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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알겠습니다

이지윤
115호 2017.05.11
등장인물지원(여, 26, 막내 방송작가)미수(여, 40, 메인 방송작가)지원과 미수는 서로 분리되어 있는 듯한 공간에 있다.미수는 하수 쪽에, 지원은 상수 쪽에 앉아있다.미수는 간단한 쇼파에 앉아 있다. 미수 옆쪽에 놓인 테이블에는 차 한 잔과 노트북이 놓여있다. 미수는 읽을거리 따위를 보고 있다....

등장인물
지원(여, 26, 막내 방송작가)
미수(여, 40, 메인 방송작가)

지원과 미수는 서로 분리되어 있는 듯한 공간에 있다.
미수는 하수 쪽에, 지원은 상수 쪽에 앉아있다.
미수는 간단한 쇼파에 앉아 있다. 미수 옆쪽에 놓인 테이블에는 차 한 잔과 노트북이 놓여있다. 미수는 읽을거리 따위를 보고 있다.
지원은 딱딱해 보이는 책상을 앞에 두고 의자에 앉아 책상 위의 노트북을 보고 있다.

지원, 크게 한숨을 쉬더니 핸드폰을 집어 든다.
미수, 크게 기침을 한다.
지원, 깜짝 놀라더니 핸드폰을 다시 내려놓는다.
미수, 차를 마신다.
지원, 결심했다는 듯 핸드폰을 다시 집어 든다. 번호를 꾹꾹 누른다.
이어지는 미수의 핸드폰 벨소리.
미수, 울리는 핸드폰을 확인하더니 기침을 한번 크게 하고 전화를 받는다.

미수
응. 지원아.
지원
몸은 좀 어떠세요, 언니?
미수
괜찮은 듯, 안 괜찮은 듯 왔다갔다 해.
지원
네에.
미수
회사는 별일 없지?

(사이)

지원
(비장) 언니
미수
(지원 쪽을 바라보고, 같이 비장) 왜
지원
(꿀꺽) 아무리 찾아봐도 ‘그것’의 효능은 딱히 없다는데요.
미수
없대?
지원
네.
미수
왜 없대?
지원
네?
미수
있을 거야. 내가 분명히 어떤 기사에서 봤는데. 그리고 지난번에 kbc 아침 방송에도 나왔었어.
지원
전문가들한테 전화해서 자문을 구했는데요.
미수
전문가 누구?
지원
농촌진흥청의 연구원들, 약초학과 교수들, 관련 논문 썼던 학자들이요. 아주 정확히 모두 한 목소리로 ‘그것’에 해당하는 효능은 찾을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미수
조금 더 알아볼 수는 없겠니?
지원
더 이상 전화할 곳이 없을 정도로 알아봐서 더 이상 전화할 곳이 없습니다.
미수
에이, 내가 어떤 기사에서 봤다니까.
지원
(수화기 손으로 가리고) 저도 그 어떤 기사를 너무 찾고 싶습니다.
미수
응? 뭐라고?
지원
아닙니다.
미수
그래. 그럼 한 번 더 찾아봐.
지원
한 번 더요?
미수
kbc 아침 방송에도 나왔었다니까.
지원
한국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 한병철 교수님께서 그건 잘못된 정보라고 하시면서 방송의 역기능을 강조하시던데요. 방송에서 어떻게 그런 거짓 정보를 아무렇지 않게 내보낼 수 있냐고 하시면서.
미수
설마 효능이 없는데 kbc 아침 방송에서 그렇게 내보냈을리가. 지원아, 한번만 더 찾아보자.
지원
언니.
미수
그래, 지원아.
지원
더 이상 자문을 구할 곳도 없지만 오늘은 금요일, 지금은 시곗바늘이 정확히 저녁 8시 46분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나마 친절한 공무원들은 보통 금요일 5시면 퇴근을 해서 전화 받는 일은 절대 없고요. 이 시간에 전문가들 개인 번호로 전화하면 ‘이 시간에 전화를 해야겠냐’며 한소리 씩 던지곤 합니다. 뭐 이 정도 쯤은 괜찮아요, 언니.

미수, 잔기침을 한다.

지원
하지만 제가 너무나 ‘쪽’팔린 건요, 언니.

미수, 차를 마시다 ‘쪽팔린’에 강조된 지원의 목소리에 사래 들러 콜록거린다.

지원
가짜를 어떻게든 진짜로 바꿔보려는 저의 가상한 노력이죠. 저는 오늘도 ‘그것’의 없는 효능을 알아내기 위해 수십 통의 전화를, 그것도 우리나라에서 ‘그것’에 대해서는 최고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전화를 했어요. 최고들과 통화를 할 수 있는 아주 짜릿한 경험이었죠.

미수, 크게 재채기를 한다.

지원
최고들이 ‘no'라고 할 때, 저는 'yes’라고 말해야만 하는 짜릿한 대화였어요. 언니와 일하면서 이런 전율을 매번 느낄 수 있다는 것도 참 신기하네요.
미수
(상수 쪽으로 최대한 미소) 그래도 kbc 아침 방송에 나왔다는 것은
지원
(하수 쪽으로 최대한 미소) 거짓의 답습이죠.
미수
뭐?
지원
정의구현을 한답시고 사회를 뒤흔들어보겠다는 게 아니에요. 하나의 거짓 그 이면의 진실을 말 하고 싶은 거예요, 언니. 실컷 거짓말하고 방송 마지막 스크롤에 제 이름 올라가는 게 예전부터 쪽팔렸어요, 언니.
미수
그래서 어쩌자는 거니?
지원
(노트북 닫으며) 저 그만 둘게요.

조명, 파르르 떨리다가 암전.
다시 파르르 떨리다가 조명 들어온다.
지원의 노트북은 펼쳐져 있다.

미수
지원아
지원
...
미수
지원아 무슨 일이야?
지원
아, 잠깐 정전이 됐었나 봐요.
미수
아무튼 아까 말한 거 알겠지? 다시 한 번 찾아봐.
지원
네, 알겠습니다.
미수
내가 어떤 기사에서 분명히 봤다니까. kbc 아침 방송에도 그렇게 나왔었고.
지원
네, 알겠습니다.
미수
‘그것’ 효능은 월요일까지 알려주고, 주말에 푹 쉬고, 감기 조심해. 이번 감기 오래 간다. 콜록콜록.
지원
네, 알겠습니다.
미수
응 그래. 수고.

미수, 핸드폰을 테이블에 내려놓으면 하수 쪽 조명이 꺼진다.

상수 쪽 조명이 파르르 떨린다.
지원, 천정을 쳐다본다. 눈을 가늘게 뜬다.
암전.

호들갑 작가소개
한 연극을 보고 무대를 꿈꾸던 열 살 꼬마는,
수업 시간에 몰래 대본을 보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던 열일곱 여고생은,
여전히 무대를 꿈꾸고, 대본을 읽는다.
무대는 가장 진실 된 공간이다.
스물여섯의 나는 진실 된 사람이 되고 싶다.
무대 위에서는 배우로, 무대 아래에서는 작가로.
그렇게 살고 싶다, 앞으로도 평생.