비가 아니고....
- 준성
- 나비, 나비가 드디어 사람이 되었어! (호흡을 바꿔서) 나비가 사람이 되었다니.
- 남자
- 저는 매일 아저씨네 집에 우유 배달하는,
- 준성
- 역시 나비는 우유를 좋아해. (사이) 나비야, 소시지 먹을래?
- 남자
- 저 정말 고양이 아니에요. 사람 맞아요. 이름도 있어요. 한솔.
- 준성
- (뒤늦게 상황 파악 후, 시무룩한 목소리로) 에이씨, 술 취했나. 야, 이건 너 먹어.
- 남자
- 고맙습니다.
- 준성
- 나 오늘 나비한테 할 말 많았는데. 나비도 내 곁을 훌쩍 떠나버렸구나.
- 남자
- 저한테 말씀하세요.
- 준성
- (한참 고민 후, 남자 옆에 앉는다) 오늘 나 청첩장 받았거든. (사이) 내가 좋아하던 사람한테. 나비는 알 거야. 매일 그 사람에 대해서 얘기했거든.
- 남자
- (소세지를 내밀며) 이거라도 드실래요?
- 준성
- 됐어. 너 다 먹어.
- 남자
- 더 좋은 사람 만날 거예요.
- 준성
- (고개를 저으며) 아니야. 그 사람 때문이 아니야. 나 때문이야. 나만 제자리라서 그래. 내가 혼자 있는 동안, 저 사람은 누군가와 사랑을 했구나. 내가 뭘한 걸까.
- 남자
- 아저씨는 고양이들에게 매일 밥과 사랑을 줬잖아요.
- 준성
- 맞아. 매일 똑같은 일이었지. 전~혀 발전 없는.
- 남자
- (곰곰히 생각하다가) 아저씨, 혹시 맨 첫날 기억나요? 고양이에게 밥을 준 첫날. 그때, 아저씨가 주는 음식을 고양이가 곧바로 먹었나요?
- 준성
- 글쎄....
- 남자
- 아마 경계했을 걸요. 눈치를 보며 소시지 하나만 덥썩 물고 도망갔거나 갸르릉 소리를 내거나. 지금은 어때요? (사이) 아저씨 앞에서 얌전히 오랫동안 밥을 먹지 않나요?
- 준성
- (말을 돌리듯) 나는 항상 길고양이가 되길 바랐어. 조용한 발걸음이 정말 매력적이거든. 담벼락을 우아하게 걷는 건 내 평생의 소원이야. 운이 좋다면 매일 같은 시간에 먹이를 주는 사람도 만날 수 있겠지. 그 사람에게 애교도 부리며, 사랑받는 법도 배우고 싶었어. 높은 곳에 올라가는 것에 자부심도 가지면서. 고양이에겐 옥탑방에 사는 게 최고의 행복일 수도 있잖아? 사람들과 다르게.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말이야, 난 그 사람에게 늘 길고양이었어. 누군가에겐 평생 마주칠 일 없는 사람. 냐옹. 듣기도 싫은 소리에 처음부터 외면했겠지. (사이) 우리는 같은 과 선후배 사이었지. 그 사람은 인기가 많았어. 어딜 가든 환영 받았지. 나는 워낙 낯을 가리는 성격이라, 그 사람에게 말을 건네는 것조차 너무 어려웠어. 어느 날, 우리는 같이 조별 과제를 하게 된 거야. 너무 기뻐서 잠도 제대로 못 잤어. 밤을 새서 열심히 과제를 하고, 다른 조원들 몰래 그 사람을 주려고 커피도 사갔지. 그런데 어떻게 됐는지 알아? 그 사람이 피피티에 내 이름을 빼먹은 거야. 놀라서 내가 내 이름이 빠졌다고 하니, 그제야 그 사람이 이렇게 묻더군. 이름이 뭐예요? 라고. 허허.
- 남자
- (어색하게 따라 웃으며) 허허.
- 준성
- 나는 그 사람이 당연히 날 알 줄 알았어. 착각이고 오만이었지. 용기를 좀 낼 걸 그랬나봐. 이름 없는 길고양이처럼 담벼락 뒤에 숨어 있지만 말고. (민망한 듯 말을 돌리며) 맞다. 근데 난 고양이가 그 냐옹하고 우는 그 뜻을 알고 싶어. 무슨 뜻일까. 냐-옹.
- 남자
- 냐-옹
- 준성
- 그러고보니까 나는 나비를 다 나비라고 부르네. 나도 나비를 구별 못하면서, 그 사람이 날 모른다고 이렇게 바보처럼 군다.
- 남자
- 그래도 어떤 나비든 아저씨는 다 사랑해줬잖아요. 모른 척하던 그 사람과 다르게.
- 준성
- 맞아. 어떤 나비든 내 눈엔 다 예뻤지. 그래, 맞아. 나도 그런 사랑을 받고 싶었어. 딱 내가 주는 사랑. 되갚음이 없는 사랑을 나도 한번 받고 싶었다구. 내가 나비들에게 주는 사랑은 조건 없는 것이거든. 내가 설마 고양이들이 물어오는 생쥐를 바라고 예뻐하겠니?
