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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서약

차인영
114호 2017.04.20
7평 정도의 공간 (박스 펼쳐서 공간표시) 불 켜지면 가운차림의 여자와 남자. 남자, 여자, 서로 부둥켜안고 짙은 스킨십. 여자, 느끼는 듯하다가 남자가 어깨로 내려가며 단추 풀려하자 바로 남자 머리채(살짝) 잡는다.

7평 정도의 공간 (박스 펼쳐서 공간표시)
불 켜지면 가운차림의 여자와 남자.
남자, 여자, 서로 부둥켜안고 짙은 스킨십.
여자, 느끼는 듯하다가 남자가 어깨로 내려가며 단추 풀려하자 바로 남자 머리채(살짝) 잡는다.

남
(무릎 꿇고 머리채 잡힌 채) 왜 이래 자기.
여
결혼해.
남
뭐? 넌 무슨 청혼을 사람 머리채 잡고... (머리채 잡힌 채) 내가 지금 너 봐주는 거야.
여
난 최소한의 약속이 필요해. 결혼 먼저. (남자 머리 확 민다)
남
책임감? 내 한 몸도 감당이 안 되는데... (그대로 한 바퀴 뒹굴고 일어난다) 너랑 나랑 둘이 벌어 한 달에 3백이 안 돼. 주변을 둘러봐라. 한 달 3백으로 둘이 못 살아. 삼시세끼 라면 먹을 거야? (여자에게 다가서며)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 응? (끌어안으려하는) 그런 게 꼭 필요해?
여
(남자 피하는, 꼭 숨바꼭질 같다) 난 삼시세끼 라면이라도 좋아, 당신과 함께라면. 나 죽을 때 내 손 잡아주겠다는 최소한의 약속이 필요해... (남자가 끌어안는 대로 힘없이 안겨) 헤어져, 아니라면.
남
뭐? 헤어지잔 얘길 넌 뭐 청혼하자마자 바로...
여
결혼 아님 이별. 끝을 내자 이제. (남자에게 진하게 키스) 아디오스. (나간다)
남
(무릎 꿇고 앉아 기도하는 모습이다, 심리적으로 괴로운)

남, 잠옷 벗는다. 검은 색 면 티셔츠에 면바지차림. 손에 선서문을 들고 있다.
다시 등장한 여자는 흰 심플한 원피스. (마치 상복 같기도) 두 사람 발아래 넥타이와 화관.
자못 비장한 표정으로 선서문을 나눠 가지고 낭독하는 두 사람.
객석이 하객이다.

남
저희 두 사람의 결혼식에 와주신 여러 하객 여러분.
여
귀한 시간 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남
저 36세 땡땡땡과
같이
이 자리에서 결혼을 서약합니다.
남
(입이 안 떨어지고)
여
(남자 쳐다보다가 헛기침했다가 결국 팔로 툭 친다)
남
언제까지 미룰 수 없기에
여
준비할 여유가 없기에
남
같이 있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드디어
여
마침내
남
여러분 앞에서 맹세합니다.
여
저는 한 달에 백을 겨우 벌고
남
저는 한 달에 이백을 못 법니다.
여
(주변을 둘러보며) 이런 작은 단칸방이지만
남
함께 누울 수 있는 집입니다.
여
도시에서 멉니다.
남
많이 멉니다.
여
(남자 힐끔 본다) 그래도 서울에서 한 시간 반 거리. 감지덕집니다.
남
(내심 자랑스러운, 손으로 가리키는) 딱 요만큼이, 우리 집입니다.
여
(한심) 여긴 현관입니다. 현관만 우리 집이죠.

(사이)

남
사실은 은행 집이죠.
여
(피식) 그래도 우리는 시작합니다.
남
광장에서 촛불을 밝히던 어느 토요일 밤에
여
우리는 서로의 무덤이 되어주기로 했습니다.
남
이렇게 빨.리. 무덤을 결정할 줄 몰랐습니다.
여
(남자 슬쩍 쏘아본다) 저도 그렇습니다.
남
(여자 향해 돌아선다) 그러니까 제가 지금은 아니라지 않았습니까. 역시, 미루십시다.
여
거절합니다. 지금 아니면 언제 하겠습니까. 영원히 못합니다. 장담합니다. (관객에 하소연) 억울한 건 접니다! (사이) 이 남자가 제 첫 남잡니다!
남
(뜨끔) 전 지금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합니다. 이제 돌아갈 곳이 생겼습니다. (윙크)
여
(웃는) 저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남
사랑하기 때문에
같이
이 결혼을 서약합니다.
남
어느 가문을 잇기 위해서가 아니라
여
인구수를 위해서가 아니라
남
행복을 위해서 결혼을 하고
여
아이를 가지기로 맹세합니다. (사이) 저는 전문대를 나왔고
남
저는 고졸입니다.
여
우리에겐 젊음뿐입니다.
남
몸만 있는 빈털터리지만, 고통을 고통으로 느껴지지 않게 하는
같이
이 사람을 만나 결혼을 서약합니다.
남
죽도록 이 손을 놓고 싶을 때가 올지도 모릅니다. 개그보다 뉴스가 더 재밌는 이 세상에서, 정말 삼시세끼 라면만 먹을 수도 있습니다.
여
(쳐다보는데 울컥하는) 감지덕집니다.
남
그렇담, 맛있게 끓여주겠습니다. (사과 꺼내 팔로 굴려서 여자에게 넘긴다)
여
(사과 받는) 좋습니다. 둘이 먹는 라면은 생각보다 달콤합니다.
남
고맙습니다. 사과 한 알도 나눠먹으며 행복하겠습니다.
여
책임감 있는 낮져밤이가 되어주시길 바랍니다. 전 책임감 있는 낮이밤져가 되겠습니다.
남
명심하겠습니다.
여
더 맛있게 먹겠습니다. 라면도, 자기도...

여, 넥타이 주워 남자에게 매준다. 남, 여자 머리에 화관 씌워주고. 두 사람, 정면 본다.

남
세상은 늘 예상을 벗어나고
여
현실이 영화보다 더 영화 같지만
남
언제 죽을지 모르는 우린, 그런 이 땅에서
여
행복해지고자
남
사랑하고자
같이
결혼을 서약합니다.

두 사람, 마주보고 감싸 안는다. 긴 포옹. 서로 넥타이와 화관으로 장난치는 두 사람의 모습...

끝.

호들갑 작가소개
어떻게 하면 재밌게 살 수 있을까 연구하며 극작과 졸업,
평생을 신나고픈, 즐거운 글쓰기를 고민 중인 글쟁이.
드라마, 희곡, 시나리오, 웹툰 스토리 등의 분야에서 깨알같이 활약 중.
다양한 분야에서 도드라지는 두각을 나타...낼 예정...(부디)
주성희, 정미라 외 친구들 고맙습니다.
독자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