- 남자
- (궁금하다는 듯) 아저씨는 길고양이가 되면 뭘 하고 싶어요?
- 준성
- 내가 길고양이가 된다면 말이다. (고민한다) 제일 먼저 저 앞집 우유통을 뒤질 거야. 신선한 우유를 내가 제일 먼저 먹어버리는 거지. 앞집이 밤늦게까지 항상 시끄러운 락음악을 틀어놓거든. 그래서 꼭 골탕 먹여보고 싶어.
- 남자
- 에이, 그럼 안 되죠.
- 준성
- 알 게 뭐야. 그리고 아침마다 이렇게 가로등 아래에 허리를 쭉 펴고 서 있을 거야. 지나가는 사람들의 바쁜 다리를 보면서 여유를 부리는 거지. (신나는 말투로) 아! 밤에 남들 몰래 버린 쓰레기봉투도 앙칼진 이빨로 확 뜯어버릴 거야. 그러면 봉투 주인의 영수증 같은 게 삐죽 튀어나오겠지? 아주 쪽팔리게 만들어야 돼.
- 남자
- 그건 좋은 생각이네요.
- 준성
- 그리고 꼭 달을 잡을 거야. 저 이기적인 달을 품에 안고 공놀이를 하는 거지. 볼로 살살 달을 비비면 내 뾰족한 수염에 놀라 둥그런 달이 펑하고 터져서 반으로 찌그러질지도 몰라. 아! 달은 치즈로 만들어졌다니까 길고양이끼리 달을 다 먹어버리면 되겠다. 그럼 달 뒤에 숨어 있던 별들이 반짝반짝 제 빛을 낼 거야. (사이) 길고양이가 되면 행복하겠다.
- 남자
- (진지하게) 정말 그렇게 생각해요?
- 준성
- 너도 길고양이가 되고 싶다고 하지 않았니? 길고양이가 되면 넌 뭘 하고 싶어?
- 남자
-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상대를 하루종일 기다릴 거예요. 사람이든 고양이든. 담벼락 위에 나른하게 누워서요.
- 준성
- 좋은 생각이네. 길고양이가 되면 지금보단 훠얼씬 행복할 거야. 난 내가 아주 매력적인 길고양이가 될 걸 믿거든. 많은 고양이들이 내 뒤를 졸졸 따라오겠지. 어쩌면 강아지도 나한테 반할 지 몰라. 먹다 남은 생선뼈로 유혹하면서.
- 남자
- 근데 고양이가 되면 무서운 일도 참 많이 생기지 않을까요? 좋은 주인을 만나지 못하면 몇 날 며칠을 배고픔에 허덕이다가 죽을지도 모르는데요? 새벽엔 음주운전한 차에 확 치여서 로드킬 당할 수도 있고요. 아! 요즘엔 중탕이니 뭐니 해서 길고양이들을 잡아먹는 게 유행이라던데. 거기다 요즘엔 유기견들도 많아져서 먹이 경쟁이 얼마나 치열한데요.
- 준성
- (놀란 표정으로 듣다가, 슬픈 말투로) 고양이들도 살기 힘든 세상이 왔구나. (문득 주변을 돌아보며) 그런데 너 우유배달은 언제 가니? 곧 해가 뜰 것 같은데.
- 남자
- 아저씨. (사이) 떠돌이가 조각 잠을 자는 것처럼, 길고양이들도 조각 사랑을 받아요. 푹 사랑 말고. 밥을 나눠주러 오는 그 순간에만 예쁨을 받죠. 하지만 그 길고양이들은 그 조각 사랑마저 간절하기 때문에 하루 종일 그 사람을 푹 사랑하고 있어요. 얼마나 외로운 지 아저씨는 몰라요. (미소지으며) 이제 고양이가 되고 싶지 않죠?
- 준성
- 글쎄, 나는 여전히 되고 싶은데. 할 수만 있다면 말이야. 진심이야. (사이) 나는 너무 지쳤거든.
- 남자
- (결심한 듯, 단단한 말투로) 아저씨. 달님 미워하지 말아요. 가로등 없는 길에선 달빛이 유일한 빛이니까요.
- 준성
- 달이 너무 먹음직스럽게 생겨서 그런 거야.
- 남자
- 그리고 냐아옹의 뜻은, 안녕히 계세요, 라는 뜻이래요.
- 준성
- 그러니?
- 남자
- 냐옹은, 나는 고맙습니다, 라는 뜻이구요.
무대 한 구석, 남자가 고양이처럼 쭈그리고 앉아 있다.
암전 후 조명 in. 무대 위에는 준성과 남자 모두 고양이로 바뀌어 있다. 음향효과, 냐옹이 계속 나온다.
- 호들갑 작가소개
- 지금입니다.
독자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